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리우스 카에소론은 케모스에서 태어났다. 예술에 대해 조예가 매우 높았던 카에소론은 종종 시를 읽었고[* 특히 63 탐험대 함대에 동행했던 이그나이스 카카시의 칸토스의 시]황제의 자녀와 28탐험대의 대표격인 '황제의 자존심'을 타고 음악 연주회에 참석했다.
레란 정벌 기간 동안, 카에소론은 레란 신전을 공격하는 동안 프라이마크 펄그림과 동행했다. 전투 중과 전투 이후에 레란 신전에 들어간 많은 사람들처럼, 카에소론은 그 장소에 스며든 광경과 소리에 넋을 잃었고, 그래서 그는 계속해서 그 신전에서 느꼈던 감각을 느끼기 위해 전쟁터 안팎에서 감각을 자극할 방법을 모색했다. 펄그림이 슬라네쉬의 데몬에 의해 홀려가게 되면서, 엠퍼러스 칠드런은 완벽을 추구하는 아름다운 군단에서 그들의 쾌락 만을 만족시키려는 군대로 전락하기 시작하였다 - 카이소론이 기꺼이 함께 가는 것 이상의 입장. 시간이 흐르면서 카에소론은 슬라네쉬의 컬티스트였던 코넬리우스 블레이크의 작품에 몰두하게 되었고, 그 작품을 탐독한 것으로 인해 그는 슬라네쉬의 손아귀로 떨어지게 되었다.
이스르반 3 전투 직전, 카에소론은 펄그림과 동행하여 페러스 매너스를 설득하러 갔는데, 이는 아이언 핸드의 프라이마크를 설득해 호루스의 편으로 만드려는 시도였다. 페러스 매너스가 거절하고 펄그림에게 공격당했을 때(죽지는 않았지만) 카에소론은 그의 아이언 핸드의 프라이토르인 가브리엘 산타르를 거의 죽일 뻔했다.
이스스반 3 전투와 드롭 사이트 학살 사이의 사이에, 카이소론과 3군단은 리멤브란서 베쿠아 킨스카가 레란 신전에서 들은 음악을 바탕으로 작곡한 음악회인 마라비글리아 개막식에 참석했다. 도착적이고 자극적인 교향곡은 드랍사이트 대학살에서 사태가 정점에 이르기 직전, 관능적인 자극에 대한 욕구를 부채질하며 카에소론과 그의 동료들을 매료시켰다. 미친 사람처럼 비명을 지르며 전장을 뛰어다니던 카에소론은 다시 한번 아이언 핸드의 수석 중대장과 맞붙었다. 두 사람이 모두 목숨의 위기를 겪은 전투에서, 산타르는 율리우스의 타락에 잠시 주저하다가 율리우스에게 살해되었다...카에소론이 산타르에게 한 "잘했어. 정말 강렬한 경험이었어."는 말은 산타르가 마지막으로 들은 말이었다.
그 후, 카에소론은 이스트반 V에서의 전투에 거의 참여하지 않고 죽은 사람들의 시체를 훼손하고 그 일부를 자신의 갑옷에 치장하는 일을 하는 데에 열중하였다.
호루스 헤레시 이후 카에소론은 슬라네시의 데몬 프린스로 승천해 에이돌론의 피닉스 콘클라베에 합류했다. 콘트컬 서브렉처가 일어난 M41 812년, 다시 물질계에 등장했다. 장소는 아이언 핸드가 수복하려 했던 콘트컬 서브섹터였다. 데몬프린스인 카에슬론은 아이언 핸드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리고 그곳은 데몬월드로 바뀌게할 워프관문을 열려고 했지만 아이언 핸드의 라이브러리언과 로드 커맨더인 아벤 루스와 마주치게 됐으며, 이들에게 패배해서 워프로 도망친다.
첫째 줄 [*
알파 위키에다가 올리느냐고도 그렇고… 또 이렇게 안하면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고심하기도 했고…
그냥 () 하셔도 되는데 저러니까 이상해 보여서요
얘도 초반엔 나름 개념 넘쳤는데
저기 나오는 블레이크의 책들을 추천해준 사람은 어떠한 금서라도 외면할게 아니라 학자라면 합리적인 방법으로 연구해야 한다는 조언을 해준 나름 이성적이고 진보적인 사람이었는데 정작 미쳐버린 군단원들 사이에서 제정신을 유지했다는 이유로 밟혀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