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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달렸다.


양이 머리 속에서 떠오르는 기억의 파편. 그것은 자신이 쉼없이 뛰어가던 장면이었다. 광소를 터뜨리며 그녀는 급히 패치 섬을 가로지르며 달려갔다. 양은 자기가 누군가의 손을 붙잡고 달려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그리고 그건 루비의 손이 아닐까하고 추측도 해보았으나 피투성이여서 확신할 수는 없었다.


이제는 양은 클럽에 있었다. 주니어의 클럽. 일정한 주기로 명멸하는 불빛들은 이리저리 고동치며 매우 아름답게 반짝거렸다. 이 곳의 음악은 다른 곳처럼 요란하게 울려퍼지지 않았다. 그 대신에, 중후하고 메아리치는 진동으로 사람들을 뒤흔들었다. 뼈마디가 덜덜 떨리고 창자가 뒤틀리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양은 그래서 이 클럽이 좋았다.


{한잔 더 줘.}


{이제 충분할 정도로 많이 마셨다고 생각하지 않냐?}


{아니. 그러니까 빨리 한잔 더 줘.}


{너 내가 여기 들여보내준 것만으로도 감사히 여겨라.}


베이스 기타의 특유의 저음이 쿵쿵거리며 쉬지않고 귓전을 울렸고, 슬프게 울부짖는 색소폰의 울림이 주변을 가득 메웠다.


{정말이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이라니까.}


허나 불빛도, 시끄럽게 울리던 음악도 사라졌다. 콘크리트 바닥과 가죽 의자들도 마찬가지로 사라졌다. 이제 바닥은 나무 판자로 이루어져 있었고, 더 조용한 장소, 또 다른 술집이었다. 얼마전에 주니어의 술집이 단속에 걸려서 어쩔 수 없이 다른 곳으로 와야만 했다. 양의 손가락이 얼룩진 물결무늬를 따라 흘러갔다. 이 곳의 음악은 전과는 달랐다. 활기차고 강렬하지 않았다. 그 대신에 피아노의 희고 검은 건반들이 만들어내는 정적인 선율이 울려퍼졌다.


양은 이런 음악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에 한 파우누스가 그녀의 옆에 와서 앉았다. 지저분한 머리 위로 한 쌍의 사슴 귀가 비쭉 솟아오른 귀여운 인상의 남자였다.


{안녕. 이쁜이.}


{...그래. 안녕.}


이제 양은 전혀 모르는 얼굴들과 함께 어딘지 모를 곳에 있었다. 그들은 웃고 있었지만, 양은 웃지 않았다. 고통이 그녀의 전신을 가득 채워갔다.


{더스트 맙소사! 이건 누구 피야! 이거 대체 누구 피냐고!}


붉은 핏물이 모든 사물과 사람들을 뒤덮었고, 찢어진 피부의 틈새를 막아보려고 양이 목덜미를 움켜쥐었지만.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 크하하하! 그렇고말고!


크흐흐! 농담은 웃겼지만, 왜 양은 우는 것인가? 죽은 이들은 그녀의 곁에 누워있는데 말이다. 그들은 웃으면서 살아있었지만 양이 그들을 죽여버렸다. 그녀는 사람을 죽이는 것이 좋았다. 이제야 양은 깨달은 것이다. 목이 반쯤 잘린 채로 광기어린 웃음소리를 내뱉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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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위에 있는 로스의 침대에 머리를 찧을 뻔하며 양은 벌떡 일어났다. 또다시 찾아온 악몽. 그것들은 그녀가 「떠오르는 여명」호에 승선한 뒤로부터 계속해서 양의 무의식 속에 스며들고 있었다. 양이 깨어있는 동안 집요하게 분노하고 잔혹해지도록 충동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순수한 야수성과 함께 잠잘 때도 그녀를 공포에 질리게 만들었다. 양은 그게 그저 악몽에 불과한지, 아니면 일종의 회상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전혀 다른 무언가인지 알지 못했다.


'루비! 루비에 대해서 생각해!'


자신의 여동생에 대해서 기억해내는 것은 끓어오르는 충동을 약화시키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착하고 순수한 내 여동생...'


그제서야 양의 숨소리가 점차 진정되었고, 몇분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상태가 원래대로 되돌아왔다.


'휴우... 제국 내에서 내가 도대체 무엇을 이룰 수 있을까? 죽음과, 무자비와, 광기로 가득찬 이 세상에서? 확실한 건... 이대로 가다가는 내가 얼마 버텨내지 못할거야...'


양은 몸을 부르르 떨며 몸 주위를 감싼 담요를 꼭 끌어당겼다. 강하를 하기 전까지는 앞으로 일주일 정도를 남기고 있었다. 눈가를 비비며 침대에서 일어난 양은 라인이 자리에서 일어난 것을 보았다. 침대에서 일어난 그는 무언가를 손아귀에 꽉 움켜쥐고 있었다.


"라인?"


양이 목소리를 낮게 낮추어서 물어보자 라인이 고개를 들었다. 그는 조용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뺨을 따라 흘러가는 눈물이 그의 풍성한 수염을 적셔갔다.


"라인? 너 괜찮아?"


입술에 집게손가락을 갖다대며 라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편안한 침대에서 벗어난 양은 라인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갔다. 양은 라인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았다. 그러자 양은 땀으로 범벅이 되고 열기가 피어오르는 그의 피부가 느껴졌다.


"난 괜찮다. 양."


양은 아마섹으로 가득한 휴대용 술병을 던져줬고, 그걸 받아든 라인은 천천히 그리고 무기력하게 술을 들이켰다.


"뭐가 잘못됐어?"


라인이 질문에 대답을 안하자 양은 한숨을 쉬며 다시 물어보았다.

"넌 대체 누굴 잃어버린 거야?"


고개를 푹 숙인 라인은 조용히 중얼거리며 대답했다.


"내 마누라. 내 아들. 내 딸들."


목에 걸린 아퀼라의 장식들을 매만지며 그는 입을 열었다.


"왜? 도대체 왜 나만 살아남았지?"


피로에 지치고 실핏줄이 돋아난 그의 눈동자 아래로 눈물이 넘쳐 흘렀다. 양은 그의 곁에 가서 앉았다. 라인의 말은 그녀에게 익숙한 것이었다. 양은 렘넌트에 남겨두고 온 그녀의 친구들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그들이 세상을 떠나거나 희생을 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양의 마음도 천천히 무너져 내렸다. 심장이 육체 밖으로 찢어져 나오는 것처럼, 비탄에 잠기는 것은 끔찍한 경험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 그런 참사가 일어났을 때 왜 나만 살아남았을까? 오, 황제폐하시여. 저를 구원하소서. 네디는 일곱살이었어. 제기랄! 일곱살이었다고! 그 빌어먹을 놈들이 내 딸을 잡아먹었어. 역겹고, 징그럽고, 멍청한 새끼들."


양은 뭐라고 말해야할지 몰랐다. 그러거나 말거나 라인은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황제폐하시여, 저를 가호하소서. 황제폐하시여, 저를 가호하소서..."


양은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너도... 자원했구나."


"그래. 어차피 워아디어에서 내게 남은 건 없었으니까 말이야."


그 말에 양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옆에 앉아있는 라인과 양은 서로 동병상련의 처지였다.


"미안하다."


손등으로 눈물을 닦아내면서 라인은 훌쩍이며 말했다.


"아마섹이 내 아픔을 끌어낸 것 같군. 그것들을 들고와서는 안되었는데... 그레이프푸루트. 그건 네디가 가장 좋아하던 과일이었는데... 네디. 세프. 마드라. 일리스."


그 이름들을 나열할 때마다 그의 손가락이 아퀼라에 장식된 구슬들을 훑으면서 지나갔다.


"...네디. 세프. 마드라. 일리스."


"그 애들도 너가 옳은 결정을 내렸다는 것을 알고 있을거야."


양은 최선을 다해서 라인을 위로하고자 노력했고, 그는 슬픈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렇갰지. 그리고 내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한 슬픔으로 임무를 망치지는 않을테니까 걱정하지는 말고. 오히려 더 의지를 더 불태워서 더욱 나은 성과를 내보일테니까."


대답을 들은 양은 마주 웃어보이며 물을 더 마시라고 조언했다. 그리고 라인은 그녀의 말에 따라 물을 벌컥벌컥 들이키며 목을 축였다.


"고맙다. 양."


"별 말씀을."


"저기... 혹시 실례가 안된다면 너의 여동생에 대해 말해줄 수 있나? 만약 별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면 괜찮지만..."


양은 손을 들어올리며 라인의 말을 끊었다.


"괜찮아. 정말로 난 괜찮아. 말해줄게."


양은 라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뭐부터 이야기해야 좋을까... 음... 일단은 내 여동생의 이름은 루비 로즈고. 나보다 두살 정도 어려. 게다가 빨간색을 엄청나게 좋아했었는데..."


아련히 떠오르는 추억을 회상하면서 양은 미소를 지었다.


"딸기가 루비가 가장 좋아하는 과일이였고, 항상 엄마가 갖다준 낡고 해진 망토를 입고 다녔어."


그렇게 말하며 양은 자신의 머리카락이 손가락을 감싸도록 돌돌 감았다.


"그리고 항상 얼굴에 화사한 미소를 띄우고 돌아다녔었지."


그 말에 라인은 살짝 웃으면서 말했다.


"재미있는 소녀였나 보구만."


"...그렇지. "


비콘 아카데미에서의 첫째날을 기억하며 양은 작게 웃었다.


"약간 특이한 성격을 가져서 처음에는 적응하는데 애를 좀 먹었지.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항상 웃으면서 다녔어. 마지막 숨결을 내쉬는 그 순간까지도..."


자기도 모르게 머리카락을 세게 잡아당기며 양은 힘들게 말을 이어갔다.


"내 여동생은..."


그녀의 바이올렛 색의 눈동자 주변으로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루비는 나한테 절대로 포기하지 말고 힘내라고 말했어. 그리고 나는 알겠다는 듯이 울음을 참으며 웃어보였지."


"어떻게 죽었는지 물어봐도 되나?"


양이 가까스로 유지하던 미소는 희미해졌다. 만약 루비의 죽음이 위안이 될만한 것이 있다면은, 그것 밖에는 없었다.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에도 불구하고, 양은 환하게 웃으면서 라인의 질문에 답했다.




"...영웅처럼.(Like a he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