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 The Siren Stars



"이단을 불태워라! 돌연변이를 죽여라! 부정한 자를 정화하라!"

"Burn the heretic! Kill the Mutant! Purge the unclean!"


-제국군 함성-



"찢어,죽여,태워! 찢어,죽여,태워!"

"Maim, Kill, Burn! Maim, Kill, Burn!"


-카오스 함성-





viewimage.php?id=2fb1d125eede31a47cbec4ac&no=24b0d769e1d32ca73fed84fa11d02831150e3d5bd66e1c599a53538ed0f12cc47afd1f89a62a6e5604ca2f94948443461fd5b6c06d81f00e6ae681d1bd902d2f6c989a80e52f30







양이 입고있던 옷은 다시 입기 힘들 정도로 피로 푹 적셔진 상태였다.


어디선가 계속해서 바람이 불어왔다. 전투의 열기를 식혀주는 바람이 양의 분노를 식혀주었고, 약간이나마 심신이 안정된 양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산처럼 쌓여있는 시체와 피로 이루어진 강이 흘르는 광경. 차마 눈뜨고 못볼 참상을 목도한 양의 몸이 저절로 움츠러들었다.


"받아라."


부상에서 회복되는 중인 바이딕에게서 양은 따뜻한 담요를 건네받았다. 양은 감사를 표하며 담요를 어깨에 걸쳤다. 어깨에 걸쳐진 담요를 꽉 끌어당긴 양은 식은 땀을 흘렸다.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방울들을 손으로 훔치며, 양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 누구도 이 화창하고 맑은 하늘을 보면서, 아침에 벌어졌던 대학살의 광경을 떠올릴 수 없으리라.


영원할 것만 같던 전투는 끝났다.


PDF는 10시간 동안의 격렬한 전투 끝에 카오스 침공병력을 격퇴하는 데에 성공했고, 그 미치광이들은 다급히 자신들의 함선을 타고 워아디어에서 도망쳐야만 했다.


양은 훌쩍거리며 말했다.


"어떻게... 어떻게 그 망할 놈들은 이런 끔찍한 짓을 하나요?"


바이딕은 곧바로 대답해주는 대신, 조용히 군용 외투에서 담배를 꺼내들었다.


"왜냐하면 그 자식들은 카오스(Chaos)니까. 미스 룽."


그렇게 말한 바이딕의 외투에서 말라붙은 핏자국들이 떨어져 나왔다.


"하...하지만..."


양은 차갑고 단단한 땅바닥에 쓰러지듯이 몸을 구부렸다. 만약 그녀가 공복인 상태가 아니었더라면, 양은 속에 있는 걸 전부 게워냈을 것이다. 여린 소녀의 두개골이 그 괴물의 전리품으로 전시된 모습이 계속해서 양의 눈앞에 아른거렸다. 양은 결국 기침을 토해내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오 더스트 맙소사... 전 이런 끔찍한 참상을 받아들이지 못하겠어요."


지금 이 순간에도 양은 자신이 긴 악몽을 꾸는거라 믿고 싶었다. 이 잔혹하고 혐오스러운 곳에서 벗어나, 공처럼 둥글게 몸을 웅크린 채로 푹 자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를 원했다.


희미하고 슬픈 웃음소리와 함께, 바이딕은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


"이게 바로 카오스 놈들의 만행이란다. 놈들은 자신들의 주인들을 기쁘게 하기위해 행성을 약탈하고, 사람들을 죽이며, 무고한 이들을 강간하지. 내가 예전에 보았던 참상들에 비하면,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니야."


"대체 어떻게 그리 침착할 수 있나요?!"


눈물이 맺힌 보랏빛 눈동자가 바이딕을 째려보며 대답을 요구했다.


"미스 룽, 난 45년 동안이나 임페리얼 가드에서 복무했었다. 모든 종류의 제노들과, 모든 갈래의 카오스들과 싸워봤었지. 나는 수많은 오크, 엘다 그리고 컬티스트들을 죽여봤다. 심지어는 네크론 놈들과도 전투를 치뤄보았어. 그리고 가드맨들 중에서 극히 일부만 이렇게 말할 수 있지."


그 말을 들은 양은 그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앞에 선 바이딕이 무슨 말을 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익숙하다는 거에요? 이 모든 고통에?"


바이딕은 깊은 한숨을 쉬고는 담배 연기를 한껏 들이마셨다. 담배는 끝부분부터 타들어가 부스러져갔고, 담뱃재는 불어오는 바람에 흩날리며 날아갔다. 타고 남은 꽁초를 앞에 놓여있는 시체에 눌러서 꺼버린 다음, 그녀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분노는 고통을 잊게 해주는 효과좋은 마취제 중 하나지."


양은 이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려 시도했다. 일단 그녀는 더 이상 베일 왕국에 있는 것이 아닌게 확실했다. 아니,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 여기는 렘넌트(Remnant)도 아니었다. 평생동안 경험했던 것보다 더 잔혹하고 피로 얼룩진 전투에 떠밀려진 것도, 양이 완전히 다른 세계에 내던져진 상황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왜? 어째서? 내가 여기 오기 전까지 뭘하고 있었더라?'


바이딕이 양의 생각의 고리를 끊으며 말을 걸었다.


"계속해서 곰곰히 생각해봤는데 말이야. 넌 그때 지부에서 나한테 장난치는게 아니었던 같군."


양은 당황해하며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그게 무슨 뜻이에요?"


"넌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는 상태지, 그렇지 않나?"


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황제 폐하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고?"


약간 망설이던 양은 다시 고개를 끄덕거렸다.


"내가 생각하기에, 제국 내에서 너같은 사람은 없을 거다."


잠시 숨을 고른 바이딕은 다시 말을 이어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사실을 아는 즉시 널 이단이라 칭하며 쏴버릴테고, 그 중에서도 몇몇은 널 카오스에 물들었다면서 '정화'를 하려들겠지. 하지만 너처럼 비위가 약한 애가 암흑의 신들에게 전향할 것 같지는 않아. 그래서, 미스 룽, 내 개인적인 관점에서 넌 괜찮아 보이거든. 그리고 황제 폐하께서 굽어살피시길, 너는 내가 보아왔던 수많은 병사들보다 더 잘 싸웠어. 내 모든 병력이 사살한 적들을 합한 것보다 너가 더 많은 컬티스트들을 죽였으니까 말이야."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했을 뿐이에요.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지만..."


바이딕은 양의 말을 듣고선 씁쓸하게 웃었다.


"물론 너 혼자서는 절대로 충분하지 않겠지. 미스 룽, 현재 인류는 거의 모든 방면에서 공격받고 있다. 모든 구역, 모든 행성에서. 그렇기에 너같은 사람이 필요한 거다. 제아무리 보잘것없이 작은 승리라도, 칠흑같은 암흑 속에서는 찬란히 빛나니까."


"바이딕씨, 전 제 인생의 대부분을 스릴을 찾아서 돌아다녔어요. 모든 전투, 모든 도전들은 절 새롭게 밀어붙이는 시련이었고, 제 자신을 증명하기 위한 기회였어요. 하지만, 이런... 이런 건 그냥 광기에 불과해요!!"


마른 핏자국들로 뒤덮인 묵직한 손이 양의 어깨에 놓여졌다.


"전 아무것도 몰라요. 여기가 어디인지, 제국이나 카오스는 또 뭘 의미하는지... 전부 모른다구요..."


"앞으로 차차 배워나갈 거다."


양이 바이딕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내가 널 가르칠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그 말에 양은 팔로 바이딕을 감싸안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고마워요. 전 그냥 이런 위로가 필요했던 건지도 몰라요. 근데 그거 아세요? 이 상황에서도 전 온몸이 모험을 해보고싶다고 근질거려요. 아마 전 뼛속까지 모험가 체질인 것같아요. 이 빌어먹을 세상에서도 그건... 그건 달라지지 않는가 봐요."


바이딕은 갑작스러운 양의 포옹에 당황해서 몸이 굳었지만, 결국엔 그녀도 양의 금발이 볼에 닿는 것을 느끼며 마주 포옹해주었다.


"황제 폐하께서 가호하시길. 미스 룽."


"그나저나 만나는 모든 사람이 얘기하는 황제라는 사람은 대체 누구에요?"


바이딕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갈 길이 멀구나..."





양은 요 며칠동안 이 '세계'에 대해서 배워갔다. 아니... '세계'라는 명칭은 그녀가 처한 상황을 설명하기에는 너무 작은 개념이었다. 그보다는 '우주'라는 단어가 더 알맞았다. 양은 바이딕이 하는 말을 오랜 시간동안에 걸쳐 열심히 새겨들었다. 마치 물을 빨아들이는 스펀지처럼, 양은 정보를 빠르게 흡수해나갔다.


경험많은 베테랑이 들려주는 이야기들 중에서도, 짐작조차 할 수 없이 광대한 우주는 양이 아무리 이해하려 노력한들 쉬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감히 헤아릴 수 없이 거대한 우주의 크기에 양은 눈앞이 빙빙 도는 것만 같았다.


인류는 아주 오래전에 별들에 도달하여, 수십 억의 세계들을 수없이 많은 영혼들로 채워넣었다. 이 사실을 들은 양의 입이 딱 벌어졌다. 렘넌트는 겨우 수백만의 사람들이 지표면에 흩어져서 살아갔고, 그것마저도 상대적으로 안전한 네 개의 왕국령안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국에서의 상식은 양의 머리를 지끈거리게 만들었다.


사실 양은 학교에서도 수업을 열심히 듣는 학생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은하에 대한 역사는 양의 흥미를 자극했다. 양은 블레이크처럼 책벌레는 아니었지만, 종교 문헌이나 역사서를 심사숙고해서 읽고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 문헌들이 거의 다 같은 내용을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중에서야 깨달았지만...)


그렇게 양이 이 세상에 대해서 배워갈 동안, 습격을 당했던 마을의 상흔들은 점차 지워지고 있었다. 가족과 재산을 앗아간 참사로 인해 교훈을 얻은 마을사람들은 자신들의 고향을 요새화했다. 깊은 해자가 곳곳에 파여졌고, 앞으로의 습격에 미리 대비하기 위하여 높다란 방벽들이 세워졌다. 바이딕과 이야기하지 않을 때에는 양도 마을을 재건하는데 힘을 보탰다.


등골이 휘어질 정도로 고된 노동이었지만, 양은 오히려 그게 더 좋았다. 적어도 일하는 그 순간만큼은 루비를 잃어버린 슬픔에 잠식되지도, 뼈에 사무치는 외로움에 술을 들이키지도 않았으니까.


그리고 당장 끝내야할 일들이 많아서 그런데 신경쓸 겨를도 없었다.


일하는 와중에도 양은 제국의 구조와 인류의 적들에 대해 차근차근 알아갔다.


닷새 전에 마을에서 날뛰었던 것처럼, 파멸을 불러일으키는 카오스 세력도 인류의 적들 중 하나였다. 워프에서 비롯된 알려지지 않은 네 명의 신들을 숭배했고, 그들의 신들을 위하여 가는 곳마다 폭력과 공포를 뿌려댔다.


그리고 워프(Warp)에 대한 설명을 들은 양은 깜짝 놀랐다. 워프란 전 우주의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이 모여들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불안정한 공간이자, 끔찍하고 사악한 모든 악마들의 고향이었다. 그러나 바이딕이 이어서 설명하기를, 인류는 별들 사이를 횡단하고 제국의 국경을 지키기 위하여 워프를 이용하고 있다고 했다.


안타깝게도 인류가 맞서야 할 적은 카오스뿐만이 아니다. 외계인, 다시 말해 바이딕이 끈덕지게 '제노(xenos)'라 언급하던 종족들은 절대 인류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만약 바이딕이 직접 수많은 제노들을 죽여보지 않았더라면, 양은 그들과 공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을 조롱했을 것이다. 양이 바이딕에게 제국민들이 제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보았을 때, 그녀는 (아주 잘) 제국민들의 제노를 향한 뿌리깊은 혐오감과 증오심을 느낄 수 있었다.


'파우누스(수인)에 대한 것은 언급하지 않는 게 좋겠어.'


양은 바이딕이 남들과는 달리 좀 더 개방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지만, 그럼에도 그녀 또한 제노들을 치를 떨면서 증오하고 저주했다.


'그리고 시-이커? 사이커에 대한 것들도 몇번 언급되었는데... 그거 그 배반자 마린을 날 부를 때 썼던 말 아니었던가? 에이씨! 몰라! 어떻게든 되겠지.'


카오스에 대한 것만으로도 양은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제일 어려웠던 (그리고 이해할 수 없던) 이야기는 바로 신(神) 황제폐하에 관한 내용이었다. 전 제국에 걸쳐서 보편적으로 그를 숭배하고 있었고, 그의 권위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언제나 감히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지배적이었다. 듣자하니 황제폐하께서는 테라의 황금옥좌라 불리우는 것에 앉아, 위기에 처한 인류를 보호하고 구원해주고 있다고 한다.


황제폐하에 대한 바이딕의 열정적인 강의는 양에게 아주 인상적이었다. 물론, 양은 황제폐하에 관한 대부분의 실제역사는 종교의식과 경전에 의해서 왜곡되고 잊혀졌으리라고 추측했다. 그렇기는 하지만, 양은 책에 파묻혀서 그게 어떻게 작용되었는지 이해하려 시도하지는 않았다. 그것이 이 제국에서의 방식이고, 거기에 의문을 가지는 것은 자살행위니까.


하지만 양은 단 한가지 사실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죽음과 전쟁의 그림자가 온 우주를 잠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마 그렇기에 온갖 종류의 악의가 공기 중에서 꿈틀거리고 요동치는 것이리라. 뭐... 그게 아니라면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은 전장의 혈향때문일 수도 있고. 양은 자신의 친구들이 이 빌어먹을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지 않기를 간절히 바랬다.


마침내, 양은 모든 서적들을 독파했고 바이딕의 강의도 끝이 났다. 그리고 항상 그러했듯이 또다시 방랑벽이 양의 마음을 가득 채웠다. 앞에 펼쳐진 밀밭의 바다 너머에 있을 미래를 찾기 위해서, 그녀는 모험을 떠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양은 다시 헌트리스로서의 삶을 시작하고 싶었다. 설령 그런 직업이 여기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래서, 미스 룽?"


"그래서 뭐요? 바이딕 씨?"


둘은 현관에 앉아서 굴곡진 언덕 아래로 태양이 저물어가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마을 안에 배어있던 시체 썩는 냄새는 서서히 사라져갔다.


"이제 어디로 갈 생각이냐? 제국에서 어떤 새로운 삶을 시작할 건지 생각해둔 거라도 있나?"


바이딕은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뭐... 너가 자신의 미래로 무엇을 선택하던지 간에 비난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말이야..."


양은 바이딕의 말을 듣고는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이미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알고 있었다.


양은 자신의 옷가지를 돌려받았다. 피를 잔뜩 머금었던 옷들은 깨끗하게 세탁되었고, 주머니 중 하나에는 끝부분이 피로 물들었지만 읽을만한 한 장의 메모가 있었다. 말없이 메모를 주머니에 다시 넣은 양은 장갑을 제외한 렘넌트에서 입었던 나머지 옷들을 배낭에 쑤셔넣었다.


어깨에 배낭을 맨 채로 양은 바이딕의 집 바깥으로 나왔다. 그녀는 바이딕이 옛날에 입고 다녔던 낡은 의복을 입고 있었다.


초록색 티셔츠를 풍만한 가슴골이 드러나도록 짧게 잘라놓았고, (숨쉴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목둘레선을 절개할 수 밖에 없었다.) 낡은 훈련복 하의는 허벅지 높이까지 둘둘 말려져 올라가 있었으며, 수수한 검은색 벨트가 허리에 매여져 있었다.


간단하고 실용적인 복장이다.


양의 취향에는 약간 단정치 못한 차림새였지만, 평소처럼 입고 시내로 나갔다가는 너무 많은 주목을 끌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양이 바이딕의 수업에서 하나 배운 게 있다면, 제국에서 사람들의 이목을 지나치게 끄는 행위는 살면서 반드시 피해야할 일들 중 하나라는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