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는 눈을 떴다. 잠을 든 것이 아니라, 그저 눈을 한 번 깜빡였을 뿐이었다. 1초의 절반 밖에는 되지 않는 순간 동안 그는 태고의 순수한 시기, 황제의 어린시절을 돌아보았다. 자신의 감각들이 지금 이곳, 이 순간으로 되돌아오는 동안 라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그는 지금 이곳, 칼라스타의 공동묘지 내부, 죽은 제국의 기념비들 사이에 있었다.


라의 주변에는 엘다 종족의 성당이 고요히 서있었다. 무너진 돔형 지붕은 이 영역을 끊임없이 비추는 광원 없는 빛을 들이고 있었다. 빛이 드리운 그림자는 계속해서 각도가 변화하였고, 커스토디안의 황금 갑주 위로 빛이 기이하게 반사되었다. 기름진 안개 같은 무언가가 지면 위에 끈질기게 매달려 있었다. 침입자의 걸음에 방해를 받은 안개는 중얼거리는 듯한 소리를 웅얼거렸다.


그들이 바로 이곳의 침입자들이었다. 거기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외계인 처녀의 조각상 하나가 훈련 중이었던 라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조각상은 침묵의 숭배 속에 우뚝 서있었고, 조각상이 입고 있는 물결치는 형태의 겉옷과 그 얼굴은, 똑같이 하나의 레이스본 기둥을 노래로 자아내어 만들어져 있었다. 조각상의 늘씬한 손 한쪽은 축복을 구하듯 뻗어 나와 있었고, 다른 쪽 손은 가슴 위에 손바닥을 얹고 있었다. 그 동작은 어쩌면 알 수 없는 가슴의 통증을 막기 위함일 수도, 어쩌면 그저 그것을 조각한 무가치한 죽어가는 종족을 한때 괴롭혔던 외계의 고통을 전하기 위함일 수도 있으리라.

황제에게 손수 하사 받은 창이 라의 손에 들려 있었다. 창은 성당의 벽들 위로 날카로운 은빛 반사광을 드리우고 있었다. 창날에는 긁힌 자국과 쓸린 자국들이 나있었다. 그 자국들은 그 창이 끝 없이 사용되었음을, 그리고 끊임없는 수리로 완벽하게 연마되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라는 창날에 반사된 자신의 평평한 얼굴 위로 손가락 끝을 훑어 내렸다. 외부 세계에 투구 없이 맨 얼굴로 드러나는 일이 무척 드문 그 얼굴을 그는 바라보았다.


우려와 불안으로 황금 판갑 아래로 몸이 쑤셔왔다. 라는 지난 5년 간 그에게 매달려 있었던 피로감을 느꼈다. 너무도 차가운 바람이 뼈를 뻣뻣하게 만들었다. 만인대의 전사들에게 있어 피로감이란 그리 낯선 감각은 아니었다. 그들의 힘은 고통과 피로를 인내하는 데에 있었지, 그것을 몰아내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라는 자신이 신병이었을 때 느꼈던 것만큼이나 피로를 느끼고 있었다. 커스토디안들을 위한 엄격한 훈련을 받기 전, 황제의 비타푸르탐-Vitafurtam 장치*를 통해 피가 바짝 마르는 실험들을 거쳤던 그때처럼.

(*역주: 인간을 커스토디안으로 개조할 때 쓰는 기계. 말그대로 분자 단위로 몸을 갈아엎는다고 함.)


정신을 집중하는 데에 실패한 스스로에 대한 역겨움을 느끼며, 라는 황제에 의해 일시적으로 중단되었던 훈련을 재개하였다. 라의 창은 빙글 회전하며 돌아갔고, 그 창날은 싸늘한 공기 중에서 노래를 불렀다. 라는 주먹을, 군홧발과 팔꿈치를 쏜살같이 내지르며, 마음 속 다른 생각들을 모두 비워버린 채 그 조화 속에서 무아지경이 되었다.


라는 성당의 제단 앞에서 움직이며, 자신의 근육들을 50개 형-Fifty Forms의 초식들로 움직였다. 육체와 정신의 정렬을 통해 찾아올 완벽한 정신집중을 구하면서. 라는 주변에 대한 관심을 끊고, 성당의 기둥들이나 커다란 제단에 대해서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자신의 갑옷의 관절들이 삐그덕거리는 소리나 부서진 레이스본 바닥 위로 군홧발이 쿵쿵거리는 소리도 머릿속에서 쫓아버렸다.


이내 라는 거리낌 없이 땀을 흘리고 있었다. 땀이 강물처럼 흐르며 그의 검은 얼굴 위를 물들이고, 광대뼈의 윤곽선과, 관자놀이부터 입가까지 구불구불 이어지는 문신을 따라 흘러내렸다. 라의 창은 휘파람 소리처럼 쉭쉭거리는 소리를 내며 안개가 짙은 허공을 갈랐다. 창이 허공을 베어 가르며 내는 날카로운 소리는 그가 거칠게 숨을 내쉬는 소리와 함께 화음을 이루었다.


제 3형을 따라 몸을 움직이던 도중, 빙글빙글 회전하는 창이 그의 손아귀에서 미끄러졌다. 머뭇거림은 극도로 짧았고, 손에 들린 창대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미세하게 위치를 바꾸었다. 라는 이를 악 물고, 손에 잡히지 않는 평정심을 찾아 초식에 더욱 깊이 파고들었다.


라는 황제의 말을 떠올렸다. 인류의 주인이 밭과 진흙 오두막 사이에서 처음으로 태어났던 시기의 기억을 그린 꿈 속에서 황제가 했던 말을. 약속에 대한, 책임에 대한 말을. 황제는 인류는 질서와 발전을 위해 반드시 통제를 받아야만 한다고 말했다.


라는 자신이 그 둘을 지상으로 보내기 전에 디오클레티안과 카에리아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오직 만인대의 10분의 1도 채 되지 않는 병력만이 이곳에 남아 있다.

라는 떠올렸다─


창이 두 번째로 미끄러졌다. 라는 창날이 손에서 떨어지기 전에 창대를 잡은 손아귀를 꽉 죄였지만, 이미 초식은 흐트러져버린 뒤였다.


라는 거칠게 호흡하며 움직임을 멈추었다. 돌로 조각된 외계인 처녀는 여전히 라를 내려다보며, 의미 없는 간구의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라는 석상으로부터 몸을 돌려, 무너진 돔형 천장 너머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태양도, 한낮도 존재하지 않았다. 하늘도, 밤도 그곳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 도시의 방어자들은 재미 삼아 조롱하기 위한 것이 아닌 이상, 그 누구도 그 도시의 엘다식 이름을 사용하지 않았다. 불가능의 도시는 모든 방향으로 수 킬로미터나 뻗어 있는 공간이었다. 모든 방향으로 말이다. 동쪽을 보나 서쪽을 보나, 그곳에는 구불구불하게 굽어진 거리들과 비정상적인 각도로 솟아올라 있는 무너진 탑들이 보였다. 마치 지면 그 자체가 믿기 힘들 정도로 넓은 도관과도 같은 형상으로 굽어져 있는 것만 같았다. 바로 머리 위쪽을 바라보더라도 그곳에도 고대의 레이스본 도시 구획들이 더 존재하고 있었다. 수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레이스본 구획들은 그 영역의 안개로 인해 잘 알아볼 수가 없게 가려져 있었다. 부드러운 곡선이 특징인 외계인들의 건축양식에 따라 세워진 머리 위의 높은 탑들은, 지면으로부터 솟아오른 첨탑들과 맞닿을 정도로 아래를 향해 뻗어 내려오고 있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그 도시를 탐사하고 있노라면 과연 어디가 진짜 지면인지는 알아낼 방도가 없었다. 어디로 걸어가던지, 중력에는 변화가 없었다. 기계교의 장비들 중 그 어떤 것도 이 현상들에 대해 해명을 해주지는 못하였으나, 화성의 귀중한 장비들 중 일부만은 그들이 몇 년 전 이 영역에 처음 발을 들였던 때 이후로도 신뢰할 수 있을 정도로 작동하고 있었다.

바로 이곳이 프라이마크 마그누스가 황제에게 호루스의 반역에 대한 경고를 전해주려 하다가, 해일 같은 악마 떼를 그 꽁무니에 몰고 왔던 곳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곳에서, 오만하고도 고집스러운 신의 아들, 마그누스는 그 순진함으로 인해 황제의 꿈의 목전에 칼날을 겨누고야 말았다. 칼라스타의 묘지들은 황궁의 지하실에 직통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만일 불가능의 도시가 함락된다면, 테라도 그 도시와 함께 무너지고 말리라.


과거의 시대에 칼라스타를 유린하였던 대재앙이 과연 무엇이었는지는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도대체 그 무엇이 불가능의 도시로부터 엘다를 몰아내었는가 하는 그 신비는, 제국의 선봉대가 풀기에는 너무도 어려운 문제였다. 칼라스타의 중심부 대부분은 기계교가 만들어낸 미궁으로 대체되어 있었다. 기계교는 미궁의 구획들을 이 장소에 접합시키고, 황궁 지하실과 고대에 사멸한 이 허브 도시 그 자체 사이의 균열에 가교를 놓았다. 드넓은 터널들과 가교들, 그리고 도로들은 기계교의 신성한 적색 로브를 입은 수없이 많은 사제들의 피땀과 기름으로 건설된 것들이었다.


황제가 최초에 대체 어떻게 이 상상조차 되지 않는 계획을 세웠는지는 이 도시의 멸망과 마찬가지로 미지였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계교 최고의 지성들은 수백 페이지를 사용해가며 그 계획을 위한 도식들을 계산해내었다. 황제의 비전에 경도된 새로운 계층의 테크 프리스트들이 나타났고, 이들은 테라와 화성, 두 행성의 눈 모두에서 감추어져 있었다. 이 계층은 아드넥토르 콘실리움-Adnector Concillium. 통합자들-The Unifiers라 불리었다.


그리고 통합자들은 과연, 황제가 준 과업을 성공시켜내었었다. 그들은 이미 오래전에 죽어 잊혀진 외계인 군주들이 과거에 비상식적이고도 비정상적인 물질들로 빚어낸 대로들과, 테라의 강철과 화성의 철재를 결합시켰다. 통합자 사제들은 물질세계와 공명하는 이차원의 물질들과 물질세계의 기계장치를 결합시키고, 이 외계 도시의 심장부를 재건해내었다.

불가능의 도시는 그 너머에 있는 웹웨이로 통하는 관문이었다. 바로 그 도시의 경계에서, 웹웨이는 시작되었다. 수천 개의 모세관 터널들과 거대한 주 도로들이 그 고대의 외계 연결망 사이를 구불구불 연결시키며, 은하계의 다른 행성들과 다른 지역들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그 도시에서부터 뻗어나가는 모든 교차로들, 모든 터널들, 모든 가교들과 모든 통로들은 그것이 사람 한 명 밖에는 지나갈 수 없을 정도로 좁던지, 아니면 전투용 타이탄들이 지나가기 충분할 정도로 넓던지 간에, 기계교의 노예-전사들과 침묵의 자매단의 망각의 기사들, 그리고 황제 직속의 커스토디안들에 의해 확보되어 있었다.


칼라스타는 인간의 지성으로 그 맥락을 이해할 수 있을 만한 도시 구조로 이루어진 도로들과 구획들로 구성된 도시가 아니었다. 그곳은 고원과 둔덕들을 가로지르는 구불구불한 통로들로 이루어진 공간이었으며, 그 굽어진 통로들은 모두 세모꼴 구조물의 꼭대기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 구조물이 과연 무엇이건 간에, 그것은 필시 무척이나 중요한 것이리라 여겨졌다. 도시의 가교들은 모두 끝없이 깊은 심연 위로 길게 뻗어 연결되어 있었다. 기계교의 관찰자들은 만일 칼라스타의 다리에서 떨어진다면 바닥에 충돌하기 이전에 이미 늙어 죽고 말 것이라고 보고해왔다. 그 끝도 없는 공허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자면, 그 누구라도 그 보고 내용을 간단히 믿을 수 있으리라.


길게 뻗은 산책로들은 이 구역 전체에서 가장 높이 솟아오른 거대한 첨탑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산책로들의 가장자리에는 풍화된 조각상들이 줄줄이 늘어 세워져 있었다. 처음에 탐사자들은 그 조각상들이 엘다 종족의 영웅들을 조각한 것이라 믿고 있었다.


“이건 신들입니다.” 5년 전, 디오클레티안은 최초 탐사 과정의 책임을 졌던 기계교 감독관의 실수를 직설적으로 정정해주며, 그리 말했었다. 그때 디오클레티안의 얼굴은 홀로리튬 지도가 발하는, 흐릿하게 깜빡거리는 빛에 물들어 있었다. “저는 엘다 종족의 어리석은 이단 설화들에 대해 공부를 한 적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그들의 영웅들 따위를 조각한 것이 아닙니다. 이 조각상들 중 대다수는 그 외계인들의 거짓 신들을 본 딴 형상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디오클레티안의 지적으로 그 장소는 신의 첨탑-Godspire라 불리게 되었다. 현재 그곳은 천부장 엔디미온과 영혼 없는 여왕-Soulless Queen의 지휘소로 운용되고 있었다.


비록 그것이 외계인들의 것이기는 했지만, 한때 탑의 진입로는 놀라우리만치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고 있었다. 한때 엘다 종족의 영광스러운 제국이 별들 사이로 확장해 나갔을 때에, 그 종족의 여행자는 노래하는 발광성 수정 정원 사이를 지나는 길고 경사진 오르막길들을 오르고, 플랫폼들 사이의 무저갱의 공허 위로 세워진 둥글게 굽은 다리들을 건너고, 이 도시의 심장부에 우뚝 세워진 탑의 문들 앞에 섰으리라. 이제 수정 구조물들은 녹아 내린 채 둥둥 떠다니는 받침대 위에 그 잔해만이 남아 있었고, 그 받침대들 중 대부분도 지금은 타란튤라 자동 포대-Tarantula gun batteries의 무게를 지탱하는 데에 쓰여지고 있었다. 다리들은 그 대부분이 끊어졌고, 그 넓은 파편들은 이미 오래 전에 불가능의 도시 아래의 공허 아래로 떨어져 내려 있었다. 한때 텅 비어 있었던 뜰의 공터들 위에는 이제 기계교의 무기 보급기지들과 보급창들, 조립식 병영들과 착륙장들이 벌집처럼 뺵빽하게 세워 올려져 있었다.


성당 안에서 라는 외계인의 처녀신 석상과 다시 한 번 눈을 맞추었다. 그 더러운 생명체는 영원히 그 뾰족하게 눈꼬리가 치켜 올라간 눈으로 응시를 보내고 있으리라. 이 외계종 석상이 무엇이기에, 그것의 도시의 폐허에서 새로이 전쟁을 벌이고 있는 종족을 판단한단 말인가? 이 여신의 시대, 그리고 그 종족의 시대는 이미 끝이 났다. 엘다는 이 우주의 무자비한 변덕에 저울질되어, 그 부족함이 발견된 것이었다.

라의 창이 다시 한 번 회전하며 노래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일격으로 라는 여신상이 뻗은 손을 부쉈고, 부서진 레이스본 파편들은 바닥에 떨어지며 달그락거렸다. 두 번째 타격은 여신상의 목을 가르고, 후드를 뒤집어쓴 머리를 바닥에 떨어트리며 그 소리가 성당 안에 울려 퍼지게 만들었다. 바닥 위로 떨어진 창백한 얼굴 위로 이마부터 목까지 번개 줄기 같은 금이 큼직하게 그어졌다. 창날을 둘러싼 역장이 남긴 흉포한 입맞춤에, 잘려나간 여신상의 목으로부터 연기가 피어 오르고 있었다.


“분노를 터트리고 계십니까?” 신전의 입구로부터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라는 자신이 이 방문객의 접근을 감지하지 못하였다는 데에 짜증을 느끼며, 천천히 몸을 돌렸다. 확실히, 그의 기분은 자신이 자각하고 있던 것보다도 더 불안정하게 흐트러져 있었다. 이 방문객이 그의 감지 범위 안으로 이리도 쉽게 들어올 수 있었으니 말이다.


방문객은 한 여자와, 그를 따르는 소녀였다. 그 두 사람이 이리도 일찍 찾아오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것만은 아니오.” 라는 소녀의 말을 어느 정도 인정하였다. “이 외계인이 날 빤히 쳐다보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오.” 두 사람이 마지막 몇 걸음을 떼는 동안, 라는 자신의 머릿속을 죄어오는 싸늘한 압력에 후욱, 하고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안정시켰다. “사령관.” 라가 첫 번째 사람에게 인사하며 말했다. “그리고 멜포마네이 양-Melpomanei도.“ 두 번째 소녀에게도 인사를 건넸다.


침묵의 자매단의 사령관의 곁에는 그녀의 보좌관이 있었다. 그녀의 보좌관은 9살이나 10살쯤 되어 보이는 어린 소녀로서, 맨들맨들하게 깎인 소녀의 머리에는 아퀼라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소녀는 하얗고 소박한 생김새의 아뎁트용 로브를 걸치고 있었고, 그 옷 위에는 기다란 양피지들이 리본장식처럼 매달려 있었다. 양피지들 위에는 의식과 의례를 위한 문구들이 줄줄이 쓰여져 있었으나, 라에게 그 내용을 알고자 하는 마음은 없었다.


라는 즉시 그 영혼 없는 아이로부터 시선을 돌려버렸다. 자매단의 사령관 혼자만으로도 족하고도 남건만, 이 둘이 함께 있으면 더 이상 정신을 집중할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시선을 돌리자 그나마 좀 나아지는 기분이었다. 그나마.


크롤의 존재감은 소녀의 것보다도 더 참기 어려웠지만, 그 존재감을 떨쳐내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키가 큰 크롤은 신체의 윤곽을 따라 제작된 은빛 판갑을 입고, 테라 외의 어딘가에서 서식하는 어떤 커다란 짐승의 회갈색 털가죽을 망토처럼 두르고 있었다. 크롤에게 집중하고 있기란 어렵기만 한 일이었지만, 그녀 외에 다른 것에 집중하는 것은 오히려 더 힘들었다. 크롤은 밤이 빛을 집어삼키듯이 라의 생각들을 집어삼켰고, 그녀의 주위에 있는 모든 것들은 그 빛을 잃고 흐릿해져갔다. 그 감각은 빈말이라도 달갑다고 할 수 없는 것이었다. 크롤이 커스토디안의 집중력을 끌어당기고 있는 것은, 그녀의 존재가 주위의 다른 모든 것들보다 더 빛을 발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녀의 존재가 주위의 모든 것들을 퇴색시켜 삼켜버리기 때문이었다. 크롤의 곁에 있는다는 것은, 곧 무언가 공허한 것, 무언가 굶주린 것, 무언가 라의 머릿속에 빨아들이는 것의 곁에 있는다는 것이었다.

크롤은 곧 허무였다. 그 어떤 형태도 지니지 않은 완전한 무(無). 존재를 가장하고 있는 공허.


제네티아 크롤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라에게 인사를 건네었고, 그 고갯짓에 크롤의 두 눈은 부드럽게 감기었다. 크롤의 입은 입가를 가리는 큼직한 은빛 마스크 뒤에 감추어져 있었다. 그 마스크는 외과수술을 통해 그녀의 턱과 광대뼈에 접합되어 있는 것이었다. 크롤이 고개를 숙이자, 붉게 물들여 한 가닥으로 높이 틀어 올린 그녀의 머리 또한 가볍게 흔들렸다. 라는 자매단의 그 의례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었다. 침묵의 자매들은 그녀들이 고요의 맹세-The Oath of Tranquility를 서약한 그 순간으로부터 결코 자신들의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게 되어 있었다. 밑동부터 묶어 상투를 틀어 올린 크롤의 갈기 머리조차도 그녀의 등골 끝에 닿을 정도로 길었다.


만일 크롤의 권위에 대해 의심을 품는 자가 존재하긴 한다면, 그녀의 망토 위로 매인 칼집에 들어있는 츠바이핸더, 베라시티-Veracity를 보는 순간 그 남아 있던 의심조차 사라지게 될 터였다. 물론, 그런 의심을 품는다는 것부터가 그 자의 감각에 무언가 부족함이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증거이겠지만 말이다. 베라시티의 힐트와 손잡이는 크롤의 어깨 너머로 드러나 있었다. 그 검은 한때 한 종족 전체를 지배하던 군주의 손에 휘둘러지던 검이었고, 그것은 이제 이 처녀 전사에게 선물로 주어져, 그녀의 등 뒤에 매여 있었다.

“반갑습니다, 라 엔디미온.” 사령관 자매의 곁에 서있는 소녀가 말했다. 소녀의 목소리는 갑주를 입은 채 그 옆에 우뚝 서있는 여전사의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섬세한 억양을 띄고 있었다. 제네티아는 눈매가 날카로운 검은 눈을 커스토디안의 눈과 마주치고 있었다. 크롤은 자신의 흉갑 앞으로 한쪽 손을 들어, 건틀렛에 싸인 손가락들로 섬세한 동작들을 선보였다.


소녀는 자신의 여주인만큼이나 뻔뻔한 시선으로 라를 응시하며, 여주인을 위해 대변해주고 있었다. “황제 폐하로부터 전언을 받으셨지요.”


멜포마네이의 목소리나 제네티아의 시선에 라를 추궁하는 듯한 기색은 없었다. 추궁이란 거기에 의심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태도였으니까.


“그렇소.” 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네티아가 그것을 어떻게 알았느냐 하는 것은 굳이 물을 필요도 없는 것이었다.

제네티아는 수화로 라의 대답에 대한 답변을 보내었다. 제네티아의 검은 눈동자는 험악했지만, 수화를 하는 그녀의 손짓은 참을성 있게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만인대의 전사들은 대부분 침묵의 자매단의 동맹자들로부터 그들의 생각을 전하는 수화나 몸짓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았다. 지난 몇 년간 자매들의 곁에 서서 함께 싸우면서 만인대의 전사들은 침묵의 자매들이 보이는 아주 미세한 동작이나, 얼굴 표정의 변화만으로도 거기에 담긴 의미나 감정들을 해석해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 누구라도 크롤 사령관에게 자신이 그 정도로 그녀에게 익숙하단 주장을 할 수는 없을 터였다. 멜포마네이가 크롤의 곁에 계속 남아 있는 것은 다 그럴 필요가 있기 때문이었다. 크롤의 모습 어딘가는 계속해서 시야에서 미끄러지듯 빠져나가며, 라의 머릿속에 남아있기를 거부하고 있었다. 라는 분명 크롤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고, 그녀의 수화 패턴 또한 입 밖으로 목소리를 내어 말하는 것만큼이나 분명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롤의 모습에 대한 감각과 의미들은 조각조각 부서지며 흩어졌다. 마치, 대화의 가장 기본적인 파편들 만을 듣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철수 과정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대머리 소녀가 통역했다. “전 병력은 불가능의 도시로 향하고 있지요.”


“폐하께서는 너무도 지쳐 계시었소, 제네티아. 우리의 실패에 대한 소식이 그분의 짐을 더해 드리기만 한 것은 아닌지 두렵소.”


“그 실패는 카다이가 저지른 것이었습니다.” 소녀가 여주인의 손을 바라보며 대답하였다. “당신의 탓이 아니지요. 제 탓도 아니고 말입니다. 지나치게 자만한 카다이는, 당신의 조언이나 제 소망조차 거스르고 너무 멀리까지 진출하였습니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카다이라 하더라도 악마들의 무리가 외곽 터널들을 오염시키고 있었음을 알 방도는 없었겠지요.”


라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할 만한 말이 없었다. 그들에게 있어 패배라는 단어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것이었다.


“저희의 주군께서는 무엇을 원하셨습니까?” 소녀가 물었다.


라는 전신의 근육에서 억지로 긴장을 풀었고, 그가 입고 있는 갑옷의 관절들은 그 동작이 일으킨 미세한 변화에 웅웅거렸다. “그분께서는 내게 명하시기를, 그대에게 무언의 윤허라고 지칭하신 것을 실행하라 전하라 하시었소.”


크롤의 외계의 빛 속에서 작게 반짝였다. “그분께서 그리 말씀하시었단 말씀이십니까?” 어린 소녀가 물었다. “정말로 그리 말씀하시었습니까?”


라는 그 명령이 대체 무슨 의미였는지 물을 만큼 어리석지는 않았다. 자매단은 만인대와는 별개의 조직이었다. 만인대에게 그들만의 비밀이 존재하듯, 자매단에도 그녀들만의 비밀이 존재하는 법이었다. 그것이 바로 황제의 의지셨으니.


라는 사령관 자매의 눈과 시선을 마주쳤다. 라의 시선에서 진정성을 읽어낸 크롤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수화로 답변을 보내었다.


“디오클레티안이 지상에서 돌아오면, 카에리아 카스린 자매-Sister Kaeria Casryn이 그와 동행할 겁니다.” 어린 소녀가 말했다. “황제 폐하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대가 원하는 대로 하시오.” 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제네티아는 질문으로 라의 말에 답했다. 그녀의 두 눈동자에는 음울하리만치 다급한 기색이 어려 있었다.


“그분께서는 저희와 함께하실 듯 하십니까?” 멜포마네이가 물었다.


“폐하께서는 황금 옥좌에 몸이 묶인 채로 남아 계시오. 웹웨이 외부에서 그분을 포위하고 있는 힘들이 점점 강해지고 있소. 그분께서는 우리와 함께 나서지 못하실 것이오.”


멜포마네이는 멍한 눈으로 여주인의 손을 바라보았고, 그동안 그녀의 입은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그분께서 명령하신다면, 우리는 그대로 실행할 것입니다.” 수화를 마치며, 제네티아는 빠르게 손을 움직였다. 그것은 하나의 완전한 문장이라기보다는 그저 몸짓에 더 가까운 움직임이었다. 제네티아는 그저 손을 어깨 너머로 뻗어, 목덜미 가까이에 매인 베라시티의 긴 손잡이를 손가락 끝으로 툭 두드려 보였다. 그 동작만으로도, 소녀가 그것을 통역하기에는 충분하고도 남았다. “황제 폐하께서는 강녕하십니까?”


“적들의 압박으로 인해 괴로워하고는 계시나, 여전히 그분께서는 강건하시오. 폐하께서는 그분의 사이킥 방어막에 가해지는 공격 너머로, 어떤 새로운 존재가 점점 다가오고 있다 말씀하시었소. 무언가 오래된 것. 무언가 이미 웹웨이 내부에 존재하는 것이.”


제네티아는 손을 부드럽게 내젓는 것으로 라의 말을 끊어버렸다. 그 손짓은 끊김 없이 매끄럽게 이어지며, 새로운 수화 동작으로 이어졌다. “바로 그것이 제가 이곳에 있는 이유지요.” 멜포마네이가 말했다. “만일 명상이 끝나셨다면, 저와 함께 가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대가 그것을 바란다면.”


커스토디안은 성당에서 성큼성큼 걸어 나가는 사령관 자매의 뒤를 따랐다. 세 사람은 안개에 휩싸인 칼라스타의 전경을 함께 둘러보았다. 불가능의 도시의 모습이 그들의 앞으로, 주위로, 머리 위로 뻗어 있었다. 그처럼 착란적인 광경은 심지어 라의 강화된 감각들에 있어서도 방향 감각의 상실을 불러오는 것이었지만, 그것도 이미 예전의 일이었다. 이제 그 엘다의 폐허를 바라볼 때에, 라는 그 안에서 기계교에 의해 무장된 요새와 포대들이 설치된 탑들, 그리고 서로 분리된 수백 개의 터널들보다는 월등히 방어하기 쉬울 다리들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라는 현 상황을 착각하지는 않았다. 이 도시로 철군한다는 것은, 곧 그들에게는 더 이상 후퇴할 수 있는 지점이 없다는 뜻이었다.


도시 전체는 시간에 풍화된 엘다의 레이스본 구조에 접붙여진 제국의 기술력이라는, 믿기 어려운 혼종으로 변해 있었다. 불가능의 도시에 대해 생각해보았을 때 라가 처음에 느꼈던 경외심은, 군수 보급에 대한 냉정한 계산과 걱정으로 이미 오래 전에 대체되어 있었다.


그리고 저 앞에 신의 첨탑이 우뚝 서있었다. 황금빛 스톰버드 한 대가 그 주변을 선회하며 지상으로 하강하고 있었고, 그 모습은 시야의 중간 정도의 거리에도 불구하고 안개로 인해 가려져 실루엣만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 거리에서는 콜로보린코스 항공기들-Koloborinkos flyers가 내는 소리조차 다행이리만치 고요하게 들려왔다. 상하로 펄럭이는 항공기들의 날개들과 빙빙 도는 회전익들이 머리 위 가까운 곳에서 거칠게 울부짖고 있었다.


신의 첨탑의 높이에 비해서는 간신히 4분의 1 정도 밖에는 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사이온 오브 비질런트 라이트는 결집하고 있는 기계교의 병력 위로 거신처럼 걸어 다니고 있었다. 가장 넓고 높은 터널들 중 한 곳으로부터 방금 막 귀환한 그 워로드 타이탄의 몸체 위로, 수리공들과 정비용 서비터들이 기어 다니고 있었다. 수리공들과 서비터들은 마치 죽은 사냥감 주위로 몰려드는 개미떼처럼 타이탄의 장갑판 위로 우글우글 몰려들고 있었다.


“걱정거리라도 있소?” 라가 사령관 자매에게 물었다. “표정을 읽을 수가 없구려.”


제네티아 크롤은 섬세한 동작으로 여러 개의 수화 동작들을 선보였고, 소녀는 큰 소리로 말했다. “HG-245-12-12 간선도로에 대한 보고는 들으셨습니까?”


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머릿속 한 구석에서는 희미한 복스 통신을 통해 전해져 온 보고의 배경음으로 들리던 웅얼거리는 소리에 주의를 기울였다. 그 웅얼거림은 전쟁이 펼쳐지고 있다 전하고 있었다. 바리케이드에 배치된 투사들아 싸우고, 쓰러지고, 또 반격을 가하고 있다고 보고는 전하였다.. 끝없이 반복되는 순환이었다. 훈련을 하고, 황제의 의지를 받기 위해 명상하고 있던 때에는 보고가 전해지는 소리들을 거의 무음에 가까운 지경까지 줄여 듣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라는 사령관 자매가 말한 보고가 어떤 것인지 대번에 알 수 있었다.


“이미 기계교에게 유리디아 카스트-Uridia-caste의 순찰대를 하나 보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멜포마네이가 덧붙여 말했다. “아드넥토르 프라이무스 멘델이 살해당한 이후로는 이전만큼 능률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만, 제가 요청한 작업이 반드시 완수될 것이라는 장담은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당신이 제게 황제 폐하께서 직접 그 존재의 접근을 감지하셨노라고 말씀하시는군요. 수호자-Protector와 그의 전쟁 병기들만으로는 어쩌면 충분치 못할 수도 있습니다. 대체 그 존재가 무엇이기에 황제 폐하께서 감지하실 정도로 강력한 것일까요? 대체 저 바깥에 무엇이 있는 것이란 말입니까?”


“저 밖에는 수백만 가지의 것들이 존재하고 있소.” 라가 대꾸하였다. “새로운 놈이 나타날 때마다 이전의 놈들보다 더 불가능해 보이지.”


제네티아 크롤은 자신의 대답을 느리게, 그러나 매우 명확하게 손짓하였다. “이것은.” 멜포마네이가 말했다. “이전의 것들과는 어딘가 다릅니다.” 그런 뒤 크롤은 머뭇거렸다. 그 침묵이 거의 어색해질 때쯤이 되서야 크롤은 다시 한 번 수화를 보내었다. “황제 폐하의 전언이 어떤 모습으로 전해졌는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라는 그가 본 것을 표현할 만한 개념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그 순결한 고대의 세상의 모습을, 그저 단어 몇 개로 표현하기에는 너무도 어려운 일이었다. 제네티아는 라의 머뭇거림을 감지하고는 강한 호기심을 느끼며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폐하께서는 내게 그분의 유년기를 보여주시었소.” 커스토디안이 마침내 말했다. “그리고 그분께서 인류에게 지배자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배운 순간에 대해 말씀해주시었지.”

제국의 영혼 없는 여왕, 제네티아 크롤 사령관 자매가 진심으로 충격 받은 표정을 짓는 모습을 보기한, 어떤 의미에선 흐뭇한 일이었다. 라는 그 모습에 불편함을 느꼈지만, 동시에 크롤이 제 속내를 드러내는 그 모습은 그만큼 지켜볼 가치가 있는 모습이었다. 크롤의 양손은 그녀의 흉갑 앞에서 머뭇거리며 움찔거렸다. 그런 뒤, 크롤은 부드러운 동작으로 손을 움직여 또 다른 일련의 수화들을 만들어 보였다.


“폐하의 유년기 말씀이십니까?” 어린 소녀가 말했다. “부디,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십시오, 커스토디안.”


라는 크롤의 맹렬하고도 단호한 시선에 한기를 느꼈다. “나는 테라를 보았소.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옛 지구를 보았다고 말해야겠지.”


“카다이나 야삭조차도 그런 계시를 받았다고 말한 적은 없었습니다. 미래나 현재, 가까운 과거에 대해서는, 예, 본 적이 있다 했었지요. 하지만 그게 전부였습니다. 옛 지구의 모습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지요.”


“난 내가 본 것을 말했을 뿐이오.”


“하지만 그분께서 왜 당신께 그 계시를 보여주셨을까요?” 소녀가 물었다. 감정이 절제된 소녀의 어조에는 제네티아의 말 없는 놀라움이 담겨 있지 않았다.


“돌에게 왜 바람이 부냐고 물어보는 격이구려, 사령관. 그 이유는 나도 알지 못하오.”


“이 일에 대해 생각을 해봐야겠군요. 고맙습니다, 커스토디안.” 사령관 자매가 손가락을 부딪혀 딱딱 소리를 내며 소녀를 불렀다. 그런 뒤, 크롤은 라에게 몸을 숙여 정중한 작별 인사를 건네었다.


라는 제네티아에게 마주 작별 인사를 보내지 않았다. 라는 오직 단 한 사람에게만 몸을 숙여 절하고, 오직 단 한 사람에게만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라는 억지로나마 멜포마네이에게 어색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소녀의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 기뻐하는 표정을 짓는 흉내를 낼 요량이었다.


그리고 멜포마네이는 처음으로 여주인의 수화 없이도 입을 열어 말했다. “라 님은 사람 흉내를 내실 때면 꼭 괴물 같아 보이시는군요.”


라는 미소를 유지한 채로 말했다. “자네도 마찬가지일세, 영혼 없는 소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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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의 커가도 시오사들은 영 거북해하네. 그만큼 제네티아 크롤의 퍼라이어 능력이 뛰어나다고 봐야 하는 대목인가.


그나저나 불가능의 도시 저것도 묘사가 비정상적이기 그지없어서, 대체 어떻게 번역을 해놔야 제대로 그 이미지를 전달할 수 있을지 애먹었음. 이놈의 거지 같은 형이상학적 묘사들.


그리고 이건 일종의 헬프 요청인데, 커가들의 계급 체계가 옛날 로마식으로 되어 있는데 이게 또 은근 근본이 없는지라, 이걸 한국어로 뭐라고 해석해야 하나, 하는 데에 되게 고민을 많이 했음. 일단 발도르의 직책이자 커가의 수장인 캡틴-제너럴은 그대로 음을 옮겨 땄는데, 트리뷴은 내가 임의로 천부장이라고 지칭했거든. 여기까진 그래도 괜찮다 싶은 번역인데 문제는 후에 나오는 디오클레티안의 직책인 프리펙트-Prefect. 이게 원래는 일종의 총독이나 지방 행정관을 일컫는 말이란 말이지. 근데 이걸 총독이니, 행보관이니 해석할 순 없잖아. 일단은 서장의 인물 소개에 나왔듯이 지휘관이라고 해놨는데 이게 딱 알맞는 번역은 아니란 말이지. 누구 좋은 생각 있는 사람 있으면 충고를 부탁한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