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오랫동안 고민하다가 그 책을 꺼내들었다. 부활 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있던 책이지만 더 이상은 내버려둬선 안될 느낌이었다.


한손에는 코덱스 아스타르테스, 한손에는 제노의 모가지를 든 자신을 배경으로 하였으며 제목은 자신이 봐도 참 길다 싶었다.


<황제폐하의 아들이시자 울트라마의 군주이며 복수하는 아들, 승리하는 자이며 통합의 칼날이시자 모든 아뎁투스 아스타르테스의 규범인 코덱스 아스타르테스의 저자이신 위대하시고 축복받으신 울트라마린의 프라이마크 로부테 길리먼>


그는 속으로 그냥 이름만 적거나 울트라마린의 프라이마크라고만 했어도 된거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그래도 생귀니우스는 제목만 두장이고 아예 황제께선 제목이 전체의 3분의 1은 차지하고 있으니 그것보단 낫다고 판단했다.


그가 이 책을 꺼내든 이유는 간단했다. 제국신민들, 스페이스마린들은 자신에게 황제를 투영하고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은 제국을 이끄는 섭정. 그들은 자신에게 이상적인 인간을 바라보고 있었기에 제국을 한데로 뭉치기 위해선 어찌되었건 최대한 그들의 기대치를 맞춰주는 편이 좋았다. 그렇기에 자신의 성인전을 보고 자신이 어떤 인물상으로 비춰지는지 알아보고자 하였다..


첫장을 펴자 자신의 성격을 설명하는 글이 나왔다.


"그분께서는 언제나 진중하였으며 한마디 한마디를 신중히 말씀하셨다. 그분은 언제나 웃음을 쉬이 내보이지 않으셨으며 농담이나 유머같은 것은 싫..."


바로 첫장을 덮고 제목을 봤다. 설마 자신이 착각해서 로갈 돈의 성인전을 꺼내온거 아닐까 싶었지만 제목은 확실히 자신이었다. 어째 시카리우스가 좀 떨떠름하게 보더라니.


길리먼은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책을 펼쳤다.


"그분께서는 제국의 영토가운데서도 가장 번성한 울트라마 500세계를 창조하시고 이끄셨으며 제국에게 있어 울트라마 500세계는 제국의 자랑이오 보루도다."


이건 맘에 들었다. 아마도 이 책을 쓴 작가는 자신의 영지에 와본 것 같았다. 확실히 자신이 한 업적 가운데 가장 맘에 드는게 울트라마 500세계를 일군것이니까. 그래도 살짝 슬펐다. 지금은 권력이니 뭐니 하면서 싸우고 있었기에.


"그분께서는 모든 아스타르테스들이 지키고 따라야할 코덱스 아스타르테스를 집필하셨으니 이는 아스타르테스들이 반드시 지켜야할 법...."

내려놓고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분명 이딴 걸 책이라고 쓴 녀석은 마크라지에 와보지도 않은놈이겠지. 그는 얼굴도 모르는 작가에 대해 그리 생각했다. 차라리 코덱스는 참고용으로 보라고 첫장을 도배할걸 이라고 생각했다.


"그분의 위엄과 카리스마는 그야말로 대단하여 뭇 인간들은 보기만하여도 엎드려 경배하였으며 단 한마디로 모두 복종시키셨으니 그야말로 신..."


길리먼은 다시 제목을 봤다. 자신이 황제폐하의 성인전을 들고 온게 아닌가 했지만 너무나 서글프게도 자기 자신의 성인전이었다. 그놈의 신타령은 그만 좀 했으면 좋았을텐데. 


책을 전부 읽은 뒤 길리먼은 단 한가지를 느낄 수 있었다. 뭔가 잘못되었다. 그것도 아주 잘못되었다. 성인전에서 묘사된 자신은 단점이나 결점은 단 하나도 없으며 모든걸 초월하여 감정보다는 이성과 합리만 바라보는 철인이었고 반신이었다. 자신은 인간이었고 실수하는 존재였다. 어째 아들들이 자신을 무결점의 존재로 보는것도 그렇고 며칠전에 아들들이 초코바로 난리를 피우는게 좀 이상하다 싶었는데 이 책이 범인인듯 싶었다.


다시금 절망이 그를 옥죄였다. 황제께서 말하신 진리는 어디가고 이런 광신만 남았나 했더니 이런게 있었기에 그 빌어먹을 황제교가 커질수있었구나 싶었다. 개인적으론 다 회수해서 불지르고 싶었지만 이 책이 제국을 떠받치는 기둥 중 하나가 되어버렸기에 그럴수도 없었다. 그는 한숨을 푹 쉬면서 일어나 창밖을 바라보았다. 형제들이 너무나도 그리운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