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은 침묵했다. 그는 검을 단단히 쥐고, 흔들리는 제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파도치는 밤바다가 언제나 폭풍우와 풍랑 속에서 파도치며 흔들리듯 그의 이성은 그의 감정을 효과적으로 억누르지 못했다. 이를 꽉 깨물어 단단하게 굳은 턱선과 불안정한 호흡은 그 반증이었다. 분했다. 그들의 노력을 받아주지 않는 아버지가.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 아픔이었다. 수천의 아들들이 오롯이 피와 강철을 앞세워 죽음과 용기로 그들의 사명을 이룩했음에도 아버지는 한 번 끄덕여준 그 겉치레를 제외하곤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아버지는 고귀한 기사였고, 끝모를 명예와 의무를 스스로를 무장했으며, 그 갑옷의 빈틈은 아들조차 볼 수 없었다. 프라이마크 라이온은 굳건한 검처럼 땅에 박혀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기사 모양을 한 동상이었다. 사무엘은 죽어가던 형제를 떠올렸다. 하반신을 잃고 내장을 쏟으며 죽어가는 형제는 사무엘의 손을 붙잡고 자신의 죽음에서 긍지를 찾았다. 아버지 프라이마크의 명령에 충실히 싸우다 죽으니, 분명 명예로웠을 것이라고. 사무엘은 긍정했으나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럴 수 없었다. 아버지는 당신의 자식이 죽었음에도 어떤 미동도 보이지 않았다.
지도자로서 내보일 덕목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다크 엔젤의 군단원이라면 누구나 그것이 개소리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었다. 아버지는 무관심했다. 프라이마크는 주어진 사명을 완수하는 것 자체는 당연시 했다. 격려도 응원도 위로도 없이 그 스스로가 기사도를 위해 움직이는 기사 동상처럼, 그의 자식들에게도 오롯이 그것만을 요구할 따름이었다.
검을 들고 전장으로 나가는 기사들에게는 사명이 필요했다. 목숨마저 걸어도 좋을 사명, 결코 자신들이 겪는 고난과 시련에 꺾이지 않을 지지대가 되어줄 사명. 그러나 프라이마크는 그것을 충족시켜주지 않았다. 그가 실패하지 않았기에 그를 믿고 따르는 길이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는 얕은 믿음만이 있을 뿐. 사무엘은 프라이마크가 그의 자식들이 몇이나 될지 정확히 알고 있을 지 궁금해졌다.
모를 것이다. 진정으로 모를 것이다. 수십만의 신병들을 자료로 보았을 지언정, 그들의 이름, 그들의 생김새, 그들이 품은 긍지 그 무엇하나 모를 것이었다. 라이온을 따르는 원정함대의 구성원들은 아버지를 보필하며 승리를 맛 보았으나, 우주 전역에 퍼져있는 이름 없는 주둔지의 장병들은 그 무엇도 얻지 못한 채 우주의 먼지 한 톨로서 죽어가고 있었다.
라이온은 더 퍼스트 군단의 군단원들과 칼리번의 신병들을 한 번이라도 자신의 자식으로 여긴 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는 기사도를 중시하여 기사로서의 덕목을 군단원들에게 요구하면서도, 그 이상을 바라지는 않았다. 아버지를 위해 충을 다할 자식들을 바라지 않았다. 프라이마크를 위해 목숨마저 내 던지는 충성스러운 자식을 바라지 않았다.
프라이마크보다도 황제에게 충성하여 그것을 삶의 모든 것으로 삼기를 바랬다. 라이온은 제 군단원들이 자신을 배신해도 조금도 개의치 않을 것이었다. 황제를 위한 충정이라면 그저 침묵하다 뒤돌아서서 군단을 나가고, 칼리번을 떠날 것이었다. 사무엘은 충혈된 제 눈에서 물기가 고이지 않는 것을 감사했다.
사무엘은 제 유전적 아버지를 보았다. 라이온 엘 존슨은 냉정하고 차가운 눈빛으로 사무엘을 보고 있었다. 그는 그 자신을 향한 자식들의 충정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왜 그가 다크 엔젤, 더 퍼스트의 프라이마크가 되어 군단의 지휘관이 된 것일까? 답은 하나였다. 황제가 그렇게 명령 내렸으니까. 그것이 전부였다. 그것이 모든 것이었다. 황제는 라이온 엘 존슨을 더 퍼스트의 담당자로 임명했고, 라이온 엘 존슨은 자식들을 받아들인 것이 아니었다. 명령을 내리고 명령을 따를, 오롯이 황제만을 위해 움직일 '군단'을 하사받은 것이었다.
그는 검을 들고 무릎을 꿇어 자신의 검을 라이온 엘 존슨에게 내밀었다. 라이온 엘 존슨은 그 검을 집어 그대로 제 손만으로 반으로 부러뜨렸다. 사무엘의 명예는 방금 꺾이고 만 것이었다.
아버지는 우릴 사랑하지 않아. 그 유치하고 미성숙한 아이같은 문장 한 마디가 사무엘의 심장을 후벼파는 것 같았다. 그는 그의 자식들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말하더라도 조금도 반응하지 않을거야. 황제에게만 충성한다면, 황제가 임명한 지휘관의 말을 따르기만 한다면 조금도 개의치 않을 것이었다. 더 퍼스트의 아들들은 어떤 것도 라이온 엘 존슨에게서 받을 수 없을 것이었다.
오롯이 충성을, 오롯이 명예를, 오롯이...긍지만을.
기사들은 그럼에도 스스로를 죽음으로 내던질 것이었다. 그것이 더 퍼스트가 짊어진 명예였고, 그나마 아들들에게 아버지가 바라는 것이었으니까.
그것마저 없다면, 그것조차 없다면, 대체 아버지의 밑에 있을 자들이 자신들일 이유가 무엇이란 말일까?
사무엘은 침묵하며 근신을 위해 제 방으로 들어갔다.
라이온 사회성없는게 그냥 적당히 아싸인줄 알았는데 이정도였음?
2차창작
2차창작이어도 저렇게 표현될 근거가 있으니까 그런거아님?
구아아악 팬픽을 후루룹하게 만드는군. 라이온은 실제로 휘하 군단원들과 잘 소통하지 않아서 본인이 직접 끌고 다니던 원정 함대를 제외하곤 루서의 영향력이 훨씬 비등하게 컸음. 루서 자체도 라이온과 소통이 안돼서 라이온이 자길 버렸다고 생각했고
존슨만 엘모양으로 꼬인게 아니라 심성도 꼬였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