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잊혀진 시대에서, 두 인간이 울부짖고 있다. 살해한 자의 울부짖음은 살해당한 자의 비명과 화음을 이루었다. 인류가 여전히 불의 정령을 두려워하며 거짓 신들에게 내일 해가 뜨게 해달라고 기도를 올리던 이 최초의 시대에, 한 형제 사이에서 벌어진 살인행위는 그 시대의 가장 흉악한 행위였다.
핏자국이 남자의 얼굴을 물들였 듯이, 남자가 꽉 그러쥐고 있는 창을, 그리고 그 형제의 시체 아래에 깔린 바위를 물들이고 있다. 상처부위로부터 액체가 뿜어져 나오며 내음을 풍겼다. 남자는 터럭 난 피부 위에 튄 피의 온기를 느끼며, 형제의 혈관으로부터 뿜어져 나온 붉은 포도주를 맛보았다. 아직 발견되지 않은 금속과, 아직 보지 못한 바다의 맛이 느껴졌다. 흘러나온 생명의 뜨거운 소금기가 혀를 불태우고, 남자는 불가능하리만치 명확하게 그것을 깨달았다.
그가 최초였다.
끔찍한 도마뱀 괴물들로부터 온혈 포유류로 이어지는 계승의 천 겹 길 속에서 탄생한 수많은 존재들 중 하나인 인류는 늘 살아남기 위해 투쟁해왔다. 심지어는 그들이 등 굽은 유인원이었을 때에도, 그리고 야만적인 원생 인류였을 때에도 인류는 맨주먹과 이빨, 그리고 바위로 서로간에 사소하고도 초라한 전쟁을 벌여오곤 했었다.
그러나 이 남자야말로 최초였다. 최초로 증오를 품은 자도, 최초로 무언가를 죽인 자도 아닌, 최초로 냉혹하게 생명을 앗아간 자였다. 그가 바로 최초의 살인자(First Murderer)였다.
죽어가는 형제는 남자를 붙잡기 위해 손을 휘적였고, 더러운 갈퀴 손톱이 땀 범벅이 된 남자의 피부를 할퀴었다. 그것은 자비를 구하기 위함인가, 복수를 구하기 위함인가? 분노에 휩싸인 남자는 알지도 못했고, 거기에 개의치도 않았다. 남자는 점점 단단해져가는 고깃덩어리 속으로 목창을 더 깊이 찔러 넣었고, 창끝은 그 뼈를 긁고 지나갔다. 그럼에도 형제는 비명을 지르고 있었고, 남자는 울부짖고 있었다.
첫 살인자의 비명소리는 현실의 장막을 가르고 들어가며, 현실과 비현실을 가로질러 두 세계에서 동일한 크기로 울려 퍼졌다.
워프 속에 도사리고 있는 존재들에게 있어, 그것은 인류가 부를 수 있는 가장 감미로운 노래였다.
드라크니엔을 탄생시킨 '최초의 의도적' 살인 : 대략 구석기~신석기 즈음. 살해 도구 : 목창. 사인 : 애걸하는데 창 찔러넣기.
소년은 한 번 더 해골을 돌려보며, 해골에 너덜너덜하게 뚫린 구멍을 엄지로 훑었다. 진실을 알기 위해 눈을 감고 명상에 잠길 필요는 없었다. 아버지의 영혼이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설명해주기를 기도할 필요도 없었다. 소년은 그저 아버지의 해골에 난 구멍을 매만지고는, 단번에 깨달았다. 소년은 등 뒤에서부터 청동 칼이 떨어져 내리는 것을 보았다. 아버지가 진흙 속에 쓰러져 있는 모습을 보았다. 지금 이 순간까지 일어났던 모든 것을 보았다.
“저 사내는 나의 숙부였다. 내 아버지의 형제였지.”
“그리고 폐하께선 저 자를 죽이셨지요.” 커스토디안은 아무런 감상도 담기지 않은 말투로 말했다.
“그래. 저 사내는 나의 아버지를 등 뒤에서 날카로운 청동 조각으로 찔러 죽였다. 칼(Knife)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조악하게 만들어진 청동 조각으로. 인간은 내가 태어나기 이전에도 수 세대간 서로를 죽여왔다. 하지만 내게 의미가 있었던, 내 존재를 송두리채 바꾸어놓은 살인은 그것이 처음이었다. 바로 계몽이었지.”
소년은 잠시 말을 멈추고, 라의 시선을 따라 시끌벅쩍한 마을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역사상 최초의 살인(First Murder) 역시 형제 살인이었다.” 소년은 아무런 감정도 담기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 일이 있기 수천 년 전, 인류의 남성과 여성이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모습보다는 여전히 유인원에 더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었을 때 있었던 일이었지. 하지만 나는 거기에 의구심을 품었다. 어째서 사람은 늘 자신의 형제를 죽이는가? 그것은 어째서인가? 어쩌면 그것은 진화의 흐름, 혹은 인류의 속 중심에 뿌리 깊이 새겨진 감정적 취약점일지도 모르지.”
황제 아버지가 죽은 시기 : 청동기 시대. 살해 도구 : 청동 '조각'. 밑의 댓글 봤는데 창날에 Knife라는 말은 거의 안 씀. 보통은 Blade라고 함. 사인 : 뒤에서 칼침맞고 죽음.
이거 이미 레딧에서 여러 번 올라온 질문이었고 드라크니엔을 탄생시킨 살인은 황제 탄생 훨씬 이전이라는 걸로 결론난지 오래임. 둘 다 형제 사이에 벌어진 살인이라는 우연이 있지만 세세한 부분이 다르고 황제는 자기 입으로 이미 이전에 인간이 여러 번 살인을 저질렀다고 말함.
지식이 늘었 추
잘 정리하셨네요
성경 모티브면 케인과 아벨서 황제는 아벨의 자식이 되는건가 - dc App
무수히 반복된 카인과 아벨 중에 하나의 자식이지요
카인과 아벨은 죽일 당시에 자식이 있다고 안나옴.
찾으려고 했는데 다른 분이 해주셨네요.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번역자가 책 내용 잘못 이해하고 저렇게 글을 써버리면 또 뇌피셜이 하나 생기는 거임.
그건 누구나 오독할 수 있으니까요..
뇌피셜 항목으로 얻은 지식의 예시로 길이길이 보존해야한다
그렇네. 내가 실수한 거 맞는 거 같다. 깔끔하게 정리해주니 감사합니다. - dc App
똑같은 결론 좋은 정리
훈훈하게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