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이 거센 고함을 내지르며 기선을 제압했다. 그러나 핑키는 비몽사몽한 상태에도 굴하지 않고 헐떡거리며 앞으로 돌진했다. 동시에 형형색색의 빛이 연주소리와 뒤섞여 둘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그러자 양은 주위에 아른거리는 빛과 소음에 몸을 맡겼다.
조금 전에 뼈저리게 교훈을 얻었는지, 핑키는 전과는 달리 더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그러고는 재빠르게 체중을 실어 발로 양을 걷어찼다. 양이 자세를 낮추자 핑키의 발을 아슬아슬하게 양의 머리 위를 가로질렀다. 양의 주먹은 엠버 셀리카 없이도 충분히 매서웠다. 양이 날린 권격은 핑키의 가슴팍을 파고들었고, 공중으로 떠오른 핑키는 그대로 모래 구덩이 안에 쳐박혔다.
"휘유~!"
휘파람을 불며 양은 경기장의 로프를 가볍게 뛰어넘었다. 곧바로 양은 관중석에 앉아있는 한 관객이 들고있는 음료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마셔도 될까요?"
난생처음 보는 광경에 얼이 빠져있던 남자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양은 잔 속의 음료를 단숨에 들이켰다. 그러다 오라를 통해 갑자기 저릿해지는 느낌을 받고는 곧장 옆으로 몸을 돌려 기습공격을 피했다.
양이 고개를 돌리자 당황해서 말문이 막힌 핑키가 시야에 들어왔다.
"뭐해! 그놈에게 본때를 보여줘! 양!"
크게 소리친 카울린의 응원에 힘입어 양은 핑키에게 달려들어 그를 바닥에 넘어뜨렸다. 하지만 핑키가 버둥거리며 휘두른 너클로 감싼 주먹을 피하느라, 양은 아쉽게도 다시 거리를 벌릴 수 밖에 없었다.
'으음... 너무 설렁설렁하게 대했나?'
스텝을 밟으며 양은 몸 전체를 회전시켜 명치에 돌려차기를 꽂아 넣었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양은 약간의 오라를 발에다 흘러넣었을 테지만, (그랬다가는 핑키의 흉부가 찌그러들면서 갈비뼈가 사방으로 흩어질 것이다) 그녀는 밤을 즐기려고 왔지, 전투를 하려고 온 것은 아니었다.
'그나저나 평소에나 전장에 있을 때나 하는 건 크게 다르지 않네.'
양이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을 동안, 정신을 잃은 핑키는 그대로 모랫바닥에 풀썩 드러누웠다.
"너무 쉽네! 다음은 누구냐?!"
양은 전투 자세를 유지하며 크게 외쳤고, 그녀의 자줏빛 눈동자는 경기장 주변을 이리저리 훑어보았다. 그러자 더 이상 유쾌해 보이지 않는 두 명의 깡패들이 경기장 안으로 들어왔다. 모호크와 코걸이. 둘 다 꽤 빡쳐있는 듯했다. 사회자가 그 둘을 경기장 밖으로 내보내려 했지만 아무 소용도 없었다. 양은 괜찮다는 듯 손을 들고는 말했다.
"허락할게요. 둘이 참가비를 두 배로 낸다는 전제 하에서 말이에요."
깡패들은 기가 차다는 듯이 으르렁거리고는 두툼한 지갑을 바닥에 던져놓았다. 그러자 양은 크게 웃으며 지갑들을 경기장 한편으로 발로 밀어넣었다.
모호크의 커다랗게 벌어진 눈동자가 쉼없이 움직였다. 비정상적으로 동공이 확장된 상태로 보아, 약을 복용해 흥분 상태에 빠진 것 같았다. 양에게 달려들 때조차 모호크의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공격들은 서로 연계가 되진 않았지만, 그 대신에 빠르고 묵직했다. 코걸이는 옆으로 물러나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주먹을 날렸다. 물론 모두 수포로 돌아갔지만 말이다.
이어진 공격들을 피한 양은 오라의 도움 없이도 손쉽게 주먹을 피했다. 주먹질하는데 정신이 팔린 모호크의 훤히 드러난 틈 사이로 양은 가까이 파고들었다. 그리고 양의 권격이 모호크의 얼굴 한가운데에 적중했고, 코뼈가 내려앉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러자 코에서 피가 폭포수처럼 뿜어져 나오며 바닥의 모래를 벌겋게 적셨다. 갑자기 피튀기는 광경을 본 구경꾼들은 깜짝 놀랐다. 그 와중에도 양은 장난치듯이 코걸이의 공격을 피하며 관중들에게 인사를 했다.
양이 몸을 회전하며 코걸이의 얼굴을 향해 반격하자, 코걸이는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허리춤에서 큰 칼을 뽑아든 코걸이는 쿵쿵거리며 앞으로 나섰다.
'오호~ 한번 놀아보자는 건가?'
"쯧쯧! 그건 규칙에 어긋난단다?"
양은 손가락을 좌우로 흔들며 말했다. 정신없이 움직이는 조명이 검면에 반사되어 광체가 번득이자, 관중들 중 몇몇은 헉하고 숨을 들이켰으나, 대부분의 관객들은 말릴 생각도 못할 정도로 싸움에 몰입한 상태였다.
검은 양의 얼굴을 한 치의 차이로 비켜갔고, 다행스럽게도 양의 머리카락을 건들지는 않았다.
라스건의 레이저보다도 빠르게 양은 코걸이의 손목을 움켜쥐었고, 곧바로 검을 빼았아 저 멀리 던져버렸다. 그러고는 양은 몸을 틀어서 코걸이가 소매 속에 숨겨놓았던 단검을 피했다. 그리고 그 틈을 타서 양은 무릎으로 코걸이의 대퇴부 아래를 걷어찼고, 팔꿈치로 그의 팔을 나뭇가지처럼 반대로 꺾어버렸다.
"끄아아악!"
뼈가 부서지는 섬뜩한 소리가 주위로 퍼져나갔고, 관객들 사이로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코걸이는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부러진 팔을 붙잡고는 계속해서 비명을 질렀다.
"자아~, 여러부우운~. 용감히 싸운 사람에게 박수를 쳐주세요!"
코걸이의 부러진 팔을 들고서 양은 소리쳤다. 관객들은 열렬한 환호를 보냈고, 그와 반대로 코걸이는 고통에 몸부림쳤다.
"그래. 그래. 알겠어. 다음부터는 함부로 검들고 나대지마라?"
양이 코를 훌쩍이며 말했다.
"하여튼 사람이 기본적인 매너도 없어서 쓰겠어?"
양의 동료들은 심장이 튀어나올 정도로 환호성을 질러댔고, 양은 동료들의 환호에 호응하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물론 양은 허리를 숙여서 돈을 쓸어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카울린과 마엘은 커다란 미소를 머금고 있었고, 반면에 로스는 다른 도전자가 올라오기 전에 빨리 이리로 오라고 손짓했다.
로스는 사방에서 들려오는 고함소리와 시끄러운 음악때문에 크게 외쳐야만 했다.
"양! 이제 여기서 나가야 해!"
"뭐?! 지금 돈을 한번에 벌 수 있는 기회인데?!"
"난 깡패들한테 얻어맞고 싶지 않거든!"
로스는 살벌한 눈빛으로 양을 향해서 몰려오는 핑크 머리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너처럼 못 싸워! 그리고 저 새끼들이 얼마나 더 많이 있을지 황제폐하께서만 알고계시겠지!"
양은 한숨을 쉬었다. 로스의 말이 맞았다. 비록 양의 일부는 절대로 떠나고 싶어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가야 할 시간이었다. 오로지 끝없는 전투에 대한 갈망에 물든 양의 일부분이 잠시동안 루비와 피로 물든 전장의 참상을 떠올리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 '일부분'은 양의 마음 한켠에 자리잡은 채로, 은밀한 속삭임을 멈추지 않았다.
자기가 잠시나마 현실을 잊기 위해 도망치려 했다는 것을 깨달은 양은 심한 메스꺼움을 느꼈다. 마치 창자가 베베 꼬이는 듯한 격통이 물결마냥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난 겁쟁이야. 난 귀신이나 악몽으로부터 도망치려고만 했어. 루비가 이런 날 보면 뭐라고 할까?'
무거운 한숨이 양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그래. 이제 갈 시간이네."
경기장의 로프를 뛰어넘어 밖으로 나온 양은, 관객들의 기대와는 달리, 동료들과 함께 서둘러서 술집에서 빠져나왔다.
"아까 말려줘서 고마워, 로스. 좀 전에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줘서 미안해."
"말도 안돼."
로스의 부축을 받으며 비틀대던 카울린이 외쳤다.
"아까 그건 진짜 쩔었다고!"
"카울린, 너 꽤 취한 것 같은데."
라인은 카울린을 보고는 킬킬대며 말했다.
"우리 모두가 그렇지. 그나저나 이제 우리 자랑스러운 양한테, 자기 지갑을 부풀려줘서 고맙다고 말해야하지 않을까?"
"그건 진짜 고맙다, 양."
주변에서 웃던 다른 동료들도 함께 양에게 웅얼거리며 대답했다. 비록 로스는 아직도 화가 나보였지만 말이다.
양의 점차 어두워지는 표정에도 불구하고, 양과 동료들은 잊지 못할 기억을 만들었다. 도시는 늦은 밤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북새통이었다. 하늘은 수많은 비행선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고, 시멘트로 다져진 거리 곳곳마다 휘황찬란한 간판들과 불빛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곧이어 북적이는 거리의 소음에 둔탁한 가드맨들의 군화 소리도 섞여들어갔다.
'이제 좀 있으면 부대로 복귀하겠네.'
양은 오크와의 격렬한 전투 이후로 테이프로 둘둘 감긴 자신의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이제는 양의 두 손에는 깡패들의 피와 모래 알갱이들로 뒤덮여 있었고, 여태까지 도시에 있었던 일들을 상징하는 기념물처럼 자리를 잡고 있었다. 갑자기 양의 두개골을 두들기는 듯한 두통이 찾아왔다. 라인은 양이 넋 놓는 것을 보고는 그녀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환히 웃어 보였다. 그러자 양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라인... 이제 술을 더 이상 마시지 말아야겠어."
"양..."
"진지하게 하는 소리야."
양의 목소리에 담긴 진심을 눈치챈 라인은 당황하며 뒤로 물러섰다.
"음... 나도 최선을 다해서 도와주겠네."
"고마워."
"당연한 말이지 않나! 내 동료에게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일에 지나지 않으니까 말일세!"
라인이 양의 등을 팡팡 치며 말했다. 그러는 사이에 마엘은 꺼억하며 트름을 내뱉었고,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아, 이 빌어먹을 주정뱅이들 같으니라고. 조어비스가 너희들 불알을 짓뭉개버리기 전에 어서 막사로 돌아가기나 하자."
양이 앞에 있는 사내들을 밀어내며 말하자, 동료들은 시시덕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신이 멀쩡할 때도 미로처럼 얽혀있는 지저분한 골목 사이로 길을 찾는 데 애를 먹었는데, 술에 잔뜩 취한 상태로 길을 찾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다행히도, 기적이 일어났는지 서로 히히덕거리는 양과 동료들은 무사히 임시 막사에 도착했다.
갑자기 불길한 예감이 자신의 존재를 알리듯이, 양은 내장을 꼬아버리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아윽! 제기랄!"
양이 자신의 배를 움켜쥐며 작게 중얼거렸다.
"괜찮아?"
"아니."
양이 손을 코에 가져다 대자 붉은 피가 묻어나왔다.
'왜 갑자기 코피가 났을까? 아니, 누군가가 날 찾고 있어... 나는 그걸 또 어떻게 알았지?'
생각을 정리하며 양은 임시 숙소의 문을 열었다. 방을 주욱 훑어보자, 절망에 가득 찬 얼굴들이 양을 쳐다보았다. 취해있던 카울린조차도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어... 무슨 일이라도 있어?"
같은 중대에 소속된 소대원 중 하나인 라나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그 소식 못 들었어?"
"이단심문관에 관한 소식 말이야? 아니, 대체 왜 슬퍼해? 그놈들 전부 병신이잖아."
바이딕한테서 이단심문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던 양은, 라나가 왜 그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라나는 눈물을 닦아내며 말을 이었다.
"병장님이 방금 연대장 롱기누스 본 르스라펠님한테 들었다는데... 오, 홀리 테라시여... 그.. 그..."
"아, 뭔데. 빨리 말해봐."
"카디아에서 전투가 벌어졌대... 아... 아바돈이 13차 암흑 성전을 시작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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