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s://www.deviantart.com/slim-charles/art/WARHAMMER-40000-FOR-CADIA-Promo-485960799 )

 

 

 

 

 

 

나먼 미래에, 한때 찬란했던 과거의 영광이 칠흑같은 어둠 속에 파묻혀 잊혀져만 갈 무렵에, 세상은 격렬한 전쟁의 물결에 휩쓸리게 되리라. 세상 그 모든 것을 태워버릴 듯 휘몰아치는 전란의 불꽃. 전쟁의 참화는 수없이 많은 영혼들을 탐욕스럽게 집어삼키며 꺼질 줄 모르고 전 제국으로 퍼져나갔다.


그러나 가드맨 젠킨스에게 그런 것은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 어차피 그는 쉴새없이 휘몰아치는 파도 위의 초라한 나룻배와 다름 없었으니까. 가드맨 하나는 전황을 뒤바꿀만큼 강하지 못하다. 애초에 젠킨스는 황제 폐하의 은총을 내려받은 죽음의 천사도, 연약한 육신을 버리고 옴니시아의 의지를 받아들인 스키타리도 아니었다. 그러나 제국의 모두에게 각자 역할이 주어졌듯이, 한낱 가드맨에게도 목숨을 바쳐서라도 반드시 이뤄내야만 하는 역할이 있었다.


서서 죽는다. 


그것이 가드맨 젠킨스에게 주어진 의무이자 숙명.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이 서서히 그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음을 느꼈다. 젠킨스는 일제 사격 명령을 기다리면서 손마디가 하얗게 불거지도록 라스건을 꽉 움켜쥐었다. 초록빛 헬멧과 플랙 아머를 걸친 전우들이 뱀의 몸뚱이처럼 굽이굽이 이어진 참호 안에 빽빽히 들어차 있었다. 소나기처럼 쏟아져내리는 콘크리트 알갱이가 헬멧을 때리고, 모랫주머니 위에 놓여진 라스건의 총구들이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였다. 


"제군들. 황제 폐하께서 그대들을 가호하신다는 사실을 잊지마라!"


가드맨들의 등 뒤에서 커미사르가 목이 찢어져라 소리를 질렀다. 거대한 챙이 달린 높은 모자를 쓰고, 장교 특유의 깨끗한 차림의 정복을 입은 커미사르가 체인소드로 참호 너머를 가리켰다. 체인소드의 톱날들이 가까워지는 이단자들을 향해 울부짖기 시작했다.


"우리들은 신념과 열의를 가지고 기꺼이 황제 폐하를 위해 목숨을 바칠지니, 제국의 적들에게 죽음을 내려줘라! 전원 사격 개시!"


사격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젠킨스의 손가락이 연신 방아쇠를 당겨댔다. 굳이 힘들여 하나하나 조준하지는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을 정도로 새까맣게 몰려오고 있었으니까. 죽음을 노래하는 포성 사이로,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붉은 광선들에 꿰뚫려 죽어가는 배신자들의 비명 소리가 감미롭게 울려퍼졌다. 그러나 사악한 신들의 하수인들은 결코 돌격을 멈추지 않았다.


감히 황제 폐하의 빛을 저버린 배신자들도 멍청하지는 않았다. 곧이어 반격이 시작되었고, 참호 주위로 총탄과 포탄이 내려앉기 시작하며 진흙과 자갈이 이리저리 솟아올랐다. 비록 참호가 제 역할을 톡톡히 해줬지만, 그다지 운이 없던 몇몇 가드맨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황제 폐하의 빛을 따르는 자들과 어둠에 물들어버린 자들이 서로 맹렬히 총탄을 주고받았다. 그렇게 격렬한 전투가 이어지던 도중, 젠킨스 옆에 있던 전우가 바닥에 쓰러졌다. 꿰뚫린 총상에서 붉은 피가 세차게 흘러나왔고, 이름도 모르는 전우는 애처로운 비명을 질러댔다. 커미사르는 볼터의 총구를 돌려 죽어가는 가드맨에게 황제 폐하의 자비를 내려주었다. 그러고선 머뭇거리는 가드맨들을 향해 외쳤다.


"두려워하지 마라! 물러서지 말란 말이다!"


매캐한 화약 연기와 비릿한 혈향이 젠킨스의 코를 찔러대었다. 한때나마 푸르렀던 하늘은 시커먼 폭연으로 가득 찼으며, 사방에서 날아드는 총탄의 궤적과 붉은 광선들이 하늘을 화려하게 수놓았다. 전장을 뒤덮은 희뿌연 연기 속에서 수없이 많은 불꽃이 피어오를 때마다, 이름모를 영혼들이 황제 폐하의 품으로 떠났다.


전쟁터 위로 어우러지는 폭음과 비명소리. 전장의 열기는 식을 줄 모르고 점차 고조되고 있었다.


"크윽!"


젠킨스는 피를 울컥 뱉어내며 라스건을 손에 놓았다. 아무래도 총탄에 맞은 것만 같았다. 시야가 붉게 물들어가고, 숨결이 점차 희미해졌다. 맥박의 걸음이 희미해지는 짧은 순간 동안, 마치 시간의 흐름이 느려진 것만 같았다. 


핏방울들이 전장 위로 느릿하게 흩날렸고, 볼터 탄환이 허공에서 궤적을 따라 천천히 나아갔으며, 흔들리던 총구의 연기가 서서히 옅어졌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그 찰나의 순간에, 가드맨 젠킨스는 황제 폐하께 마지막 기도를 올렸다.





폐하, 저는 여기서 죽을 것이옵니다.



그리고 저의 전우들은 황제 폐하의 이름을 외치며 제국의 깃발 아래서 싸우다 죽을 것입니다. 


비록 저는 당신의 강력한 전사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그저 당신이 내려주셨던 가르침만을 마음에 품고서,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싸웠다고는 당당히 자부할 수 있나이다.



폐하, 저는 휼륭히 싸웠나이까? 혹여나 당신을 실망시키지는 않았습니까? 



서서히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게 느껴집니다. 견딜 수 없을만큼 춥나이다. 



폐하, 폐하... 주제넘은 줄은 아오나, 부디 한마디라도 해주소서... 


정녕... 저희를 지켜보고 계시나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