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리먼은 페이비언Fabian이라는 역사가에게 함대 사령관들에게 쥐어줄 <대반역 전쟁의 축약된 역사Concise History of the Great Heresy War> 라는 책을 의뢰한다. 나름 열심히 했다지만 33번째 천년기 후반에 유행한 전기물romances들을 참고했느니, 높으신 분들이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문체를 바꾸고 흥미를 더했느니 어쨌느니 하는 가운데 길리먼은 아무튼 완성되었다는 책을 읽어보는데...



"신더만Sindermann과는 알고 지내던 사이였지. 길고 흥미로운 삶을 살았어. 그는 좋은 사람이었네."


"네. 그분의 저작 중 다수가 이단심문청의 특급 기밀로 봉해져 있습니다만은."


"그래야할 이유가 충분하고도 남지." 길리먼이 말했다. 그는 더 자세히 설명하려 들지 않았다.


길리먼은 서류더미 가장 위에 놓인 공책을 집어들고는 책을 펼쳤다.


길리먼은 첫 장을 읽자마자 눈쌀을 찌푸렸다. 분명 한눈에 한 쪽을 전부 읽어냈을 터였건만, 그의 눈길은 오래도록 책을 여는 첫 구절에 못박혀 있었다.


"황제께서 호루스를 살해하던 그날, 나는 거기에 있었다." 그는 페이비언이 자신의 책을 여는 문구로 선택한 인용구를 천천히 소리내어 읽었다. 페이비안은 행여나 그가 주군을 언짢게 하였나 두려워하였지만, 프라이마크는 만족스럽다는듯 고개를 끄덕였다.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는 첫 문장이군. 훌륭해."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페이비안이 자못 자랑스럽다는 듯 말했다. "신더만의 저서에서 인용했지요. 그분은 꽤나 글재주가 있으셨던 것 같습니다."


"글이 그 친구의 업이었으니까, 원래는." 길리먼은 빠르게 종이를 넘기기 시작했다. "좋군. 좋아. 아주 좋네, 페이비언. 자네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어."


"그럼 제가 잘 해낸 겁니까?" 페이비언이 목메여 꺽꺽대는 소리를 억누르려 애쓰며 말했다.


"그렇네." 길리먼이 두 번째 책을 집어들고는 더욱더 빠르게 읽어나갔다. 페이비언은 종이가 흐릿해보일 정도로 책장이 빠르게 넘어가는 것을 보면서 갑주 때문에 손끝이 무뎌진 게 아니었더라면 종이가 찢어지고도 남았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래. 나는 만족했네. 내 이것들을 전부 검토한 다음에 주석을 달아주지. 그런 다음 자네는 책이 보급될 수 있도록 가다듬고. 오직 함대 사령관Fleetmasters들에게만 읽혀질 것일세. 그들은 우리가 어떤 전쟁을 치르고 있는지 알아야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알려지면 아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