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갤에 올렸던 부족한 2차 창작글. 브레토니아하고 솔라하고 어울리는 것 같아서 한번 끄적여봄.)

자신만의 태양을 찾으리라.
한 사내는 스스로를 '태양의 기사'라 칭하며 그렇게 맹세했다.
태양은 날마다 주홍빛 홍수를 쏟아내며 지평선 너머로 떠올랐다. 그러고선 지상에 살아가는 모든 이들을,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따사로운 기운을 베풀었다. 제아무리 칠흑같은 어두운 밤이 세상을 뒤덮을지언정, 언젠가는 태양이 떠올라 어둠을 몰아내리라. 그것만은 서서히 종말에 다다르는 이 세상도 다르지 않으리라 믿었다.
그렇기에 불사자는 머나먼 여정을 떠났다.
숱한 시련과 고난도 그를 가로막을 수는 없었다. 감히 길을 가로막는 괴물들을 검으로 베어내고, 날카로운 발톱들을 방패로 튕겨내며, 그는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는 와중에도 태양의 기사는 끝까지 웃음을 잃지 않았다. 냉혹하기 짝이 없는 세상의 광기마저 그의 굳은 신념을 무너뜨리지 못하였다. 칠흑같은 밤하늘을 수놓는 별처럼, 뜨거운 모래 사막 위에서 일렁이는 신기루처럼, 기사는 잡으려 할 때마다 잡히지 않는 꿈을 쫓아 계속해서 나아갔다.
그러나 결국 기사는 자신의 태양을 찾지 못하였다.
그토록 간절히 찾으려 노력했건만, 모든 게 헛된 꿈이었단 말인가. 기사의 신념은 끝내 보답받지 못했고, 가혹한 현실은 기사를 끝모를 절망의 수렁 속으로 떨어뜨렸다. 굳건하게 서있던 두 다리가 허물어지듯 무너져내렸다. 차가운 땅바닥에 주저앉은 기사는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내며 목놓아 태양을 부르짖었다.
"모두 거짓이었나? 내가 한 일이 전부 헛수고인가? 나의 태양아... 어쩌면 좋으냐... 어쩌면... 태양아, 나의 태양아..."
한참동안 기사는 구슬프고 처절하게 울부짖었다. 많은 것을 잃고 또 갈구했지만 손안에는 잿더미 밖에 남지 않았다. 기사는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고, 그 운명을 준 존재를 증오하고, 자신이 직면한 사실을 원망했다. 그러나 나아가기를 멈추지는 않았다.
기사는 다시 떨어뜨린 검을 움켜쥐었다. 바닥에 놓여진 방패도 다시 주워들었다. 그러고는 다시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기사는 절망감을 발판삼아 여정을 계속해서 이어나갔다. 그리고 기사는 마침내 여정의 끝에서 결정을 내렸다.
태양의 기사, 솔라는 태양을 찾기보다 스스로 태양이 되기를 선택했다. 불꽃이 솔라를 장작으로 삼아 거세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장대한 불꽃은 몰려드는 어둠을 몰아내었다. 솔라는 마침내 안심하고 눈을 감았다.
이로써 솔라는 태양이 되었다. 아직 태양을 찾지못한 이들을 이끌어줄 태양이.
◆
그렇게 솔라는 태양이 되는 것을 끝으로 여정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아니, 그랬었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아침이 밝았음을 알리는 새들의 지저귐이 깊게 잠든 솔라를 깨웠다. 그는 이끼가 군데군데 돋아나고 은은한 비 냄새를 풍기는 부드러운 토양에 누워있었다. 기사는 주변을 둘러보며 어쩌다가 자신이 이 낯선 숲에 오게 되었는지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허허... 아무렴 어떤가? 어쩌면 이번에야말로 태양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솔라는 그저 허허 웃어넘기며 골치아픈 고민을 털어내었다. 어차피 한곳에 앉아 계속해서 고민하는 건, 태양의 기사인 솔라의 방식이 아니었다. 불을 피워내는 장작이 되었던 자신이 멀쩡하게 돌아왔다는 사실. 그것이 신의 축복이든, 악마의 농간이든 간에, 나중에 밝혀도 될 문제였다. 일단은 직접 부딪쳐보며 주변을 파악하는게 우선이었다.
솔라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전의 세상과는 다르게, 눈이 부시도록 푸르른 하늘이었다. 그리고, 여기서도 태양은 화사한 햇빛을 솔라의 투구 위로 쏟아내었다. 자기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진 솔라는 콧노래를 부르며 새로운 모험에 나섰다.
얼마나 오랫동안 무성한 수풀 속을 헤치며 걸었을까. 솔라의 귓가에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필시 근처에 대화를 나눌만큼 멀쩡한 이들이 있는 게 분명했다. 건틀렛이 눈앞의 덩쿨을 밀어내자, 솔라는 꾀죄죄한 차림의 사내 셋을 볼 수 있었다. 세 명 모두 못먹고 자랐는지 체격이 왜소했고, 그 중 하나는 장애까지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물론 망자가 되어버린 불사자들보단 상태가 양호했지만 말이다. 사내들은 등 뒤에 활을 멘 채로 날짐승같은 것들을 주렁주렁 매단 채로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몇몇은 불안한지 연신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다른 이들은 오랜만에 고기를 먹을 생각에 들떠있었다.
"발루르. 조심하그라. 이러다가 기사 나으리라도 마주치면..."
"아따... 그놈 걱정은 많아서! 내가 장담하건데, 이쪽은 기사 나으리도 별로 안 나온다니까. 활이 있는데 써야하지 않겠냐고? 후딱 처리하고 먹어치우면 되니까 걱정일랑 하지 말랑께."
브레토니아 개척촌의 농노들은 매일 비참한 삶을 살아간다. 매년 수확의 9/10을 바쳐야하는 것도 모자라서, 자신들같은 농노들은 사냥을 하는 것조차 금지되어 있었다. 그나마 이렇게 안본다 싶을때 조금이라도 더 잡아둬야 했다. 도대체 얼마만의 고기인지 농노들의 입안에서 군침이 돌았다. 감독관이 확인하기 전에 재빨리 먹어치우고, 밭으로 돌아가야 했다. 제때 안가면 또 감독관의 매서운 채찍질이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을테니 말이다.
"...안녕하신가. 이야기하는데 끼어들어 미안하네만. 여기 가장 가까운 마을이 어딘지 아는가?"
농노들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다. 안색이 새하얗다 못해 새파랗게 질려가는 것을 보아하니, 저승사자라도 마주친 사람의 표정이었다. 다리가 애처롭게 떨리며 한 농노는 공포에 질려 오줌이라도 지려버린 것 같았다. 솔라는 당황스러워 뒤로 물러섰다. 농노들이 땅에 납작 엎드려 제발 자비를 내려달라고 두 손을 모아 싹싹 빌었다.
솔라의 투구와 갑옷으로 보건데, 기사가 틀림없으리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농노들 눈에는, 그들 앞에 선 솔라의 태양 문양이 자신들을 단죄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머리를 팽팽 돌리며 어떻게든 살아나갈 방도를 찾아보았다. 잠시 동안의 고뇌 끝에, 농노들은 자리에 엎드려 용서를 구하고자 발버둥치기를 선택했다.
"아이고오~! 기사 나으리~! 제발 자비를 보여주십쇼! 너무 배가 고파서...그만!"
"이렇게 빌겠구만요! 부디 한번만 자비를!"
솔라는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영문을 몰랐다. 아마 이 부근에서는 기사의 존재가 농노들에게 있어 두려움의 존재이라고 추측할 뿐. 그래도 그렇지, 그는 옛 고향인 아스토라에서도 기사들이 이렇게 사람들을 공포에 질리게 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했다. 어찌되었든 솔라는 장단에 맞춰서 농노들의 어깨를 토닥이며 그들을 하나하나 일으켜세웠다.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찌됐든 그대들의 죄를 묻지 않을 터이니 그만 일어나게."
솔라의 따뜻한 한 마디에 농노들은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록 눈앞의 기사가 개의치 않는 듯 하였으나, 그래도 언제 마음이 바뀔 지 모르는 일이었다. 농노들은 마음속으로 호수의 여인과 인신 지그마, 그리고 기타 다른 신들에게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적어도 기사들의 '유흥거리'로 전락하는 일만은 면했기 때문이였다.
"...자비를 내려주셔서 감사하당께요."
발루르란 이름을 가진 농노가 대표로 나서서 굽실거리며 말했다. 다른 두 농노들도 허리를 굽히고 헤헤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제서야 축 젖어버린 바지를 눈치챈 농노는 얼굴을 붉혔다. 솔라는 굳이 그 사실을 언급하지 않으며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그나저나 그대들은 이곳이 정확히 어디인지 아는가?"
"...아따. 여기는 보르들로의 미르아 정착지 인근의 샬롱 숲인지라."
"...보르들로라? 처음 들어보는 지명이구만."
솔라는 기억 속에서 보르들로란 지명에 대해 떠올려보려 노력했으나,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했다. 어쩌면 자신이 있던 시간대보다 훨씬 긴 시간이 흘러가며 새로이 생겨난 곳인지도 몰랐다. 그렇다한들 별 상관은 없었다. 천천히 알아가면 되는 일이 아닌가. 솔라는 고개를 돌려 농노들에게 정중하게 물었다.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그대들의 마을로 안내해줄 수 있겠는가?"
"아이구, 그러고 말굽쇼! 저희들만 따라오시지라."
발루르가 손을 싹싹 빌며 말했다. 그 사이에 농노들은 잡은 새들을 허리춤에 걸친 주머니에 몰래 쑤셔넣었다. 대놓고 들고갔다가 감독관한테 들키기라도 하는 날엔, 비오는 날 먼지나듯 두드려맞을 테니까. 그러고 나서야 농노들은 근처 나무에 숨겨두었던 물지게를 어깨에 걸치고는 앞장서서 걸어갔다.
무성하게 우거진 넝쿨들과 높게 우뚝 선 거목 사이를 얼마나 헤치고 걸어갔을까. 솔라의 사바톤과 농노들의 낡은 부츠가 부드러운 토양을 즈려밟고 지나갈 무렵, 주위의 나무들이 점차 낮아지고 탁 트인 벌판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넓게 펼쳐진 초원 너머로 목책에 둘러싸인 자그마한 개척촌이 보였다. 조잡하긴 하지만 몇 개의 방어탑도 목책을 따라 세워져 있었다. 솔라와 다른 세 농노들은 정착지를 향해 가까이 다가갔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목책 주위로 구덩이를 파던 농노들을 보고 뭐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감독관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이놈들아! 빨리빨리 안해! 농땡이치지 말고 후딱 움직이란 말이야!"
감독관은 가장 가까이있던 농노의 등짝에 채찍을 후려갈기며 소리쳤다. 매서운 채찍질에 호되게 당한 농노는 죽는 소리를 내며 땅바닥에 엎어졌고, 그 광경을 본 다른 농노들은 서둘러서 삽으로 구덩이를 파기 시작했다. 감독관은 미간을 찌푸리며 쓰러진 농노에게 다가가 발길질을 했다.
"어?! 이놈 보게나? 어디서 엄살이야! 빨리 일어나서 작업 시작해!"
연신 얻어맞던 농노는 입에 게거품을 물고 덜덜 떨어대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감독관이 발길질을 그만두려고 했지만, 그전에 억센 손길이 그의 어깨를 잡아당겼다.
이 광경을 그냥 지켜만 볼 솔라가 아니였다. 무릇 태양의 기사를 자처하는 자라면, 위험에 처한 약자를 구하고 보살필 의무가 있는 법. 특히 아직 태양을 찾지못한 이들을 위한 태양이 되리라 맹세한 그에겐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었다.
"그만. 그대는 대체 무슨 이유로 이 자를 이리도 핍박하는 것인가?"
과도할 정도로 약자를 핍박하는 모습에 자기도 모르게 분노한 탓일까. 미처 힘조절을 잘못한 솔라의 건틀렛이 연약한 감독관의 어깨뼈를 부러뜨리고 말았다. 감독관은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뒹굴었다.
"아아악!"
(*툭하고 쳤는데 악하고 쓰러졌더랍니다. 세율 9할을 자랑하는 헬-브레토니아에서는 감독관이라도 못 먹고 사는 건 매한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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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다음편
#[T]/
\\[T]// 빨리, 다음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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