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오클레티안과 제폰은 황궁 내부를 따라 걸어갔다. 디오클레티안은 사방에 보이는 모습들로 기분이 나빠져 있었다. 그와 제폰은 북적이는 복도들을 나란히 걸어가며, 앞길을 막는 순례자들과 난민들을 흩어버렸다. 두 전사는 투구를 쓰고 있는 덕분에 그들의 더러운 몸에서 나는 짠 내 나는 땀냄새와 불결한 숨결을 맡지 않을 수 있었다. 디오클레티안은 역겨움에 끙 하고 신음하며, 자신의 복스-그릴을 봉인하고 갑옷 내부의 공기 공급 시스템에만 의지하여 호흡하였다. 오피우쿠스 주랑의 행진용 복도는 전쟁으로 인해 몰려든 집 없는 난민들로 꽉 차있었다. 더러운 행색의 난민들은 기침하고 코를 훌쩍이며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개중 몇몇 이들은 아예 흐느껴 울고 있었다.
디오클레티안은 자신을 판단하 듯 올려다보는 시선들을 느꼈다. 분명 왜 그와 그의 형제들이 자신들을 구해주고, 은하계 규모의 전쟁에서 벌써 승리를 거두지 않은 것일지 의문을 품고 있는 것이리라. 그들의 무지는 마치 어깨 위에 짊어진 무거운 짐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그 무게는, 그에게 최소한으로 남아 있는 고결한 마음이 움직인 데에 따른 반응일 뿐이었다. 그보다는 훨씬 덜 명예로운 그의 짜증은, 난민들의 무력한 시선 속에 담긴, 저능아와 짐승과도 같은 나약함으로 인한 것이었다. 대체 이들은 왜 이 자리에 있는 것인 가? 왜 별들 사이에 남아, 자신들의 고향 행성들을 위해 싸우지 않고 이 자리에 있는 것이란 말인가?
“무언가 근심거리라도 있으십니까?” 제폰이 물었다.
“이 쓰레기들이지.” 디오클레티안이 대꾸하였다. 스페이스 마린, 제폰이 멸시가 담긴 신음소리를 내는 것을 들은 디오클레티안은 자신이 너무 솔직하게 대답해버린 데에 즉시 후회하였다. 커스토디안은 자신이 갑작스레 제폰과의 대화에 끌려들어지게 될 위기에 처했음을 감지하였다.
“이 쓰레기들이야말로 우리가 싸우는 이유입니다.” 제폰이 말했다. 제폰은 건틀렛을 낀 손으로 손짓하였고, 파워 아머의 서보 장치는 으르렁거리듯 신음하였다. 근처에 있는 인간들 여럿이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고, 그들의 경외심은 빠르게 공포심으로 변하였다. “이 남녀들 모두.” 제폰이 이어서 말했다. “이들이야말로 저희가 싸우는 이유란 말입니다.”
디오클레티안은 코웃음을 쳤다. 그 소리는 축축하고도, 추했다. “나는 황제 폐하를 위해 싸운다.”
“황제 폐하의 꿈을 위해서 싸우는 것이지요.” 제폰이 즉시 응수하였다. “제국을 위해서 말입니다.”
“의미론을 꺼내는군. 황제 폐하 없이는 폐하의 꿈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직 폐하만이 그 꿈을 실현시키실 수 있다. 폐하 외에 다른 이들이 아니라.”
“그럼 저희 둘 다 옳은 것이로군요.” 제폰이 대꾸하였다.
몸만 장애가 있는 게 아니라 정신도 망상 속에 빠져 있군. 디오클레티안이 생각했다. “내가 보기에는 말이다, 스페이스 마린.” 디오클레티안은 대담히 말했다. “너희 족속들 중 너무 많은 이들이 황제 폐하보다는 제국을 위해 싸울 것이라고 결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군. 만일 너희들 중 대다수가 우리 만인대와 같은 방식으로 사고를 했더라면, 어쩌면 우리는 오늘 이 자리에 서있지 않았겠지. 지금처럼 우리가 아는 모든 것들의 종말에 대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말이다.”
다행히도, 제폰은 입을 다물고 조용해졌다.
디오클레티안은 거대한 전당 안으로 들어갔다. 한때 이곳에는 줄지어 늘어선 조각상들과 크고 넓은 창문들로 가득한 곳이었다. 그러나 이제 이곳은 옹기종기 모여있는 쓰레기 같은 난민들과 겁쟁이들로 가득 차 있었다. 라스라이플을 들려주고 수송선에 가득 태워 최전선으로 보내야 할 자들로 말이다. 디오클레티안은 시선을 들어 행진용 복도의 가장자리에 줄지어 서있는 더러운 난민들의 무리를 바라보았고, 표적을 조준하는 십자선 또한 그의 시선을 따라 움직였다. 난민들은 무리를 이룬 채, 건조 전투 식량과 바짝 건조된 단백질 음료가 담긴 쟁반을 들고 있는 서비터들의 주위에 몰려들어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제폰의 침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당신은 저희가 폐하의 제국이 아닌 황제 폐하만을 위해 싸운다고 말하셨지요. 그렇다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만일 황제 폐하께서 계시지 않다면, 그래도 저희는 계속 싸울 것입니까? 만일 황제 폐하만이 이 거대 제국을 이끄실 수 있는 분이시라면, 이 제국을 일으켜 세울 이유가 대체 무엇입니까? 저희는 그저 의미 없는 전쟁에 스스로를 내몰고 있을 뿐이 아닙니까?”
“불가능한 일을 말하려 하는군.” 디오클레티안이 고집스러우리만치 단호한 목소리로 즉각 대꾸했다. “인류는 반드시 지배를 받아야만 한다. 그리고 인류에게는 지배자가 있지. 이 대화는 이것으로 끝이다.”
그러나 그 단호한 어조에도 불구하고, 디오클레티안은 익숙지 않은 사색으로 피부가 근질거리는 것을 느꼈다. 황제가 사라진다면, 그 누가 인류를 지배한단 말인가? 대체 어떤 하등한 정신을 가진 자가 황제를 대신해 그 지배권을 차지한단 말인가? 그들은 수천 가지 방식들 중 대체 어느 방식으로 황제의 비전을 이루는 데에 실패하게 될 것인가?
그와 같은 생각은 달갑지 않은 뿐더러, 그의 정신을 산만하게 만들기까지 하였다. 디오클레티안은 그 생각들 때문에 자신의 몸이 느려지는 것 같은 감각을 느꼈다. 그 생각들은 마치, 그의 혈관들 속을 헤집고 다니는 검은 독과도 같았다.
두 명의 인물이 자신들의 앞에 나타나자, 두 전사는 기계적으로 우뚝 멈춰 섰다. 디오클레티안의 창은 무자비하리만치 정확하게 움직이며 잔상을 그렸고, 곧 그 창끝은 아래로 향하며 두 난민들 중 한 명의 목을 향해 겨누어졌다. 날카로운 창날이 빠르게 공기를 가르며, 부드러운 금속성을 울렸다.
“신성한 통합이여!” 제폰이 목소리를 죽이며, 복스 너머로 욕설을 내뱉었다. “대체 무슨 짓입니까?!”
디오클레티안은 눈이 휘둥그레진 어린 소년을 내려다보았다. 테라 표준 연령 기준으로 7살이나 8살을 채 넘기지 않는 나이로 보였다. 아이의 곁에 서있는 인물은 그보다도 더 작았다. 어린 소녀였다. 피부색이나 안면 구조의 유사성으로 보아, 소년의 한두 살 더 어린 남매이리라. 디오클레티안은 개조되지 않은 보통 인간들의 연령을 짐작하는 데에는 재능이 없는 편이었다. 소녀는 공포에 질려 휘둥그레진 눈으로 커스토디안을 올려다보았다. 군중들 사이에서 비명소리가 터져 나오고, 두 아이의 어머니는 애처롭게 울부짖었다. 두 아이의 입은 떡 벌어져 있었고, 그 입술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디오클레티안은 소년의 목으로부터 창끝을 들어 올린 뒤, 투구의 복스-그릴을 다시 작동시키고 큰 목소리로 말했다. “사과하지.” 디오클레티안은 정중하고도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 아이들은 복스를 통해 걸러진 거친 목소리에 몸을 움찔거렸다.
제폰은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양손을 들어 자신의 헬멧을 벗었다. 제폰은 헬멧을 벗은 맨머리로 두 아이와, 아이들을 향해 다가오는 어머니 앞에 섰다. 소년은 자신을 끌어당기려 하는 어머니의 팔을 떨치며, 다시 한 번 디오클레티안의 앞에 섰다.
“혹시 황제 폐하신가요?”
디오클레티안은 조금의 미동도 없이 서있었다. “그것은 농담인가?” 디오클레티안이 물었다. 그 목소리에 담긴 어조에 소년은 몸을 주춤거렸다.
제폰은 쓴 웃음을 지으며 소년을 내려다보았다. 제폰이 몸을 낮게 숙이자, 그 동작으로 인해 그의 붉은 갑주에서 큰 소리로 마찰음이 났다. 제폰은 한쪽 무릎을 꿇고 소년의 앞에 앉았다. 그렇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제폰은 여전히 소년보다 세 배는 더 키가 컸다.
“아니란다, 소년이여.” 제폰이 대답하였다. “이분은 황제 폐하가 아니시란다. 황제 폐하를 아주 잘 알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소년의 양쪽 눈가로부터 눈물이 흘러내렸다. 시각을 압도하는 적색과 금색에서부터 작동 중인 파워 아머가 내는 웅웅거리는 소리까지, 눈앞에 있는 두 거인 전사들의 거대한 모습은 소년의 모든 감각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소년의 앳된 얼굴 위로는 그 아이가 느끼고 있는 경외심이 훤히 드러나고 있었다. 경외심과 절박함, 그리고 두려우리만치 강하게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이.
만일 제폰이 여전히 헬멧을 쓰고 있기만 했더라면, 디오클레티안은 복스를 통해 자신의 짜증을 전했을 터였다. 제폰은 커스토디안의 짜증 어린 기색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듯 보였다. 그게 아니라면, 그저 그것을 무시해버리기로 한 것이던지.
“네 이름이 무엇이냐, 어린 아이야?”
“다락-Darak이요.”
“다락이구나.” 제폰이 대답하였다. “내 이름은 제폰이다. 그리고 내 일행이 위엄 있어 보이기는 하나, 그는 황제 폐하가 아니시다. 무엇 때문에 그러느냐, 아이야.”
소년이 더듬더듬 말했다. “저…. 저는 황제 폐하께 저희가 언제 집에 갈 수 있을지 묻고 싶었어요. 부모님께서는 아직도 그곳에 계신 걸요. 저희는 부모님을 거기 남겨두고 왔어요. 피난선까지 가야 해서요.”
디오클레티안은 어린 소녀를 지키듯 감싸안고 있는 여성을 힐끗 흘겨보았다. 그럼 아이 어머니가 아니었던 게로군. 여성의 안면 구조에는 아이들과 한 가족임을 시사하는 유사성이 존재하고 있었다. 분명 무언가 유전적인 연결성이 있을 터였다. 아마 고모나 나이 많은 사촌이리라. 디오클레티안은 지저분한 여성의 얼굴 위로 움직이고 있는 목표 조준점을 희미했던 관심과 함께 치워버렸다.
제폰은 여전히 움직이려 들지 않고 있었다. “그랬구나.” 제폰이 말했다. “네 고향 행성의 이름이 무엇이냐?”
“블레이스-Bleys요. 저흰 블레이스에서 왔어요.”
제폰은 마치 자기가 그 행성을 잘 알고 있기라도 한 것마냥 고개를 끄덕였다. 디오클레티안은 Ⅸ군단의 전사들 중 한 명이라도 그 블레이스라는 행성에 발을 디뎌본 적이나 있을지 의심하였다. 그곳은 그저 아무 쓸모도 없는 벽지에 불과할 뿐이었다. “아주 멀리서 왔구나.” 제폰이 말했다. “테라에 온 것을 환영한다, 다락아. 이곳에서 너는 안전하다.”
지금은 그렇겠지. 디오클레티안이 말없이 덧붙였다.
“네 부모의 직업이 무엇이냐?” 제폰은 소년에게 물었다. “만일 네 부모가 싸우고 있었다면, 분명 군인이었겠구나.”
소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화성에서 온 회색 기계 인간들과 싸우고 계셨어요.”
“내 부모도 네 부모와 마찬가지로 전사였단다.” 제폰이 말했다. 그의 부모가 이미 1세기도 전에 바알의 두 번째 위성의 방사능 사막 위에서 죽었다는 말은 굳이 하지 않았다. 지금쯤 그 두 사람의 재는 황야의 바람에 날리는 오염된 흙먼지에 불과할 터였다.
다락은 눈을 들어 디오클레티안을 바라보았다. “당신의 부모님도 군인이셨나요?”
“아니.” 디오클레티안이 말했다. “그들은 이미 오래 전에 죽었다. 내 어머니는 이질(痢疾)*로 죽은 노예였고, 아버지는 통합의 원칙에 반대하다가 황제 폐하께 처형당한 야만족의 왕이었지.”
(*역주: 변에 피 섞인 고름이 섞여 나오며 설사를 일으키는 증상을 보이는 전염병.)
“어…. 뭐라구요?”
“너와의 대화는 끝났다.” 디오클레티안이 소년에게 말했다.
다락은 눈을 가늘게 뜨고 디오클레티안을 쏘아보더니, 다시 시선을 제폰에게로 돌렸다. “부모님께로 돌아가고 싶어요. 황제 폐하께 스페이스 마린님들을 보내달라고 여쭤보고 싶어요.” 소년은 제폰의 가슴이 아려올 정도로 확신 어린 어조로 단언하였다. “황제 폐하께서는 당신들을 보내주실 수 있으시겠죠? 그렇죠?”
“물론이다.” 제폰이 말했다. “어쩌면 그렇게 하실지도 모르지. 다음에 폐하 앞에 서게 된다면, 내가 황제 폐하께 블레이스에 대한 계획이 계신지 물어보마.”
소년의 눈에 비친 희망에 디오클레티안의 속이 뒤틀렸다. 그는 이 바보 같은 대화의 중심부를 향해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향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우리는 이제 임무를 수행하러 가야 한다.” 디오클레티안이 간결한 어조로 말했다.
“그 말대로.” 제폰이 대꾸하였다. “이제는 황제 폐하께서 내리신 임무를 수행하러 가보아야겠구나, 다락. 시간을 내어 대화를 나누어준 데에 감사를 표하마.”
소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폰은 다시 헬멧을 머리에 썼다. 제폰의 목소리가 복스-그릴을 통해 거칠고도 느릿한 쇳소리로 변해 나왔다. “동생을 잘 보살펴주거라, 다락.”
다락은 자신의 고모와 여동생에게로 걸어갔다. 다락의 여동생은 디오클레티안에게 겁을 먹어 조용히 흐느끼고 있었다. 디오클레티안은 자신의 곁에 선 제폰과 함께 걸음을 옮겼다. 커스토디안의 갑옷 너머로 느껴지는 난민들의 시선이 이전까지는 짜증나게 느껴졌다면, 지금은 거의 지루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무의미하도록 감상적인 생물이로군, 그대는.” 디오클레티안은 자신의 새 동행자에게 복스를 통해 말을 걸었다.
앞으로 나아가며, 디오클레티안은 제폰이 한숨을 내쉬는 소리를 들었다. “내가 당신을 실망시켰다고 하였지요, 커스토디안이시여. 제가 단언컨대, 저 역시도 마찬가집니다. 저는 단 한 번도 만인대의 일원과 대화한다는 것이 이처럼 무감정한 대화를 나누게 되는 것인지는 몰랐습니다.”
디오클레티안은 제폰의 말에 대답할 가치가 있다고 여기지 않았다.
디오클레티안은 제조 장관을 데려오기로 한 카에리아가 자신보다는 운이 좋았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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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스도 ㄴㅇㄱ를 외칠 저 힙스터성을 보라. 내가 볼 때 그 위키에서 커가들이 가졌던 모든 나쁜 이미지들은 다 쟤가 만들었다. 황제밖에 몰라서 다른 애들한텐 신경도 안 쓴다느니, 감정이란게 없다느니, 디오클레티안 저 새끼만 보면 팩트 그 자체 아니냐.
황제만 있으면 돼!
디오클레티안은 진짜 다른 소설에서도 보고픔. 제폰도 같이.
그리고 그런 내용이 나올만한 사건이 하나 남아있지...
디오클레티안 미친새낀가 ㅋㅋㅋㅋㅋ 혐성 무엇 근데 소설에서 주연을 저렇게 까내리는데는 후반에 상승하기 위한 장치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은데 과연
스페이스 마린과 커가의 차이를 이런 두 사람의 태도를 통해 명확하게 드러나는 것 같군요. 비록 디오클레티안이 별종이라 하더라도요. - dc App
디오 새끼가 발도르와 같은 만인대라는게 믿겨지질 않는다...
커가 설정번역에서 커가들은 정규 군사 집단이라기보단 사병 집단으로서의 면모가 강하게 드러난댔는데 그땐 뭔 소리지 했는데 디오클레티안 태도 보고 딱 이해가 가더라.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