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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사격 명령을 기다리면서 손마디가 하얗게 불거지도록 라스건을 꽉 움켜쥐었다.


뒤에서 울려퍼지는 우레와 같은 포성이 양의 고막을 두들겨댔고, 바실리스크 포대에서 쏘아대는 포탄이 연이어 착탄하면서 거대한 불기둥이 연거푸 치솟아 올랐다. 착탄 지점 주위로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먼지구름 안에서 오크들의 차량들이 갈기갈기 찢겨져나갔다. 그중에서도 무자비하게 쏟아지는 포탄 세례에 직격당한 차량들은 형체도 없이 증발해버렸다. 그리고 더 많은 차량들이 포격을 피해 황급히 방향을 틀다가 뒤집히면서 안에 타고 있던 오크들을 깔아뭉갰다. 천지를 뒤흔드는 포성이 한번씩 울려퍼질 때마다, 오크들이 수백 마리씩 산산조각이 나기 시작했다.


카울린의 롱-라스건이 차량을 몰고오는 운전자들을 제거하기 위해서 계속해서 고출력 광선을 쏘아댔다. 롱-라스건의 사정거리 내에서 쏘아진 붉은 빛줄기들의 대부분은 목표에 명중하지 못했다. 비록 오크들의 차량들이 낡아빠지고 조잡하긴 해도, 장갑으로 둘러싸인 트럭들은 꽤나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카울린이 사격한 핫샷 라스건의 광선 중 하나가 목표물에 명중했다. 운전하던 오크가 좌석에서 굴러 떨어지자마자 트럭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결국엔 운전사가 없는 트럭은 옆에서 달려오던 차량을 들이받았고, 충돌한 충격에 옆의 차량이 뒤집히면서 빙글빙글 돌더니 그대로 땅바닥에 쳐박혀 버렸다.


"황금옥좌시여! 정말로 훌륭한 저격이었어, 카울린!"


망원경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던 로스가 소리쳤다.


"방금 들었어, 마엘?"


입이 찢어져라 미소를 지으며 카울린은 덩치가 커다란 친구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살짝 찔렀다.


"로스가 나를 진심으로 칭찬해줬어."


여전히 조준경에 눈을 갖다 대놓은 채로 카울린은 말했다.


마엘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퀼라를 손으로 꽉 움켜쥔 채로 마엘은 그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을 만큼 조용한 목소리로 기도문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로켓 런처를 떡 벌어진 어깨 위에다가 올려둔 채로 말이다.


트럭들이 점차 가까워질수록 엔진의 윙윙거리는 소음과 울부짖는 오크들의 외침이 주변을 가득 메워갔다.


"전원 사격 개시!"


조어비스가 목이 찢어져라 외쳤다. 명령이 하달되자마자 오크들의 갑옷 위로 병사들이 퍼붓기 시작한 붉은 광선들이 쏟아졌다. 그와 동시에 오크들도 반격을 시작했고, 그들의 손에 쥐어쥔 오토건들이 요란하게 불을 뿜어댔다. 서로 맹렬히 사격을 주고받던 와중에, 같은 소대에 소속된 다른 분대원들 중 하나가 가슴에 총탄을 맞아 헉하는 소리를 내면서 비틀거렸다. 갑작스레 가해진 충격에 그녀의 상반신이 폭발하듯이 흩어졌고, 주변에 있던 전우들은 꼼짝없이 불행한 가드맨의 피를 뒤집어쓸 수 밖에 없었다.


병사들 중 누군가가 공포에 질린 목소리로 소리쳤다.


"황제폐하시여 저를 가호하소서!"


"이 빌어먹을 새끼가! 앞을 똑바로 봐라!"


그러자 부사관 중 한명이 벌벌 떠는 병사를 다그쳤다.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라스건의 레이저 줄기들은 오크들의 공세를 막아내지 못했다. 탄환이 빗발치는 동안 양의 머리 위로 한 총알이 아슬아슬하게 스쳐지나갔다. 얼굴을 찡그린 양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방아쇠를 힘주어 당겼다. 마엘도 크게 고함을 지르며 로켓 런처를 발사했다.


비명을 지르며 날아간 로켓이 선두 차량에 적중했고, 거대한 폭발에 휩싸인 차량은 수많은 파편들을 흩뿌리며 고철덩이로 변했다. 불타오르는 고철덩이 주위로 녹아내린 금속 조각들이 마치 비오듯이 쏟아져내렸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리만 러스 전차들이 형편없는 장갑을 가진 트럭들을 향해서 주포를 돌렸다.


그리고 곧바로 전차 부대는 일제히 포탄을 쏘아대며 오크들의 트럭들을 박살내기 시작했다.


전쟁터 위로 어우러지는 폭음과 비명소리. 전장의 열기는 식을 줄 모르고 점차 고조되고 있었다.


"황제폐하를 위하여!"


조어비스는 소대원들을 바라보며 외쳤다. 이에 소대원들도 다같이 따라서 외치면서 오크들의 공세를 막아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결국에는 몇몇 트럭들이 수십명의 가드맨들을 깔아뭉개며 제국군 전선 안으로 파고드는데 성공했다. 돌진하는 차량 앞부분의 녹슬었지만 날카로운 가시들은 그대로 가드맨들을 꿰뚫고 지나갔다. 가시에 찔린 불행한 가드맨들은 거기에 매달린 채로, 자신의 가슴팍을 관통한 금속 파편들을 움켜쥐고는 계속해서 비명을 질렀다.


오크들은 잔뜩 흥분한 채로 주변의 병사들을 난도질하고 총탄을 난사하면서 트럭 밖으로 뛰쳐나왔다. 처음으로 실제 오크를 가까이서 바라본 양은 깜짝 놀랐다. 물론 양은 지급받았던 병사 수첩에 기록된, 증오로 가득찬 길고 지루한 설명들을 진심으로 믿지는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오크에 대한 부분은 정확했다.


오크들은 거대하고 잔혹한 맹수와 같았으며, 항상 으르렁거리는 것은 물론이고, 몸에서는 꽤나 고약한 냄새를 풍겼다.


"워서 놔랑 싸우자! 휴미들!"


머리 위로 원시적인 형태의 고철 도끼를 휘두르며 한 오크가 고함을 질렀다. 조어비스는 기꺼이 그 오크의 외침에 반응을 해줬다. 부사관은 볼터 피스톨을 사용해서 순식간에 오크의 머리통을 산산조각 내버렸다.


가드맨들로 이루어진 진형 안으로 돌진하는 트럭을 본 양은 옆으로 재빠르게 피했다. 바로 그 순간에 마엘은 로켓 런처의 방아쇠를 당겼다. 목표에 정확히 명중했는지 엄청난 폭발과 함께 트럭은 고철 덩어리가 되었고, 그 주위에 있던 오크들 또한 무사하지 못했다. 잠시 후에 양의 머리 위로 산산이 조각나버린 고깃덩이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살아남은 한 오크가 화염에 휩싸인 채로 총을 쏴갈기며 양을 향해서 돌진했다. 몇몇 탄환들이 양의 오라에 충돌했고, 그 충격량으로 인해 양은 뒤로 날아갔다. 그 광경을 눈에 담은 로스가 깜짝 놀라며 외쳤다.


"양~!!"


"난 괜찮으니까 걱정 하지 마!"


양이 달려오는 오크를 넘어뜨리며 외쳤다. 그와 동시에 양은 몸을 회전시켜 배에다가 라스건의 총구를 대고 연거푸 방아쇠를 당겼다. 중심을 잃은 오크는 그대로 넘어졌으나, 곧이어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일어나며 울부짖었다. 꼭 필요할 때만 라스건이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사실에 양은 혀를 찼다.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양은 뛰어올라 오크의 목덜미에 걸터앉았다.


그러고선 양은 재빨리 엠버 셀리카를 전개시켰다. 오라로 강화되어 한층 더 단단해진 권격이 오크의 머리 위로 쏟아져내렸다. 두개골을 짓누르며 안에 들어있는 뇌를 뒤흔드는 충격. 결국 오크는 얼마 버티지 못하고 둔탁한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한편, 어디선가 나타난 또 다른 오크가 고정 포탑으로 동료들을 향해 맹렬히 사격을 가하고 있었다.


"요거나 쳐머궈라! 휴미들!"


깊고 낮은 목소리로 오크는 킬킬대며 외쳤다. 오크가 다른 데에 정신이 팔린 틈을 타서 로스가 자세를 낮추고는 앞으로 뛰어들었다. 빗발치는 탄환들을 아슬아슬하게 피한 로스는 흉물스런 초록색 괴물을 향하여 수류탄을 던졌다. 수류탄이 터지기 직전에 로스는 참호로 뛰어들었고, 큰 폭음과 더불어 산산이 조각난 오크의 살점들이 진흙 위로 흩어졌다.


얼마 안있어 오크들의 기세가 꺾이자 전장의 소음도 점차 잦아들기 시작했다.


가드맨들을 깔아뭉갰던 너덜너덜한 차량들은 힘없이 쓰러졌고, 라스건의 집중포화에 의해 마침내 오크들도 차례차례 바닥에 엎어졌다.


"다친 사람 있나? 지금 당장 소대 현황 보고해!"


오크와 인간의 피를 뒤집어쓴 채로 조어비스는 외쳤다. 그와 동시에 붉디붉은 핏물을 머금은 조어비스의 체인소드가 울부짖었다.


"시그프리드, 말라, 발릭과 루다스를 잃었습니다!"


소대원들 중 누군가가 소리쳤다.


"부상자들도 있습니다!"


"즉시 부상자들을 후방으로 옮기고 놈들의 본대에 대비하라!"


지친 기색이 역력한 소대원들은 하달된 명령을 충실히 따랐다. 생존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찬 병사들은 죽은 동료들에 대한 슬픔을 마음 한구석으로 밀어넣었다.


"서둘러라! 이 느려터진 새끼들아! 놈들이 다시 몰려오고 있다!"


고개를 들어 참호 밖을 내다본 양은 곧 소대장의 말이 사실임을 알 수 있었다.


"똑똑하네."


양은 거친 호흡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저놈들의 기동차량들이 아군 진영을 휘젓고 대열을 흩뜨리는 동안에, 오크들의 주력이 우리 진영으로 돌격하는 전략을 쓰다니..."


로스는 얼굴에 묻은 루다스의 피를 닦아내며 양의 말을 들었다. 그 불쌍한 자식은 오크가 휘두른 칼에 목덜미가 찢어지며 비참하게 죽었다.


"오크는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아, 양. 아니, 그 자식들은 생각이란 것을 아예 하지도 않거든. 아까 그놈들은 그냥 더 속도가 빨라서 먼저 왔을 뿐이야."


그 말에 양은 작게 키득댔다.


"생각해보니 네가 한 말이 옳은 것 같아! 그나저나 아까 수류탄을 기가 막히게 던지던데."


"고마워. 조금 더 빨리 던졌으면 더 좋았을텐데 말이야."


그러고선 로스는 그대로 양과 마주보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너는 대체 어떻게 살아있는 거야?"


흘러내린 땀으로 범벅이 된 로스의 얼굴에는 걱정스러운 기색이 피어올랐다.


"나는 네가 그 덩치크고 뿔달린 투구를 쓴 개자식한테 꽤 세게 얻어맞았다고 생각했는데."


"어...."


'젠장! 제기랄! 만약에 내가 오라를 쓸 수 있다는 게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운좋게 넘어지면서 피했어."


"...알겠어."


로스는 라스건에 새 배터리를 갈아끼우면서 대답했다. 라스건을 손으로 꽉 붙들고는 로스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다음부터는 좀 조심히 행동해."


대체 무슨 뜻으로 한 말인지 전혀 모르겠다는 듯, 양은 맹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카울린이 몰려오는 오크들을 향해 방아쇠를 계속해서 당길 때마다 롱-라스건의 개머리판이 연신 그의 어깨를 때려댔다. 그와 동시에 바실리스크들이 불을 뿜으며 오크들의 무리에 큰 구멍들을 만들어냈다. 바실리스크들의 일제사격 한번에 오크 수백 마리씩 죽음을 맞이했으나, 그럼에도 그들은 쉼없이 울부짖으며 달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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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GGGGGHHH!!!"


양은 자기가 할 수 있을 만큼 재빨리 사격했다. 처음에는 목표를 골라서 차례대로 잡으려고 했지만, 오크들이 언덕 아래까지 밀고 들어오자 양은 까다롭게 과녁을 고르는 짓을 그만뒀다. 하나하나 고르면서 사격하기에는 오크들의 숫자가 너무 압도적이기 때문이었다.


돌격하는 도중에 셀 수 없이 많은 오크들이 쓰러지는 도중에도, 그들의 하나된 고함소리를 결코 멈추지 않았다. 맹렬히 돌격하는 오크들을 바라본 양은 입꼬리를 살짝 끌어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바로 이것이 그녀가 그토록 찾아다녔던 전쟁터의 광경이었다.


곧이어 탄환들이 가드맨들 주변에 내려앉기 시작했다. 참호 근처의 진흙과 자갈들이 이리저리 솟아올랐고, 오크들의 사격에 갈기갈기 찢겨나간 가드맨들이 쓰러져갔다.


전투 도중에 한 남성 가드맨이 양 바로 앞에서 쓰러졌다. 꿰뚫린 총상에서 세차게 흐르는 강물처럼 피가 흘러내렸고, 가드맨은 처절하리만큼 애처로운 단말마를 내질렀다. 볼터의 총구를 오크들에게 돌리기 전에, 조어비스는 고통에 몸부리치는 가드맨에게 황제폐하의 자비를 내려주었다.


"단 한 치의 땅도 내어주지 말아라! 황제폐하를 위하여! (FOR THE EMPEROR!)"


체인소드를 하늘높이 들어올리며 조어비스가 소리쳤다. 그러자 가드맨들도 다같이 외쳤다.


"황제폐하를 위하여!(FOR THE EMPEROR!)"


양은 자기도 모르게 주변의 동료들과 고함을 지르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마엘이 들고있던 로켓런처을 발사하자, 울부짖으며 달려드는 오크 무리에 큰 간격들이 생겨났다. 분노한 가드맨들에게 조각난 오크들은 비명을 질렀다.


양측의 군대가 다시 한번 맞부딪혔다. 참호 속으로 밀고들어온 오크들은 안에 있던 가드맨들을 도륙했다. 그렇게 혼돈이 전장을 지배했고, 전투의 고함과 비명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울려퍼졌다.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는 와중에, 한 오크가 카울린을 덮치고는 도끼를 들어올리며 울부짖었다. 절체절명의 바로 그 순간, 오라를 끌어올린 양은 앞으로 뛰쳐나가 온 힘을 다해 오크를 후려쳤다. 내질러진 권격이 오크를 파고들었고, 거센 충격으로 인해 뒤로 넘어진 오크의 육신에 미리 기다리고 있던 가드맨들의 총검들이 틀어박혔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양은 맥 풀린 표정을 짓는 카울린을 일으켜 세웠다.


'이런 식으로 계속 오라를 사용하는 모습을 보이는 건 위험하지만, 동료가 죽을뻔한 위기에 처했는데 안 쓸 수도 없고...'


양은 다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애초에 자제력은 양이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또 다른 오크가 권총을 휘두르며 양에게로 달려들었다. 이에 질세라 양도 오크를 향해 뛰어가며 라스건의 방아쇠를 당겼다. 비록 라스건은 오크의 초록빛 피부를 약간 그을리게 하는 정도의 역할밖에 못했지만 말이다. 양은 급히 고개를 숙여서 오크가 휘두른 주먹은 피했지만, 오크가 내지른 발차기는 미처 막지 못했다. 공처럼 걷어차인 양이 넘어지는 동안에 그녀의 헬멧이 벗겨지며 나뒹굴었다. 그와 동시에 양이 틀어 올린 머리가 풀어지며 폭포수처럼 금발이 쏟아져 내렸다.


"휴뮈 너무 약화다!"


권총의 방아쇠를 당기며 오크가 비웃었다. 그러나 양의 속도가 한층 더 빨랐다. 곧바로 위로 뛰어오른 양은 오크의 턱을 군화의 뒷굽으로 찍어버렸다. 완전히 턱이 뭉개진 오크의 입이 떡 벌어졌고, 양은 거기다가 라스건의 총구를 쑤셔박고는 연신 방아쇠를 당겼다. 배 속에 고출력 레이저 여섯 발을 선물받은 오크는 땅 위로 힘없이 쓰러졌다.


죽음. 양은 죽음의 향연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린스킨 제노들의 공세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거셌다. 심지어 기갑부대의 화력지원조차 오크들의 머릿수를 크게 줄여놓지 못했다. 양은 귓가에 들려오는 거칠고 낮은 오크들의 목소리를 외면하며 누군가가 휘두른 참격을 피했다. 양의 시야 바깥에 있던 오크가 그 찰나의 틈을 노리고 그녀의 명치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헉하고 숨을 들이킨 양은 방향 감각을 잃은 채로 무릎을 꿇었다. 그녀의 머리 위에서 체인 엑스가 양의 죽음을 갈망하며 울부짖기 시작했다. 오크가 체인 엑스를 내려치려던 그 순간, 붉은 빚줄기가 오크의 손을 날려버렸다.


"양한테서 떨어져! 역겨운 제노 자식아!"


피를 잔뜩 뒤집어쓴 채로 로스는 사납게 외쳤다. 로스가 잠시동안 벌어준 시간은 양에게 있어서 충분하고도 남았다. 높이 뛰어오른 양은 그대로 오크를 땅바닥에 내려찍었다.


"대췌 뭔 일위냐? 아그들롸?"


오크들의 무리 뒷편에서 크고 거칠은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단단한 장갑으로 뒤덮인 커다란 괴물이 어기적거리며 부하들을 밀어내고는 앞으로 걸어나왔다. 딱 보기에도 주변의 다른 오크들보다 훨씬 큰 체격에, 커다랗고 핏자국이 덕지덕지 묻어있는 도끼를 이리저리 휘둘러보고 있었다. 오크들은 움츠러들며 자신들의 대장을 위해 길을 터주었다.


'저 자식이 대장인가 보네.'


양은 씨익 웃으며 생각했다. 그러고는 초록빛의 덩치 큰 괴물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소리쳤다.


"거기 너! 일로 와서 한번 붙어보자!"


괴물은 양을 노려보며 낮게 으르렁거렸다.


"왜? 쫄았어?"


"WAAAGGHHH! 눼 쵸파로 괄귀괄귀 찢어쥬뫄!"


양의 도발에 거대 오크는 무시무시한 포효를 내질렀다. 곧바로 라스건을 옆으로 내던진 양은 엠버 셀리카를 전개시켰다. 그린스킨이 미처 총으로 응사하기도 전에, 양은 함성과 함께 저돌적으로 달려들었다. 양의 주먹이 거대 오크의 얼굴에 맞닿았고, 동시에 쏘아진 산탄들이 그것의 턱뼈를 짓뭉개버렸다.


하관이 심하게 틀어진 거대 오크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그 틈을 타서 양이 공격의 흐름을 이어가기 위해 팔을 뒤로 빼려고 할 때, 오크의 묵직한 오른손이 양을 쳐서 옆으로 날려버렸다. 충격에 입안이 찢어졌는지 양은 비릿한 피 맛을 느꼈다.


"으윽..."


간신히 몸을 일으켜 세운 양은 아슬아슬하게 머리 위를 스쳐가는 도끼를 피했다. 엄청난 기세로 날려진 도끼는 자루부분만 보일 정도로 땅에 쑤셔박혔다. 이에 화답하듯이 우레와 같은 총성이 울려퍼지며 엠버 셀리카가 탄환을 뱉어대기 시작했다. 산탄들 중 일부는 목표에 적중했고, 나머지 탄환들은 두터운 오크의 근육을 그을리며 스쳐 지나갔다. 엄청난 양의 피보라가 일었으나 양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러나 난데없이 핏빛 안개를 뚫은 거대 오크의 손이 양의 다리를 낚아챘다. 그 괴물은 양을 높이 들어올리고는 그대로 땅바닥에 내리꽂았다.


별들. 양의 눈앞에서 무수히 많은 별들이 어른거렸다. 곧이어 양은 코에서 피를 쏟아내며 바닥에 드러누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온몸이 불타오르는 듯한 고통이 엄습했다. 차츰 희미해지는 양의 시야에 피를 머금은 회색빛 전쟁터 위로 서서히 내려오는 금빛 머리카락이 들어왔다.


양은 분노했다.


승리에 도취한 거대 오크의 광소는 양이 휘두른 흉폭한 라이트 훅에 의해 끊어졌다. 양의 권격이 거대 오크의 몸에 크게 벌어진 자상을 새겨넣었고, 휘몰아치는 충격파에 휩쓸린 괴물은 뒤로 벌러덩 넘어졌다. 양은 지축을 뒤흔드는 우렁찬 함성을 내지르며 다시 돌진했고, 그녀의 정권은 괴물의 두개골에 정확히 꽂혔다. 거대 오크의 머리가 땅바닥에 맞부딪혔고, 그것의 커다란 송곳니는 산산이 조각나며 흩어졌다.


양은 주위에 떨어져있던 '쵸파'를 주워들어 어깨에 걸쳐놓았다. 그걸 본 다른 오크가 양을 멈추려 달려들었지만, 가까이 다가서기도 전에 머리와 몸이 분리되었다. 양은 손에 움켜쥔 무기를 들어올렸고, 그녀와 맞서싸우던 거대 오크도 참격을 어떻게든 막아보고자 팔을 들어올렸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무의미한 행동이었지만 말이다.


"씨발! 내 머리 건들지 말라고! 빌어먹을 새끼야!"


양이 내려친 쵸파는 공기를 찢어 가르며 제노의 팔을 두동강내고는, 더 나아가 거대 오크의 두개골을 쪼갰다. 곧이어 폭발하듯이 뿜어져 나온 뇌수가 주위로 쏟아져 내렸다.


잠시 뒤에, 양은 자신의 주위에서 물량으로 밀어붙이는 오크들과 생사를 건 혈투를 벌이는 전우들을 어렴풋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 외계인들은 컬티스트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달랐다. 저들은 인간과는 전혀 달랐고, 마지막 한 마리가 쓰러지기 전까지는 절대 공격을 멈추지 않을 것이었다.


리만 러스 전차가 양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맹렬한 기세로 돌진한 전차는 한 무리의 오크들과 격돌했고, 피와 진흙을 사방으로 흩뿌리며 깔려 죽은 시체들을 비료로 만들었다. 곧이어 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흐릿하게 깔린 먼지구름은 시야를 고작해야 수십 야드 정도로 제한시켰고, 그조차도 점점 짧아지고 있었다. 용감히 앞서간 전차가 갑자기 폭발했을 때, 엄청난 열기와 충격파가 양을 휩쓸고 지나갔다. 성치않은 몸으로 양은 기어가다시피 혼돈과 비명으로 점철된 전쟁터 사이를 헤쳐나갔다. 그렇게 나아가던 중에, 새까맣게 그을린 시체들과 흩어진 전차의 파편들이 양의 앞에 나타났다.


기적과도 같이, 리만 러스 전차에 달려있던 헤비 볼터 중 하나는 주인과 똑같은 운명을 맞이하지 않았다. 그것은 모두에게 잊혀진 채로, 총구에서 희미한 연기가 흘러나오며 바닥에 놓여져 있었다.


양이 헤비 볼터를 주워들으려 손을 뻗으려는 순간, 육중한 무게의 발이 양의 팔을 짓밟았다. 다행히도 오라 덕분에 팔이 두 동강이 나는 사태만은 피했으나, 그 대신에 오라가 위험 수위에 가깝게 소모되었다. 여태까지 차근차근 누적되던 피로가 몰려들었고, 양의 팔다리에서 점차 힘이 빠져나갔다. 오크는 함성과 함께 양의 확실한 죽음을 선고할 마체테를 들어올렸다.


그러나 새하얀 섬광을 동반한 폭음과 함께, 양의 눈앞에서 마엘의 로켓에 직격당한 오크의 육신이 녹아내렸다. 연기가 피어오르는 붉은 피가 해일처럼 양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양은 마엘에게 고맙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장 앞으로 나아가 진흙 속에 파묻힌 무기를 꺼내들었다. 양의 귓가에 윙윙 울리는 이명이 그녀 주위에서 벌어지는 전쟁터의 소음을 가려주었다.


'정말로 쓸 수 있는 게 로켓밖에 없었냐? 마엘?'


양은 무거운 침음성을 흘리며 볼터를 들어올렸다. 아무리 양의 완력이 강하다고는 해도, 양이 손에 그러쥔 것은 지나치게 무거웠고, 손잡이는 잡을 수 없을 정도로 뜨거웠다.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오라를 손에다가 끌어모은 양은 육중한 무기를 집어들었다.


"뒈져! 이 개자식들아!"


양이 고함을 지르며 방아쇠를 당겼다. 동시에 뒤따라오는 엄청난 폭음과 함께, 아다만티움 75구경 철갑탄이 두껍기 짝이 없는 그린스킨 제노들의 가죽을 물먹은 휴지마냥 갈가리 찢어버리기 시작했다. 볼터의 탄피 배출구에서 탄피들이 쏟아져나올 동안에 양은 목이 찢어져라 소리를 질렀다. 청각을 마비시킬 듯한 시끄러운 총성 탓인지 양은 전장의 불협화음을 제대로 들을 수 없었다. 양은 별로 상관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길게 울려퍼지는 함성이 양의 뒤쪽에서 터져 나왔다. 전열을 가다듬은 제 111연대 워아디언 레인저들이 반격하기 시작하자 오크들의 군세가 점점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라인, 로스 그리고 다른 가드맨들은 우렁찬 함성과 함께 양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로스는 전쟁터에서 주운 체인소드로 오크의 다리 한쪽을 베어냈고, 다리 한 짝을 잃은 오크는 고통스럽게 울부짖었다.


이에 질세라 양도 전우들의 반격에 동참했다. 가드맨들의 다시 되살아난 분노의 물결 앞에서 양은 볼터로 오크들을 갈아버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비록 양은 자신의 손바닥이 불타는 것만 같았고, 볼터의 총열은 서서히 바닥을 향해 내려갔으며, 손에 틀어쥔 무기는 매초마다 무거워졌다. 그렇게 양의 온몸에 격렬한 고통이 엄습해왔다. 방아쇠에 힘을 줄 때마다, 양은 근육과 힘줄이 끊어질 듯이 아팠다.


그러나 그녀는 절대로 물러서지 않았다.

양의 전우들이 위험에 처했기 때문이기도 했고, 그리고 이렇게 즐겁기 그지없는 전투를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또 다른 오크가 총탄에 육신이 짓뭉개진 채로 양 바로 앞에 힘없이 쓰러졌다. 양은 한 걸음씩 내딛는 것도 점차 힘에 부쳤지만, 아랑곳 않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드디어, 마침내 헤비 볼터가 마지막 탄환을 쏘아냈을 때, 양이 들고다니던 드럼 탄창은 완전히 비워졌다. 양은 마지막 총탄이 발사된 직후에 바로 볼터를 내려놓았다. 양의 눈에는 온통 회색빛 자갈들밖에 보이지 않았다. 양은 마치 누군가가 자신의 뼈에서 근육을 긁어내는 듯한 통증에 사로잡혔고, 그녀의 숨소리는 점점 거칠어졌다.


양의 귓가에는 한데 어우러진 전장의 끝없고 귀가 먹먹한 소음이 들려왔다.


그리고 이어서 칠흑같은 암흑이 양의 시야를 뒤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