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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섹이 뭔지도 몰라? 혹시 너 평생동안 동굴 안에서 살아온 거 아니야?"


"불쌍한 소녀를 함부로 대하지 말게나."


막사 안에서 라인의 중후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즐겨야할 것을 여태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안타까운 영혼이니까 말이야!"


"아이고오~! 그렇구만요~. 영감님~."


카울린이 입을 내밀고는 투덜거리며 대꾸했다. 그러자 라인은 카울린을 붙잡아서 헤드록을 걸고는 자꾸만 기어오르는 놈의 머리를 힘이 가득 실린 주먹으로 응징했다.


상쾌한 웃음과 함께 로스는 그 광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았다. 로스가 고된 훈련을 끝마쳤을 때에는 약간 통통했던 그녀의 볼살이 쏙 다 빠져 있었다. 군살이 빠져 탄탄해진 육체는 이제 로스가 한 사람의 군인으로 거듭났다는 것을 알려줬다. 입대할 당시에 짧게 잘려진 붉은 머리카락은 로스의 귓가에 닿을 듯 말 듯 했다. 같은 내무반에서 동고동락하는 동료인 양에게 로스는 휴대용 술병을 건네주었다.


술병을 건네받은 양은 냄새를 한번 맡아보았다. 몇 초만에 안에 든 내용물을 파악해낸 양은 씨익 웃었다. 확실하게 품질이 좋지는 않은 싸구려 술이었다. 그리고 희미하게나마 남아있는 그레이프푸르트 향기만이 이 혼합물이 소독용 알코올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다.


'...그래도 생각보다 술맛이 나쁘지는 않네.'


"황금옥좌시여!"


막사 너머까지 들릴 정도로 카울린이 크게 소리쳤다.


"그 독한 걸 마시고도 아무렇지도 않다니!"


양은 과장된 몸짓으로 인사를 한 후에야 곧장 트림을 했다. 친구의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본 로스는 부끄러운지 얼굴이 빨개졌고, 다른 사람들은 전부 크게 웃어제꼈다.


"마엘? 이 술 너가 가지고 있었어?"


무뚝뚝한 마엘은 눈동자에 웃음이 차오른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대부분의 신병들에 비해 덩치가 꽤 큰 편이었고, 그래서 그런건지 분대의 로켓 런처를 담당하게 되는 명예를 얻게 되었다. 마엘은 빙그레 웃었다. 낮고 중후한 웃음소리가 마엘의 입에서 흘러나왔고, 이때가 처음으로 양이 그의 목소리를 들어본 순간이었다.


"이런 술을 마시게 해줘서 고맙다 야!"


스트로베리 선라이즈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꽤 마실만한 술이었다.


"이제 내 차례야."


로스는 휴대용 술병을 향해 손을 뻗으면서 말했다. 라인이 그녀에게 술병을 던져주자 안에 든 술이 부드럽게 넘실거렸다. 로스는 양이 아까 전에 하던 대로 흉내를 내보려 시도했으나 그 도전은 처참하게 실패했다. 쿨럭거리며 술을 내뱉은 로스는 아직도 가라앉질 않는 기침을 진정시키며 중얼댔다.


"제기랄! 쿨럭쿨럭! 양... 어떻게 이걸 한번에 들이키고도 멀쩡할 수 있어?"


"많이 마셔보면서 연습하면 돼."


곧이어 마엘은 두번째 술병을 벌컥벌컥 들이켰고, 입술에서 흐르는 술 한 방울이 턱을 따라서 이어져 흘러내렸다. 그러고선 그는 동료들에게 모두 모여보라며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주변에 모여있던 동료들은 술잔을 내밀었고, 마엘은 그들의 잔에다가 넘치도록 술을 따라주었다.


동료들의 술잔이 가득 채워지자 마엘은 건배를 하자는 듯 자신의 술잔을 들어올렸다.


"황제폐하를 위하여! 그리고 임페리얼 가드의 영광을 위하여!"


마엘의 의도를 재빨리 파악한 카울린이 소리치며 같이 술잔을 치켜들었고, 다른 이들도 그렇게 외치며 술을 들이마셨다.


"로스의 진급을 축하하며! 모두 건배!"


잇따라 양이 손에 움켜쥔 술잔을 들어올리며 외치자, 저번주에 상등병으로 진급한 로스를 축하해주며 모두들 환호했다. 순식간에 로스를 향해 모두의 관심이 쏠리자 부끄러운지 그녀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그래도 주변의 동료들이 로스를 치켜세워줄 때에는 그녀도 싫지는 않은지 어깨를 으쓱였다.


"후우.. 너희 빌어먹을 놈들 때문에 내가 제 명에 못살거야."


아마섹을 점잖게 마시며 로스는 중얼거렸다. 그러는 와중에도 로스는 아직까지 아마섹에 익숙하지가 않은건지 마실때마다 그녀는 미간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우리의 상등병 로스께서는 주량이 꽤나 약하신가 보구만."


라인이 쿡쿡 웃으며 말하자 카울린이 그 말에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쟤가 얼마나 술에 약한지 겪어보지 않고서는 모를겁니다."


양의 옆구리를 살짝 팔꿈치로 찌르며 말을 이어갔다. 술기운이 슬슬 전신에 퍼지기 시작한 양은 낄낄대며 카울린의 말을 들었다.


"그러고보니 옛날에 있었던 사건이 기억났는데..."


"안돼."


얼굴이 창백해진 로스가 황급히 카울린의 말을 끊었다.


"얘네들한테 말해줄건데."


"말하지마라."


"한번만 이야기 해줘봐. 응?"


흥미가 동했는지 양이 카울린이 얘기해주기를 바라며 그에게 살짝 몸을 기대었다. 그리고 마엘도 궁금한지 고개를 끄덕이며 카울린을 재촉했다.


"얘들이 예의바르게 요청을 했으니까 말이야..."


로스를 향해 씨익 웃어보인 카울린이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너. 내가. 반드시. 죽여버린다."


"시작은 로스의 열아홉번째 생일이자 수확기간이 끝나가던 날이었지. 그리고 혈기왕성한 바디걸 마을의 애들이 항상 그렇듯이, 모두들 바깥으로 나가서 파티를 즐겼어."


그 분위기를 다 이해한다는 듯이 라인이 눈알을 굴렸다.


"로스는 그때 엄청나게 큰 파티를 열었고, 적어도 백명은 될듯한 애들이 욕조에 담가둔 아마섹을 물처럼 퍼마시며 즐겼거든."


"카울린 이 빌어먹을 새끼가..."


"그리고 로스는 가장 친한 친구들이랑 함께 그녀의 하버스터(harvester)에 타서 드라이브나 하자는 기똥찬 아이디어를 생각해냈지. '얘들아! 이 파티를 좀 더 자유분방하게 즐겨야하지 않겠어?!' 라고 로스가 소리쳤고. 물론 엄청난 환호성과 고함을 받으면서 말이야."


카울린의 말을 들어본 양은 숨죽여 킥킥 웃었다. 블레이크랑 양도 둘다 다시는 남들에게 말하지 않기로 맹세한 '크루저 사건' 과 같이 비슷한 일을 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덜컹거리며 비포장 도로를 달리고 있을 때, 뒤에서 누군가가 크게 소리치는 외침이 들려왔지. 근데 그게 누구였는지 알아? 바로 코리스(koris)였어."


"그만하고 닥쳐라. 카울린."


"잠깐! 잠깐만! 이게 제일 재미있는 부분이라고! 그제서야 우리는 로스의 하버스터가 아니라, 코리스의 하버스터에 타고있다는 것을 깨달았지! 로스는 그것도 모르고 코리스의 것을 훔친거였어! 지금도 똑똑히 기억하는데 말야, 오 황제폐하시여. 새파랗게 질린 표정이 얼마나 볼만하던지 너희들은 절대 상상도 못할거다! 몇 년 동안이나 로스가 코리스를 몰래 좋아해왔는데, 걔가 두 눈을 시퍼렇게 뜬 앞에서 하버스터를 훔쳐버린거야! 그것도 실수로!"


라인은 우렁찬 목소리로 크게 웃어버렸다. 그러고는 술잔을 한모금 마시면서 다시 킬킬대며 웃었다.


"애들이란!"


"어쨌든 간에 로스는 그대로 트렉터에서 굴러떨어져서..."


"만약에 네가 계속 입을 쉬지않고 놀린다면, 내가 직접 여기까지 커미사르를 모시고와서 네 얼굴을 쏴버리라고 부탁할거다."


"당황한 로스는 말을 더듬으면서 사과를 했고, 우리들은 계속 그녀를 놀려댔거든..."


"마지막 기회다."


로스는 위협적인 목소리로 카울린에게 경고했다.


"그러고는 그대로 로스는 코리스한테 토해버린거야! 그리고 세달 정도가 지나서 둘은 약혼했지!"


이야기를 경청하던 관중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분노에 가득찬 함성과 함께 로스는 카울린에게 덤벼들었고, 박장대소를 하던 양은 그 와중에도 카울린의 술잔이 쏟아지지 않도록 붙잡았다.


"내가 예상하기에 둘은 서로 a-tractor-d (아재개그의 일종) 했나본데."


"우우! 방금 그거 개그라고 친건가?!"


라인은 자기의 외투를 양의 머리 위에다가 집어던지며 소리쳤고, 주위의 가드맨들이 야유를 퍼부으며 아재개그를 날린 양을 처절하게 응징했다. 그 광경을 바라보며 마엘은 그저 평소의 더듬거리는 웃음소리를 내며 즐거워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카울린과 로스는 서로 주먹과 발차기를 주고받으며 뒤엉켰고, 양은 (카울린의) 술잔을 한 모금 마시며 둘이 싸우는 모습을 구경했다.


"으아악~! 젠장! 누가 얘 좀 떼어내줘!"


들이닥치는 거센 공격을 가까스로 피한 카울린은 비명을 질러댔다.


"그러게 상급자한테 나대면 안되지. 암. 안되고말고."


라인이 그렇게 중얼거리자 마엘도 냉정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에 동의했다.


헉헉거리며 숨을 몰아쉰 로스는 카울린을 들어올리고는 그대로 완벽한 업어치기를 선보였다. 뒤따라 쿵하고 그의 몸이 단단한 철제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곧바로 로스는 주먹을 들어올리며 카울린 위에 올라앉았다. 그녀의 다리 밑에서 카울린은 아슬아슬하게 로스가 내려꽂는 권격을 피했다. 일련의 과정을 구경한 양은 휘파람을 휙 불었다.


"좋은 움직임이야! 카울린! 어이, 라인! 카울린이 전세를 역전하고 아긴다에 아마섹 두 잔을 걸어볼게!"


"배신자!"


카울린이 벗어나지 못하도록 노력하며 로스가 외쳤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문이 벌컥 열리면서 머리끝까지 화가 난 부사관 조어비스가 나타났다. 벌떡 일어난 양은 재빨리 머리를 굴렸고, 곧장 양은 손바닥을 바닥에 두번 내리쳤다.


"그리고 열! 미안해, 카울린! 넌 이번 판에서 패배했어!"


"트루퍼 샤오 룽, 대체 홀리테라의 이름으로 빌어먹을 너희 얼간이들이 뭘하고 있던건가?!"


조어비스의 붉은 의안이 조그마한 트집이라도 잡아내고자 쉬지않고 움직였다.


"예! 부사관님! 저희들은 앞으로의 강하에 대비하기 위해서 대련을 하는 중이었습니다!"


부사관은 양이 한 말을 잠시동안 생가해보더니 그대로 소리쳤다.


"정말로- 지랄맞게도 대단하군 그래! 다른 소대들도 너만큼이나 헌신적으로 임무를 이행하기를 황제폐하께 기도를 올려야겠군!"


칸막이를 세차게 닫아버린 조어비스는 그대로 복도를 따라 힘차게 걸어갔다. 마치 폭풍이 지나간 것처럼, 막사 내에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그가 멀리 가버렸다는 것이 확인되자마자 주변에 있던 이들이 폭소를 터뜨렸다. 심지어는 때려눕혀져서 바닥에 널부러진 카울린조차도 크게 웃어보였다.


로스와 카울린 둘다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런 다음에 로스는 라인의 손아귀에서 아마섹 술잔을 잡아채고는, 저번과 달리 전혀 표정을 찡그리지 않고서 그대로 자연스럽게 벌컥벌컥 들이켰다.


"눈치 빠르게 둘러댄 양을 위하여! 건배!"


칭찬에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티내지 않으려고 양은 겸손하게 팔을 들어올렸다.


"건배! 건배!"


이에 질세라 카울린도 양의 옆구리를 콕콕 찔러보며 소리쳤다. 시원하게 웃어보인 양은 그대로 카울린을 그의 침대에다가 밀어 넘어뜨리고는 말했다.


"닥치고 술이나 마셔."


그날 밤, 양은 아주 오랜만에 취할만큼 술을 마셨다. 이렇게나 즐겁게 놀아봤던 것이 얼마나 오래되었을까. 로스와 카울린은 (덜 잔인하게) 추억을 회상했고, 마엘과 라인은 인사불성이 될 때까지 술을 주고받았으며, 양은 자신의 동료들이 혀 꼬부라진 소리를 내며 비틀거리는 모습을 즐겁게 감상하였다.


그런데도 양은 자기가 머나먼 이국에서 온 이방인처럼 겉도는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는 양이 살아가던 세상이 아니었다. 술잔을 감싸 쥔 그녀의 손가락이 점차 도드라지기 시작했다.


허나 그런 고민도 잠시, 벼락같은 깨달음이 양의 뇌리에 내리쳤다. 어차피 램넌트에는 양이 소중하게 여겨왔던 것들이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여기가 내가 속한 세상이 아니라고 한들, 이제는 아무런 상관도 없어. 이제부터 여기가 내 고향이야.'


희미한 미소와 함께 친구들의 만담을 지켜보던 양은 그리 다짐했다. 결정을 내린 양은 곧바로 카울린을 골려주러 그에게 다가갔다. 아쉽게도 로스와의 일대일 '상담'에 온 신경이 쏠린 그는 양에게 별 관심을 가지지 못했지만 말이다.


침상으로 기어들어간 양은 담요를 바싹 끌어당기고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평화로운 바다 위로 또다니는 배처럼 막사는 앞뒤로 기분좋게 흔들거렸다. 바다. 양이 바다를 마지막으로 보았던 적이 언제였던가? 술잔을 움켜쥐고 있던 손아귀의 힘이 서서히 느슨해지며, 양은 몰려드는 수마에 몸을 맡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