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해지는 전투는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일부분이 조용하면 나머지는 폭발과 비명의 합주로 시끄러운 전장에서,
가드맨 발두르는 인적 드문 벽에 기대어 앉아있다.
라스건을 갓난아기 마냥 감싸 안은 그의 팔은 파르르 떨리고 있다.

불과 30분 전에, 그의 동기들은 각자를 구분하기 어려운 고깃덩어리가 되었다.
27분 전에, 항상 중대원들에게 엄하게 대하던 커미사르의 머리가 터져나오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15분 전에, 눈물로 흐려진 시야 사이로 하늘에서 죽음의 천사들이 강림했다.
5분 전에, 죽음의 천사들도 죽을 수 있단 것을 알게 되었다.

발두르는 너무 많은 정보가 짧은 시간에 집중되어선지 제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이대로 라스건의 총구를 입에 넣고 방아쇠를 당긴다면,
더이상 이 지옥같은 광경은 보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스트레스가 머리 끝까지 차오른 그의 눈빛이 흔들릴 무렵,
거대한 그림자가 발두르를 감싼다.

눈을 들어 올려다 본 곳엔
황제의 망치, 반신의 후예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서있는 자와 앉아있는 자의 높이 차이는 당연한 것이지만
발두르는 그 시선의 높낮이가 굉장히 꺼림직하다.
거대한 피워아머의 압박인 것일까,
아니면 멘탈리티의 문제인 것일까.
곧 거인의 입부분-헬멧의 스피커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그대는 몇중대 소속인가?’

그 목소리는 위엄있으면서도 부드러웠기에,
발두르가 간신히 더듬거리며 답할 여유를 챙겨주었다.
그렇게 전장의 이름없는 전사는 천사와 대화할 기회가 생긴 것이었다.

‘이 전장은 굉장히 험난하군.’
‘.....그렇죠.’
‘작전 투입 전에 전황을 살펴보면서도 꽤나 염려했다네.’
‘.......’
‘내 배틀브라더들 중에서도 희생이 엄청났지.’
‘희생 말입니까?’
‘간혹 그대들이 오해하길 우리가 불멸의 전사라고 생각한다만, 우리도 결국 황제폐하의 은혜를 받은 하나의 인간들이라네. 이겨내기 어려운 고난은 죽음과 동행하지.”
‘죽음 말이죠.....’
발두르는 동기들이 생각난다. 설령 전원의 이름을 철자 하나 빠짐없이 쓸 만큼 친하진 않더라도 동료라 부를 수 있던 사람들.
어쩌면 그들은 자기만 빼놓고 죽음과 같은 열차를 탔으리라.
곧 거대한 초인은 허리를 숙여 발두르의 귀에 헬멧을 가까이 했다.
마치 비밀스러운 말을 속삭이듯이.

‘본래 말하면 안되는 내용이다만, 방금의 강하로 우리 형제들도 10명이나 전사했다네. 우린 그들의 숭고한 의지를 이어받은게야.’

그 짧은 말에,
어쩌면 당연하게 애도를 표해야 할 말에
발두르는 속에서 용암처럼 터져나온 말을 억누를 수 없었다.

‘10명이나 죽었군요, 정말 아쉬운 일입니다. 저희 중대가 소속된 부대의 총원 2500명들도 그 말에 탄식했을텐데. 헌데 안타깝게도 그 말을 들을 생존자가 저를 포함해 28명 밖엔 남지 않아 유감이군요.’

한낱 가드맨이 목소리를 높힌단게 신기하기도 건방지기도 해서일까.
스페이스 마린의 표정없는 파워아머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발두르의 고삐를 잡지도 않았다.

‘우리 보병연대에 우리 중대 같은 곳이 몇 곳이나 포함되어 있을까요? 저같은 멍청한 하급 병졸은 그 숫자를 제대로 알지도 못합니다. 다만-여기서 발두르는 결심하듯 숨을 들이켰다-당신네 형제가 10명 죽었다고 한들 나에게서 같은 슬픔을 찾진 마세요. 난 그 몇십, 몇백배의 사람들로도 울고 있을 시간도 없이 다시 총을 들고 나가야 하니까.’

발두르는 토해내듯 말을 뱉고, 이내 자신의 무례를 사과하듯 고개를 숙이고 얼마 남지 않은 부대원들 쪽으로 걸어갔다.
아마도 그는 몇시간 후에 먼저 간 중대원들과 재회할 것이다.
운이 나쁘다면, 그건 며칠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스페이스 마린은, 잠시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사람을 생각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