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 A Sleeping Beast Awaken
"내 소대였던 동료들의 시체를 엄폐물로 쓰고있는 자신을 발견했을 때, 얼마나 많은 것들이 시야에 들어오던지... 정말 놀랍더군."
- 트루퍼 니쉬, 탈란 데저트 레이더.
양은 인류는 우주를 여행할 수 있는 종족인 건 바이딕의 수업을 통해 알고 있었지만, 듣는 것과 직접 경험해보는 것은 천지차이였다. 답답하고 숨막히는 병영에서 일주일을 보낸 뒤에야, 장교들은 임페리얼 가드 신병들을 모아놓고는 곧바로 에스브라우스 바깥으로 행군시켰다.
이별을 견디는 것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
바로 그 운명의 날, 사기가 하늘을 찌를듯이 드높은 1만여명의 병사들은 도시를 떠났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소박한 고향의 풍경을 뒤로 등진 채, 그들은 제국의 적과 맞서기 위하여 발걸음을 옮겼다. 환호하는 시민들 사이로 당당하게 행진하는 군사들의 물결. 연인들은 마지막 이별 인사를 나누었고, 가족들은 자신의 혈육에게 작별을 고했다. 어느 누구라고 할 것없이, 모든 사람들의 눈가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나왔다.
병사들이 대평원의 끝자락에 도달했을 때, 장교들은 고함을 치며 병사들을 줄세웠다. 병사들의 행렬은 마치 도미노처럼 계속해서 이어졌다.
갑자기 하늘이 찌그러지기 시작했고, 어마어마한 맹수가 등장함에 따라 구름들이 경의를 표하듯이 갈라졌다. 양은 고개를 들어 앞으로 그녀의 제2의 고향이 될, 루나급 순양함 [떠오르는 여명(Ascendant Dawn)]을 바라보았다. 양은 깜짝 놀라 숨이 멎는 듯했다. 괄목상대할 정도로 큰 함선은 카오스 수송선들을 난쟁이로 보이게 할 만큼 거대했다. 양이 자세히 함선을 관찰해보자, 우루사(Ursa)의 가시들처럼 함선은 첨탑과 함포들로 뒤덮여있었다.
하늘을 활공하는 순양함의 웅장한 광경은 자연스레 눈길을 끌만큼 인상적이었다.
대부분의 양과 같은 신병들은 그녀와 동일한 반응을 보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앞에 펼쳐진 전함의 장엄함을 그저 입을 헤 벌린 채로 쳐다보았다. 모함과 마찬가지로 검은색으로 도색된 수많은 상륙용 주정들이 개미집의 개미들마냥 쏟아져 나왔다. 상륙선들은 시끄러운 엔진음과 함께 하강했고, 거센 돌풍과도 같은 바람이 평원을 뒤흔들었다.
눈에 먼지가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양은 자신의 얼굴을 손으로 가렸다. 그러나 양의 길게 기른 머리카락은 불어온 강풍에 이리저리 휘날렸다. 그렇게 춤사위를 추던 머리카락은 이웃해있던 병사의 얼굴에 적중했다.
"우악! 에페페....!"
옆에 있던 여성은 침을 뱉으며 입안으로 들어간 머리카락을 없애려고 했다.
"이봐! 너 내 머리카락에 뭐하는거야!"
자신의 머리를 아주 소중해하는 양이 매섭게 말했다.
"내가 할 말이야, 금발 아가씨."
불쾌한 듯이 표정을 찌푸린 여성이 맞받아쳤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대부분의 워아디언들과는 달리 붉은 빛깔을 가졌고, 한 갈래로 길게 땋은 머리가 목 옆으로 흘러내렸다. 양과 같이 그녀는 이제 막 20대에 들어선 것처럼 보였다.
양은 마지막으로 그런 별명으로 자신을 불러댔던 범법자를 떠올리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양은 그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저기.. 내가 잘못했으니까 사과할게..."
양은 엠버 셀리카로 둘러싸인 팔을 내밀었다.
"그나저나 내 이름은 양 샤오룽이라고 해."
양은 자기소개를 하며 앞에 있는 여성과 악수하려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황제폐하께서 축복하시길."
"아니... 그게 내 이름인데."
"정말로 그게 이름이라고? 부모님이 너를 싫어하시기라도 한 거야?"
그 말에 양은 으르렁거리며 여성의 멱살을 한 손으로 잡고는 그대로 들어올렸다. 부모님에 대한 것은 양에겐 아주 민감한 주제였다.
"내가 지금-"
양은 깊게 숨을 들이마쉬고 다시 말을 이어갔다.
"-친절하게 대해주려고 노력하고 있잖아... 큭!"
양은 갑작스럽게 가해진 고통에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양은 힘없이 땅바닥에 넘어졌고, 비틀거리며 일어나 자신을 겨누고있는 권총의 총구를 바라보았다.
"예의 바르게 행동해라, 트루퍼. 아니면 너를 본보기로 삼아 처벌할 것이니까!"
권총을 들고있는 남성은 우렁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는 거대한 챙이 달린 높은 모자를 썼고, 장교 특유의 깨끗한 차림의 정복을 입고 있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공격을 당해 어리둥절한 양은 그저 고개를 끄덕거릴 수밖에 없었다. 장교는 다시 양을 지휘봉을 후려쳤지만, 아우라에 의해 아무 충격도 주지않고 튕겨졌다. 양은 아픈 척 연기를 하며 더 이상 주목을 끌지않기 위해 노력했다. 앞의 장교의 사지를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은 분노를 최대한 억누르면서.
장교와 양이 서로를 마주보았다.
쓰러진 양은 으르렁거리며 성난 반응을 보였고, 그걸 본 장교는 피식 비웃고는 다른 곳으로 걸어갔다.
일어선 양은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뻣뻣한 목을 풀었다.
"테라의 황금옥좌사여, 뭐 저딴 새끼가 다 있지?"
양 옆에 선 여성이 투덜거리며 양을 지켜보았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리고 그... 멱살 잡고 들어올린 거 미안해..."
양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사과했다.
"뭘... 애초에 퉁명스럽게 대한 내 잘못인걸. 그리고 내 이름은 로스라고 해. 앞으로 잘 지내보자."
양과 로스가 서로의 손을 맞잡고 악수함과 동시에, 한 척의 수송선이 지면에 내려앉았다. 위잉거리는 소리와 함께 랜딩기어가 내려지고, 곧이어 신병들을 태우기 위해 램프가 서서히 내려오기 시작했다.
얼마 안 있어 탑승을 시작하라는 나팔 소리가 울려퍼졌다.
소리를 들은 병사들은 곧바로 주어진 명령을 이행했다. 그 광경을 양은 경이로워하며 지켜보았다. 그녀는 베일과 아틀라스 왕국의 군대를 본 적이 있었지만, 렘넌트에서 가장 큰 두 왕국의 군대도 규모면에서는 제국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했다.
커다란 수송칸에 신병들을 계속해서 쑤셔넣으니, 어느새 격벽마다 병사들로 빼곡히 채워졌다. 자연스럽게 양과 로스는 점차 밀려나가 벽에 달라붙어야 했고, 로스는 다시 양의 머리카락이 자기 얼굴에 들이밀어지는 고통을 느껴야했다.
"왜 머리를 이런 식으로 하고다녀? 읍! 켁켁! 방해되지 않아?"
"내 취향이니까."
로스의 질문에 양은 간단하게 대답해주었다.
"취향 참 독특하네."
잠사간의 침묵이 흐르고 로스는 고개를 돌려 양에게 물어보았다.
"그래서... 넌 어쩌다가 여기까지 굴러왔냐?"
"...뭐라고? 그게 무슨 소리야?"
"너도 알잖아."
로스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양을 쳐다보고는, 느릿느릿한 신병들을 다그치는 하사관들을 가리켰다.
"바로 저놈들말이야. 너도 여기까지 끌려오다싶이 입대한 거 아니였어?"
"난 자원했는데..."
"...농담이지?"
양은 싱긋 웃고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그러는 넌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그 말에 로스는 손마디가 하얗게 변할만큼 주먹을 꽉 쥐고는 이를 악물었다. 그녀의 눈에서 분노가 휘몰아쳤다.
" 침공이 일어난지 일주일이 지난 그 날, 한 무리의 미니스토룸 장교들이 우리 마을로 몰려왔었어. 그리고 그들은 최소한의 2백명 정도의 '지원자'없이는 마을을 떠나지 않겠다면서 협박했지. 그러나 단지 수십명만이 지원을 했고... 나머지는 제비를 뽑아 머릿수를 채워넣었어."
"그리고 너가 뽑혔나보네."
로스는 주먹을 꽉 움켜쥔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황제폐하께서 가호하시기를. 이건 공평하지 않아."
로스는 이를 갈며 들릴듯 말듯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난 내 인생을 전부 계획해놓고 있었다고. 좋은 농장도, 좋은 남편도... 그놈들이 와서 다 빼앗아가기 전까지는..."
이 말에 양은 충격을 받은 듯 뒤로 물러섰다.
"잠깐만... 너 결혼했었어?!"
그 질문을 받은 로스의 미간은 찌푸려졌고, 입술을 덜덜 떨렸으며, 아무 미동도 없이 가만히 서있었다.
그녀는 결국엔 자신의 사정을 양에게 털어놓았다.
"그래... 하지만 남편은 나와 같이 입대하지 못했어. 어릴 때 오른팔이 탈곡기에 짓이겨졌거든. 우리는 그 팔을 고칠만큼 사정이 좋지 않았고... 그래서 난 장교들한테 애원하며 매달렸지... '제발 제 남편에게 새로운 팔을 주세요.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저랑 제 남편 둘이서 입대할게요... 뭐라도 할테니까 제발... 같이 가게 해주세요.'"
로스의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고, 가만히 자신의 군화를 응시했다. 양은 뭐라고 말해줘야할지 몰라 그저 가만히 침묵을 지켰다.
"남편도 엎드려서 기도하며 애원했지. 자기도 같이가게 해달라고. 하지만 그런 건 장교들이 알바가 아니었고, 날 마을 밖으로 데려가버렸지. 그를 혼자 마을에 내버려둔 채로 말이야.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여기까지 왔을걸-"
셀 수 없이 많은 동료들을 훑어본 다음, 로스는 천천히 말했다.
"...저들도 나랑 같아. 징집병들이지."
"와우... 나는..."
양은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는 로스의 목에 팔을 걸쳤다.
"괜히 말하고싶지 않은 것을 물어봐서 미안해."
로스는 양의 사과에 웃으며 받아들였다. 어딘가 망가지고 쓰라린 웃음소리와 함께. 양의 위로에 마음이 진정되었는지, 로스는 등을 단단한 강철 벽에 기댔다.
"그러지 않아도 돼. 다른 사람들이 강제로 끌려올 때, 너는 스스로 자원한 멍청이니까 말이야. 황제폐하께서 가호하시길, 넌 아마 가족들과 생이별을 할뻔한 다른 사람을 구해준거나 마찬가지야."
양은 그런식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억지로 얼굴에 미소를 띄운 그녀는 힘차게 로스에게 맹세했다.
"로스, 내가 약속할게. 우리는 이 모든 것들을 헤쳐나갈 거고, 전 은하를 돌아다니며 적들을 쳐부수고 다닐 거야. 그리고 그게 끝나면은, 내가 네 궁뎅이를 워아디어에 있는 너의 여보야 앞에다가 꽂아넣어 줄테니까."
양의 외침에 로스는 놀람과 불신에 찬 눈빛으로 양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얼마 안 가서 그녀의 우울함이 눈처럼 사르르 녹아내렸고, 결국에는 로스는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
"그건 내가 여태까지 들어봤던 것중에 가장 멍청한 말인데."
양은 햇빛같이 밝은 웃음을 터뜨렸고, 덩달아 로스도 따라서 웃었다.
"젠장. 하지만 정말로 듣기만해도 기분이 좋아지는걸."
◆
[2시간 뒤..]
푸르른 녹색과 황토색 그리고 짙은 청색이 어우러져 회전하는 천체인 워아디어가 작아져가는 모습을 양은 가만히 지켜보았다. 미처 감상에 빠질 겨를도 없이, 「떠오르는 여명」호는 행성의 중력에서 벗어나 깊은 무저갱과도 같은 우주를 향해 나아갔다. 창밖의 광경에 정신이 팔린 양은 창문을 손가락으로 꾹 누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별에 다가가기 위해서 렘넌트를 떠난다는 것. 그것은 램넌트 안에서도 축복받은 몇몇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그저 모호한 환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곳, 이 은하내에서는 반복되는 일상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놀랍지 않냐?"
자신의 허벅지를 주무르며 로스는 그리 중얼거렸다.
"우리는 여태까지 저기서 살아왔는데 말이야. 아마 다시는 눈에 담을 수 없는 모습이 되겠지."
로스는 워아디어를 향하여 손을 흔들었다.
"잘 있어라. 내 모든 것아. 황제 폐하께서 함께하시길."
그렇게 말하며 로스는 손을 자신의 가슴으로 가져가며 아퀼라를 상징하는 성호를 그었다.
"야, 그렇게 말하지 말라니까. 내가 약속했잖아. 반드시 여기로 돌아오게 해주겠다고. 그리고 난 왠지 그럴 수 있다는 예감이 들거든."
"그래. 한번 믿어볼게. 어서 우리 장비나 지급받으러 가자."
고개를 끄덕인 양은 자기 친구의 뒤를 따라 거대한 우주전함의 내부로 들어갔다. 전함 안의 인테리어는 훌륭하다고 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었다. 물론 내부 통로는 갑갑할 정도로 비좁고 눅눅했지만, 그와 대비되는 대강당 쪽은 밝고 화려했다. 이곳 또한 마찬가지로 아까 전의 도시처럼 오래된 고대 건축물들이 곳곳에 늘어서 있었다.
이상하게도, 고딕 양식의 첨탑들과 아치형 석조 버팀목들은 양에게 베일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수시간동안 드넓은 함선 안을 여기저기 헤메이고 난 뒤에야 양과 로스는 지정된 무기고를 찾을 수 있었다. 그곳에는 새로운 장비를 지급받기 위해 수백명의 가드맨들이 줄지어서 기다리는 중이었다. 로스와 양도 그 대열에 합류하여 신병들의 물결 속에서 이리저리 떠다녔다.
그러던 와중, 갑자기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로스?! 너 거기 있었구나!"
"아~! 황제폐하시여, 저를 가호하소서."
그 소리에 로스는 신음소리를 내며 얼굴을 손에 파묻었다.
"황금옥좌시여! 우리가 행진할 때 널 잃어버린 줄만 알았잖아!"
양은 로스를 찾아와서 말을 건네는 이를 살펴보았다.
묘하게 넵튠이 연상되는 외모를 가지고 있는 호리호리한 남성이었다. 만약 넵튠이 머리를 좀 더 짧게 자르고 희뿌옇게 염색을 한다면 앞에 서있는 남성처럼 되리라. 그뿐만이 아니라, 길고 새하얀 흉터가 콧등을 지나 입술까지 길게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는 로스와 비슷한 나이대로 보였다.
"너 이 사람 알아?"
양이 호기심에 물어보자 로스는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바디걸 마을의 모든 여자애들은 카울린 로키슨(Caolin Roriksson)에 대해 알고있어. 그리고 카울린의 모든 여자애들의 주먹맛에 대해 아주 자세하게 알고있고."
"단지 여자애들의 주먹만 대해서 아는 건 아니야!"
카울린은 멍청하게 웃어보이면서 대기 행렬 맞은편에서 로스의 소개에 반박했다. 그러자 양은 구부정하게 서서 허리춤에 손을 얹고는 카울린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평가를 내렸다.
"그나저나 이 친구는 누구야?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얼굴인데."
"나는 수많은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너에게는 특별히 날 '양(Yang)'이라 부르도록 허락할게."
양이 카울린에게 살짝 윙크를 날려주며 자기소개를 하자, 그는 음흉한 미소로 지으며 반응해줬다.
"로스. 왜 너는 여기있는 야... 양처럼 친절하지 못하냐?"
카울린과 양을 한껏 째려본 로스는 그들을 비웃었다.
"계속 그렇게 잘 대해주지 마. 쟤는 구제불능의 바람둥이라고."
"착하게 생겼는데?"
"너는 '구제불능의 바람둥이'란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아~니. 그냥 한번 장단 맞춰준 것뿐이야. 계속해서 그런다면 집적거리지 못하도록 몇달간 괴롭혀줘야지. 카울린이 꽤 귀엽긴해도, 내 취향은 아니거든."
' 그나저나 카울린의 새하얀 머리카락이 고향에 남겨두고 온 친구가 생각나네.'
렘넌트에 남아있는 가장 절친한 친구인 와이스를 떠올리며 양은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주먹질이 남자를 상대하는 데엔 최선의 방식은 아니야. 항상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가끔씩은 그래."
양이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말하자 로스도 미소를 지었다.
"넌 정말로 특이한 애야. 여태껏 살아오면서 너같은 성격의 사람들은 못 만났는데 말이야."
그 말에 양은 씨익 웃어보였다.
로스는 마치 수다스럽고 혈기왕성한 버전의 블레이크나 마찬가지였다. 비록 블레이크처럼 무뚝뚝했지만, 그녀만큼이나 높은 지능과 뛰어난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걸 알았으면 이제 나하고 꼭 붙어다녀."
그제서야 그들은 장비를 지급받을 수 있었다.
표준 규격의 초록색 임페리얼 플랙 아머에, 세 벌의 베이지색 병사용의 짧은 상의와 여러 벌의 병사용 작업복이 양에게 쥐어졌다. 또한 에그리-월드(Agri-World)인 워아디어에서 일백하고도 열한번째로 소집된, 제 111연대 워아디어 레인저 소속이라는 공식 배치 문서도 거기에 포함되어 있었다.
양은 서류들을 스윽 훑어보았다.
'어쩌구 저쩌구 황제폐하, 어쩌구 저쩌구 워아디어, 이러쿵 저러쿵 임페리얼 가드, 이러쿵 저러쿵 훈련... 오! 드디어 쓸만한 정보가 나왔네. 막사 0914로 신고할 것. 해당 가드맨은 부사관 조어비스(Jorvis)의 지휘 하에 있는 감마 소대, F 분대에 소속되었음. 다행스럽게도 로스와 같은 곳에 소속되었네. 방금 사귄 친구하고 벌써부터 떨어지지 않아서 다행이다.'
"어이~ 얘들아! 너네는 어디 부대 소속이야?"
카울린이 양과 로스를 향하여 서둘러 달려오면서 외쳤다.
"우리 둘다 감마 소대, F분대인데."
양이 그렇게 말하자마자 카울린의 입가에 큰 호선이 그려졌다. 그 환한 미소의 의미를 깨달은 로스는 조용히 읆조렸다.
"오, 황제폐하시여. 저를 카울린의 마수로부터 구원하소서."
"이제 우리들은 한동안은 계속 붙어서 다녀야겠네."
"반드시 카울린 너를 제일 처음보는 제노 앞에다 방패로 세워버릴테다."
"제발! 그것만큼은 제발 참아줘! 난 여태까지 운이 충분히 좋았는데- "
카울린은 얼굴을 가로지르는 흉터를 가리키며 말을 이어갔다.
"- 이렇게 섹시한 흉터를 가진 것만으로도 말이야. 여기서 더 내 운을 시험해보고 싶지는 않거든!"
우스꽝스런 카울린의 말에 양은 웃음을 터뜨렸다. 이 미쳐돌아가는 우주에서 아주 조금의 정상적인 것을 본 것만으로도 양은 충분히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자 카울린이 늑대같이 음흉하게 웃으면서 양을 마주보았다.
"저 별빛같이 아름다우신 웃음소리를 지니고 계시는군요."
"또 되도않는 신사 흉내를 내며 지랄하네. 너는 그런 종류의 격식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잖아."
어이가 없다는 듯이 로스가 사납개 내뱉었다.
"저 웃음소리가 내 귀에 들리기 전까지는 말이지!"
카울린의 말에 양은 더욱 크게 웃어보였다.
"풉! 와우... 방금 그건..."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내고 깊게 심호흡을 하면서 양은 말을 이어갔다.
"그건 확실하게 재밌었어!"
무대 위의 배우처럼 카울린은 과장된 몸짓으로 고개를 숙여 양의 말에 감사를 표했다.
"멍청이들. 그만 나대고 따라오기나 해라."
로스는 양과 카울린의 목덜미를 잡고는 막사로 질질 끌고갔다.
"쿠헥! 로스, 니 친구한테 수작부려서 미안해! 하지만 양도 별로 신경쓰지 않았... 그러니까 내 말은... 우아악!"
손아귀에서 풀려나기 위해 카울린은 계속해서 버둥거렸고, 양은 그저 아무런 저항도 없이 끌려갔다.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는 건 항상 기분좋은 일이었다.
◆
확실히 막사의 규모는 거대했다.
그러나 그건 막사가 함선의 내부를 따라 길게 늘어서 있다는 의미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양은 평균적인 워아디언들보다 키가 컸고, 그래서인지 양의 머리카락은 금속제 천장판과의 닿을 듯 말듯한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벽을 따라 길게 뻗어있는 수많은 침상들은 곧이어 철저하게 훈련된 전사들로 빽빽하게 채워졌다. 막사 안에는 단 하나의 창문도 없었고, 황량한 철제 벽면만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막사 안의 유일한 불빛이라고는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자그마한 램프들 뿐. 거기서 흘러나오는 희미한 불빛들이 막사 안의 어둠을 몰아내고 있었다.
배정된 막사 안에서 신병들은 정처없이 걸어다녔다. 그들 중에서 일부는 서로간의 친분을 쌓기 위해서 노력했고, 반면에 다른 이들은 그저 가만히 침상에 누워서 담요를 바싹 끌어당겼다.
얼마 안 있어 으스스한 금속성의 목소리가 막사 안을 포함한 함선 전체에 울려 퍼졌다.
--모든 승무원들은 주목하라. 지금부터 떠오르는 여명 호는 워프 스페이스에 진입한다.--
--모든 승무원들은 주목하라. 지금부터 떠오르는 여명 호는 워프 스페이스에 진입한다. --
안내방송이 몇번이나 반복되던 끝에서야 방송이 멈췄다. 잠시동안의 침묵이 흐른 다음... 모든 것이 붉게 변했다.
그녀의 정신에다 칠흑같은 칼날이 깊게 파고드는 것처럼, 양은 머릿속에서 전해져오는 고통에 휩싸였다. 그러자 갑작스럽게 양의 마음 속에서 악랄한 분노가 넘쳐흐르기 시작했다.
살의(殺意).
양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부여잡고는 이리저리 뒤틀며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죽여야해! 갈기갈기 찢어버려! 뼈를 부숴버리고, 두개골을 뭉개버려라! 그게 가장 좋은 방식이잖아?! 사지를 찢어서 죽여야해! 엄마가 원했던 것처럼! 오, 어머니시여! 그녀의 붉디붉은 두 눈동자! 피처럼 검붉고, 마치 장미꽃처럼 새빨갛게...!(RED RED LIKE ROSES!)'
"...양?"
로스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양에게 말을 걸었다.
'어라?...'
"어... 음... 로스구나..."
"너 괜찮아?"
아직까지 욱신거리긴 했지만, 그제서야 양을 집어삼키던 사악한 광기가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손목에 깊게 파여진 손톱자국과 함께, 양은 식은땀을 흘리며 몸을 덜덜 떨었다.
"그으럼~! 괜찮고말고. 걱정해줘서 고마워."
'대체 방금 그게 뭐였지?'
자기 소지품들을 침상 위로 내려놓은 양은 급하게 얼버무렸다.
'휴우... 평소처럼 행동하면 돼. 평소처럼...'
그렇게 시선을 돌리자 작은 철제 사물함이 침상 옆에 놓여져 있었다. 곧바로 그녀는 들고있던 배낭을 안에다가 집어넣었다. 양은 렘넌트에서의 추억이 모두 담겨진 조그마한 무명 가방을 그 무엇보다도 소중히 여겼다. 고향을 떠올릴 수 있는 유일한 흔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루비. 양이 그 이름을 마음 속에서 처음 떠올렸을 때로부터 시간이 꽤나 흘렀다. 그렇게 생각하자 양은 양심의 가책을 느꼈지만, 루비의 은빛 눈동자와 미소를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떨림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그리고 호흡 또한 서서히 진정되기 시작했다. 아직까지도 놀라움이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끓어오르던 분노는 확실하게 진정되었다.
팀 RWBY를 찍은 사진을 다시 한번 바라보면서 양은 침상에 걸터앉았다. 외울 정도로 많이 보아온 그 사진은 단 한번도 양의 공허한 마음의 구멍을 메워주는 데에 실패한 적이 없었다. 잔혹한 학살의 현장과 제국으로부터 동떨어진, 그래도 한때 평화로웠을 적의 추억들이 깃든 물건이었다.
"옛날에 한번 본 적이 있는 표정이로구만."
화들짝 놀란 양은 귓가에 들려온 새로운 목소리를 향하여 고개를 돌렸다.
수염이 풍성하게 난 남성이 눈가에 잔주름을 지으며 양에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사내의 목에는 가느다란 줄로 연결된 목걸이가 걸려있었고, 줄 위에 항상 존재하는 아퀼라 문양에 맺힌 물방울들이 반짝였다. 남자는 겉으로 보기에는 나이가 많아보였다.
"무슨 말이에요?"
"누구를 잃어버렸나?"
그 질문은 양의 정곡을 깊게 찔렀다.
"...저의-"
마음 속에 깊이 묻어왔던 절망감이 드러나지 않게 노력하며 그녀는 말을 이어갔다.
'심호흡을 하자. 울면 안돼.'
"-여동생이요."
"전란의 시기에는 항상 슬픔이 존재하지."
풍성한 턱수염 뒤로 슬며시 웃은 남자는 평이한 어조로 말했다.
"라인 표더리슨 (Rhain Fyodyrsson)이라고 하네."
그는 손을 뻗으며 악수를 청했다. 그리고 양은 그 요청을 받아들이며 그와 손을 맞잡았다.
"만나서 반가워요. 표더리슨 씨."
"그냥 라인이라고 부르게. 어차피 우리는 같은 가드맨이지 않나."
서로간의 인사를 몇번 더 주고받은 후에야 라인은 그의 침상으로 기어들어갔다. 그러고선 누운 채로 지급된 장비목록에 포함된 검고 두께가 얇은 책을 열어보았다.
[임페리얼 가드맨들의 기본 지침서(병사 수첩)]
피로에 찌든 로스가 옆의 침대에 벌렁 드러눕고는 한숨을 쉬었다.
"분위기가 꽤 우중충하지?"
양이 새로운 동료들을 둘러보며 거짓된 미소를 지은 채로 로스에게 물어보았다. 로스는 그 말에 동의하듯이 기지개를 펴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방금 전에 알고있던 모든 것을 버려두고 왔어. 이런 분위기도 무리는 아니지."
「떠오르는 여명 」호가 워프를 가로질러 나아갈 때, 양은 그 말에 대해 심사숙고했다.
'그런 방식으로 생각해보니... 저 사람들도 나랑 처지가 같네.'
입대 몇시간만에 코른의 선택을 받다니 인잰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