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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 마린이 포위된 모습을 본 순간, 타우노는 두려움에 떨었다. 아스타르테스마저 쓰러진다면, 남은 이들에게 무슨 기회가 있단 말인가?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가까이서 벌어지는 전쟁은 소강 상태에 접어들었다. 후방의 중화기들이 적에게 큰 피해를 입혔고, 오크들은 치명적인 공격을 피해 북쪽으로 물러나 있었다.


도망치려면, 지금밖에 없었다.


누군가 타우노의 어깨를 두드렸다. 다우린이었다. 그는 타우노에게 턱짓했고, 그가 가리키는 쪽에는 카이즈 하사가 머리의 절반을 잃은 채, 진창에 처박혀 있었다.


"도망가자. 우린 할 만큼 했어."


다우린이 말했다. 타우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라우르소 소위는 그의 지휘텐트에서 무전을 치고 있었고, 매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방어를 위해 배치된 주변의 다른 분대들 중 다수는 손에 꼽을 만큼만 간신히 살아있었다.


그는 데바스테이터들을 다시 바라봤다. 그들은 점점 늘어나는 오크들 사이에서 주먹과 칼날을 휘두르며 분전하고 있었다. 저들이 쓰러진다면, 그린스킨들은 서쪽으로 진군하며 방어선을 덮어버릴 것이고, 탈출할 기회는 영영 사라질 터였다.


그는 서전트 오프라엘이 파워 피스트를 힘껏 휘둘러 오크의 머리를 날려버리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절망감이 엄습했고, 타우노는 도망쳐 카딜루스 항만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아버지를 다시 보고 싶었다.

어리석게도 입대한 스스로를 원망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자진하여 입대한 자이고. 그가 이해할 수 없는 단어로 빼곡한 거대한 책 위에 손을 얹고 선서했다.

스페이스 마린들이 제국의 수호를 위해 바친 그 맹세와 똑같은 맹세를,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지키겠다는 맹세를 한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그의 목소리는 마치 다른 누군가 말하는 듯 낯설게 들렸다.


"미쳤어?"

다우린이 물었다. 그러나 타우노의 안에서 무언가 끊어지고 있었다.

"폐하께서 지켜보신다... 폐하께서 우릴 심판하실 것이다!"

타우노는 허리춤에서 총검을 뽑아들고 뛰어올라 참호를 뛰어넘었다. 손이 덜덜 떨려 몇 번이나 헛놓쳤지만, 네 번째 시도에서야 라스건에 총검을 끼우는 데 성공했다.


숨을 헐떡이는 소리가 들렸다. 스스로가 내뱉는 소리였다. 다른 이들이 함께 내쉬는 소리였다. 어깨 너머로, 라이스코와 카우니넨이 바짝 따라붙는 것이 보였다. 불과 몇 미터 뒤에선 다우린과 다른 이들이 쫓아오고 있었다.


"이번엔 도망치지 않았네, 그치?"

라이스코가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타우노는 이를 악물고, 사지에 힘을 실어 스페이스 마린과 싸우고 있는 오크들에게로 달려들었다.

그는 카딜루스 항에 있는 가족들을 생각하며 분노를 쏟아냈다.


"카딜루스를 위하여! 피시나를 위하여!"

그의 입에서 뜻한 것과 다른 말들이 쏟아나왔고, 바로 그 다음에, 그가 느끼는 죄책감과 공포가, 절망이 가슴 속에서 끓어올랐다. 오로지 단 한 문장만이 강렬하게 떠올랐다.

"그리고 황제 폐하를 위하여!"


오크들이 갑작스러운 공격에 당황해 그들을 바라보았다. 타우노는 그들의 흉측한 송곳니와 두꺼운 근육, 광기로 가득한 붉은 눈을 보고 공포에 사로잡혔다. 놈들 중 일부는, 심지어 웃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공포가 그의 분노를 가속했고, 그는 더욱 거칠게 내달리며 고함을 내질렀다. 그는 가장 가까운 오크에게로 달려가 가슴팍에 총검을 휘둘렀다. 놈이 쓰러졌고, 총검을 뽑아내 다시, 또 다시 계속해서 찔러넣으며 타우노는 포효했다.


무언가 그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오크의 미간에 총검을 박아넣는 순간이었다. 시야가 핑 돌았고, 그는 뒤로 물러섰다. 다른 사람들이 분노와 공포에 사로잡힌 채 포효하며 그를 지나쳐 뛰어들었다.


목덜미를 타고 피가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순간적으로, 이 혈흔이 군복을 더럽히진 않을까 걱정되었다. 머리를 흔들어 어지러움을 떨쳐내고, 그는 다시 전투에 뛰어들어 그린스킨이라면 가리지 않고 총검을 찌르고 휘둘렀다. 뭐가 손에 걸리는 지 신경조차 쓸 수 없었다.


다우린이 그의 앞에서 쓰러졌다. 이마에 도끼가 박혀 있었다. 오크가 그의 친구를 앗아갔다. 타우노는 라스건을 휘둘러 놈의 미간에 총검을 쑤셔넣었고, 훈련받은 대로 총을 비틀어 오크의 머리통을 부숴버렸다.


"내, 내가 뭘 한 거지?"


그가 중얼거렸다. 처음 전투로 뛰어들었을 때의 기세가 다우린의 죽음과 함께 사라졌다.


"황제께서 보우하신다!"

룬드비르가 쓰러졌다. 그의 머리가 오크 권총에 맞아 턱만 남기고 사라졌다. 타우노는 반사적으로 라스건을 휘둘러 칼을 막아냈다. 팔이 끊어질 것 같았고, 라스건이 휘어지면서 그의 손에서 떨어질 뻔 했다. 왼쪽에서, 카우니넨이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그의 잘려나간 다리가 꿈틀거렸다.


타우노는 그에게로 이어지는 다음 공격을 막아냈지만, 뒷걸음질치다 룬드비르의 시체에 걸려 넘어졌다. 타우노는 그린스킨이 라우르센을 지나쳐 그에게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그는 라스건을 놈의 미간에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비웃음과 함께 오크가 타우노의 무기를 걷어찼고, 권총을 그의 흉곽에 갖다 대었다. 순간, 시간이 멎은 것처럼 느껴졌다. 오크의 이빨에서 흐르는 침이, 거대한 권총에 새겨진 기괴한 문양이, 방아쇠를 당기려는 오크의 거친 손가락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무언가 거대한 것이 타우노의 시야를 가렸다. 다음 순간 푸른 섬광과 함께 소음이 일었고, 피가 그의 발 밑에 확 뿜어졌다. 오크의 머리 없는 시체가 바닥에 쓰러졌다. 서전트 오프라엘이 오크의 머릿조각을 파워 피스트에서 털어내며 비켜섰다. 장갑 위의 역장에서 피가 타올랐다.


서전트의 무표정한 면갑 위로 반짝이는 붉은 관측창이, 그가 본 어떤 오크들보다도 두렵게 반짝이고 있었다.  타우노는 움직일 수 없었다. 죽음의 문턱에 선 두려움이 그를 마비시켰다.


"일어나라."

스페이스 마린이 말했다. 오프라엘은 몸을 돌려 체인블레이드를 파워 피스트로 받아냈고, 볼트 피스톨을 발포해 오크의 흉곽을 날려버렸다.


"무기를, 잃어버렸습니다."

타우노가 말했다. 쉰 목소리가 가냘프게 떨렸다. 오프라엘은  오크의 칼날을 견갑으로 받아냈고, 몸을 돌려 오크의 미간에 박치기를 갈겨 놈을 자빠트렸다. 손가락을 쫙 펼친 채, 파워 피스트가 오크의 복부에 처박혔다. 지방과 피가 끓어올랐고, 오프라엘은 오크의 내장을 쥐어뜯었다.


"가져가라."

오프라엘이 그의 볼트 피스톨을 건넸다.

"다섯 발이 남아있다. 매 사격을 소중히 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