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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같은 황제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두 황제의 행보나 생각은 전혀 다르다는 건 블붕이들에게도 익히 알려진 사실일 것임. 그런데 생각해보니, 각각의 황제가 유가랑 도가가 이야기 하는 이상적인 군주론에 부합한다는 인상을 받음.



공자는 논어에서 천하를 다스리는 왕인 군자가 가져야 할 정신으로 지혜와 어짊을 든단 말이지? 그리고 뒤에 덧붙이는 말이,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 -《논어〈옹야〉



이 때 이야기 하는 산과 물이란 당연히 태산과 황하 같은 거대한 산과 거대한 강을 이야기 하는 것임. 성인의 지혜와 어짊은, 만 생물을 포옹하고 보듬는 거대한 산, 물과 같아야 한다는 거임. 자고로 군주가 되고 싶어한다면, 그 지혜와 어짊이 단순히 한 개인의 수준에 머물려야 한다는 게 아니라, 실로 천하를 끌어안을 정도로 거대해야 한다고 가르침.



「자공이 말하였다. "만약 백성들에게 널리 좋은 일을 하고, 더 나아가 대중을 구제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인仁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어찌 단지 인에 그치는 일이겠는가? 틀림없이 성聖의 경지일 것이다. 요임금과 순임금조차 그렇게 하지 못해 걱정하셨다. 인이라는 것은 자기가 서고자 하면 남을 일으켜 세우고, 자기가 이루고자 하면 남을 이루게 하는 것이다. 생활 주변 가까운 곳에서 자기 마음을 미루어 남의 마음에 도달하는 것을 인을 실천하는 방법이라 말할 수 있다."」 -논어〈옹야〉


「군자의 마음은 넓고 넓으며 크게 공정하고 그의 시선은 천하에 두루 미친다. 그래서 어느 한 가지 사물이라도 우리의 마음이 당연히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게 없고, 어느 한 가지 일이라도 우리 직책이 담당해야 하지 않는 것이 없다. 비록 우리가 비천한 필부의 신분에 있다 해도 군주를 요순처럼 되게 하고, 백성들에게 요순처럼 하는 것은 우리의 분수 안에 족하는 일이다.」 -《대학혹문大學惑問》, 주희.


「의서醫書에서 손과 발이 마비된 증상을 '불인不仁'이라 부르는 것은 정말 기가 막히게 멋진 표현이다. 어진 사람은 천지만물을 한 몸으로 여기니, 그에게는 '나'가 아닌 것이 없다. 만물이 바로 '나'라는 것을 깨닫는다면 이르지 못할 것이 없다. 만약 '나'에게 속한 게 아니라면 자연히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된다. 마치 손과 발이 마비되고 기氣가 통하지 않는다면 '나'에 속하지 않는 것과 같다.」-《근사록》, 정명도程明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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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군자가 대인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군주의 사회적 위치에 따른 책임 역시 천하에 미치기에 항상 군주는 어질고 지혜롭고, 각각 구성원들이 평안히 잘 먹고 잘 살게 해 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함. 남이 슬퍼하고 절망하는 것을 좌시하지 않는 인간. 남의 고통을 자신의 손발이 아픈 것처럼 여길 수 있는 인간들이어야 진정으로 군주라 불릴 수 있단 거지. 세트라 역시 이런 유형의 군주라고 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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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느그쉬가 맨날 욕 먹잖아. 지그마랑 비교해서. 느그쉬는 군주, 신의 자리에 올랐는데도 개인의 영달과 욕심만 생각하는 소인배거든. 모타리온도 이 최악의 군주 상에 들어가겠군.



반대로 노자는 군주의 덕목을 좀 더 다르게 이야기 한다.



천하개지미지위미

사오이

개지선지위선

사불선이

고유무상생

난이상성

장단장교

고하상경

음성상화

전후상수

시이성인처무위지사

행불언지교

만물작언이불사

생이불유

위이불시

공성이불거

부유불거, 시이불거


하늘아래 사람들이 모두 아름다운 것이 아름답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그것은 추한 것이다. 하늘 아래 사람들이 모두 선한 것이 선하다고만 알고 있다. 그런데 그것은 선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있음과 없음은 서로 생하고 어려움과 쉬움은 서로 이루며 김과 짧음은 서로 겨루며 높음과 낮음은 서로 기울며 노래와 소리는 서로 어울리며 앞과 뒤는 서로 따른다. 그러하므로 성인은 함이 없음의 일에 처하고 말이 없음의 가르침을 행한다. 만물은 스스로 자라나는데 성인은 내가 그를 자라게 한다고 간섭함이 없고, 잘 생성시키면서도 그 생성의 열매를 소유함이 없고, 잘 되어가도록 하면서도 그것에 기대지 않는다. 공이 이루어져도 그 공속에 살지 않는다. 대저 오로지 그 속에 살지 아니하니 영원히 살지어다.



이게 노자 도덕경의 2장 해설인데, 한문 텍스트 쓰기 귀찮아서 대충 한글만 쓴 건 양해해주라. 아무튼 2장의 핵심은 가치론임. 선과 악, 미와 추라는 인류의 가치들이, 사실은 상대성 위에 놓여 있다고 노자는 밝힌다. 어떤 것과의 좋음과 나쁨은 절대적인 선이나 악의 실체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것이 무엇인가 비교가 되는 대상들 간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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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걸 읽으면서 카오스 세력의 본성에 대한 설명 같다고 느껴지더라. 카오스는 인간의 증오, 혐오, 분노, 과잉, 협잡 등등의 지성체의 부정적인 인식이나 감정이 모인 거잖아? 그런데 아까 이야기 했듯, 선과 악에는 실체가 없음. 가령 들판에 백합과 독초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백합과 독초에 각각 좋음, 나쁨이란 것의 가치가 실재하나? 아니지. 그저 인간이 그걸 보고 비교해서 좋음과 싫음을 느낄 뿐이지. 그런 감정들은 실재가 아니란 말이야.


그리고 성인, 리더가 되는 자는 저런 작고 하찮은 일들에 신경 쓰면 안 된다고 노자는 강조함. 사소한 사태들과 개인의 잔정, 공자의 인의예지 같은 인위적 덕목들에 휘둘려서 대사를 놓치면 그건 성인의 자격이 없는 것임. 성인은 그런 인간이 만들어낸 조작된 상대적 가치들에 휘말리지 않고, 순리에 따른 자신의 의지를 집행해야 함. 그런 가치들이야 말로 변화하고, 상대적임에 비해 거대한 도는 변함이 없는 순리고, 따라야 하는 것이거든.


동시에 그걸 집행하면서 그걸 과시하거나 그 결과를 자신의 공인 양 우쭐거리고, 그 결과를 자신의 것이라 소유하면 안 되지. 이것만봐도 짐작이 가겠다만, 특히 5장에서는 천지가 어떤 성격을 가졌는지를 설명하고, 지도자가 어떻게 백성을 다스려야 하는지 더욱 확실한 설명이 나옴.



천지불인

이만물위추구

성인불인

이백성위추구



천지는 인자하지 않다. 만물을 풀강아지처럼 다룰 뿐이다. 성인은 인자하지 않다. 백성을 풀강아지처럼 다룰 뿐이다.



그렇다. 하늘과 땅이 그 위에 붙어있는 생물들 개체가 어떻게 반응하건, 늘 똑같은 법칙인 자연의 법칙에 따라 운행된다. 화산이 폭발하기도 하고 해일이 몰려오기도 하는 것처럼 자연의 운행방식은 그저 이뤄짐. 그게 순리니까. 성인도 그래야 한다고 노자는 가르침. 단순히 인간 개체들에 연연하지 말고, 순리에 따라 마땅히 해야만 하는 걸 해야 함. 자연이 의지를 가지고 있어서 모든 생물에 일일히 맞춰줄 수도 없듯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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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상적 군주에 들어맞는 게 바로 황제와 타노스다. 둘 다 각각 실현해야만 하는 도道가 있다. 그리고 그걸 위해서 수하건 사람이건, 심지어 필요하면 자신마저도 갈아넣을 수 있다(황제는 스스로가 인류에 필수적인 존재라고 생각해서 희생하진 않겠다만). 사람들은 그 일면만 보고서, 기존의 가치들을 가지고 그를 재단하려 하지만 그것은 무의미한 행동이다. 왜? 그건 개체의 인위적이고도 주관적인 가치에 의해서 이뤄지는 것들이거든. 거기에 일일히 휘둘리면 군주로서 자격 실격이라는 게 노자의 핵심이야.


이런 인간들은 보면 두렵고, 공포를 일으키지. 사람 같지가 않거든. 노자는 바로 그 점이 핵심이라고 이야기 함. 애초에 천지의 도가 개체들을 위해서 존재하는 게 아니듯, 군주의 도도 그래야 한다고 하는 것. 그리고 그 시절에 이런 군주의 길을 이야기 하는 게 가능했던 이유는, 그 시절에 민주주의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아서지. 지금 보면 경악할 것 같지만, 현대에도 분명히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함. 항상 '인간적인' 가치나 명분에 휩쓸려서 국가의 대소사를 가리지 않고 이것저것 건드리다가 망하는 정권을 생각해보면 빠르겠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나오는 이상적 군주도 이런 유형과 비슷할 것임. '해야 하는 걸 하는 게 아니라, 해야만 하는 것을 하는' 사람들 말야.



긴 글 읽어준 사람 있으면 고맙고, 만약 더 궁금한 게 있다면 '이기주의를 위한 변명'이라는 책 구해서 읽어보길 권장함. 좋은 책임. 그리고 아까 내가 이야기 했던 유가 파트들은 거기서 따 온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