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햇빛]
[만인대의 첫 째]
[전시 회의]
디오클레티안 코로스-Diocletian Coros는 원치 않았던 햇빛의 후광 속에 잠긴 채, 존재해서는 안될 요새의 성벽 위에 서있었다. 5년만에 처음으로 자연적인 빛을 살갗에 닿는다는 것은 분명 축복과도 같은 것일 터이나, 디오클레티안은 그 달갑지 않은 밝은 빛에 자신이 괴로워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였다. 디오클레티안의 두 눈은 태양도, 하늘도 없는 황궁 아래 영역의 흐릿한 빛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다.
피로가 디오클레티안의 몸을 마치 망토처럼 뒤덮고 있었고, 그로 인해 그의 감각은 둔해져 있었으며, 그의 사지는 묵직하였다. 탈진에 가까운 피로가 디오클레티안을 하나의 오라처럼 소모시키고 있었다. 이제 전투는 끝이 나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로 인한 피로는 그의 힘을 거머리처럼 빨아 마시고 있었다. 이런 나약한 느낌은 디오클레티안에게 있어 새롭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디오클레티안은 그 감각을 증오하였다.
이곳, 높은 성벽 위에서 디오클레티안은 자신의 주변을 간신히 알아볼 수 있었다. 우아한 곡선을 자랑하는 황궁의 엔나라 첨탑들-Ennara Towers는 사라져 있었고, 그 자리에는 이제 록크리트와 플라스틸로 지어진 회색 요새가 서있었다. 순례자들이 볼 때마다 말을 잃게 만들던 완벽한 경이, 엔나라의 뾰족탑들은 이제 하늘을 겨누고 있는 터렛들과 레이저 포대들이 줄줄이 설치되어 있는, 무장된 고정 포탑들로 변해 있었다. 먼 거리로 인해 개미떼처럼 작게 보이는 정비용 서비터들이 로브를 뒤집어 쓴 테크 프리스트들의 지도 아래에서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 광경은 어지간한 도시 넓이의 황궁 전체에서 틀림없이 벌어지고 있는 진실이었다. 황궁의 성벽들은 요새의 성곽들로 변해 있었고, 탑들은 무너트려져 총안 달린 흉벽들로 변해 있었다. 그리고 한때 인류의 재주를 기리는 가장 영광스러운 기념비였던 궁전은, 반역에 대응하는 한 종족의 역량을 표현하는 기념비로 변모해 있었다.
로갈 돈과 돌의 심장을 지닌 임페리얼 피스트 군단은 자신들의 작업을 훌륭하게 완수해내었다. 황궁은 무너져 내리고, 이제 상식을 벗어나는 규모의 요새로 재탄생해 있었다. 수많은 세대 동안 발전해온 수십 개의 양식들로 지어졌던 위대한 건축물들은 돈의 싸늘한 시선 아래에서 무너져 내려, 둔중하고도 투박한 난공불락의 무언가로 재건되었다.
임페리얼 피스트 군단의 보초병 한 쌍이 볼터를 미동도 없이 붙든 채로 디오클레티안과 카에리아의 곁을 지나갔다. 임페리얼 피스트 군단원들은 커스토디안과 망각의 기사에게 흉갑을 주먹으로 두들기는 통합의 상징으로 경례를 보내었다. 카에리아는 그들에게 마주 경례를 보내주었다.
디오클레티안은 아스타르테스들에게 경례하지 않았다. 그는 두 병사들이 행군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그들의 깨끗한 갑주에 불편한 감정을 느꼈다. 황궁의 지평선이 끝도 없이 이어진 회색 흉벽들로 변한 모습을 처음 봤을 때도 그와 똑 같은 감정을 느꼈었다.
“아주 자랑스러워들 보이는군.” 디오클레티안이 말했다. 그것은 중얼거리듯 작은 목소리였다. 하루 전에 그의 머리를 거의 날려버릴 뻔했던 일격으로 인해, 디오클레티안의 목소리는 여전히 망가져 있었다. “우리의 고귀한 사촌들이여.”
사촌들이라. 그 진실을 아량 있게 받아들여 주자면, 그 말은 사실이라 할 수 있었다. 스페이스 마린 군단의 전사들은 만인대의 전사들과 비슷한 과정을 통해 성장하였으니까. 비록, 그 과정이 냉담하고도 조악하기 그지없는 모조품에 불과할 뿐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디오클레티안은 그 본질적인 단위까지 재창조되었고, 그의 피와 뼈는 완벽하게 자아내어져 있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열여덟 군단의 하등한 사촌들은 칼로 그 살을 갈라 열어, 가짜 장기들을 이식한 이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원본의 최종결과를 모방하기 위해 외과적 재주와 유전적 의식들에 의지하였다. 보다 뛰어나고, 보다 심한 고통을 동반하며, 보다 완벽한 시술을 모방하기 위해서 말이다.
카에리아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미세하게 자세를 바꾸더니, 디오클레티안과 눈을 마주쳤다.
“그 말대로요.” 디오클레티안이 마치 카에리아가 뭔가 말을 하기라도 했다는 듯이 긍정하며 대답하였다. “저들에겐 자랑스러워할 만한 자격이 있지. 따지고 보면, 저들은 단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무지함에 영예가 있는 것은 아니오.”
카에리아는 한쪽 눈꺼풀을 들어 올리더니,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아니.” 디오클레이탄이 즉각 대꾸하였다. “내가 무엇 때문에 그런단 말이오?”
카에리아의 표정이 참을성 깊은 인내의 표정으로 바뀌었다.
“난 그들의 무지함을 질투하는 것이 아니오.” 디오클레티안은 카에리아의 무언의 지적을 인정하였다. “그저 그 무지함이 점점 싫어지고 있을 뿐이지.”
“꼴사나운 짓이라는 건 나도 알고 있소.” 디오클레티안이 쌀쌀맞게 말했다. “그러니 괜찮다면 나에 대한 판단은 거기까지만 해주시오.”
얼굴을 훤히 드러낸 두 사람의 모습에는 그들의 테라 혈통이 숨길 수 없게 드러나 있었다. 디오클레티안은 우르샨 스텝 지대-Urshan Steppes에서 자란 아이 출신이었다. 디오클레티안은 우르샨 스텝 지방 출신의 남성들의 특징인 거무잡잡한 피부와 신기할 정도로 밝은 갈색 눈동자를 지니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눈동자의 색깔은 그의 민족이 통합 이전에 유전자 가공 프로그램을 받았다는 하나의 증거였다. 디오클레티안보다는 좀 더 창백한 피부색의 카에리아는 아케메니드-Achaemenid 지방 특유의 햇빛에 그을린 올리브색 피부와 밝은 색의 눈동자, 그리고 검은 머리카락을 지니고 있었다. 삭발된 카에리아의 머리 위로 높이 묶여져 있는 상투는 테라의 미약한 햇빛 속에서 황갈색으로 빛났다.
디오클레티안과 카에리아 모두 최근의 전투로 인해 살갗 위에 딱지 앉은 상처들과 변색된 부분들이 생겨 있었다. 두 사람 모두 부상을 입은 채, 심각한 전언을 가지고 이곳 지상으로 되돌아온 것이었다.
디오클레티안은 양손에 훔쳐 나온 유물을 들고 있었다. 그가 거기에 손을 대었다는 것만으로도 그 유물은 이미 더럽혀져 있었다. 다시 한 번, 디오클레티안은 그 유물을 군홧발 아래에 짓밟아 갈아버리고 싶은 충동을 참느라 애를 썼다. 그 전리품이 처음으로 그의 소유로 들어온 그 순간부터 계속해서 저항해왔던 충동이었다. 디오클레티안은 그 유물을 요새의 흉벽 위에 내려두었고, 잠시지만 그것을 손에서 놓아버렸다는 데에 안도감이 느껴지기까지 했었다. 곧 그 유물은 캡틴-제너럴-Captain-General에게 넘겨지게 될 것이었다. 그 유물이 아직까지 지상에 남아있는 기록보관소들 중 어디로 넘겨지게 되던지, 그것은 발도르가 알아서 할 일이었다.
바로 몇 년 전만 해도 이 장소에 발을 들일 수 있는 것은 만인대와 침묵의 자매단, 그리고 그들의 왕 외에는 없었다. 그들 외에는 그 누구도 이곳, 엔나라 탑들이 오염된 하늘 위로 우뚝 선 장소들 위를 걸어다닐 수 없었다. 이곳은 황제가 하늘을 바라보며, 그의 가장 충성스러운 전사들에게 별들에 대한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는 장소였다. 이제 탑들이 서있던 곳에는 요새의 흉벽들이 세워져 있었고, 그 흉벽들의 위에는 건-서비터들과 임페리얼 피스트 군단의 감독관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별들은 서서히 허공을 오가는 탐조등들의 빽빽한 불빛에 가리워졌고, 수백 개의 탐조등들은 하늘을 향한 채 조용히 떠가는 독성 구름들을 비췄다. 탐조등이 쏘아내는 빛 줄기들은 적들을 찾아 하늘을 헤매고 있었다. 벌써부터 테라 인근에 적들이 있을 리는 없었으나, 그 탐조등들이 적들의 등장에 대비가 되어 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참으로 많은 것들이 변했구려.” 디오클레티안이 땅딸막한 포탑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카에리아는 디오클레티안의 어조에 흠칫 놀랐다.
디오클레티안은 무감정한 시선으로 자신의 동료를 응시하였다. “그런 것이 아니오.” 디오클레티안이 말했다. “황궁의 아름다운 경관이 망쳐졌다고 애석해 하고 있는 것이 아니오. 이 망가진 광경이 의미하는 바를 애석해 하고 있는 거지. 워마스터가 오는 길 앞에 무엇이 가로막고 서있던지, 호루스가 분명 테라에까지 도달하고 말 것이라는 것은 돈과 말카도르, 두 사람 모두 인정하였소. 이것은 예방 조치 따위가 아니오. 전쟁을 준비하는 것이지.”
카에리아는 시선을 돌려 새로 지어진 흉벽들을 다시 한 번 둘러보았다.
“뭐라고 했소?” 디오클레티안이 물었다.
카에리아는 디오클레티안에게 짧은 눈짓을 보내었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도전적인 눈빛이 번쩍이고 있었다.
“당신의 불만에 어울려줄 만한 시간은 시간은 없소이다, 자매여. 이 자리에 있는 것은 나지, 천부장님이 아니시오. 이 얘기는 이것으로 끝냅시다.”
갑주의 제어장치와 피스톤들이 낮게 웅웅거리는 소리가 이어진 침묵을 가르고 들어왔다. 카에리아는 가까운 요새 탑의 입구 쪽으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교단의 망토를 깊이 뒤집어 쓰고 있는 대장인(大匠人, Archwright)가 그곳에 서있었다. 황동 판갑을 입은 아티피서 세 명이 테크 프리스트의 곁에 조용히 서있었다. 그들의 굽은 척추에는 물건을 잡을 수 있는 서보 암들이 연결되어 있었고, 서보 암들에는 금속세공 도구들이 달려 있었다.
“황금의 존재시여.” 테크 프리스트가 인사하였다. “영예로운 자매시여.”
“대장인.” 디오클레티안이 마주 인사하였다. 그녀만큼 완벽에 가까운 장인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을 수 있을 만한 이는 제국의 지배계급 중에서도 몇 되지 않을 터였다. 카에리아는 몸을 숙여 간단히 존중을 표했지만, 커스토디안 가드의 전사는 오직 그 주군 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몸을 숙여 절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대장인은 그 골격을 쇠로 대체한 노인이었다. 대장인의 몸은 그녀의 시들은 근육을 곧게 세워주는 자세 교정 구속구 안에 갇혀 있었고, 사이버네틱 장치들과 바이오닉 장기들로 이루어진 그녀의 몸은 화성의 붉은색과 테라의 황금색으로 채색된 로브를 두르고 있었다. 대장인의 얼굴에 남아 있는 모든 원형은 신체 복원을 위해 대어진 금속판과, 곤충의 눈처럼 커다란, 페로틱 합급으로 된 안구-렌즈들 밑에 가려져 있었다. 대장인이 그녀라고 불리우는 것은, 오직 그녀가 본래 가지고 있던 생물학적 형태가 여성의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식으로 말하자면, 수 세기 전의 안개 속에서 대장인이 화성에서 태어났을 때, 그녀는 여자아이로서 태어났다는 것이었다. 두 전사에게 다가온 연약한 테크 프리스트의 모습은 더 이상 성별을 구별할 수 있는 요소가 없도록 진화되어 있었다.
“제 이름은 이오소스-Iosos입니다.” 노쇠한 천재 테크 프리스트가 말했다. “내일 있을 전시 회의에 두 분과 함께 참석하도록 임명되었습니다.”
“우리는 동행자는 필요치 않네.” 디오클레티안이 대번에 말했다. “우리가 전투를 벌이고 있는 곳에는 이미 아티피서들이 배속되어 있으니.”
“캡틴-제너럴께서는 옴니시아의 커스토디안들 중 한 분께서 갑옷이 파손된 채 부상을 입고 계시는 모습이 궁중의 순례자들과 방어자들의 사기에 해를 끼칠 것이라고 믿고 계십니다.”
일순간이었지만 디오클레티안은 대장인의 말에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만일 그녀가 한 말이 그토록 엄청난 비극이 아니었더라면, 디오클레티안은 아마 웃음을 터트렸을 터였다. 황궁의 새로운 성벽 안에 안전히 앉아 있는 피난민들의 사기가 조금이라도 중요한 것처럼 이야기를 하다니. 그들의 전쟁은 테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서 진행되고, 또 패배해가고 있는 것이었다. 저 하찮은 쓰레기들은 그들의 적들을 향해 무기 한 번 들어보지 못할 정도로 머나먼 곳에서.
“저들의 사기는.” 디오클레티안은 인내심 깊게 말했지만, 현재 그의 마음속에 인내심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와는 전혀 상관 없는 것이오.”
“그럴지도 모르지요,” 이오소스는 디오클레티안의 말을 인정하며 말했다. “하지만 캡틴-제너럴께서는 그리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황금의 존재시여. 그분께서는 만인대의 으뜸이시니, 그분의 명령이 당신의 뜻에 우선합니다.”
카에리아는 자신의 동행에게 힐긋 곁눈질을 보내었다. 디오클레티안은 대장인의 말을 묵살해버리는 말을 내뱉지 않도록 이를 꽉 물고는 자신의 뜻을 거두었다. 카에리아가 옳았다. 이것은 다툴 만한 가치가 없는 일이었다.
“작업을 개시하게.” 디오클레티안이 말했다. 이오소스의 작업을 묵인하는 그의 어조는 무감정하기 그지없었다.
대장인이 세 기의 서비터들을 이끌고 다가왔다. 이오소스가 금속 뼈대로 된 손가락들로 자신의 전투용 갑주를 쓸어 내리는 동안, 디오클레티안은 꼼짝도 않고 서있었다. 이오소스의 팔에 달린 지지 장치들이 균형을 조정하자, 부들부들 떨리던 테크 프리스트의 사지가 떨림을 멈추었다. 이오소스가 쉭쉭거리며 조용히 성가를 부르자, 그녀의 몸을 지탱하는 구속구의 마디들 중 여러 마디들에서 극저온의 증기가 조그맣게 뿜어져 나왔다.
“황금의 존재시여.” 이오소스가 다시 입을 떼었다. “제가 당신의 시중을 드는 데에 임명되었다는 그 영예를 기억해 두셨으면 합니다.” 그녀의 목소리 역할을 하는 복스 장치에서 나온 푸념소리에는, 조금도 감정이라는 것이 담겨 있지 않았다. 이오소스의 흑철 손가락들이 그의 흉갑에 난 구멍들 주위를 둥글게 매만지는 동안 디오클레티안은 가만히 서있었다. 이오소스가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정밀한 단계까지 수리가 필요한 곳들을 검사하는 동안, 길고 비스듬한 그녀의 머리 속에서부터 기계장치가 딸깍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가 정밀 점검을 위해 자신의 갑옷 위를 할퀴어대고 긁어대자, 커스토디안은 꽉 다문 이빨이 쑤셔오는 것을 느꼈다.
“정말 믿기 힘들 정도로 끔찍한 손상들이.” 이오소스가 말했다. “이 걸작 위에 생겨났군요. 이처럼 독특하고 특징적인 파괴 흔적들이라니. 오라마이트(auramite) 판갑 위에 난 손상들 모두가 독특하고도 유일무이한 것들입니다.”
이오소스의 체내에 내장된 사고장치가 그것이 찾아낸 불가능에 가까운 발견물들에 대해 처리하려 애를 쓰는 동안, 개조 수술을 거친 그녀의 두개골 주위로 웅웅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놀랍군요.” 대장인은 그 말을 몇 번이고 반복하였다. 그러더니 어떤 때는 또 이렇게 말을 걸어오기도 하였다. “여기, 보이십니까? 오라마이트 층들 위로 난 이 찢긴 자국들은 말 그대로 불가능에 가까운 형태입니다. 흉골(胸骨)을 감싸고 있는 이 갑옷판 위에 생긴 상처는 오직 물리법칙을 초월한 존재만이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물질계의 현실을 드나들어 이 갑주 내부에서 생겨나서는, 물체를 파괴하기보다는 소멸시키는 방식을 사용하는, 그런 존재만이 말입니다.”
“그것 참 대단하군.” 디오클레티안이 무감정한 어조로 대꾸하였다.
짐승의 것처럼 커다란 대장인의 안구 렌즈들이 빙글 회전하며 초점을 다시 잡았다. “그런 일이 실제로 발생했던 것이로군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리고 여기, 이곳에서는 금속 그 자체가 질병에 감염되었군요. 이것은 손상이 아닌, 감염의 흔적입니다. 늑골의 받침대에도 전염되어 오라마이트 층 깊숙이 감염이 뿌리를 내리고 있군요. 마치 신체에 감염이 발생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점검이 끝나는 데까지 얼마나 더 시간이 걸리겠는가?”
“측정이 불가능합니다.” 이오소스의 수많은 기계 손들 중 세 개가 디오클레티안의 견갑에 나 있는, 특히 더 심하게 찢긴 손상부위를 향해 뻗어 나갔다. 세 기계 손의 손가락들은 흥분으로 떨리고 있었다. 이오소스는 금속 손가락들로 찢긴 견갑 위를 매만졌고, 그 손길에 칼로 돌을 긁는 듯한 소리가 났다. “황궁 지하실에서 무슨 일이 발생하고 있는지에 대해 발설하시는 것이 금지되었다는 것은 이해하고 있습니다. 허나 옴니시아에 대해서 제가 여쭤도 되겠습니까? 기계-신께서는 그분의 성스러운 연구실로부터 뛰쳐나가신 이후로 진척을 보고 계십니까? 옴니시아께서 다시 지상으로 올라오사 저희에게 그분의 형상을 뵐 영광을 베푸실 때에, 그분께서는 어쩐 천재적인 작품을 가지고 나오시는 것입니까?”
디오클레티안과 카에리아가 서로 시선을 교환하였다. “황제 폐하께서는 강녕하시네.” 커스토디안이 대답하였다.
이오소스의 몸이 얼어붙었다. 그녀의 손가락 끝은 그녀가 살피고 있던 손상 부위의 가장자리에서 멈추었다. 이오소스의 기다란 두개골 속에 내장된 사고장치가 방금 그녀가 들은 바를 해석하려 애를 쓰며 윙윙거렸다. 이오소스가 뭐라 말을 하기도 전에 그녀의 복스 장치에서 복잡하게 뒤섞인 기계 코드가 길게 튀어나왔다.
“당신의 목소리 패턴은.” 이오소스가 작게 줄인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시사하고 있습니다.”
디오클레티안은 이빨을 드러내었다. 그 표정은 미소도, 찡그림도 아닌, 빠르게 송곳니를 드러내는 표정이었다. 그것은 궁지에 몰린 사자가 지을 법한 그런 표정이었다.
“황제 폐하께서는 살아 계시며, 그분의 작업을 계속하고 계신다.” 커스토디안이 말했다. “이렇게 말하면 좀 안심이 되나?”
“그렇습니다.”
디오클레티안은 흉벽 위에서 자신이 가지고 왔던 전리품을 들어 올렸다. 이오소스의 수많은 기계 팔들 중 세 개가 그 유물을 향해 뻗어지고 있었다. 테크 프리스트의 비인간적인 손가락들은 너무나도 인간적인 경외심으로 인해 떨리고 있었다. 디오클레티안은 유물을 뒤로 끌어당기며, 이오소스가 그것을 가져가지 못하도록 하였다.
“버릇이 없군, 화성인.”
대장인은 무거운 숨을 내쉬었다. “그 유물은 어디서 입수하셨습니까?”
“그에 대한 대답은 금지사항이다.”
카에리아가 급히 손짓하며 그 대화에 끼어들었다. 디오클레티안과 이오소스가 고개를 돌렸다.
“지쳐 죽을 것 같은 모습이군.” 아치형 문으로부터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만인대의 첫 째이자 으뜸 가는 자, 콘스탄틴 발도르가 세 사람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왔다. 테라의 쓰라린 바람이 태생을 판별하기 힘든 발도르의 얼굴 곁을 스치고 지나갔다. 바람결에는 멀찍이 떨어진 공장들에서부터 나는 냄새와, 흉벽 위에 줄지어 늘어서 있는 포대들이 내는 톡 쏘는 화학적인 냄새가 실려 있었다. 수도성의 대기에는 늘 알칼리성 냄새가 섞여 있었다. 그곳의 토지 위에는 수 천년기동안 서로 전쟁을 벌여온 백만 개의 문명들이 남긴 먼지들이 깔려 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 무자비한 역사의 순환이 새롭게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인류의 요람은 그 기나긴 역사 속에서 처음으로 평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었다. 황제는 전 행성을 정복하였고, 무너진 잔해로부터 제국의 평화가 세워졌었다. 인류는 이미 망가진 토양 위에서 더 이상 전쟁을 벌이기를 거부하고, 그 역사상 가장 거대하고 강력한 군대를 저 공허로 보내어 자신들의 고향 행성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전쟁을 벌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은 모든 이성을 넘어 다가오고 있었다. 테라의 평화는 거짓과 어리석은 희망으로부터 태어난, 그저 환상에 불과한 것이었다.
카에리아는 일련의 짧은 수화들로 캡틴-제너럴 발도르에게 인사를 보내었다. 디오클레티안은 심장 위를 주먹으로 두드리는 통합의 상징으로 경례를 보내었다. 발도르 역시 마찬가지로 경례를 돌려보내 주었다.
“야사릭-Jasaric은 어디에 있나?” 발도르가 곧바로 질문을 던졌다.
“전사하셨습니다.”
“카다이는?”
“전사하셨습니다. 아드넥토르 프라이무스 멘델과 함께 죽으셨습니다.”
발도르는 머뭇거렸다. “라는?”
“라 님께서는 살아 계십니다. 마그누스의 무지로 인해 일어난 여파에 대한 방어를 감독하고 계십니다.” 디오클레티안이 말했다. “저는 천부장님을 대신해 보내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라가 해야겠군.” 발도르가 한참 뒤에 말했다. 마치, 그 이름과 그 이름이 부를 결과들을 재어보기라도 하듯이. “어쩔 수 없지.”
이오소스와 그녀가 데려온 장인 서비터들은 여기저기 우그러진 디오클레티안의 갑주를 계속해서 스캔하고, 수리하고, 구멍을 틀어막고 있었다. 테크 프리스트가 손가락을 갑옷의 파손부위들에 가져다 대자, 손가락 끝에 달린 봉합 장치들이 아세틸렌 빛의 불똥을 튀겼다. 이오소스의 등 뒤에 서있던 서비터 한 기가 갑옷에서 오라마이트 층을 벗겨내고는, 오른쪽 어깨뼈 주위로 연결되어 있는 섬유 다발들 중 잘려나간 것들을 다시 이어 붙였다. 한때 영광스러운 자태를 뽐내고 있던 디오클레티안의 모습은 이제 제국의 금빛이 아닌 그을려 더러워진 청동빛에 가까운 형상을 하고 있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발도르는 거의 의전용에 가까운 화려한 갑주를 입고 있었다. 비록 발도르의 갑주 겉면에는 그것들 하나하나가 황제의 이름으로 승리를 거둔 전투들을 상징하는, 수천 개에 달하는 긁힌 자국과 흉터들이 남아 있었지만, 그 자국들은 이미 오래 전에 치유된 옛 상처들에 불과할 뿐이었다. 캡틴-제너럴 발도르가 마지막으로 전장에 나섰던 때 이후로 이오소스와 같은 아티피서들은 몇 달에 걸쳐 발도르의 갑주의 장갑판 하나하나에 신비로운 공작을 가했고, 발도르의 갑주는 이제 거의 완벽에 가까운 상태까지 복원되어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나?” 발도르가 물었다. 황제의 운명에 대한 허기에 가까운 궁금증이 그의 근엄한 얼굴 위로 숨김 없이 드러나고 있었다.
카에리아는 짧은 수화 동작을 연달아 선보이는 것으로 발도르의 물음에 대답하였다.
“퇴각이라고?” 카에리아의 설명에 담긴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발도르는 고개를 내저었다. “대체 어떻게 침묵의 자매단과 만인대로도 이 위협을 감당하기에 충분치 않을 수가 있단 말인가?”
카에리아는 짧은 수화로 답했다. 이번에는 좀 더 단호한 손 동작을 보이고 있었다.
“저희가 이곳까지 온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디오클레티안이 카에리아의 고백에 자신의 목소리를 더하며 말했다. “불가능의 도시를 사수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전사들이 필요합니다.”
“만인대의 상태는 어떤가?”
카에리아와 디오클레티안은 서로 시선을 교환하였다. 더 이상 격식을 차리고 있는 데에는 진절머리가 나버린 커스토디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보였다. “제가 말할 수 없는 사항들이 많습니다. 이곳 지상 위에서는 이야기할 수 있는 것들이 많지 않습니다. 그 어떤 불충한 자도 저희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을 지라도 말입니다. 최근 수 개월 간 끔찍한 피해가 발생하였습니다. 지난 몇 년 간 저희가 치루었던 그 모든 손실보다도 더 많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만인대의 병력 또한 심각할 정도로 줄어들었습니다. 침묵의 자매단은 조금 더 상태가 나은 편이지요.”
디오클레티안은 자신이 들고 온 전리품을 발도르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여기, 이것도 찾을 수 있었지요.”
그 전리품이란 누가 보아도 뻔히 알 수 있는, 스페이스 마린의 헬멧이었다. 물론, 그것은 불가능하기 그지없는 일이었지만 말이다.
콘스탄틴 발도르는 황금빛 건틀렛을 낀 손 위에서 그 유물을 돌려보며, 그 구조를 꼼꼼히 살펴보았다. 그 헬멧은 발도르가 식별할 수 있는 그 어떤 군단에도 속하지 않는 것이었다. 우그러지고 금이 간 세라마이트 헬멧은, 전장을 활보하는 열여덟 군단들 중 그 어느 군단에도 속하지 않은 붉은색으로 도색되어 있었다. Ⅸ군단, 생귀니우스의 고결한 아들들은 정맥 속 피와 같은 진한 붉은 색 갑주를 착용하였다. 마그누스의 배은망덕한 개들, ⅩⅤ군단은 밝고 소박한 진홍색으로 칠해진 갑주를 입었다.
그러나 이 헬멧은 그 두 군단들 중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았다. 헬멧의 세라마이트 층은 거만한 다홍색으로 칠해져 있었고, 군데군데 흠집이 난 곳들에는 청회색이 드러나 있었다. 헬멧의 가장자리에는 황동을 연상케 하는, 청동과 유사한 불순한 금속이 둘러져 있었다.
헬멧의 면갑은 마크 Ⅳ 형식의 것을 눈에 띄도록 개조해 놓은 것이었다. 면갑의 입 부분은 으르렁거리는 턱의 형상으로 개조되어 있었고, 호흡기에 달린 창살들은 앙 다문 강철 이빨들의 모습으로 고쳐져 있었다. 헬멧의 양 옆쪽에는 뻣뻣한 세라마이트를 구부려 우뚝 솟아오르게 만들어 놓은 볏 장식이 한 쌍 달려 있었다. 그것은 Ⅰ군단의 엘리트 지휘관들이 헬멧에 다는 천사 날개 장식이나, ⅩⅡ군단의 투사들이 다는 굽은 뿔 장식과 유사한 형태를 띄고 있었으나, 두 군단의 장식들보다는 보다 조악하고, 또 곧은 형상을 띄고 있었다. 헬멧에 달린 볏 장식은 또한 붉은 세라마이트 판 위로 망치질해 박아 넣은 황동 못들로 장식이 되어 있었다.
그 헬멧의 모든 부분 부분들은 특이한 것들이었지만, 아예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레기오네스 아스타르테스의 병기창을 채울 병기들을 생산하는 공장들과 포지 월드들의 수만큼, 파워 아머의 설계에도 여러 가지 변형들이 존재하는 법이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 헬멧에도 그것이 본디 생산된 공장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으나, 오른쪽 청각 수용기 뒤쪽에 새겨져 있는 들쭉날쭉한 필체의 룬 문자들은, 지금까지 태양계 내에서 본 적이 없는 이름을 기록하고 있었다.
“사룸-Sarum.” 발도르가 끝내 입을 열어 말했다. “이 헬멧은 사룸에서 만들어진 것이로군.” 발도르는 디오클레티안과 카에리아를 바라보았다. 헬멧은 두 사람에게 되돌려주지 않고 여전히 손 안에 굳게 쥔 채였다. “월드 이터의 것인가.” 발도르는 이제는 저주가 되어가고 있는 그 이름을 한숨과 함께 내뱉었다.
디오클레티안은 동의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죽은 군단원은 행성을 집어삼키는 입이 새겨진 견갑을 착용하고 있었습니다. 그 뒤통수는 12군단이 추앙하는 사이버네틱 장치로 뒤틀려 있었지요.”
잠시 동안, 발도르는 침묵을 유지하였다. 대체 무엇을 말하면 좋단 말인가?
“모든 것을 말해주게.” 발도르가 마침내 명령을 내렸다.
카에리아의 양손이 허공에서 휘적이며 대답을 그렸다.
“그렇다면 말할 수 있는 것만이라도 전부 말해주게.” 발도르의 목소리는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전시 회의를 소집하기 전까지, 말할 수 있는 것은 전부 다 말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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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라가 해야겠군.” 발도르가 한참 뒤에 말했다. 마치, 그 이름과 그 이름이 부를 결과들을 재어보기라도 하듯이. “어쩔 수 없지.”
의미심장하네. 무슨 의미인지 아직은 확신은 할 수 없어도 대충 예상은 가는 게....
그나저나 임피 보면서 존나 까는 힙스터 커가와 거기에 태클 거는 정상인(?) 포지션의 시오사라니, 신선한 조합이네. 디오클레티안만 저런 건지는 몰라도 좀 거만하고 까칠한 끼가 있긴 한 거 같다.
커가는 출신부터 생산 과정까지 어지간한 마린들보단 확실히 우월하니까. 저시절이면 거진 테라 출신들 아녀
코른 버저커들이 저때부터 나타날 줄이야
호오오오오우... - dc App
하나의 오라처럼 <- 이건 'Aura; 인가요?
ㅇㅇ - dc App
아님 밧줄?
발도르는 알았구나...! 그리고 중간에 디오클레티낭 이라고 오타 있음..
퀣. 내일 수정하겠음. - dc App
지구의 평화를 위해선 전쟁을 다른데서 벌이면 된다는 기적의 논리...황가놈의 천재성엔 끝이 없는가... 월드 이터는 옛날인 그냥 미친놈들이였는데 앙그론책들을 읽어보니 불쌍한 미친놈들인거 같음
개추
황제가 직접 하나하나 공들어 만든 놈들이니 저런 성격들이 몇명있다고 해서 놀랄만한건 아니지
항상 재밌게 읽고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