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염


만데빌 포인트 주변의 우주가 잔해로 가득 찼다. 울트라마린 함대가 물질계로 진입하며 실시한 일제사격이 우주선 10여척 이상을 산산조각 냈다. 진공이 화염과 분출되는 가스로 맥동했다. 공격자들의 잔해가 보이드 쉴드에 부딪히며 무력하게 튕겨나갔다. 13군단은 자기들의 함선 주변을 묘지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들의 사격은 수많은 공격자들의 규모를 감안하면 살짝 벤 수준의 피해를 입히는 데 그쳤다.


길리먼이 지시했다.


가장 가까운 목표들을 중심으로 사격 제원을 산출하라. 기관은 전속 전진. 정면으로 돌파한다.”


울트라마린에게 다가오는 함대는 싸우기 위한 존재가 아니라 파괴되기 위한 존재였다. 그것은 다양한 크기의 무수한 수송선들이었다. 그 가운데 정규 전투 함정도 섞여있기는 했다. 이미 대파된 프리깃과 호위함 약간들, 그리고 순양함 한 척이었다. 순양함의 함교는 뜯겨나갔고, 선체는 구멍투성이였다. 이미 격침당한 함선이었지만, 마지막 파괴를 저지르도록 부활했다.


고로드가 내뱉었다.


자폭선이군요. 실로 졸렬한 공격입니다.”


길리먼이 정정했다.


탁월한 공격이다.”


우주선뿐만 아니라 그보다 작은 물체들도 우글거렸다. 만데빌 포인트 일대는 기뢰원이었다. 자폭선의 고리 내부에 무수한 폭발물이 깔렸다. 갑작스런 질량의 유입이 그들을 소환했다. 기뢰들이 마치 함대가 흘리는 피에 꼬인 파리 떼처럼 다가왔다. 그 뒤로는 자폭선들이 접근했다.


길리먼은 기뢰와 자폭선, 그리고 자신의 함대가 입은 피해, 그리고 울트라마린이 돌파해야만 하는 경로에 집중했다. 전투 지휘와 더불어 전술적 상황의 변화에 대응하는 와중에 아주 잠깐의 집중만을 허용할 수 있었다. 그러한 고려 도중에 저 자폭선들의 특성상 노예들에 의해 운용되리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런 감상은 접어두어야 했다. 매우 유감스럽고 비통한 일이었지만, 그로 인해 적에 대한 더욱 강력한 분노가 치솟았다.


길리먼은 자폭선의 노예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이 없음을 알았다. 그들의 운명은 자폭선에 실린 순간 이미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들을 구할 수 없었다. 불타는 선박에서 처참하게 죽어갈 그들을 고려할 수 없었다. 그의 의무는 테라에 있었고, 지금 이 순간에도 모래알은 계속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는 반드시 군단을 데리고 가야 했다. 지금 놓인 장벽을 반드시 돌파해야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일단 함대가 살아남아야 했다.


노바 캐논의 차탄이 울티무스 문디함수 전방의 기뢰원을 개척했다. 노바 캐논의 괴물 같은 운동에너지가 너무나 강력한 나머지 기뢰의 영향을 무시했다. 포탄의 속도가 워낙 빨라 기뢰들은 이미 탄환이 지나간 다음에야 폭발했다. 무수한 기뢰가 잇달아 폭발하며 기함의 전방이 밝게 비쳤다. 그 뒤에는 자폭선이 있었다. 그것의 항로는 울티무스 문디와 충돌 침로를 이루었다. 자폭선이 막 움직이려는 순간 노바 캐논의 포탄이 선체를 관통했다. 선창에 폭발물이 가득 찼던 화물선의 워프 엔진이 파괴되었다. 그것의 유일한 목적이 죽음으로 개조되었던 만큼, 그렇게 최후를 맞았다. 플라즈마 폭발이 진공을 항성의 비명으로 찢어발겼다. 화물선의 덩치가 전함에 비하면 작았지만, 죽음은 너무나 강렬했기에 저것이 제대로 들이받았다면 재앙적인 피해를 입을 수도 있었다.


자폭선의 폭발과 노바 캐논 포탄의 작렬이 동시에 일어나며 또 다른 자폭선을 강타해 선체를 계란 껍질마냥 으깨고 처참한 비명을 지르게 만들었다. 길리먼의 눈앞에서 일어난 연쇄폭발이 진공을 불의 포위망으로 바꾸었다. “울티무스 문디는 별의 심장으로 뛰어드는 것 같았다.


본능에 따른다면 저런 불지옥을 피하기 위해 함수를 올리고 거대한 화구 위로 지나갈 터였다. 그러나 길리먼은 그 본능에 따름이 실수임을 알았다.


전속 전진. 전방의 화염을 뚫고 지나간다.”


그대로 나아갔다가는 함선이 침몰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무너뜨렸다. 전방의 폭발은 지금 당장 안전한 통로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존재였다.


길리먼이 지시했다.


다시 사격하라. 모든 화력을 전방에 집중시켜라.”


울티무스 문디는 대파괴의 안으로 바로 뛰어들었다. 불타오르는 플라즈마가 함선을 휩쓸었고, 분노를 포용했다. 함선이 신음하며 보이드 쉴드가 소모되었고, 그 다음 순간 울티무스 문디는 사격을 계속하며 화염 너머의 어둠으로 뚫고 나왔다. 그러나 이제 서비터와 센서, 화기 장교들은 공격할 표적을 찾고 있었다.


다른 함선들은 그만큼의 운이 따르지 않았다.


프리깃 금빛 승리가 선체 가까이의 기뢰를 포격으로 제거했지만, 자폭선으로 개조된 순양함 레스플렌덴트의 선체가 일식을 일으키듯 수직으로 내리꽂혔다. 프리깃의 사격은 진로를 빗겨내거나 일찌감치 유폭시키기에는 너무 약했다. 자폭선의 뱃머리가 프리깃의 중앙을 강타했다. 보이드 쉴드가 반짝하고는 너무나 거대한 질량에 굴복했다. “레스플렌덴트가 화염의 창처럼 가격했다. 부딪힌 즉시 폭발하면서 프리깃의 상부 선체가 화산 같은 힘으로 찢겨나갔다. 플라즈마가 플라즈마를 인화시켰고, 함선은 끔찍한 엔진 유폭 속에 사라졌다.


한 무더기의 기뢰가 호위함 타라사의 긍지의 현측 포대 사격을 뚫고 선체에 격돌했다. 포대의 기능을 상실하지 않은 호위함이 계속 사격하며 비틀대면서도 전진했지만, 우현의 파공 속에서 대기와 승조원, 군단원들이 진공으로 빨려나갔다.


순양함 파메니오의 수호자가 자폭선 두 척의 공격에 휘말렸다. 두 번의 폭발이 전방에서 3분의 1을 찢어발겼다. 순양함은 엔진을 계속 가동하며 불규칙적으로 사격했다. 내부 갑판이 드러났고, 새 함수는 녹아내린 잔해였다. 필사적인 긴급 신호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함대 전체의 규율은 유지되었다. 모든 함선들이 길리먼의 명령대로 행동했고, 함대는 자체의 화력으로 스스로를 감싸며 기뢰를 제거했다. 만약 물질계로 진입하자마자 사방으로 난사하지 않았다면, 적의 자폭선 공격은 함대의 심장부를 그대로 찢어버렸을 것이다. 비록 자폭선 무리가 함대를 타격했다고는 하나, 진형은 여전히 견고했다. 13군단은 자폭선들을 격퇴했고, 대부분의 자폭선은 목표에 부딪히지도 못한 채 격침당했다. 그와 더불어 수많은 기뢰들도 같이 유폭했다. 그리고 함대는 전진했다.


이렇게 전투 초기의 몇 분이 지났다. 그러나 이제 겨우 몇 분일 따름이었다.


울티무스 문디금빛 승리의 잔해를 헤치고 나아가려는 순간 함교에 다시 경보가 울렸다.


전탐 장교가 보고했다.


전방과 좌현 방향에 강력한 적 사격! 적 포탄과 어뢰 접근 중!


그리고 바로 말을 이었다.


전방에 워프 스톰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길리먼은 모래시계의 알갱이가 계속, 잇달아 흘러내림을 느꼈다. 그는 알갱이 하나하나의 떨어짐을, 그리고 저수지에서 하나의 알갱이가 떨어지며 비는 공간을 느꼈다. 그것이야말로 그가 생각하고, 분석하여, 결단을 내릴 공간이었다. 길리먼은 경고를 듣고 날아드는 미사일과 포탄의 궤적을 나타내는 영상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함교의 관측창 밖으로 우현의 진공이 뒤틀리는 모습이 보였다. 소용돌이치며 검게 주름이 지는가 하면, 보랏빛으로 멍들고 부패했다. 그리고 다른 색이 물질계로 퍼졌다. 거기에는 이름이 없었으나 광기와 살육, 타락이었다.


이 모든 것들이 모래알 하나가 떨어지는 사이에 벌어졌다.


다음 알갱이가 떨어지기 전에 뭔가 행동을 취해야 한다는 압박감은 충동이지 이성이 아니었다. 그리고 길리먼은 자신과 군단의 앞에 높인 덫에 빠지기를 거부했다.


길리먼이 지시했다.


전방 쉴드의 출력을 최대한으로.”


울티무스 문디는 함대가 형성한 창날의 첨단이었고, 접근하는 적 어뢰의 예봉을 받아낼 터였다.


항로를 유지하라. 전탐, 행성계를 심층 탐색하라. 적이 어디에 있는지 보고하도록.”


노바 캐논이 발사한 제 3탄이 경로상의 기뢰와 날아드는 어뢰 일부를 파괴하고는 진공 속으로 사라졌다. 이제 기함 앞에 더 이상의 자폭선은 없었다. 그러나 저 어딘가에 진정한 적이 있었다. 적은 이 사격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냈다.


전탐 장교가 보고했다.


좌현에 적 함선 발견. 자폭선 뒤에 있습니다.”


길리먼이 물었다.


적의 규모는?”


데이터를 축적하는 동안 다시 모래알 하나가 느리게 떨어졌다.


그리고 전탐 장교가 보고했다.


적 타격 순양함 한 척이 아군에게 현측 포대를 사격하고 있습니다.”


길리먼은 생각했다. 얼마 되지 않는군. 저 한 척이 자신의 함대와 정면 대결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무수한 자폭선을 활용한다면, 행동할 여지는 많았다.


전탐 장교가 보고를 이었다.


함수 직전방에 다수의 접촉.” 베스라 칼렌은 잠시 머뭇대고는 말했다. “움직임이 없습니다.”


적 함선 전대인가?”


그렇게 보이지는 않습니다, 프라이마크이시여. 함선이라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밀집한 상태입니다.”


그녀의 위에 자리한 스크린이 켜지며 울트라마린 함대에게 날아드는 어뢰와 포탄의 다음 제파를 비추었다.


칼렌이 보고했다.


함선이라고 판단하기에는 지나친 밀도로 모여 있고, 화력 수준도 그 이상입니다.”


고로드가 의문을 표했다.


궤도 방어 플랫홈인가?”


프레이토가 반문했다.


대체 무엇의 방어 플랫홈이란 말인가? 그 방향엔 아무것도 없네.”


길리먼이 말했다.


방어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적은 방어태세를 취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공격 하고 있지. 저들은 행성을 방어할 플랫홈이 필요 없다 여겨 공격하기 위해 재배치했다.”


칼렌이 보고했다.


스캔 결과가 도출되었습니다. 접촉한 미식별 물체 가운데 중앙의 물체가 특히 거대합니다. 우주정거장으로 추정됩니다.”


길리먼은 고개를 끄덕이고 이 위협을 제거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지 판단하기 시작했다.


관측창 너머로 워프 스톰이 진공을 덮은 기름띠마냥 퍼지며 물질계를 뒤섞고 갈아내는 모습이 보였다. 규모와 위력면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폭풍은 함대를 집어삼키려 굶주렸고, 후방과 우현 방향에서 가까워지고 있었다.


워프스톰이 만데빌 포인트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모래알 하나가 더 떨어졌다. 그리고 길리먼은 필요한 것을 가지고 있었다. 상황이 완벽하게 파악되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본 광경을 설명 할 수 있는 이론을 정립하고, 저 소규모 부대가 훨씬 강력한 자신의 함대에 잔혹할 정도의 효율성을 발휘한 수단을 파악하여, 반격의 토대를 마련하기에는 충분했다.


그러나 길리먼이 아무리 빨리 생각을 정리할지라도 모래시계는 계속 흘러내리고 있었다. 적은 길리먼의 모든 전력을 마주하고 싶어하지 않는 만큼, 빠르게 행동해야 했다. 길리먼은 우선 적의 함대를 압도하고, 적 전투력의 효율을 증강시키는 전술 자체를 무력화시켜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