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일백 하고도 십이 년 동안 인도미투스 성전을 치러왔구나.
제군은 나를 두고 "보라! 인류의 주군(Master of Mankind)의 아드님께서 우리를 구하셨다! 카오스의 영주들을 무릎꿇리고 함대가 워프 폭풍 속에서 침몰할 때 오롯이 별들을 이으셨도다!" 이런 찬사를 늘어놓았다.
허나 분명히 말하건대 이는 나 혼자만의 공이 아니다. 내 홀로 수백의 항성계를 해방하지도, 홀로 수십의 챕터를 지원하지도, 홀로 포위된 병력들을 구원하지도 않았다. 어둠을 걷어낸 것은 나 혼자가 아니다. 나는 일개 인간일 뿐이다. 프라이마크의 육신을 타고났으나 나의 혼과 심과 혈은 인간의 것이 아니더냐.
내 아버님은 최상의 인간을 염두에 두고 나를 만드셨다. 허나 최상의 인간은 내가 아니라 바로 제군이다. 이 대제국의 무수한 행성과 조직에서 모인 그대들이 이 모든 군공을 이룩한 것이다. 그대들이 바로 성전의 근육에 도는 힘, 가슴에서 불타는 분노였다. 그대들 없이 나 홀로 무엇을 이뤘겠는가? 아무것도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아무것도! 그러니 모두들 고개를 들고 자부심을 가져라. 그대들의 노고가 아니었다면 제국의 명운도 기울었을 터이니!
이 자리에서 나는 인도미투스 성전의 과업을 달성했음을 선포한다. 우리의 피를 흘리고 목숨을 바치며 제국의 긴축에 쓰일 귀한 시간을 벌어냈다. 허나 다른 곳에서 우리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구나. 백십이 년 동안 함께 분투해 온 우리도 이제 작별할 시간이다. 인도미투스 성전은 끝났다. 오늘의 라우코스 승전으로 성전의 성공을 기념하자.
새로운 임무가 제군을 기다린다. 기념식이 끝나는 대로 명령서들을 내리겠다. 널리 흩어져서 적들이 어디에 나타나든 격멸을 멈추지 말자꾸나! 그대들을 내 곁에서 보내는 것은 그대들을 깊이 믿는 까닭이니, 제군의 무용은 참으로 눈부셨도다. 어디로 향하든, 제군의 장구를 수놓는 이 성전의 휘장을 본 제국의 병사들은 희망과 안도감 대신 가슴에 확신을, 손에 총을 들고 일어나 우렁찬 함성으로 적들을 영원히 워프로 몰아넣으리라! 바로 그대들이 해온 일이며, 그대들이 할 일이다. 제국을 구한 남녀 영웅들을 보니 나 자신이 참으로 초라하게 느껴지는구나!
아들들아! 제매(弟妹)들아! 곧 군종사도(militant-apostolic)가 너희를 축성하며 내 아버님, 황제 폐하의 말씀을 전할 것이다!
내 전우들(warrior-brothers)에게는 따로 전할 말이 있다. 비번호 군단(Unnumbered Sons)들은 대성전 군단들의 빛이 바래도록 용맹하게 싸워주었으니, 이제 보상을 받을 차례다. 제군 중 일부는 새로운 챕터를 건설할 것이며, 나머지는 종부(genesire)의 자손들을 만나 형제로서 전장과 만찬의 영예를 함께할 것이다. 그대들 중에서도 나의 유전자와 울트라마린의 상징색을 물려받은 이들은 나의 이 마지막 말을 새겨듣거라 ─ 이 자리가 정리되는 대로 우리는 새로운 전장을 향해 나아간다. 내 아우 모타리온이 우리의 고향 울트라마로 역병을 몰아오니, 내 절대 이를 좌시하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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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의 변:
1. 의역 싫어하는 사람들은 번역이 영 아니게 느껴질 것임. 한국어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여러 문장을 하나로 모으거나 문장 구조를 재구성한 것들은 조금 있음. 그래도 의미를 완전 왜곡한 것은 없다고 생각함.
2. 제군(諸君)의 '제'는 '모두 제'로, 한자의 뜻 자체가 이미 복수의 의미를 담고 있음. 따라서 '제군들'은 이중 복수 표현임.
3. 제매(弟妹)는 brothers and sisters인데, 굴리먼의 입장에서 장병들 중 형누나는 없기 때문에 형제자매에서 형과 자를 뺌.
4. 비번호 군단은 성전에 참전한 프리마리스 마린들을 일컫는 말인데, 프라이마크들의 자손이지만 정식 군단 번호를 받지 못했다는 점에서 비번호 군단이라는 역어를 채택함.
5. 종부는 gene과 sire의 합성어로 2K 테라에서는 쓰이지 않는 말임. 아무튼 유전적 아버지라는 뜻인데 간명하게 한 단어로 나타내고 싶었음.
6. 모타리온 '아우'에서 열받은 분들이 좀 있으리라 생각해서 설명을 드려야 할 필요성을 느끼는데, 보통 형제라고 번역해버리는 영단어 brother는 사실 번역하기 가장 어려운 단어 중 하나임(sister도 마찬가지). 영어와 한국어의 큰 차이 중 하나로 서열관계의 표현을 들 수 있음. brother에는 서열 의미가 없기 때문에 형제 중 아무나 지칭 가능함. 여기에 older(big) brother, younger(little) brother 같이 수식어가 더 붙어야 형이냐 동생이냐를 가릴 수 있게 됨. 반면 한국어는 형이냐 동생이냐 같은 서열을 먼저 확정하지 않으면 언어를 쓸 수가 없음. 형이면 형이고 동생이면 동생이지 탈서열적인 관점에서 male sibling을 다루는 단어는 없음. 다시 말해, brother는 단수인 반면 형제는 복수인 것임. 따라서 brothers라고 한다면 형제들 이라는 번역이 가능하겠지만, brother일 경우 이 brother를 말한 사람과 brother가 지칭하는 대상의 서열관계를 먼저 확정해야 형과 동생 중 하나를 택해서 번역이 가능한 것임. 그래서 모타리온과 굴리먼의 관계를 내 나름대로 설정해야 하는 고충이 있었음. 프라이마크들은 사실상 쌍둥이들이라 황제가 매긴 번호와 그들이 발견된 순서를 기준으로 삼기로 했고, 모타리온(14번)은 굴리먼(13번)보다 번호에서도 하나 늦으며 황제에 의해 도로 거둬진 순서도 늦다는 점을 감안하여 굴리먼의 아우라고 번역하기로 했음. 쌍둥이들끼리 태어난 순서로 형누나 삼는 거 생각하시면 되겠음. 번역이 마음에 안 들 수는 있겠지만 역자도 나름 고민했다는 것은 알아줬으면 합니다.
끝.
번역 디게 고심하며하시네 수고하셨슴.. 다만 길리먼이 모타리온보러 아우라..
소설 같은 걸 안 읽어봐서 둘이 실제로 서로를 어떻게 인식하는지 잘 모릅니다..
개추이긴 한데, 반역파 프마가 자기 동생인 걸 시인했다고? 그것도 승전기념 연설이라는 공개석상에서??? 반역파 프마 정보는 제국교회 주교급 인사만 아는 극비 아녔음? ㄷㄷ
따로 문단 나눠져 있는거 봐서는 마린들만 따로 불러서 한거 아녀?
해당 레딧글에서도 이거 인퀴지션 기억소거 개빡세겠다고 드립 나왔던듯
비번호가 그레이쉴드임?
그렇습니다
그냥 형제쯤으로 번역해도 됐을듯
저런 걸 못 참는 성격이라서..
너무 의식한거 아님? 퀄은 좋다만
의식은 많이 할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이거 현장에서 들으면 프마 뽕 오지게 차겠네
적당히 공적으로 가다가 아들들아! 부분에서 사적인 거리로 확 들어가는 화술을 표현하려고 했는데 잘 되었을지 모르겠습니다.
상식인 굴리먼이야말로 4만 제국에선 파격이라는 느낌이 팍 드네.
적당히 상식적인 프마 하나만 더 있어도 늙지는 않을 텐데
저런 상사 밑에선 일할맛 날듯 - dc App
피할 수 없는 싸움이라면 치하와 동기부여는 확실하게..
생각을 되게 많이 하셨네. 근데 군단은 이미 폐지된지 오래라 좀 오역 같다. - dc App
옛 군단에 준하는 인원으로 편제된 아홉 개의 프리마리스 제대로 구성되어 있다고 해서 군단이라고 옮겨봤습니다.
엄청 신경쓰신 번역이네요 ㄷㄷ 확실히 유전-애비보다는 종부가 분위기에 맞는듯
고심 많이 하시면서 글 옮기셨네요. ㅊㅊ
개인적인 잡상이지만, 길리먼의 평소 태도나 성격, 모가놈 꼬라지를 볼 때 아마 '내가 사방에 똥 뿌리는 모타리온 새끼를 조지고야 말겠다'를 엄숙하게 옮기느라 무지 애썼을듯
형제가 복수인것과 별개로 저건 형제로 번역하는게 맞음. 내 형제중 하나 모타리온을 지칭하는것이니까. 그냥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형제가 복수라는걸 딱히 신경쓰지 않고 쓰는것과 마찬가지. 번역을 언어학적으로 접근하는것은 매우 훌륭한 자세이나, 결국 사람들이 쓰는 말로 옮기는 작업이란걸 잊으면 안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