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으핫 점령전 이후로도, 가끔씩, 잔드레크는 꿈을 꾸었다. 끝없는 말소리가 끊기고 짧은 단잠에 빠지면, 오바이런은 항상 주군의 옆에 가만히 서 가만히 잠에 든 잔드레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오바이런은 같은 이야기를 언제 처음 들었는지, 몇 번을 들었는지 기억조차 못할만큼 들었다. 잔드레크가 내뱉는 단어 한 마디, 몸동작 하나하나 그대로 따라할 수 있을만큼 그의 주군에 익숙했다. 그럼에도, 오바이런은 시간감각을 늦추지 않았다. 그의 의무가 주군을 앞에 두고 시간감각을 빠르게 돌리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것이 작은 불만일 뿐이었다.
그 때의 일 이후로, 오바이런은 잔드레크가 내뱉는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행복을 느낀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렇기에, 잔드레크의 침묵은 오히려 고통스러웠다. 그럼에도 그가 주군의 잠을 견딜 수 있는 것은, 잠에서 깨어난 네메소르가 들려줄 새로운 이야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이야기는 대체로 기계의 몸을 뒤집어쓴 악당이 순진하고 착한 귀족에 반기를 드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는데, 그 어떤 이가 네메소르에 반기를 드는지 쉬이 알아챌만큼 설명이 자세했다. 오바이런은 그 때마다 시간을 쪼개 추가적인 증거를 모았고, 결투재판을 걸었다.
물론 오바이런은 잔드레크가 꿈을 꾸는 것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었다. 잔드레크는 고위 네크론이라면 당연히 써야 할 신체의 기능을 사용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 어떤 이도 잔드레크가 네크론으로써 알아야할 신체 기능을 쓰고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가끔씩, 꿈에서 깨어난 잔드레크의 얼굴을 보며 꿈을 꾸는 것이 어떤 기분일지 상상했다. 꿈에 대한 기억이 남아있었다면, 그 기분의 파편이라도 맛볼 수 있지 않았을까?
오바이런은 전장 한복판에서 꿈을 꾸었다. 아니, 꿈이었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전장에서 전원을 내린 기억이 그에게는 없었다. 그러나 순간 엄청난 양의 잔상이 그의 기억소자를 스쳐지났고, 그의 기억의 파편은 이를 꿈에 가깝다 말하고 있었다. 그의 눈 앞을 흐릿하게 가린 불안감이 어느정도 걷혔을 때엔 눈 앞을 가리던 오크들의 머리 위해 야포가 떨어지고 있었고, 검붉은 흙먼지를 튀기며 퍼지는 폭음은 오크 무리에 칼과 방패를 겨누던 리치가드 팔랑크스를, 망치로 벽돌을 깨듯 흐트러놓았다. 그의 엉덩이에서 올라오는 따스함이 느껴질 때 즈음, 오바이런은 그의 시야를 가득 매운 상형문자 알림을 인식할 수 있었다.
'...'
'... 방향에 적군의 전초기지가 있음. 대규모 폭격을 가해 해당 방향으로 반군을 유인할 것.'
'... 소규모 팔랑크스로 ...를 돌파할 것. 심층영혼을 깨운 후 오버로드가 각성할 때까지 툼월드를 보호할 것.'
'다른 반군 세력 참전. 기존 명령은 취소. 후퇴.'
그제서야 오바이런의 눈에 전장이 들어왔다. 오크와 잔드레크의 네크론 병사들로 뒤엉킨 전장과, 그 위를 청소하듯 휩쓰는 제국의 기갑 병력, 그리고 지휘관의 명령을 받아 위상탈출을 하는 아군을 바라보았다. 보다 전장에 집중했다면, 제국이 들이닥치기 전 심층영혼을 깨울 수 있었다면, 그랬더라면 이 전장을 보다 유리하게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오바이런의 몸을 훑고 지나는 냉각수가 그의 수치심을 자극했다. 오바이런의 의식이 사그라들었다.
오바이런의 생체금속 몸뚱아리는, 그의 사고에 반해 완전히 굳어버렸다. 그의 시선은 연단에 고정되어있었고, 가운데에 서있는, 덩치 있는 존재가 잔드레크의 목을 움켜쥐고 있었다. 덩치 큰 존재는 그 어떠한 말도 뱉지 않았다. 그저, 그의 옆을 지키는 두 존재가 번갈아가며 질문하고, 무언가를 언급할 뿐이었다. 오바이런은 잔드레크가 연단에서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알지 못했다. 아니, 그는 관심이 없었다. 그저 그의 주군을 지키기 위해, 조금이라도 움직이기 위해 몸을 움직여볼 따름이었다.
오바이런은 여전히 그 어떤 것도 들을 수 없었고, 그의 몸 어떤 부위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러나 잔드레크의 입 밖으로 싫다는 답이 나왔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었고, 연단 위에 선 존재는 답을 듣자마자 네메소르의 목을 꺾고 연단 밖으로 던졌다. 오바이런은 여전히 움직일 수 없었다.
잔드레크의 몸뚱아리가 재구축될 즈음, 연단 좌우에 서있는 이들이 다시 한 번 말을 걸었다. 잔드레크는 다시 한 번 제안을 거부했고, 밝은 녹색으로 빛나는 비석에서 뿜어져나온 광선에 산산히 부수어졌다.
잔드레크가 몇 번의 파괴와 재생을 반복했을 때, 그재서야 오바이런은 몸뚱아리를 움직일 수 있었다. 연단에 선 이가 흥미롭다는듯 쳐다보았지만, 오바이런의 시선은 그의 네메소르를 향할 뿐이었다.
그의 분리된 왼 팔이 꿈틀거리고 있었고, 잔드레크의 몸뚱아리는 여전히 반쯤 아스라진 채 떨려오고 있었다.
연단 좌우에 선 이들이, 오바이런에게 제안을 했다. 오바이런은 그들이 내는 잡음에 집중하지 않았다. 그는 아련하게 꺼져가는 잔드레크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그대가 뉘신지, 나는 기억 못하오. 그러나 내가 그대를 참으로 사랑했던 것 같소.'
오바이런은, 그의 두 눈에서 방사능 냉각수가 흐르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사랑하는 이에게 짐을 쥐우긴 싫지만, 그럼에도 부탁 하나 하고싶소. 저 자의 계획은 악하오. 가능하다면, 저 자를 막아주었음 하오.'
오바이런은 한계 이상으로 몸을 쥐어짜 재생하는 그의, 기억 잃은 네메소르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는 그의 전투낫을 꼬나잡고, 숨을 내쉬었다.
두 비석에서 다시 한 번 녹색 빛이 뿜어져나왔다. 빛이 오바이런과 잔드레크를 휩쓸기 전, 그는 연단 중앙에 선 존재에게서 비릿한 미소를 읽을 수 있었다.
전장에서 벗어난 지금, 그의 꿈은 그 어떠한 순간보다 선명했다. 기억에 각인된듯, 그가 꾼 꿈은 몇 번이고 반복재생되었다. 그는 잔드레크가 주도하는 작전 회의에 집중할 수 없었다. 잔드레크는 수 시간동안 집중하지 못하는 오바이런을 바라보며, 끝내 한숨을 내쉬었다.
'오바이런,' 잔드레크가 그의 호위무사를 불렀다. 오바이런은 난감한듯 그의 주군을 바라보았다. '작전 내용을 재검토해보면 알겠지만, 폭풍군주께선 곤경에 빠진 왕조를 구조하라 하셨지. 반군이 있다 하셨다.'
잔드레크의 말이 옳았다. 폭풍군주의 언급으로도, 그가 오바이런에게 직접 내린 세부 지시사항에도 인류제국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다만 엄청난 수의 오크들이 서로 와아아ㅏ아를 벌이고 있었고, 현 추세를 볼 때 행성 자체를 통째로 날릴 물건이 오크 기술자들의 손에서 나올 것 같단 보고가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전장에 뒤늦게 나타난 반군은 우스꽝스럽게 녹색으로 분칠한 반군을 공격하는데 주저없었지. 즉, 같은 편이 아니란 점을 알 수 있는데, 예언자님께서 차마 계산하지 못한 변수같은 것이겠지.' 잔드레크는 잠깐 뜸을 들인 후 말을 이었다. '그러니 네 탓이 아니다, 이 말이다, 이 어리버리한 호위무사놈아.'
물론, 잔드레크는 꿈에서 갓 깨어난듯 어리버리하게 행동한 그 순간을 꿈을 꾸며 지켜보고 있었다. 이는 곧 그의 바가드를 놀릴 기회를 뜻하기도 했기에, 네메소르는 그의 부하를 아낌없이 놀려댔다. 오바이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폐에서 숨을 내쉴 때만큼 무거운 소리는 아니었지만, 잔드레크는 그의 바가드의 마음 한 켠에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다른 할 말은 없고?'
오바이런은 자신이 꿈을 꾸었다는 것을 이야기해줘야할지, 아니면 가슴에 묻어두어야 할지 한참동안 고민했다. 그러나 그는 밀려오는 궁금증을 이기지 못했다.
'잔드레크,' 오랜 침묵 끝에, 오바이런이 입을 열었다.
'네메소르 잔드레크님이라 해야지,' 잔드레크가 윙크하며 대답했다. '그래도 묻는 것이 있는듯하니 대답은 해주마.'
오바이런은 그가 꾼 꿈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호위무사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주군이 아스라지기까지 아무것도 못한, 무능한 모습까지 이야기할까 고민하다 그저 솔찍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낫겠다 싶어 기억하는 모든 것을 말해주었다.
'저는, 그 상황에서 무엇을 하는 것이 옳았을 것 같습니까?'
짧은 시간동안, 잔드레크는 충격에 빠진듯 얼어붙었다. 아무래도 기억을 잃는다는 것이 두려움으로 그를 엄습했기에 그런 것 아닐까 싶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회의실 책상을 두드리기도 했고, 흑암 바닥을 발바닥으로 토닥이며 생각을 이어나갔다. 수백번의 불규칙한 박자, 흐음, 허어같은 한숨소리, 그리고 고개짓 끝에 잔드레크는 입을 열었다.
'글쎄, 녹색 광선에 맞고 꿈에서 깬 것이면 너 혼자의 힘으로는 어떻게 못하는 상대인 것 같구나.'
오바이런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런 바가드를 바라보며, 네메소르는 검지손가락을 휘저었다.
'아니지, 그래도 답이 없는 것 같진 않구나.'
잔드레크는, 그 말을 끝으로 여러 가능성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혹시라도, 혹시라도 내가 살아있다면, 혹시라도 시간이 너의 편이라면, ' 잔드레크는 오바이런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내가 네게 했던 것처럼, 네가 나의 기억을 채워주었으면 하는구나. 지금처럼 너의, 혹은 너와 나의 이야기를 해다오. 함께, 시련을 이겨나가자꾸나.'
잔드레크가 증원을 요청할 때 즈음, 사우테크는 그의 전장으로 막대한 수의 제국 함대가 몰려드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모테크는 몇 명의 네메소르를 추가 파견하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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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추
severed가 꽤 짧은 분량의 소설인데도, 잔드레크와 오바이런의 캐릭터를 새삼 정말 풍부하게 만들어준거 같아
소재도 좋겠다 이런 팬픽 많이 생기면 좋겎당
이런 게 올라왔는지도 몰랐는데 아쉽다 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