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로를 짧게 흘겨본 세바스티브는 카바노프 대령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동 준비가 거의 완료되었습니다, 대령. 허나 깔끔하게 빠져나가긴 힘들 것 같습니다. 다닉스 기갑부대가 남쪽에서 접근 중이고, 동쪽에서 오크 무리도 접근 중입니다. 놈들이 당장은 우릴 포착하지 못한다고 해도 교란작전 없이는 분명 우리가 남긴 흔적을 보고 따라붙을 겁니다.”


 카바노프 대령은 세바스티브에게 옆자리를 내주었다. 그의 맞은편 자리가 비어있는 것이 보였다. 보아하니 이런 갑갑한 상황에서도 반역자의 옆자리에 앉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어두운 소식이군, 대위. 교란작전을 조직하기 위해선 지금 우리에게 허락된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네.”


 “당당히 서서 맞서 싸우면 되지 않습니까.” 올로브 신부의 굵고도 느린 목소리였다.


 “영광스러운 죽음은 저희 병사들 모두가 바라마지않는 최후일 것이라 생각됩니다, 신부님.” 정치장교 카리프가 말했다. “허나 블라스탄 장군으로부터 아주 명확한 지시가 떨어졌다는 것도 생각해두셔야 합니다. 중요한 임무를 방기하고 맞는 죽음에 영광은 없습니다.”


 “정치장교의 말씀이 옳소.” 카바노프가 말했다. “어찌됐든, 이 중대가 엔할리크에서 최후를 맞이하게 둘 생각은 없소이다. 12군 사령부는 이 반역자를 원하고 우리는 놈을 사령부로 데려갈 것이오. 즉시 움직여야 하네, 대위. 이동 준비는 완료되었나?”


 “마지막 몇 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대령. 필수적인 보급품들을 운송하고 있는 중입니다. 알고계시겠지만, 이제 보급품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병사들이 복귀할 때까지 얼마나 걸리겠나, 대위?”


 세바스티브는 복스 통신을 통해 여전히 바깥에서 이동 준비를 감독하고 있는 쿠리친 중위에게 물었다. 답신이 돌아오자 그는 그대로 대령에게 전달했다. “방금 도착했다고 합니다. 보급품도 적재되었습니다.”


 “좋아,” 대령이 말했다. “허나 여전히 적의 추격을 뿌리치는 문제가 남아있군. 미리 예상하지 못한 내 잘못일세. 코리스에서 했던 것처럼 이곳의 발전소에도 공작을 해뒀어야 했어. 허나 이제 시간이 없으니 그리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


 “그러기엔 너무 늦은 것 같습니다.” 세바스티브가 답했다. “아니면 제 시간 안에 목적지까지 데려다줄 키메라 한 대와 함께 폭파 경험이 있는 병사 몇 명을 희생해서 뒤에 남길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엔진시어 폴리트노브도 폭파 팀에 함께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대령.”


 엔진시어가 그의 굽은 상체를 돌려 후드 쓴 머리를 세바스티브 쪽으로 향했다. 언제나와 같이 그의 기계 목소리는 가슴께 어디에선가 울리고 있었다. “후방작전을 위해 뒤에 남는 것에 불만은 없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제 목숨은 옴니시아의 것입니다.”


 세바스티브는 엔진시어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손을 든 카바노프 대령이 이들을 제지했다. “안되오, 엔진시어.” 그가 말했다. “의기에 감사드리오만, 이미 많은 희생을 치뤘소이다. 5중대는 더 이상 그 누구도 뒤에 남길 수 없소.”


 “현 상황을 분석한 바에 따르면,” 엔진시어 폴리트노브가 답했다. “일부를 희생하지 않으면 전부 잃게 될 것입니다. 5중대가 추격을 회피하기 위해선 소수의 희생이 필요합니다.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이 하나 있습니다.”


 엔진시어의 몸에서 나는 딸깍거리는 소리와 공기 새는 소리가 답답한 차내를 울리는 동안 세바스티브는 기묘할 정도로 그의 모습에 집중하고 있었다. 폴리트노브는 언제나 두터운 붉은색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곳곳에 기름자국으로 얼룩지고 헤진 로브는 올로브 신부가 입고 있는 로브 이상으로 깊은 겨울엔 어울리지 않는 복장이었다. 그러나 더 이상 일반인과 같지 않은 몸을 가지고 있는 엔진시어는 치명적인 추위 속에서도 언제나 끄떡없어 보였다. 수백 년의 세월 동안 그의 신체장기와 사지들은 기계 장치들로 대체되어왔고, 이제 그 몸은 병사들의 그것보다는 그가 항상 정비하는 패스커터나 키메라의 차체와 더 닮아있었다.


 “부대가 보유하고 있는 패스커터 중 두 대면 충분합니다.” 폴리트노브가 입을 열었다. “병력을 태우지 않은 패스커터 두 대를 파기하기로 한 것이 대위의 결정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확인바람.”


 “그렇습니다.” 세바스티브가 답했다.


 “기계를 파괴하는 행위에 대한 제 불쾌감은 일단 접어두기로 하고. 그 결정은 잘못되었습니다, 대위. 서비터와 함께 제가 그 기계들을 이끌고 남동쪽으로 향할 수 있습니다. 각각 오크와 반군들이 접근해오는 중간 지점에 위치하여 교전을 가장한 음성적, 시각적 표식을 전개할 것입니다. 그리하면 분명 오크들의 주의를 끌 것입니다. 여러분들 중 안지온의 저서를 읽어보신 분들이 있으실까 모르겠지만, 오크들은 전투의 욕구를 자제하지 못하는 생물입니다. 놈들은 덩치와 힘을 키우기 위한 기회를 갈망하니까요. 놈들에겐 마치 투약제와도 같은 효과를 가진 것입니다. 카바노프 대령께서 코리스에서 시행하신 전략에 대해선 알고 있습니다. 허니 이 전략의 효용성도 알아보실 것이라 믿습니다.”


 카바노프 대령은 분명 상심한 것이 분명한 표정을 지었으나 마침내 입을 열었을 때 그의 목소리엔 체념이 깃들어 있었다. “오크 무리를 반군들 쪽으로 끌어들이실 작정이시구려, 엔진시어. 대담한 작전이외다. 나라면 차라리 무모한 작전이라고 부르겠소.”


 엔진시어는 잠시 동안 침묵을 지켰다. 그러나 얕게 흔들리는 그의 어깨가 늙은 기계인간이 웃음을 터뜨리고 있다는 것을 세바스티브에게 알려주었다. “논리적으로 성공확률은 충분합니다, 대령. 대비되지 않은 철수작전의 성공확률보다 훨씬 높은 가능성입니다. 거기에 대해선 보장해드리지요.”


 “당신과 당신의 종복은 비전투인원이외다.” 카바노프가 말했다. “내겐 이 행동을 명령할 권한이 없소.”


 “진정 위대하고 고귀한 희생입니다.” 정치장교 카리프가 입을 열었다. “허나 엔진시어께서 없으시면 이제 앞으로 누가 부대 장비들의 기계령을 달래줄 수 있겠습니까?”


 “기계들은 언제나 필요한 만큼 그대들을 멀리 실어다 줄 것입니다, 정치장교. 이 행성이 기계들을 변덕스럽게 만들었지요. 사실입니다. 허나 주기적으로 정성을 들인다면 기계들이 충분히 여러분을 그라쩬까지 데려다줄 수 있을 겁니다. 제 목숨과 제게 속한 목숨은 언제나 그러했듯이 옴니시아의 것입니다. 이미 오래 살았습니다. 최근에는 점점 연산과 작동 속도가 둔해지기 시작했지요. 점차 연산 작동에도 오류가 끼기 시작했습니다. 정해진 유기 수명을 오래 전에 넘긴 내 생체 시스템들이 마침내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세바스티브는 카바노프 대령과 엔진시어 사이를 오가는 의미심장한 시선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일전에 테크-프리스트 가바릴께서 확실히 짚어주시기도 했지만, 물론 이것은 제 자신의 문제에 불과합니다. 오랫동안 거대한 이득을 위해 이 몸을 던질 기회를 기다려왔습니다. 혹여나 이 어두운 시기에 그런 기회가 다가오지는 않을까 내심 기대했었지요. 아무래도 내 생각이 맞았던 모양입니다. 기계-신의 영광을 위해, 나는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습니다.”


 재갈물린 반군 포로를 제외한 차내의 모두가 깊은 존경을 담아 늙은 엔진시어를 바라보았다. 그가 남긴 마지막 모습은 앞으로도 오랜 세월 동안 보스트로얀 장교들을 고무할 본보기로 남으리라.


 오랫동안 이 양반을 그저 정해진 대로 움직이는 기계로만 바라보고 있었지, 세바스티브는 갑작스레 차오르는 부끄러움을 담아 생각했다. 그 또한 보스트로얀이었다는 것을 잊은 게 언제였었지? 여기, 우리 최고의 용사들에 부끄럽지 않은 용기를 보여주는 이 사람을?


 “엔진시어.” 카바노프 대령이 말했다. “계획에 필요하신 모든 것을 가져가실 수 있도록 조치하겠소. 옴니시아와 폐하께서 우리 모두의 염원과 함께 그대의 성공을 도우시길. 그대의 희생은 연대의 연대기에 영원토록 남을 것이외다.”


 엔진시어가 후드 쓴 고개를 깊이 숙였다. “허면 시급히 준비해야할 것이 몇 가지 있으니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여러분께 옴니시아의 축복이 함께하시기를.”


 답례를 기다리지 않은 엔진시어 폴리트노브는 그대로 자리를 떴다. 키메라의 해치 밖으로 차가운 오후 공기가 그를 맞이하고 있었다. 거의 반쯤은 충동적으로 세바스티브는 그 뒤를 따라나섰다. 패스커터를 향해 거침없이 걸음을 옮기는 엔진시어의 붉은 로브가 매서운 바람에 휘날렸다.


 “엔진시어.” 세바스티브가 외쳤다.


 잠시 걸음을 멈춘 폴리트노브가 뒤돌아보았다. “대위?”


 말을 꺼내는 대신, 세바스티브는 가슴에 손을 올려 제국 독수리 문양을 그린 채 깊이 허리를 숙였다.  


 이번에는 폴리트노브도 소리 내어 웃음 지었다. 강철 조각이 부딪히는 듯한 높낮이 없는 메마른 소리. 곧 몸을 돌린 그는 다시 눈밭을 헤치며 걸음을 서둘렀다. “키메라로 돌아가십시오, 대위.” 세차게 울리는 바람 소리 사이로 통신망을 통해 엔진시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육체는 추위 앞에 미약하니. 그렇습니다. 육체는 미약하나 기계는... 기계는 강고합니다.”






이런 양반도 있음. 생각보다 감정 풍부한 놈들임 얘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