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 The Lady Inquisitor
"저는 전장으로 뛰쳐나가거나, 저의 적들을 직접 응징하지는 않습니다. 허나 나의 주군이시여, 저는 단지 한 자루의 단검에 지나지 않습니다. 겸손하고, 보이지 않으며, 어둠 속에서도 조용한 존재 말입니다."
- 레이디 인퀴지터( The Lady Inquisitor)
대련장 안에서 금속이 서로 맞부딪히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쇠끼리 맞닿으며 내는 파열음이 암흑 함선 상층부에서도 들릴 것만 같았다. 이단 심문관은 자신의 견습생과 무딘 칼로 공격을 주고받으며 대련을 이어나갔다. 숨 가쁜 호흡에 그녀의 분노와 좌절감을 쏟아담으며, 이단 심문관은 그대로 견습생에게 쇄도했다. 하나의 행성에 익스터미나투스를 집행하는 것은 항상 그녀의 마음 한편에 죄책감을 심어주었다. 이단 심문관은 역병이 서서히 퍼져나가던 아우구스투스 항성계를 정화하는 것은 성공했지만, 그에 따른 엄청난 희생을 감수해야만 했다.
심문관이 공격의 흐름을 계속해서 이어나가자 그녀의 파워 아머가 덩달아 기계음을 내기 시작했다. 테두리가 순은으로 장식된 흑진주색 세라마이트 외피는 광택이 났으며, 상들리에 밑에서 더욱 환하게 빛났다. 격하게 움직이는 팔과 다리에는 이마테리움의 끝없는 악의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하여 새겨넣은 여러 룬이 드러나 보였다. 그녀의 갑주에 달린 기다란 외투와 머리 위의 챙넓은 모자는 움직일 때마다 이리저리 흔들거렸다.
견습생은 검을 살벌한 기세로 심문관을 향해 휘둘렀다. 그러나 심문관은 능숙하게 검의 궤적을 비껴내고는, 그대로 회전하며 상대방의 무방비한 옆구리를 강타했다. 아슬아슬하게 반격을 피한 견습생은 곧바로 방어 자세를 취했다. 수 시간 동안이나 계속된 대련으로 지친 견습생은 숨을 깊이 몰아쉬었다.
하지만 견습생은 이에 굴하지 않고 앞으로 달려나갔다. 붉은 로브를 뒤집어쓴 견습생이 현명하게 상대의 의표를 찌르는 공격을 한 덕분에, 스승과 제자는 멀찍이 거리를 벌리게 되었다. 그리고 견습생은 그 덕택에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시간을 얻을 수 있었다.
"좋은 공격이었다. 아이라."
"감사합니다. 심문관이시여."
아이라가 고개를 살짝 숙이며 겸손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심문관은 바로 그 잠깐의 틈을 놓치지 않았다. 심문관의 코트가 갑자기 홱 날아가는 동시에, 그녀가 상대방을 향해서 앞으로 달려나갔다. 눈 깜짝할 새에 재빠르게 다가오는 심문관을 마주한 아이라는 당황하며 한 발자국 물러섰다. 그러고는 바로 심문관의 한쪽 팔을 작살내기 위하여 검을 가로로 크게 휘둘렀다.
심문관은 자신이 있던 자리를 훑고 지나가는 검의 궤적 밑으로 자세를 낮췄다. 심문관의 그런 행동은 꽤나 위험하고, 비효율적이기도 했지만, 적어도 아이라에게 앞으로의 돌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아이라의 검날은 심문관 대신에 그녀의 모자를 반으로 가르며 지나갔다. 밑으로 떨어지는 모자의 파편들 사이로, 심문관의 새하얀 머릿결이 흘러내렸다. 손으로 바닥을 짚으며 자세를 바로잡은 심문관은 마치 사냥감을 노리는 맹수처럼 웅크렸다.
곧바로 심문관은 폭발하듯이 앞으로 돌진하여 아이라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커헉!"
날아간 주먹은 그대로 무방비하게 노출된 아이라의 명치에 꽂혔다. 충격으로 하늘에 붕 뜬 아이라는 타일 바닥에 부딪히고는 수 야드 뒤로 미끄러졌다. 아이라가 어떻게든 다시 일어나려고 시도하기도 전에, 이미 아이라의 목에는 스승의 검이 닿아 있었다.
"항상 상대방에게서 눈을 떼지 말도록 해라, 아이라."
"알겠습니다. 심문관 님의 두번째 공격은 재능이 있는 자만이 할 수 있는 공격이었습니다."
숨을 고르며 아이라가 말했다. 심문관은 건틀렛을 착용한 손을 아이라를 향해 건넸고, 그는 손을 뻗어 맞잡았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지. 하지만 깜짝 놀랄만한 기습이지는 않았나?"
"예. 그렇습니다."
"방금 네가 보았던 것을 기억해라. 그리고 절대 카오스가 예측 가능한 방식대로 행동할거라 생각하지 마라. 만약 네가 이것을 명심한다면 너는 10배는 더 효율적으로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터이니 말이다."
"그런 방식으로 전략을 달리 한다면 전장에서도 아주 유용할 것 같습니다."
제자의 말에 심문관은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꽤나 날카로운 생각이구나."
문을 두어번 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둘의 대화를 끊었다. 육중한 철문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심문관 님, 요청하신 서류가 도착했나이다."
"휼륭하군. 곧 그리로 가도록 하겠다."
심문관은 몸을 돌려 아이라와 마주하고는 남아있는 모자를 주워들었다. 바닥에는 인장관 말카도르의 모자이크화가 세심하게 그려져 있었다. 심문관이 직접 타이탄 조선소에다 개인적으로 그려달라고 부탁한 것이었다.
옛날부터 검사들 사이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전통대로, 둘은 서로를 마주보며 허리를 숙였다.
"아이라, 오늘 남아있는 시간동안 명상에 집중하거라. 내일 훈련 시간에 다시 부르도록 하겠다."
그 말에 아이라는 뚜렷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방으로 성큼성큼 되돌아갔다. 아이라는 아주 모범적인 학생이기는 했으나(애초에 그렇지 않았다면 그녀는 그를 받아주지도 않았을 테지만), 그는 아직도 더 배워야 할 것이 많이 남아있었다.
대다수의 다른 심문관들은 꽤 많은 견습생들을 밑에 두고 있고, 상당히 많은 수의 수행원들을 임무에 데리고 다닌다. 하지만 대부분의 이단 심문관들과는 달리, 그녀의 견습생은 아이라 하나뿐이었다. 물론 그녀의 수행원들은 다른 이들보다 수는 적었지만, 놀라울 정도로 효율적인 방식으로 임무를 처리해 나갔다. 오직 최정예만이 심문관과 함께했으며, 그렇기에 그녀는 항상 새로운 지원자를 찾아다녔다. 비록 지원한 많은 이들이 기준 미달이었지만 말이다. 대련장에서 걸어나온 심문관은 발걸음을 자신의 사무실로 돌렸다.
암흑 함선의 복도 내부에서 심문관의 발소리가 날카롭게 울려퍼졌다. 한걸음씩 걸어다닐 때마다 심문관이 어깨에 걸친 외투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심문관은 두 밀리타룸 템페스투스 부대원들이 지키고 있는 사무실에 다다랐다. 문 앞에서 경비를 서던 이들은 포트리스 월드 카디아 출신이자, 인류의 영광스러운 최정예 가드맨들 중 하나인, 카스르킨(kasrkin)이었다. 심문관은 그들의 갑옷을 자신의 취향에 맞춰 약간 도색을 바꿔놓았다. 탁한 녹색의 갑옷은 짙은 흑색으로 다시 칠해졌고, 붉은색 장식띠가 몸 한가운데를 가로질렀다. 그리고 병사들의 얼굴은 순백색의 가면 뒤로 가려진 상태였다.
두 카스르킨은 절도있게 경례를 올렸다. 그러고는 그들은 오르도 헤레티쿠스(Ordo Hereticus)의 상징이 크게 새겨지고, 그 주위로 은빛의 나선형 문양이 미려하게 세공된 떡갈나무로 만든 문을 열었다. 굳게 닫혀있던 육중한 문이 열리자마자, 눈이 부시도록 밝은 인공 햇빛이 창문 너머로 새어들어오며 사무실에 드리워졌다. 그러자 심문관은 자신의 키와 엇비슷한 산더미같은 서류들이 책상에 한가득 쌓여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가죽과 종이로 이루어진 아주 인상적인 서류의 탑. 종종 심문관은 더 많은 행성들이 서적 보관을 위하여 자신들의 코기에이터에 투자를 좀 더 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직도 셀 수 없이 많은 행성들이 야만적인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심문관은 자신의 목에 걸려있는 펜던트를 손에 쥐었다. 그 펜던트는 그녀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였다.
"오직 황제 페하만이 가장 신성한 존재일지니..."
손에 펜던트를 쥔 채로 심문관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제국 곳곳에 이단들이 들끓었다. 이단들은 제국의 모든 방면을 오염시켰고,그들과 함께 셀 수 없이 많은 위험을 끌고왔다. 그렇기에 이단은 항상 반드시 정화되야 하고, 뿌리조차 남기지 않고 박멸되어야 하며, 그리고 신성한 불꽃으로 말끔히 지워버려야만 했다.
심문관은 등받이가 높은 의자에 기대앉고는 두 눈을 감았다. 그녀의 정신은 워프의 사나운 물결을 헤쳐나가며 뒤틀린 공간 안을 돌아다녔다. 곧이어 심문관 주변에 쌓여있던 종이 무더기들이 낱장으로 나누어졌다. 그러고선 심문관이 기도문을 암송하자 서류들이 공중으로 두둥실 떠오르더니 그녀 주위로 천천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잠시 뒤에 사무실의 온도가 급격하게 내려가며 심문관의 입에서 김이 새어나왔다.
'쓸모없는 것들 밖에 없군.'
서류들이 순식간에 와그작 구겨지기 시작하더니 주변의 한기에 얼어붙어고는 워프 속으로 녹아들었다. 이런 심문관의 사이킥 능력을 이런 곳에 사용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밖에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그리고 염동력은 심문관의 특기가 아니기도 했다.) 그러나 심문관은 다른 무엇보다도 효율을 중요시했다. 여태까지 항상 그래왔듯이, 카오스는 절대로 심문관을 유혹하지 못할 것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었다. 설령 심문관이 사이커라 할지라도, 그녀는 확고부동한 믿음과 순수한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
심문관은 정신을 집중하자 한 두루마리가 그녀 앞에서 펼쳐졌다. 책상에 놓여진 서류는 화물 적하 명세서였다. 문서에는 몇 가지 이름들이 적혀있었고, 쓰여진 이름들 중 하나가 심문관의 관심을 끌었다. 적혀진 이름은 종이 위로 마치 피처럼 흘러내리며, 죽음으로 점칠되고 사악한 기운을 풍겼다. 그것은 심문관으로 하여금 불편한 기억들을 떠올리게 했으나, 동시에 궁극적인 승리에 한걸음 다가섰다는 것을 일깨워주기도 하였다. 마침내, 심문관은 그를 찾아냈다. 수십 년 동안이나 준비해왔던 계획들이 드디어 그 결실을 맺게 되었다.
깊은 한숨을 내쉰 심문관은 워프와의 연결고리를 안정시킨 다음, 자신의 앞에다 관련 서류들을 놓아두었다. 고풍스럽고 거대한 책상 위에 놓여진 복스-캐스터가 심문관의 눈에 들어왔다. 군화로 밑에 있던 전원 스위치를 누른 심문관은 수화기를 꺼내들었다.
"반즈 함장?"
"예. 심문관이시여."
"로드레스필 세부 항목의, 행성 엘로디아Ⅸ로 항로를 변경하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워프에 진입하기 전에 미리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고맙네. 그리고 긴급한 사안이니 서두르는 것을 잊지 말게나."
통신을 끝맺으며 심문관은 전원을 껐다. 양손을 맞잡으며 그녀는 다음 수에 대해 곰곰히 생각했다.
함선 [여명의 낫(Scythe of Morning)]은 완전히 정화되어 불과 재밖에 남지않은 행성의 궤도에서 벗어나 워프에 돌입할 준비를 했다. 6시간만에 생각의 늪에서 벗어난 심문관은 꼼꼼하게 짜여진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레지사이드와 태엽장치처럼.(like regicide and clockwork)'
자리에서 일어선 심문관은 책상 밑의 단추를 눌렀다. 그러자 책상 위로 홀로그램 지도가 투영되었다. 청록색 불빛과 함께, 셀 수 없이 많은 상징과 세계들이 광활한 지도에 표시되며 이리저리 떠다니기 시작했다. 자그마한 조각상들이 지도에 넓게 흩어져 있었고, 그들 하나하나가 그 어떤 위협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위험했다. 지도 위의 조각상들은 잠시도 쉬지않고 돌아다녔다.
하지만 심문관은 그들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들을 사냥하고 다녔다.
'레지사이드와 태엽장치처럼.'
심문관은 한 조각상을 손가락으로 넘어뜨렸고, 그녀의 입가에 큰 미소가 그려졌다.
긴 수면에서 깨어난 양은 그녀 주위로 펼쳐져 있는 전장을 둘러보았다. 전쟁터의 먼지는 아직도 가라앉지 않았고, 시체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양은 부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줘서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바닥에 흩어진 헬멧과 라스건을 주워든 다음, 양은 절뚝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도대체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하려고 애썼다.
전쟁터의 소음은 아직도 여전했지만, 전과는 다르게 멀리서 가물가물 들려왔다. 그러나 죽음이라는 안식을 얻지 못한 채, 격렬한 전투 도중에 낙오당한 불운한 이들이 내지르는 비명소리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양은 덜덜 떨리는 자신의 팔을 부여잡고는 오크와 인간의 시체들을 밟고 지나갔다. 그렇게 쉼없이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향해 걸어갔다. 군화가 서벅거리며 피를 머금은 자갈밭을 밟고 지나가자 차례차례 땅에서 붉은 피거품이 일어났다. 양이 한 발자국씩 내디딜 때마다, 통증이 온몸에 퍼져나가며 그녀의 의식을 현실로 잡아끌었다.
"아아악! 누구 없어요? 제발 도와줘요!"
비명이 들려오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한 부상병이 양의 시야에 들어왔다. 병사는 복부 상처 밖으로 흘러내리는 내장을 어떻게든 안에 다시 집어넣으려 하고 있었다. 그걸 본 양은 올라오는 구토를 참으려고 했으나, 결국 참지 못하고 바닥에 토하기 시작했다. 부상병은 양손에 시뻘건 창자가 휘감긴 채로 쉬지않고 끊임없이 비명을 질렀다. 어떨 때에는 그는 황제 폐하를 찾았고, 어떨 때에는 어머니를 찾았다.
입가 주위를 닦아낸 양은 부상병에게로 걸어갔다. 한 줄기 눈물이 그의 볼을 타고 떨어졌고, 입가에선 조금씩 핏물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부상병이 다시 현실로 돌아올 수 있도록 가까이 다가간 양은 그의 어깨를 흔들었다. 그러자 부상병이 쓰고있던 헬멧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고, 그의 밤색 머리카락과 일부가 조금 뜯겨진 귀가 드러났다.
'세상에... 말도 안돼...'
데파르트멘토 무니토룸(Departmento Munitiorum)에서 마주쳤던 소년이었다. 불과 몇 개월 전에 양이 윙크를 날리자, 얼굴을 붉혔던 그 소년 말이다.
"어머니이! 쿨럭! 어머니이! 어머니이이!"
몸을 서서히 잠식하는 극심한 고통에 소년의 입에서 단말마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이제 양은 자신이 소년에게 뭘 해줘야 할지 잘 알고 있었다. 라스건의 총구를 소년의 이마에 갖다 댄 양은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미안해."
양은 그대로 방아쇠를 당겨 소년을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 눈가 주위로 더 이상 눈물이 흐르지 않았고, 자기가 한 행위에 대한 비통에 찬 울부짖음도 없었다. 그저 냉정한 수용과 견딜 수 없는 피로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양은 라스건을 어깨에 걸치고는 시체들 사이를 헤쳐나가며 쉬지않고 언덕을 올라갔다.
양이 마침내 언덕에서 내려오자, 먼지로 이루어진 안개가 희미해지며 가드맨들과 기갑 차량의 행렬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직도 자신의 팔을 꽉 움켜쥔 양은 앞에 보이는 부대를 향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이따금씩 울려퍼지는 천지를 진동하는 바실리스크 포성이 양의 귓가에 들려왔다.
"정지!"
한 가드맨이 라스건을 양에게 겨누고는 소리쳤다.
"소속과 이름을... 황제 페하시여..."
양은 두 손을 들고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세 가드맨을 지켜보았다. 그들의 얼굴은 공포에 질려 있었다.
"...제 얼굴에 뭐라도 묻었습니까?"
"병사... 지금... 어... 홀리 테라시여, 지금 괜찮은 것 맞나?"
그 질문에 양은 잠시동안 생각에 잠겼다. 온몸이 욱씬거리는 통증을 제외하면, 딱히 별다른 이상은 없는 것 같았다.
"...괜찮은 것 같습니다.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나저나..그..."
양은 정신을 집중하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다.
"감마 소대가 어디있는지 아십니까?"
가드맨들 중 하나가 라스건을 옆에 놔두고 양을 향해 뛰어왔다.
"일단 진정해라! 너는 휴식이 필요하다. 우선 여기에 앉지 그러나."
양에게 있어서는 고마운 제안이었다. 양이 자리에 앉자마자 그녀의 온몸에 안도감이 밀려들었다.
"...아군이 승리했습니까?"
남자는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사상자의 수도 경미한 수준에서 그쳤지. 빌어먹을 오크놈들도 멀리 쫓아내 버렸고."
그는 찢어죽일 제노들을 떠올리며 내뱉듯이 말했다.
"커미사르 다닐로프트와 대령님이 특수부대를 이끌고 놈들의 워보스를 사살하는데 성공했거든."
남자는 다시 양을 힐긋 쳐다보더니 걱정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정말로 괜찮은 것 맞나? ...어 여기.."
가드맨은 제복 주머니에서 자그만 상자를 꺼내더니 양에게 건네주었다. 상자를 받아든 양은 측면의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안에서 손거울이 툭 튀어나왔다.
양은 거울 안의 악마가 자신을 들여다보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거울에 비친 형상이 흐려질 때까지 양은 하염없이 거울을 쳐다보았다. 거울에 반사되어 보이는 모습은 평소의 양과는 달랐다. 양은 마치 유혈로 이루어진 강을 건너온 것만 같았다. 양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말라붙은 핏자국으로 뒤덮인 상태였다. 지저분해진 머리카락은 헬멧 밖으로 엉켜붙은 채 삐져나왔고, 일부는 갑옷에 피로 푹 적셔진 채로 달라붙었다. 자기 자신의 모습을 알아볼 수 없어 양은 눈을 감았다 떴다. 이 모습이 진짜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양은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쓸어보았다.
"저는..어... 고맙습니다. 그냥 저는... 감마 소대가 어디있는지 알려주실 수 있으십니까? 소대원들이 아마 저를 계속 찾고있을 겁니다."
가드맨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알아보도록 하겠네. 어이! 구프리도티르! 복스로 감마 소대의 현 위치를 알아봐!"
명령을 들은 한 가드맨이 복스-캐스터를 만지작거리더니 수화기에 대고 말하기 시작했다.
"오크들의 주력이 완전히 분쇄된 뒤로 본대는 계속 진격했고, 지금은 방위선을 구축하는 중이다. 그런데 정말로 의무병이 필요하지 않은 거 확실하나?"
양은 고개를 내저었다. 고개를 푹 숙인 양은 살점과 뼛조각이 들러붙은 자신의 두 팔을 계속 바라봤다.
그러다 양은 수통의 마개를 열고는 입에 대고 몇 모금 들이켰다. 안에 들어있던 물은 뜨듯미지근하고 퀴퀴한 냄새를 풍겼으며, 희미하게 진흙같은 맛이 났다. 그래도 양에게 있어서는 설탕보다도 더 달콤했다.
연락을 받은 가드맨이 양을 그녀의 소대까지 안내해줬다. 평정을 되찾으려 양은 깊게 심호흡을 했지만, 별로 큰 효과는 없는 듯했다.
"홀리테라의 황금옥좌시여!"
누군가가 크게 소리쳤다.
"양이다! 양이 살아있었어! 젠장! 모두 이리로 나와봐!"
익숙한 목소리... 로스인가? 로스인게 틀림없었다. 예상했던 대로, 적발의 여인이 앞으로 뛰쳐나와 양을 꼭 끌어안았다. 포옹에 양은 힘이 빠지는 듯이 머리를 로스의 어깨에 기댔다.
"살아 있었구나! 하지만 어떻게? 난 네가 볼터를 들고... 어쨌든 황제페하시여 감사합니다! 도대체 넌 얼마나 강한거야?!"
"진짜 넌 대단했어."
다리를 절며 카울린이 말했다. 그의 어깨에는 붕대가 꽉 메여져 있었고, 얼굴은 검댕으로 뒤덮여 있었다.
"마치 성경에 나오는 전설 같았지. 나는 네 머리카락이 불처럼 빛나는 것을 봤다고 맹세까지 할 수 있다니까!"
양은 웃으며 칭찬을 받아들였지만, 만약 핏자국이 없었다면 새하얗게 창백해진 양의 얼굴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오라를 내보이지 않으려 조심했어야 했는데... 너무 앞뒤 분간 없이 행동했나? 다행히도, 카울린은 그 부분에 대해 그렇게 진지하게 생각하지는 않은 것 같네.'
양은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천천히 심호흡했다.
'심호흡하자. 티를 내면 안돼...'
"그대들의 노고에 감사를 표한다."
로스는 양을 데려온 가드맨들을 향해 감사 인사를 했다. 그들은 경례를 올리고는 원래 있던 위치로 되돌아갔다.
복스-캐스터의 무게를 견뎌내며 라인도 양의 귀환을 축하했다.
"살아있었구만 그래! 엉망이긴 하다만, 그래도 살아있었어!"
라인은 크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네가 사라졌을 때 우리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고는 있나?"
마엘도 크게 기뻐하는 표정으로 동료들 사이에서 나타났다. 그리고는 활짝 웃으며 양의 어깨를 툭툭 쳤다.
"대체 지금 뭣들 하는 짓이지?"
익숙한 걸걸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조어비스 소대원들 사이를 헤치고 나왔다.
"아직 처리해야 할 제노들의 잔당이 남아있다! 왜 이리 모여있는-"
소대장은 양을 보더니 눈을 크게 뜨며 말을 멈췄다.
"-이게 누군가! 트루퍼 양 샤오롱 아닌가!"
"보시다시피 살아서 돌아왔습니다."
양이 대답하자 조어비스의 의안이 초점을 다시 맞췄다.
"모범적인 노력이다, 병사! 이제 그 핏자국을 다 씻어내고 라스건을 들도록! 빌어먹을 오크들이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모른다!"
양은 고개를 끄덕여 대답을 대신했다.
소대장의 말에 마엘은 눈알을 굴렸고, 카울린도 조어비스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미간을 찌푸렸지만, 그냥 무시했다. 지금 중요한 건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양의 걱정이 무색하게도, 그녀의 친구들은 전원 무사하다는 사실이었다.
"지금은 현 위치에서 꽤 오래 머무를거야. 우선 너는 여기서 좀 쉬었다가..."
카울린이 말을 끝맺지 못했다. 갑자기 무너져내린 양이 동료들을 꼭 끌어안고는 펑펑 울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양은 온몸이 아팠지만, 그래도 손을 놓지는 않았다.
"모두 살아있었어..."
양은 목이 메는지 울음을 참으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양의 볼을 타고 눈물이 쉼없이 흘러내렸다.
"황제 폐하께 감사드립니다. 모두들 살아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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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슬슬 4만년대에 물들기 시작했는지 황제를 찾네. 그나저나 양 사이커라고 잡혀갈 각인데? - dc A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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