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붕아, 가서 르카프 다섯 잔 타와."

평화로운 외딴 행성 헬-조서니움의 어느 회사.  만년 대리 블붕투스는 오늘도 탕비실에서 부장님께 갖다바칠 르카프를 만들고 있다.

"야, 블붕아."

"저, 저요?"

"하는 김에 회의실 테이블이랑 코그테이터 세팅도 하고 다과도 준비해놔라."

부장의 말에 소심한 블붕투스는 오늘도 마음 속으로만 투덜거리면서 회의실을 완벽하게 세팅한다.

블붕투스가 회의실 세팅을 하는 것을 본 다른 부서 사람들이 뒷담ㅇ화를 시작하는데.

"블붕투스 대리 있잖아요."

"걔가 왜"

"저렇게 덩치 큰 사람이 르카프나 타고 있으니까 진짜 웃기게 보이지 않아요?"

"그러게 말이다.  2미터 넘는 떡대가 소심해 빠져서는 한마디도 못 하고 맨날 르카프나 만들고 있으니..."

듣자하니 블붕투스가 워낙 소심한 탓에 자기가 만들어놓고도 직장상사들한테 뺏긴 특허만 500개가 넘어가며 지적재산권 전반으로 범위를 넓히면 그 갯수가 천 개는 족히 된다는 신빙성 높은 소문이 있다.

"능력은 참 좋은데 사람이 저렇게 어리숙해서야..."

"평생 호구나 잡혀서 살겠지."

오늘도 블붕투스는 직장 동료들의 뒷담화를 뒤로 한 채 터덜터덜 퇴근을...

"블붕아!  가기 전에 불 끄고 청소하고 문단속 하고 가라."

...하지 못한다.  그렇게 위에서 시킨 잡일들을 끝내고 나니까 벌써 밤이다.

"다녀왔습니다."

"왜 이렇게 늦었어?"

"그냥, 시킨 일 좀 하느라..."

"아이고, 이 녀석아!"

얼버무리며 자기 방으로 들어가는 블붕투스의 등짝에 엄마의 등짝스매시가 날아온다.

"시킨다고 다 하지 말고 제발 당당하게 안 하겠다고 말 좀 하고 다녀!  네가 그렇게 하고 다니니까 눈 뜨고 털린 돈줄이 몇 개니, 응?"

엄마의 폭풍 잔소리에 2미터가 넘는 거구를 잔뜩 움츠러뜨린 채 고개만 푹 숙이고 있는 블붕투스.  아들의 이런 위축되 모습에 엄마는 또다시 속이 타들어간다.

"아이고, 이 대책없이 착해빠진 놈아!"

"부, 부장님이 시킨 거 있어서 해 봐야 돼요..."

잔뜩 쫄아서는 잔업이 있다는 핑계를 대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는 블붕투스.  방문이 닫히자 엄마는 가슴을 탕탕 치면서 바닥에 주저앉는다.

"진작에 대성하고도 남았을 앤데, 누굴 닮아서 저렇게 소심하냐 그래?  제발 네 거 뺏기지 말고 좀 당당하게 살란 말이야, 이놈아!"

"계십니까?"

문 밖에서 사람 말소리가 들려오지만 엄마는 답답한 마음에 가슴만 치느라 듣지 못한다.

[쾅쾅쾅쾅!!]

"블붕투스 씨 집 맞죠?  문 좀 열어주시죠!"

"네, 네, 나갑니다!"

엄마가 문을 열자 그 앞에 황금 정장을 입은 잘 빠진 인텔리처럼 생긴 남자의 모습이 나타났다.

"누구세요?"

"소개가 늦었군요.  전 이런 사람입니다."

[제국물산 인사부장, Mr. 황]

엄마는 명함과 명함을 건네준 남자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본다.

"딱 봐도 높으신 양반같은데 무슨 일로 오셨답니까?"

"저희 제국물산에서 블붕투스씨를 천거하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블붕투스씨와 직접 이야기하고 싶은데..."

"블붕아!"

미스터 황의 등 뒤에 후광이 피어오르자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엄마가 블붕투스의 방 문을 벌컥 열어제끼고는 블붕투슬 끌고 나온다.

"이놈아, 드디어 니 인생에 꽃길이 피는구나!  아이고, 우리 아들 장하다!  장해!!"

"엄마 갑자기 왜 그래요?"

어리둥절해서 끌려나오는 블붕투스가 제국물산 인사부장 미스터 황을 보는 순간 알운이 막힌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블붕투스 씨.  자세한 이야기는 저를 따라오시면 들려드리죠."

"저, 저 지금 잔업이 있어서 그거 끝내야 되는데..."

엄마가 블붕투스의 등짝을 후려갈긴다.

"이 미친놈아!  지금 니 인생 대박이 찾아왔는데 그깟 잔업이 중요해?  어서 이 분 따라가!"

엄마의 등짝에 떠밀려 블붕투스가 집 밖으로 나서는 순간 눈을 찌르는 광채가 미스터 황에게서 뿜어져나오고, 눈부신 빛에 잠깐 눈을 감았던 블붕투스가 눈을 떴을 땐 후줄근하던 아파트는 온데간데없고 그가 지금까지 본 것들 중 가장 아름답고 웅장한 건물을 오두막으로 보이게 할 금색 찬란한 원형극장과 자신의 앞에 도열한 블붕투스에 버금가는 덩치의 하늘색 갑주를 입은 병사들이 질서정연하게 도열하고 있는 모습이 나타났다.  블붕투스의 동공이 불안으로 흔들린다.

"저기, 황 선생님? 이게 뭔..."

블붕투스가 뭔가 말하려 했지만,

"두 번째 군단이 주군을 뵙습니다!!!"

블붕투스의 목소리는 사열한 병사들의 우렁찬 인사에 지워져버렸다.  그 쩌렁쩌렁한 외침에 놀라서 넘어지는 블붕투스.

"일어나거라, 나의 아들아."

미스터 황이 조금 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위엄 넘치는 목소리로 이야기하자 블붕투스는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서는 부동자세를 취했다.

"나는 황제이니라.  그리고 너 블붕투스는 짐이 창조한 가장 위대한 영웅들 중에서도 둘째 가는 자이니라."

블붕투스가 순간적인 상황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했는지 입만 떡 벌리고 있자 미스터 황, 아니, 황제가 블붕투스의 안색을 잠깐 살피는가 싶더니 다시 이야기를 이어간다.

"너에게 두 번째 군단을 맡기노니, 너와 네 군단은 짐의 가장 빠르고 날카로운 화살이 되어 이 은하 끝까지 뻗어나갈지어다."

블붕투스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황제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블붕투스와 그를 향해 엄숙히 경례하는 거인 병사들만이 있었다.

"위대하신 우리의 프라이마크시여, 미래영겁 당신을 따르겠나이다!!"

블붕투스는 다시 한 번 주저앉았다.

"나 별로 안 위대한데......"






강의중에 떠올라서 폰으로 썼는데 막상 써보니까 개노잼이라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