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슬픔을 가져오는 자]
[난민]
[보급]
제폰-Zephon의 손은 매일 그러했듯이 그의 의지를 배신하였다. 제폰은 고풍스러운 하프의, 머리카락을 꼬아 만든 하프현들로부터 금속 손가락들을 들어 올렸다. 파르르 떨리던 손가락들은 제폰이 거기에 집중하기를 멈추자 그제서야 떨림이 잦아들었다.
이러한 오작동의 뒤편에 숨어 있는 과학적 설명들에 대해서는 이미 익숙했다. 제폰은 잘려나간 양팔의 팔꿈치 어림부터 달려있는 바이오닉 의수들에서 발생하는 생물학적, 그리고 기술적 연결 불량 문제에 대한 보고서들을 이미 다 외워버린지 오래였다. 잘린 양팔의 신경 경로와 근육들은 뇌로부터 전해져 오는 정보를 전달받기에는 너무도 상태가 좋지 못했다. 의수가 인체에 접속시키기에는 너무 조악할 때 자주 발생하는, 흔한 결합 수술 실패 증상이었다. 그러나 제폰이 아는 한, 그는 스페이스 마린들 중 의수에 완전 거부 증상을 겪고 있는 유일한 전사였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그것이 바로 제폰이 이곳에 있는 이유였다. 다른 형제들은 너무 동정심이 강해 차마 그렇게 부르지는 못하고 있었지만, 제폰은 이것이 유배나 다름없는 처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방아쇠를 당길 수도, 검을 휘두를 수도 없는 자에게는, 타격대를 이끌기는 고사하고 군단에서 싸울 수 있는 자격조차 없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제폰은 외부에서의 모든 인식들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이곳 테라로 오게 되었다. 제폰은 자신의 유배 처분을 받아들여 성전사 주둔군-Crusader Host의 일원이 되었다. 그것이 마치 포상이기라도 하다는 듯 허세를 부리면서. 주둔군의 일원으로서 제폰은 다른 모든 군단들의 대표자들과 함께 수도성에 남아서, 자신의 형제들을 위해 대변할 임무를 맡고 있었다.
In Hoc Officio Gloriam. 주둔군 지부-Preceptory의 현무암 선언판 위에는 그 문장이 적혀 있었다. 그 뜻은 해석하자면 곧, 이 임무에 명예 있으리.
제폰은 그 명예라는 것이 아무리 좋게 말한다 한들 그저 모호할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특히 지금, 수도성에서 더 이상 열여덟 군단들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는 이 상황에서는 더욱 더. 제폰은 성전사 주둔군에 소속된 30명의 수도(修道)-대사들 가운데 존재하는 단 두 명의 블러드 엔젤 군단원들 중 한 명이었다. 다른 수도 대사들은 물론이고, 그와 같은 군단에 소속된 형제인 마르쿠스-Marcus의 모습조차도 최근에는 보이지가 않았다. 현재 제폰은 주둔군 지부에서의 공허하기만 한 임무들에서 손을 놓고 있었다. 더 이상은 신뢰성도 없는 전사자 목록을 만들며, 죽은 형제들의 이름을 기록하는 데에만 만족하고 있을 수가 없었다. 은하계는 불타고 있건만, 테라로는 그 어떤 신뢰성 있는 보고들도 전해지지 않고 있었다. 그의 군단과 프라이마크에 대해서도 아무런 소식도 전해지지 않았다. 정말로 그는, 전몰자들의 전당들-the Halls of the Fallen에서 블러드 엔젤 군단의 모든 형제들의 이름을 청동 장례판들에 하나하나 다 새기며, 그 고통을 곱씹어야만 할 운명이란 말인가?
그야말로 미친 짓이었다. 아니. 미친 짓보다도 더 끔찍한 짓이었다. 이건 헛짓거리였다.
생귀니우스는 살아 있다. 그의 군단도 살아 있다.
그렇기에 제폰은 다른 업무들이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개인실로 물러나버렸다.
전 제국에서도, 아니, 인류 역사상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예술 작품들 중 많은 작품들이 블러드 엔젤 군단의 전함들과 변경 요새들의 가장 깊은 곳에만 전시되어 있다는 것은, 오직 비교적 적은 수의 사람들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결코 진짜 햇빛을 보지 못할 스테인드글라스 창문들. 전설과 신화 속 괴물들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비유적인 의미에서의 신들과 반신들을 조각한 조각상들. 그리고 한때 잊혀졌다가 재발견된 기법들로 끔찍이도 세밀하게 그려진 그림들이, 결코 인간의 귀에 연주되지 않을 오케스트라단의 악기들 사이에 보이지 않게 숨겨져 있었다.
Ⅸ군단의 전사들은 Ⅲ군단의 군인 겸 장인들과 같은 방식으로 예술에 공을 들이지는 않았다. 엠퍼러스 칠드런 군단원들은 완벽의 경지를 이루기 위해 조각하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작곡하곤 했다. 그들은 보다 저열한 자들의 손으로 빚어진 그 어떤 것보다도 우월한 위대한 작품들을 만들어내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창작 행위를 통해, 엠퍼러스 칠드런 군단의 전사들은 자신들을 다른 이들보다 더 높은 위치에 두곤 하였다.
그처럼 과시적이고 오만하기 그지 없는 집중 방향은, 제폰과 그의 많은 형제들에게 있어 혐오스러운 것이었다. 노래로서, 산문으로서, 그리고 돌로서 예술을 창작하는 것은, 오직 인간 본성을 반영해내기 위함이었다. 그것은 인류와, 군단의 보다 발달된 수호자들 사이에 존재하는 거리를 이해하기 위한 한 단계일 뿐이었다. 다른 모든 군단들과 마찬가지로, 블러드 엔젤 군단은 전투를 위해 태어나고, 빚어졌다. 그들이 거둔 영예에 대한 기록은 다른 어떤 군단들과도 견줄 수 있을 만한 것이었고, 그들의 용맹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사촌 군단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들은 계몽의 문화를 기리곤 하였다. 문화에 대한 그들의 탐구는 그저 인간 본성을 이해하기 위한 것일 뿐만이 아닌, 그들이 발원한 종족과 그들 사이의 거리를 이해하기 위한 것이었다. 바로 그들이 지키기 위해 싸우고, 또 그를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정해져 있는 그 종족과의 차이를 이해하기 위해서 말이다.
삶의 20번째 여름을 맞기 이전의 제폰은, 기근의 시기에는 흙을 파먹고, 동포들의 무리와 함께 돌연변이들을 학살하던 한 부족의 소년에 불과했다. 그랬던 소년은 이제 하프를 연주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한 세기에 걸쳐 제폰의 연주 솜씨는 뛰어난 수준으로 성장하였고, 화음을 연주하는 그의 솜씨는 전장에서의 그의 재능과 맞먹을 정도가 되어 있었다.
단 한 번의 전투가 그 두 개의 재능 모두를 앗아가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의 양손을 베어버린 외계인의 칼날에 의해 모든 희망은 사라져버렸고, 그 칼날은 그의 양다리까지 불구로 만들어 그를 치욕 속에 쓰러트렸다.
아홉 차례에 걸친 바이오닉 수술 끝에야, 군단의 아포세카리들은 제폰에게 달갑지 않은 현실을 마주할 것을 권하였다. 이식 수술은 정상적으로 잘 이루어져 있었다. 그저, 그의 생리적 구조가 증강 시술 과정에 적합하지 않을 뿐이었다.
제폰은 여전히 연주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의 의수가 떨릴 때마다 귀에 거슬리는 불협화음이 연주되고 금속 손가락들은 자꾸만 미끄러졌지만, 제폰은 연습을 계속하였다. 볼터 사격 연습 역시 계속하고 있었다. 이제는 노력하면 다섯 번에 한 번 정도는 방아쇠를 당겨 볼터를 발사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발전이라 할 수 있었다.
조준 신경도 망가져 있었다. 새로운 의수는 예전의 팔만큼이나 강한 힘을 지니고 있었지만, 미세한 떨림은 이전의 정밀하기 그지 없었던 사격 솜씨를 망가트려 놓고 있었다. 검술 솜씨 역시도 끔찍하리만치 망가져 있었다. 정확했던 균형 감각과 가벼웠던 발놀림 모두, 복원된 다리 관절에서 무작위적으로 발생하는 긴장 증세와 경련 증세로 인해 망가져버린 채였다.
그가 유배형을 받은 뒤로. 이곳 테라로 부임한 이후로도 이런 결함은 계속해서 유지되고 있었다.
In Hoc Officio Gloriam. 이 임무에 명예 있으리. 그 문장에 어찌나 실소가 터져 나오던지.
제폰은 다시 한 번 양손을 가느다란 하프 현 위에 올려놓았다. 손은 다시 한 번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하였다. 그때, 문의 벨이 단조로이 울렸다.
제폰의 몸이 얼어붙었다. 제폰은 본능적으로 벽에 걸린 자신의 병기들을 향해 눈을 돌렸다. 인장관과의 마지막 접견을 끝으로 그에게 방문객이 찾아오지 않은지가 벌써 일년이 넘은 지 오래였다. 마지막 접견에서 제폰은 자신의 군단을 수색하기 위한 작은 호위함 한 척의 지휘권을 내어 달라고 재차 요청을 했었고, 말카도르는 다시 한 번 그 요청을 거절했었다. 그와 같은 요청을 한 것이 그것으로 벌써 30번째였다.
제폰은 자리에서 일어나 하프를 옆쪽으로 치워두고, 바퀴 형태의 문 손잡이를 열기 위해 검소한 방 안을 가로질러 갔다. 한때 그의 허벅지와 무릎이 달려 있던 곳을 대체하고 있는 제폰의 왼다리는 기계장치가 부드럽게 움직일 때마다 웅웅거렸다. 그의 오른발은 4개의 날카로운 발톱이 달린 외계인의 손에 잘려나가, 그 대신 달린 의족이 바닥을 디딜 때마다 철컹 소리를 내고 있었다.
문이 활짝 열리자 경첩에서 삐걱이는 소리가 나며 기름칠이 시급히 필요함을 일깨워주었다. 제폰의 눈앞에는 장신의 커스토디안 한 명이 우뚝 서있었다. 전사는 4m 길이의 가디언 스피어를 자신의 곁에 꽉 쥐고 있었다. 육중한 황금 갑주는 웅웅거렸고, 원뿔 모양의 헬멧에 달린 안구-렌즈들은 타오르듯 번쩍이고 있었다.
“슬픔을 가져오는 자-the Bringer of Sorrow를 찾아왔다.” 커스토디안이 말했다.
제폰은 파워 아머를 벗은 채 오직 검은 튜닉만을 걸치고 있었고, 그가 보기에 그 모습은 눈앞의 완전 무장한 전사와는 기이하리만치 대조적으로 느껴졌다. “접니다.”
“내 예상과는 많이 다르군.” 커스토디안이 말했다. 커스토디안은 목 깃 부분에 달린 잠금 장치를 풀고 투구를 벗었다. 투구 아래로 드러난 얼굴에는 나이를 먹은 기색이 전혀 없었으며, 커스토디안의 얼굴 위에는 우르한 의식-Urhan ritual으로 인한 흉터가 나있었다. 마치 턱과 목을 따라 침이 다섯 줄기로 흐른 듯한 모습의 흉터였다. “내 이름은 디오클레티안이다. 네가 정녕 슬픔을 가져오는 자인가?”
다시 한 번, 그 호칭은 제폰의 가슴을 강하게 찔러 들어왔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전장에서 부하들을 이끌었을 때 불리웠던 별칭입니다.” 제폰이 대꾸하였다. “실망하신 듯 들리시는군요.”
“실망했으니까. 나는 유배 중인 투사를 기대하고 있었다만, 내 눈에 보이는 것은 그저 바이오닉 장치를 단 장애인일 뿐이군. 허나 내가 실망했건 하지 않았건, 그것은 관계 없는 일이다. 네 무장 시종 서비터를 작동시켜 전투 준비를 갖추어라.”
제폰은 디오클레티안의 말에 마음속으로 밀려드는 생생한 희망의 감각에 싫증을 느꼈다. 그 헛된 희망으로 인한 수치심에 제폰은 발끈하였다. “인장관 각하께서 성전사 주둔군의 일원들 중 그 누구도 각하의 재가 없이 움직이는 것을 금지하셨다는 것은 이미 알고 계실 텐데요.”
“커스토디안 가드와 우리가 수행할 작전에 대해 인장관이 가지고 있는 권한이 과연 어디까지인지는 나중에 알려주도록 하지. 허나 이 경우에는 인장관이야말로 네게 우리를 도울 것을 명한 자이다. 이제, 당장 무장을 갖추도록, 슬픔을 가져오는 자여.”
주저하며, 제폰은 양손을 들어 올려 자신의 양팔이 팔꿈치 아래로 완전히 금속 지지대와 장갑판, 그리고 근육 케이블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을 보여주었다. 때맞춰 그의 손가락들은 다시 한 번 그의 의지를 배반하고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하였다.
디오클레티안은 제폰의 양손을 몇 초 동안 지그시 바라보더니, 눈을 한 번 깜빡였다. “네 양팔의 불구 상태에 대해 내가 특별히 알아야 할 것이라도 있나?”
제폰은 양손을 내렸다. “전 볼터를 쏠 수 없습니다. 저는 제 마음대로 양손을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그럼 최소한 검이라도 들 수 있나?”
제폰은 자신이 조롱이라도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했지만, 곧 그럴만한 이유가 없다는 것을 떠올렸다. “가능은 합니다만 그리 믿을 만하지는 않습니다.” 제폰이 스스로의 상태를 인정하며 말했다.
“네 무가치함은 기억해 두겠다. 이제 네 무장 시종 서비터를 작동시켜라. 준비가 끝나면 날 따라오도록.”
“어디로 가는 겁니까?”
“먼저 오피우쿠스 주랑-Ophiukus Colonnades를 통해 세베라칸 격리 지구-Seberakan Isolation Compound로 향할 것이다. 그런 뒤에는 통합 기념 전당-Hall of Unity Memoria로 향한다.”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만. 어째서입니까?”
“때가 되면 알게 될 것이다. 먼저 복종하도록.” 디오클레티안은 다시 한 번 감정 없는 시선으로 제폰을 길게 응시하였다. 오직 딱 한 번 눈을 깜빡거린 것을 제외하면 디오클레티안의 시선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이 금빛 화신들이 우리보다는 더 인간적이라고 여겨질 수가 있는 거지? 제폰은 머릿속으로 의문스레 중얼거렸다.
“커스토디안이시여?” 제폰이 물었다.
“내가 계속해서 너를 기다리고 있다.” 디오클레티안이 대꾸하였다. “내 인내심은 무한하지 않다, 슬픔을 가져오는 자여.”
제폰은 벽에 달린 통신기로 걸어가, 자신의 병기 담당 시종들에게로 연결시켜주는 코드를 입력시켰다. “현재 제 상황이 상황인 만큼, “제폰”이라 불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 편을 선호한다면. 그 칭호가 견딜 수 없으리만치 과장된 것이라는 데에는 동의하는 바이니 말이다. 장애인에게는 특히나 더.”
제폰은 처음으로 화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생귀니우스의 피의 이름으로, 그것은 과연 반가운 일이라 할 수 있었다.
“커스토디안과 대화를 나누어 본 것은 당신이 처음입니다만.” 제폰이 말했다. “당신의 동족들은 모두 그렇게 직설적입니까?”
“그러는 네 동족들은 모두 그렇게 자기 연민에 도취되어 있나?” 디오클레티안은 마치 미소라도 지을 듯이 보였지만, 그 표정은 여전히 무뚝뚝하기 그지없었다. “이제 부탁컨대, 서두르도록. 내가 오늘 거둬야 할 길 잃은 영혼은 너 혼자만이 아니다.”
“길 잃은 영혼이라 하셨습니까?”
“우리가 세베라칸 격리 지구로 향할 것이라는 이야기는 이미 해주었을 텐데.”
제폰은 창백한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세베라칸 지구는 워마스터의 기치 아래에서 행군하였던 반역자들이 수용되어 있는 장소였다. “혹시 제가 당신의 말에 담긴 농담을 못 알아들은 것입니까, 커스토디안이시여?”
“내 말에 농담 따위는 담겨 있지 아니하다. 이제 날 따라오도록. 나와 죄수 몇을 풀어 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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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부터 힙스터 포스가 범상치 않다. 사람 앞에서 대놓고 장애인이라고 까버리네.
ADB한테 진짜 블러드앤젤 소설 맡겨보고 싶음.. 아주 좋아 미칠 것 같은데.
그리고 디오클레티안 이인간은 진짜 ㅋㅋㅋ
힙스터ㅋㅋㅋㅋㅋㅋㅋㅋ인간답닼ㅋㅋ
커스토디안 ㅡ ㅡ;; - dc App
무한의 지성과 그의 아들들은 안 까이는 곳이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