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장


[수확]



이것은 지금이 아닌, 그때의 이야기. 그녀가 17살이었을 때의 이야기.


초원의 기다란 풀들 위에 누워 있는 소녀는 달빛에 잠긴 채 별들을 올려다보고 있다. 소녀의 주위에서는 밤의 곤충들이 찌륵찌륵 노래하고 있다.


그날의 밤바람은 미약했으나 소녀는 산들바람 속에 섞인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감각의 끝자락에서 경쾌하게 웅얼거리는 목소리를. 소녀의 아버지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어머니가 저녁에 부드럽게 중얼거리는 소리. 조용한 밤이 영혼들을 달래준다. 항상 이렇지는 않았다. 죽은 자들이 침묵을 유지하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었다. 영혼들은 때때로, 또는 자주 소녀에게 간청을 하거나, 화를 내거나, 자신들의 소원을 산 자들에게 전해주기를 바라곤 한다. 그보다 더 드물게는, 소녀에게 협박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소녀는 영혼 따위가 자신에게 무슨 해를 끼칠 수 있을까 알지 못했다.


소녀는 떠오르는 세 개의 달들을 바라본다. 세 달 모두 익숙한, 음푹 파인 구멍들로 곰보가 얽어 있는 얼굴들이다. 저 멀리서 천둥 소리가 울리고, 남쪽의 산맥을 따라 우르릉 울리며 저녁의 억눌린 목소리들을 묻어버린다.


소녀는 일어나서 남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폭풍을 찾는다. 산맥 너머에는 거기에 있으리라 예상하고 있던 묵회색(墨灰色) 먹구름이 아닌, 화광(火光)으로 빛나고 있는 하늘이 보인다. 구름이 휘저어지고, 주황빛으로 부풀어 오른 구름은 산봉우리 위로 비틀린다. 머나먼 밤하늘을 밝히는 몸속 무언가에 고통스러워하며, 구름은 깜빡인다.


우주선이야. 소녀는 생각한다. 우주선이 착륙하고 있는 거야.


검은 장갑판으로 둘러싸인 우주선은 연기와 불을 피워 올리며 구름을 뚫고 내려온다. 머리 위에서 배가 울부짖자 온 세계가 진동한다. 하늘 위의 성은 지상으로 내려오며, 저 아래의 마을들과 그 너머의 거대한 도시를 향해 떠내려온다.


영혼들이 소녀의 주위에서 한 목소리가 되어, 이전까지 들어보지 못한 감정으로 물들어 웅얼거린다. 소녀는 유령들도 공포를 느낄 수 있으리라고는 이전까진 전혀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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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마을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숲 속에 숨는다. 소녀가 바라는 만큼 먼 곳은 아니지만, 그녀의 다리로 갈 수 있는 한에서는 가장 먼 곳이다. 헐떡이는 짐승처럼, 소녀는 축축한 대지를 반쯤 파내다시피 한다. 쓰러진 나무의 그늘 속으로 몸을 웅크려 들어간다. 소녀의 목구멍은 한계에 달한 숨으로 바짝 말라버렸다. 입술도 바짝 말라 갈라졌다.


“제국이 돌아왔어.” 소녀의 어머니가 말했다. 어머니의 두 눈은 촉촉해져 있었고,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온 마을들로부터 무당들과 영매들을 불러 모으고 있단다.”


“왜요?” 소녀가 물었다. 소녀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담긴 공포심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마녀-사제인 어머니에게서 이전까진 느껴본 적이 없는 감정이었다.


“십일조란다. 또 다른 십일조. 밀과 곡식이 아닌, 영혼과 마법을 모으는 십일조란다.”


“도망쳐라, 스코이아-Skoia.” 소녀의 아버지가 소녀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도망쳐서 숨어.”


어머니의 어머니들과 아버지의 아버지들이 소녀를 둘러싸곤 아버지의 말에 동의를 표했다. 조상들의 영혼들이 소녀에게 도망치라 비명을 질러대었다.


스코이아는 도망쳤다. 새하얀 드레스를 휘날리며, 머리를 풀어 헤친 채, 숲 속으로 도망쳤다.


스코이아와 사람들은 자신들이 제국의 일부라고 가르침을 받아왔다. 스코이아의 할머니는 그녀에게 성전사들의 강림-Crusaders’ Coming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었다. 그날에, 거의 1세기도 전에 요람세계-Cradleworld로부터 온 전사들이 이 세계에 상륙하여 인류의 황제가 전한 평화의 말씀을 가져왔다고 할머니는 말씀하셨다. 지금은 테라라고 불리우는 첫 지구-First Earth는, 수 천년 동안 침묵만을 유지해오고 있었던 그 세계는 결국 신화 따위가 아니었던 것이다.


첫 지구의 전사들은 순종을 요구하였고, 사람들은 그들에게 순종을 바쳤다. 전사들은 십일조를 요구하였고, 사람들은 그 또한 그들에게 바치었다. 매년마다 때가 되면 곡식 운송선들이 내려와 그들의 1년 수확 중 대부분을 가지고 저 하늘 위로 올라갔다. 궤도의 플랫폼들과 접속하여 수거를 기다리기 위해서. 그들은 항상 그것만으로도 모든 것이 충분하리라고 믿었다. 인류는 다시 하나로 뭉쳤고, 재발견된 모든 세계들은 하나하나가 그들이 알지 못하는 황제의 왕관에 달린 보석들이었다.


하지만 제국의 우주선들이 이 세계에 상륙하는 것은 먼 옛날 성전사들이 떠나간 뒤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랬다.


스코이아는 자신을 쫓는 추적자들의 목소리 속에서 개가 짖는 소리를 들었다. 개들은 컹컹 짖어대며 으르렁거린다. 그 공포는 스코이아로 하여금 다시 한 번 비틀거리며 힘없는 달음박질을 하게 만들기에 충분하였다. 영혼들은 쉿쉿거리며 동요하고 있다. 스코이아는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심장 박동 소리와 헐떡이는 숨소리 너머로도 영혼들이 내는 소리를 간신히나마 들을 수 있었다.


눈앞의 나무들 사이로 스코이아는 사냥개들 중 한 마리를 발견했다. 사냥개는 반은 짐승이고 반은 기계로 되어 있었고, 로봇의 부품들로 교체되어 있는 부분에는 털가죽이 벗겨져 있었다. 마치 그 짐승이 사고를 당해서, 그것의 주인이 그 짐승이 값비싼 기계 융합 수술을 감당할 만한 재산을 지불한 것만 같은 모습이다. 사냥개의 턱은 쩍 벌어져 있고, 입 속에는 소녀를 겨누고 있는 무기가 달려 있다. 사냥개들의 뒤쪽에는 여자가 있었다. 제국의 여자는 바짝 깎은 머리에 피부에는 독수리 문신을 하고 있다. 여자는 황금과 청동 갑옷 위에 붉은 망토를 걸치고 있다. 여자의 눈동자는 아직 불을 붙이지 않은 화장대 위에 놓인 시체의 눈동자만큼이나 생기를 찾아볼 수가 없다.


스코이아는 비틀거리며 서쪽으로 몸을 돌린다. 헛수고였다. 스코이아의 귀로 사냥개가 자신의 뒤를 바짝 쫓아오면서, 개의 몸에 달린 기계 부품들이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개가 그녀를 들이받아 넘어트린다. 개는 그녀의 등을 짓밟고 올라서서 으르렁거린다. 개의 입 속에 달린 무기가 스코이아의 얼굴을 겨눈다.


시체 같은 눈을 한 금빛 여자가 가까이 다가온다. 그리고 스코이아가 기억하고 있는 한으로는 최초로, 영혼들이 침묵했다.


아니. 그저 침묵한 것이 아니다. 추방되었다. 사라진 것이다.


“절 내버려두세요.” 소녀가 간신히 말한다. “제발요. 전 아무 짓도 안 했단 말예요.”


소녀보다 더 나이 든 여자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스코이아는 영혼들이 떠나간 뒤의 적막 속에서 거칠게 숨을 내쉰다. 여자의 얼음장 같은 시체의 눈동자를 올려다보면서.


“당신의 안에서 아무 것도 보이지가 않아요.” 스코이아는 떨리는 입술로 웅얼거린다. “당신에게는 영혼이 없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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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개인적으로 약간 이런 장면들이 좋다. 중세나 고대 수준 문명의 행성들이 제국의 오버 테크놀로지에 대해 자신들 수준의 관점에서 서술하는 거. 우주선을 하늘을 나는 배니, 아스타르테스들을 천사들이니 표현할 때마다 매우 흠터레스팅함.


p.s. 그리고 서장에 나오는 인물란에서 몇몇 애들 직함 좀 바꾸었다. 여기 나오는 스코이아도 그 중 하나. 앤세스터-스피커라기에 난 뭐 드넛들 대신 말해주는 애인가 싶었더니 말 그대로 선조 영혼들이랑 대화하는 사이커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