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정거장 바비칸은 거대한 기반 위에 세워진 피라미드 꼴 구조물 사방에 막대한 화기를 장비했다. 통제실은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자리했다. 지휘실 사방의 관측창은 다르후그에게 정거장의 기반 위로 탁 트인 시야를 제공했다. 영상 스크린은 정거장의 배면으로 접근할 수 있는 방향을 비추었다. 사각지대는 없었다.


다르후그는 통제실 중앙에 높게 솟은 지휘석에 앉았다. 그의 밑으로 인간 기술자와 서비터들이 자리하여 그의 의지를 수행할 준비를 갖추었다. 다르후그가 명령만 내리면 함대라도 말살시킬 화력을 뿜어낼 수 있었다. 이미 방어 정거장 자체로도 막강했지만, 크로수스의 지시에 따라 전투력을 보강하기 위해 추가적인 조치를 취했다. 바비칸 주변을 대궤도 방어 플랫홈 4개가 추가로 감쌌다. 이것들은 원래 카체라 행성 궤도에 배치되었지만, 크로수스는 행성의 지상 방어가 충분하다고 선언했다.


워스미스는 다르후그에게 주지시켰다.


우린 이 곳을 방어하는 게 아니다. 행성계 자체를 무기로 바꾸어야 한다.”


이제 대궤도 방어 플랫홈들은 바비칸의 통제에 종속되었고, 파괴의 범위를 늘렸다. 유효 사거리에 접근하는 그 어떤 함선이라도 대궤도 방어 플랫홈의 레이저 포대와 방어 정거장의 포격이 만들어내는 살인적인 화망에 찢겨나갈 터였다.


다르후그는 생각했다.


, 어서 덤벼라. 자네들이 그렇진 않겠지만, 당당하게 덤벼라.


상대가 자신이 원하는 실수를 저지르리라 생각하기엔 울트라마린의 전술적 기량에 확신이 있었다. 하지만 부디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언 워리어 군단이 너무나 오랫동안 겪어왔던 고통에 대해 가르쳐 주고 싶었다. 이미 그들에게 손실을 입혔지만, 충분치 않았다. 지휘석 옆의 영상 스크린에 나타난 표식이 자신이 13군단 함대에게 퍼부은 화력의 효과를 정리했다. 다르후그는 만족할 수 없었다. 이 요새와 무기 체계를 제어하는 카체라 인들에게 실패를 비난하기는 쉬웠다. 비록 지식과 기술을 통해 선발되었다고는 하나, 노예는 노예였다. 그들은 정복당했고, 따라서 제대로 일 처리를 못했다고 비난하기는 간단했다. 그러나 다르후그는 환상에 신물이 났다. 그는 거짓의 끝을 의미하기에 만족스러운 카체라 행성계에서의 이 전투에 어떠한 의미라도 있다는 듯 스스로를 기만했다. 워스미스는 오늘의 일에 뭔가 의미가 있다고 여전히 믿었다. 하지만 자신은 그저 계속된 거짓의 끝을 원할 따름이었다.


정거장에 있는 모든 노예들의 가족은 시데리우스 하이브에 감금되었다. 필멸자들은 배신의 대가를 알고 있었다. 그들은 다르후그의 명령에 잠깐이라도 머뭇거렸다가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고 있었다. 울트라마린을 공격하려면 자신 한 명으로도 충분했다. 만약 울트라마린이 그를 공격한다면, - 당연히 그렇겠지만 - 다르후그의 전력은 부족했다.


부르타크가 말했다.


적 함대가 피 흘리며 불타고 있네, 형제여.”


워포지드의 위치가 전장에서 더 가까웠기에 그의 스캔이 전황을 좀 더 자세히 파악했다.


그 소식을 들으니 기쁘군. 우리가 울트라마린을 저지한 건가?”


부르타크는 다르후그의 빈정댐을 흘려듣거나 무시했다.


아닐세. 하지만 시작은 좋군.”


끝보다야 낫겠지.”


자네 생각과는 결말이 좀 달라질 수도 있다고 보네만.”


“그러면 내가 모르는 다른 변수가 있다는 의미겠지. 군단 전체에 맞서야 할 우린 겨우 1개 그랜드 컴퍼니에 불과하네. 결과엔 의문의 여지가 없어.”


부르타크가 답했다.


어디 한 번 보자고. 이전에도 승산은 우리에게 불리하지 않았나.”


지금만큼 불리하진 않았지. 다르후그는 생각했다. 그러나 부르타크 역시 그 점은 잘 알고 있을 터였다. 그저 미래를 바라보는 관점이 자신과 다를 뿐이었다. 다만 자신은 앞으로 닥칠 일에 고민하지 않았다. 오늘 최후를 맞더라도 후회는 없었다. 정말 씁쓸한 점은 곧 닥칠 자신의 죽음이 아니었다. 그런 게 있기나 하다면 부르타크가 그의 불굴성에도 불구하고 승산이 희박함에 더욱 분개하고 있으리란 짐작이었다.


부르타크가 말했다.


적 함대가 분산하고 있네.”


잠시 후, 다르후그도 바비칸의 영상 스크린에서 그 모습을 보고 답했다.


자네가 적의 주의를 끌었군.”


대부분의 울트라마린 함선들이 변침하여 아이언 워리어 함선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워스미스께서 예측하신 대로야. 자네 역시 외롭지는 않겠어.”


울트라마린 주력에서 함선 세 척이 우주 정거장으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저들을 무자비하게 공성하게, 형제여. 우리의 전쟁이 끝나면 그 때 다시 보세.”


잘 가게, 형제여.”


다르후그의 작별 인사는 형제의 그것만큼이나 모순적이었다. 부르타크가 이 순간에도 분개하고 있음을 알았다. 부르타크는 호루스에 대한 분노를 불굴의 결의로 바꾸었다. 그는 크로수스의 계획을 믿었고, 다르후그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전역의 성패는 생존 이외의 다른 요소에서 판가름 나리라 믿었다.


다르후그가 지시했다.


모든 화기는 접근하는 함선에 사격을 지속하라.” 아직 거리가 좁혀지기 전에 울트라마린에 최대한 타격을 입혀야 했다. 그러나 저들은 유효사거리 안으로 접근하지 않았다. 다른 형태로 공격을 시도하겠지.


군단원 사바란이 지휘석 옆에서 멈췄다. 그의 오른팔은 거친 바이오닉이었고, 굶주린 아가리마냥 오른 주먹을 움키고 폈다.


단 세 척입니다. 저들도 우리를 정면 공격으로 어찌할 수 있다 생각할 리가 없습니다.”


그렇겠지.”


다르후그는 입장을 바꾸어 자신이라면 어떻게 바비칸을 점령할지 생각해보았다. 크로수스의 작전안에도 불구하고 이제 그는 방어태세로 전환해야 했고, 그 역할에 분개했다.


저들은 보딩 공격을 의도하고 있다.”


놈들이 덤비라 하십쇼.”


그 반대지. 저들이 덤벼들게 할 생각은 없다.”


오직 다르후그만이 자신의 의도가 무엇이건 간에 전쟁의 현실을 바꾸지 못함을 알았다. 그는 울트라마린을 저지하기 위해 싸울 것이다. 하지만 만약 자신이 정거장을 공격할 입장이라면, 어떠한 방어도 돌파할 자신이 있었다. 그런만큼 저들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다르후그는 패배주의자가 아니었다. 현실주의자였다. 닥쳐올 전투와 예상되는 결과를 고찰했다. 결국 자신에게는 단 하나의 최우선 임무만이 남았다. 최대한 많은 울트라마린을 처치해야 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보았다. 필연성이 울트라마린에게 있다는 점은 중요치 않았다. 자신은 그 이점을 무효화시킬 것이다. 자신과 군단원들은 적에게 출혈을 일으키고, 길리먼의 아들들이 마침내 승리했다고 여길 순간, 심판을 내리리라. 그는 쓴웃음을 굳이 참지 않았다. 어쩌면 부르타크가 지닌 승리에 대한 믿음이 크게 잘못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자신은 적의 승리를 잿더미로 만들고 싶었다.


다르후그는 자신의 준비를 시작했다.


달아남은 부르타크에게 적대적이었다. 도주란 그의 모든 본능에 반했다. 그가 전쟁에서 진정으로 믿는 한 가지가 있다면 영원한 전진이었다. 그에게 모든 것을 퍼붓는 적의 면전에 침을 뱉고 전투화 아래에 적을 갈아버릴 때까지 진군, 언제나 진군이었다. 그것이야말로 자신의 신조였다. 불가피한 전술적 후퇴라도 수치 이상의 것이었다.


타격 순양함 워포지드의 지휘석에 앉은 부르타크는 자신이 내려야만 하는 명령이 목에 걸려 있음을 느꼈다. 울트라마린은 자신과 함선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13군단의 함대가 형성한 창은 자폭선과 기뢰원을 꿰뚫었다. 아이언 워리어는 카체라 행성계의 모든 우주선을 가리지 않고 끌어 모아 자폭선으로 개조했다. 그들의 규모는 수백 척에 달했다. 초기의 배치 상태를 점검하며 만데빌 포인트를 감싼 죽음의 구체를 확인하자, 그 어떤 함대도 돌파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워스미스가 옳았다. 울트라마린은 함정을 예측하고 물질계로 진입하자마자 대응했다. 만약 부르타크 자신에게 지휘권이 있었다면, “워포지드13군단의 심장을 노리는 글라디우스 찌르기처럼 운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워스미스 크로수스의 계획은 탁월했고, 부르타크는 명령을 거부함으로서 계획을 망치고 싶지는 않았다.


명령을 내리기는 참으로 씁쓸했지만, 부르타크는 1초만 망설이고 행했다.


최소한의 응사만 시행하라. 우리는 히메라까지 전속으로 후퇴한다.”


지휘석 옆에 선 서전트 나브가의 발언이 그의 불쾌함을 더욱 부추겼다.


우리가 꼬리를 말고 도주한다고 여기게 만드는 게 목표입니까? 지금 우리 모습이 꼭 그 모양입니다.”


성대에 부상을 입은 그의 목소리는 유리를 긁어대는 손톱같았다.


적이 어찌 생각하건 관계없다. 관건은 적이 우리를 추격하느냐의 여부고, 분명히 그럴 것이다.”


이건 우리의 방식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 임무를 우리의 방식으로 바꾸어야지.”


부르타크는 그 말을 꺼내면서 크로수스의 메아리를 느꼈다. 잠시 후 그 점을 깨닫자, 약간의 민족을 느꼈다. 이 깨달음이 전투의 본질과 그를 융화시킬 수는 없겠으나, 앞으로 닥칠 상황에서 다시 희망을 주었다.


이렇게 도망치는 꼴이 워스미스께서 생각하시는 우리입니까?”


그렇다면 어쩔 셈인가? 내가 그 분에 대해 생각하는 바와는 비교가 안 된다.”


서전트와 부르타크는 성난 웃음을 터뜨렸다.


크로수스는 그랜드 컴퍼니를 기다리는 운명을 너무나 명백히 알고 있었다. 카체라 행성계에서 아무도 살아남지 못할 터였다. 페투라보는 134 그랜드 컴퍼니에 이 임무를 부여했으나, 부르타크는 그랜드 컴퍼니를 희생시키는 프라이마크를 비난하지 않았다. 희생에 대해 주저하지도 않았다. 감사라고는 없는 유혈 낭자한 피로스의 승리는 아이언 워리어의 역사에서 언제나 넘쳐났다. 그것이 황제를 위해 복무하며 부르타크가 알게 된 전부였다. 호루스의 밑에서도 변한 게 없다는 점에 놀라지 않았다. 134 그랜드 컴퍼니는 호루스의 영광 속에서, 혹은 그러기 위한 명령 속에서 전멸할 터였다. 그러나 페투라보는 134 그랜드 컴퍼니를 선택한 데 이유가 있었고, 크로수스와 캡틴들은 호루스의 약속을 믿지 않았다. 호루스를 위한 싸움은 황제의 더욱 심한 거짓을 깨뜨리기 위해서일 따름이었다. 그리고 오늘 워스미스는 황제의 자긍심 넘치는 아들들을 겸손하게 만들 계획을 창안했다. 부르타크가 본 모습은 그를 흡족하게 했고, 앞으로의 일을 떠올리자, 후퇴의 굴욕감에서 온 분노도 잦아들었다.


부르타크는 더 많은 것을 믿었다.


우린 호루스에게 자신이 거짓 황제만큼이나 실수했음을 보여줄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불가능을 가능케 했다. 이제 다시 그리하자. 호루스는 오늘 우리가 살아남을 리가 없다 믿는다. 그렇다면 우린 오늘 싸우자. 그리고 내일도 다시 싸우자. 안도 철이요!”


나브가가 후창했다.


밖도 철이니!”


부르타크는 생각했다.


안이건 밖이건 우린 꺾이지 않는다. 그리고 우린 그대를 꺾을 것이오, 길리먼.


----------------------------------


진정한 악역 간지, 지강 아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