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갤에 올렸던건데 여기로 옮겨왔습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보기 좋게 정리된 서류들과 몇 개의 책장, 책상에 의자 몇개가 전부인 단촐한 방. 어느 누구도 이 곳에서 한 행성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사실을 믿지 못할 것이다. 한 사내는 의자에 앉아 양피지에 기입된 광산과 공장의 생산량을 훑어보더니, 깊은 한숨을 쉬며 자리에 앉았다.
"미치겠군. 그만큼 노동자들을 갈아넣었는데도 이 모양인가? 여기서 더 무리했다간 폭동이 일어날지도 모르는데..."
칠흑같은 밤하늘의 별빛처럼 수없이 많은 인류제국의 행성들 중 하나, 하이브 월드 아르코스의 총독은 혼자서 중얼거렸다. 양피지에 기입된 그래프의 곡선은 어느 임계치에 머무른 채로 꾸물꾸물 지렁이처럼 기어가고 있었다. 총독이 간절히 바라던 가파른 상승 곡선은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도 없었다. 서류를 책상에 내려놓은 총독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내다보았다.
뉘엿뉘엿 꺼져 가는 석양이, 하이브 시티의 칠흑같이 검은 마천루들 사이로 주홍빛 홍수를 쏟아내고 있었다. 총독은 비할 데 없이 아름다운 광경을 지켜보며 생각에 잠겼다.
위대하신 황제 폐하와, 그분께서 기거하시는 인류의 요람인 홀리 테라로 보낼 십일조는 이미 마련해뒀다. 제국 행정부에서 매년 내려오는 행정 명령들은 총독의 고조 할아버지 시절부터 전혀 변하지 않은 채로 계속 이어져왔으니, 그다지 신경 쓸 필요도 없을 것이다. 제국을 지키기 위해 용감히 싸워줄 임페리얼 가드 연대도 징집병들로 채워놓은 다음, 그들을 필요로 하는 전쟁터에 보내두었다. 이제 처리해야 할 안건은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바로 하이브 하층부에서 또 다시 날뛰기 시작하는 갱단들의 처리 문제였다.
"...이 천박한 것들이 제 분수도 모르고 기어오르려 하다니, 어디 한번 본때를 보여줄 때도 되었나... "
하지만 안 그래도 전 행성의 생산 할당량을 2배로 늘린 마당에, 총독은 괜히 휘하의 군대를 투입시켜 민심을 악화시키는 일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제아무리 세뇌와 선전을 반복한다고 해도, 결국 그것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나칠 정도로 비대해진 갱단의 세력들을 한번 솎아내지 않는다면, 그 또한 더 심각한 일로 번질 수도 있었다. 혹시모를 싹은 미리 잘라두어야 뒷탈이 없는 법이다. 총독이 가만히 눈을 감고 고뇌에 잠겨있을 동안, 누군가 집무실의 문을 두드렸다.
"총독 각하, 제 12 구획 감독관이 만나뵙기를 청합니다. 들여보낼까요?"
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치안대 병사가 조용히 말했다. 총독은 피로에 지친 눈동자를 꾹꾹 누르고는 대답했다. 12 구획 감독관이라면 오랜 세월동안 쌓아온 인망과 덕망으로 노동자들의 존경과 지지를 받고있는 인물이다. 그래서 총독은 이번에 감독관이 만나뵙고 싶다는 요청을 수락했다.
"들어오도록 하게나."
그러자 미려하게 세공된 떡갈나무 문이 조심스럽게 열리며 한 중년의 사내가 들어왔다. 고생을 많이 했는지 눈가는 어둡게 그늘졌고, 광산의 먼지을 오랫동안 쐬어온 탓인지 거칠고 투박한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도 눈빛만은 예리하게 빛나고 있었다. 감독관은 예의 바르게 머리를 조아리며 입을 열었다.
"총독 각하, 거두절미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부디 청하옵건데, 생산 할당량을 줄여 주십시오. 이대로는 노동자들이 더는 버텨내지 못할 겁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이 모든 건 위대하신 황제 폐하를 위해 마땅히 진행되어야할 과업이거늘, 감히 그분의 이름으로 행하는 신성한 노동에 이의를 제기하겠다는 말인가?"
감독관은 총독의 앞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기라도 한듯, 고개를 들고 총독을 노려보았다. 그의 검은 눈동자에서 분노가 일렁이고 있었다.
"광산에 일하던 노동자들이 지나치게 일한 나머지 과로로 쓰러지고 있나이다. 어제만 해도 육만 명의 노동자가 과로로 쓰러졌고, 그 중 절반은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이미 지치고 피로한 노동자들은 도저히 총독 각하께서 내리신 할당량에 따라갈 수 없습니다. 부디 재고해주십시오."
감독관은 이를 꽉 악물며 다시 고개를 숙였다. 광산이나 공장에서 단 한번도 일해본 적이 없을법한 샌님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총독은 감독관을 내려다보며 고민했다. 이 자리에서 명령에 따르지 않은 죄로 죽여버릴지, 아니면 그냥 끌고가 서비터로 만들어 버릴지 말이다. 그러나 총독은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나, 귓가에 속삭여오는 유혹을 견뎌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좋다. 그대가 그리 간절히 말하니, 할당량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해볼 수밖에 없겠군. 할당량에 대해선 다음 달부터 재조정하도록 하마. 이만 물러가 보도록."
"총독 각하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부디 각하께 황제 폐하의 은총이 있기를."
감독관은 그저 감사하다는 말을 연신 반복하며 문 밖으로 나갔다. 총독은 감독관이 집무실에서 멀어지기를 기다렸다가, 책상에 놓여있는 통신기의 버튼을 누르고는 수화기를 꺼내들었다. 수화기 너머로 치안대장의 중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방금 내 집무실에서 나간 사내가 보이나? 그래, 꺼무잡잡한 중년 남자 말이다. 감독관이 총독부에서 나가는 즉시, 이전에 했던대로 고용한 중소 갱단을 이용해서 납치하도록 해라. 뒤탈없이 빨리 처리해버리고, 이왕이면 고용한 갱단 놈들도 같이 처리해라."
[알겠습니다. 신속히 명을 이행하겠나이다, 총독 각하.]
만족한 듯 총독은 수고하라며 연락을 끊었다. 그러고는 다시 버튼을 눌러 선전 장관과의 통신을 연결했다.
"바쁜 와중에 갑자기 연락해 미안하네."
[아닙니다, 총독 각하. 제가 어찌 감히...]
"다름이 아니라, 자네가 해줘야 할 것이 있다네. 이번에 12구획 감독관이 불운한 사고로 인해 안타깝게도 목숨을 잃을 것 같네. 그대가 감독관의 안타까운 죽음에 관한 기사의 초점을 갱단에 맞춰주게나. 분노한 노동자들의 목표를 갱단에게 돌리라, 그 말일세. 할 수 있겠나?"
[물론입니다. 감독관의 죽음에는 갱단이 깊게 연루되어 있고, 그들의 지나친 만행을 행성에 널리 알리도록 하겠습니다. 감독관의 불운한 사고가 터지는 즉시, 바로 명령하신 대로 일을 진행하도록 하겠나이다.]
"고맙네. 언제 한번 같이 술이라도 마시지. 황제 폐하의 가호가 함께하기를."
[물론입니다. 이번에는 제가 물좋은 곳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총독 각하께도 황제 폐하의 가호가 함께하시길.]
총독은 통신을 끊으며 의자에 몸을 기댔다. 때마침 나타나준 감독관 덕분에 일이 수월하게 풀릴 것 같았다. 총독은 집무실 벽에 그려진 황제 폐하의 성상화를 바라보며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오늘은 황제 폐하께서 나를 도와주시나 보군."
총독은 성상화에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영광스러운 제국이여, 영원하라. 위대하신 황제 폐하시여, 영원하소서."
나빴어! - dc App
훈훈 - dc App
이래서 가드맨들이 카오스를 믿는구나
정말 평화롭기 그지없네
유능한 총독(40K 기준)
우리도 저런 유능한 사람이 필요하다 이겁니다 - dc App
카오스도 노답인데 제국이라고 답이 있는것도 아니고 어으..
아주 유능한 총독이네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