40k 충성파 나이트 로드if



나이트 로드 챕터의 챕터 마스터이자, 제국 법의 수호자이며, 프라이마크를 기리는 자 '이단심문관' 히메네즈는 의문의 서신을 받았다. 그것은 제국 아스타르테스들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퍼스트 파운딩 중에서도 가장 첫번째로 창조되어 황제의 이름 아래 봉사한 자들, 제국 첫번째 군단이었던 다크 엔젤에게서 온 서신이었다. 수백 광년은 우습게 떨어져 있을 이 곳까지 오롯이 단 한 척의 고속 순양함이 이 서신을 전달하기 위해 워프를 거듭하여 나이트 로드의 유랑 함대까지 도달했다.


나이트 로드는 대반역 이후로 길리먼의 코덱스 제창을 통한 새로운 질서 수립에도 참여하지 않고 오롯이 반역자 사냥에만 치중하기로 결의했다. 그들은 혼란과 무질서를 법으로서 다시 세우고자 했으며, 공포를 수단으로 휘둘러 철권으로서 범죄자들의 난립을 막고자 했다. 그것은 사촌이자 형제로서 불리었던 다른 군단과 챕터들의 사이를 소원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아버지를 잃은 나이트 로드는 그들 스스로가 증오와 분노를 삭히기 위해 오랜 시간을 공들여야만 했다.


그러니까, 이렇게 이름값 높은 형제 챕터가 보낸 아주 중요한 서신은, 나이트 로드의 역사 속에서도 참 드문 일이었다. 물론 그들의 프라이마크와 나이트 로드의 아버지는 한 때 잠시나마 손을 붙잡고 반역자들의 목을 치고 다니던 사이였지만. 히메네즈는 깔끔하게 면도한 제 턱의 흉터를 긁었다. 반역자 마린의 검이 긁고 지나간 자리는 꽤나 보기 흉하게 뒤틀려 마치 이리저리 찢겨진 벼락을 연상시켰다. 


"다크 엔젤이라, 우리 고귀한 형제들이 무슨 일일까?"


챕터 마스터는 채플린 단테를 보았다. 그는 채플린 시험에 합격하고 해골 마스크를 쓴 뒤 다시는 그것을 벗지 않겠다고 맹세한 괴인이었다. 히메네즈는 단테가 그런 인물인 줄 알았더라면 결코 채플린 시험을 권유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었다. 괴인이자, 챕터의 어느 누구보다도 제국 법을 꿰고 있는 초인이기도 한 단테는 그의 해골 마스크를 통해서 변성된 목소리로 챕터 마스터에게 조언을 건넸다.


"다크 엔젤 챕터는 이단심문청에서 오랫동안 주시하는 챕터입니다. 그들이 몇몇 부정한 행위를 저질렀다는 심증이 돌고 있지요. 물론, 퍼스트 파운딩이자 황제의 첫번째 검이었던 그들에게 이의를 제기할 용기있는 이단심문관은 많지 않습니다. 다크 엔젤은 몇 번이고 숭고한 희생 정신으로 제국을 위해 피 흘린 챕터임을 부정할 수는 없겠죠. 오늘의 갑작스럽고 하수상한 접근은 다크 엔젤이 아니라면 예측조차 할 수 없을 가장 극단적이고 경악스러운 사건의 시초가 될 지도 모릅니다."


채플린의 말에 장황함이 없잖아 들어가 있었으나, 동시에 그것은 지금의 상황을 표현하는 가장 정확한 말 중 하나이기도 했다. 다크 엔젤이 이렇게 급작스러운 접촉을 시도한 것은 그 자체만으로 서사시적인 측면이 있었다. 이리 급박히 다가올 형제는 무엇을 가져올 것인가? 그들의 목적은 무엇이며 대체 왜 나이트 로드가 그들의 행위에 필요한 것일까? 챕터 마스터는, 솔직히 말하자면 이 귀찮은 형제의 접근을 무시하고 배반자 칸을 추적하러 가고 싶었다.


그 미치광이 학살자의 잘려나간 헬멧만 벌써 세 개였다. 그러나 그의 두개골은 단 한 번도 회수할 수 없었다. 개망나니 루시우스 같은 혐오스러운 족속들도 마찬가지였다. 하나 같이 그들의 영혼을 카오스의 괴물들에게 팔아치우고 죽지도 못하는 존재들. 지금은 그것들이 썩 그리웁다고 히메네즈는 생각했다. 정치란 인간의 안녕과 번영을 위해서 필요불가결한 요소지만, 동시에 몹시 피곤하고 귀찮은 것이기도 했다.


이단심문청의 알력 다툼 사이에 껴서 골치를 썩인 지난 세월을 고려해보자면, 차라리 명예로운 찬사를 받으며 제국 대법원을 수호하는 타칭 [법의 주춧돌들]이 더 괜찮은 삶을 구가하고 있다고 여겨도 좋을 것이었다. 정작 그들은 나이트 로드가 으레 그러하듯 따분한 평화를 걷어차고 반역자들의 피가 흐르는 전장으로의 복귀를 꿈꾸고 있지만.


"서신에서, 다크 엔젤의 챕터 마스터 아즈라엘이 밝히기를, 다크 엔젤 챕터 내부의 비밀스러운 사정으로 우리들에게 협조를 요청하고 싶다더군. 자세한 사정을 서신으로 밝히지 못하는 점에 대해서 몹시나 미안하다는 기색으로 말이야."


"꽤 저자세군요. 그 형제들이 우리에게 그럴 이유가 있답니까?"


이번에는 치프 라이브러리안 그레고리오이 물었다. 그는 나이트 로드의 사이킥 발현자들을 총괄하여 통솔하는 챕터 역사의 관리자였다. 챕터 마스터 히메네즈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챕터에 징병되어 살아남은 끝에 치프 라이브러리안의 자리에 오른 그는, 언제나 불안정한 선택의 순간 속에서 챕터 마스터를 훌륭한 보좌한 인물이었다. 그의 말대로, 다크 엔젤 챕터가 이리도 유화적으로 구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거나 어쩌면 최초의 경우일수도 있었다. 


"알 수 없지. 적어도 그들이 직접 우리를 찾아오기 전 까지는."


"다가오는 미래를 열어보기 전까지는 불확실한 법이니 말입니다."


치프 라이브러리안은 자신의 사이킥 에너지를 통제하게 도와주는 사이킥 지팡이를 꼭 쥐며 말했다. 나이트 로드의 유전자 아버지 콘라드 커즈는 평생을 미래를 보는 예지에 시달려 왔으나, 동시에 결코 미래를 본다는 것에 현혹되지 말 것을 아들들에게 경고해 왔다. 그의 가르침대로, 나이트 로드는 라이브러리안 선서에서 미래를 보지 않을 것임을, 혹여나 보더라도 결코 믿지 않고 발설하지 않을 것임을 지키도록 맹세하였다.


그것은 나이트 로드가 대처하는 방식이었다. 불확실한 미래, 다가오는 공포, 어느 것도 감히 나이트 로드의 이성을 꺾도록 두지 않고 오롯이 현재의 지성과 도덕, 인류가 쌓아온 정의와 법만을 믿으며 대처하겠다는 단호한 긍지였다. 챕터 중임들이 잠시 모여 나누었던 대화는 그대로 끝이 났다. 아직 파견나간 중대의 반역자 추적이 완전히 끝나지 않은 상태였고, 치프 라이브러리안은 반역자들의 워프 드라이브 흔적을 조금이라도 찾을 수 있도록 네비게이터들과 세밀한 사아킥 조율을 가하고 있었다.


얼마 간의 시간동안은, 나이트 로드는 반역자 처단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들은 아이 오브 테러로 도망치려던 반역자들을 따라잡는 것에 성공했고, 그들이 무엇을 해보기도 전에 모조리 목을 베어 백색 두개골로 만들어버릴 수 있었다. 카오스의 노예로서 휘말린 컬티스트들은 모조리 이단심문관의 감시 아래 제국 재판소에서 항소할 수 없는 타락죄를 기반으로 처형을 선고 받았다.


그리고 때가 되었다. 네비게이터들과 라이브러리안들은 하나 같이 거대한 사이킥 흐름을 느낄 수 있었다. 그 것은 파괴적인 공습이라기 보다는 거대하고 우렁찬 방문 벨을 누르는 방문자의 태도와도 같았다. 거대한 우리 함선이 사이킥 흐름을 간섭할테니 미안하지만 봐달란 의미였다. 곧 워프 드라이브 엔진의 시공간 일그러짐과 함께 하나의 위성, 수천 문의 대포와 수백명의 초인들이 거주하고 있는 4만년 인류 제국의 가장 전설적인 함선이 나타났다.


"이런 시발 미친 놈들이. 여기까지 칼리번을 끌고 와?"


챕터 마스터 히메네즈는, 다크 엔젤이 그들의 모성이었던 칼리번의 파편을 개조하여 만들어낸 위성 엔진을 끌고오자 이 사태가 결코 좋게 흘러가지 않을 것이라는 예지와도 같은 직감을 받을 수 있었다. 


"내가 아무래도 드디어 그대에게 챕터 마스터 자리를 물려줄 때가 온 모양이오."


"정신 차리십쇼. 챕터 마스터."


치프 라이브러리안 그레고리오는 챕터 마스터의 실언을 단호하게 끊어내었다. 그러나 그 역시도 칼리번이 직접 도래했다는 유래 없는 사건에 긴장감 서린 얼굴로 화면 너머 찬란한 위성 엔진을 바라보았다. 저 곳에 무장된 화력만으로도 나이트 로드의 기함인 '피의 복수'는 오래 버티지 못하고 우주 공간에서 산산히 깨어질 터였다. 주말 아침의 조식을 끝마치고 쉴 찰나에 머리를 겨누는 볼터건을 본 느낌이었다.


[여기는 칼리번, 다크 엔젤 챕터의 함장이 나이트 로드에게. 무례를 용서하시길, 위대한 죽음의 천사들이시여.]


복스 캐스터로 연결된 중후한 목소리의 여성은 꽤나 하이-고딕스러운 어투로 용서를 구했다. 챕터 마스터 히메네즈는 몇 마디 비꼼을 생각했다가, 그냥 입을 다물기로 했다. 어찌되었던 다크 엔젤은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전까지는 결코 돌아가지 않을 것임을 천명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한 와중에 몇몇 절차적으로 무시할 법한 예법따위 알게 무엇이겠는가?


[통신 바꾸었네. 형제여, 다크 엔젤의 챕터 마스터 아즈라엘이네. 그대들의 조언과 도움이 필요해 이렇게 찾아 온 점, 챕터를 대표해 사과하지.]


아, 히메네즈는 화상 통신으로 떠오르는 아즈라엘의 얼굴을 보자 그들이 아버지 프라이마크의 예지처럼 돌이킬 수 없는 운명의 소용돌이에 빠지고 말았음을 깨닫았다. 아즈라엘의 눈동자는 도움을 구걸하는 이의 눈빛이 아니었다. 그것은 차라리 경고하는 자경단원의 눈빛에 가까웠다. 어떤 사명과도 같은 것을 품고, 위험을 마주하는 자. 아즈라엘은 히메네즈와 나이트 로드를 그렇게 바라보았다.


그의 건틀릿 낀 손에 힘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