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회상을 방해한 데에 사죄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천부장이 말했다.
드레드노트는 살아있는 생물과 같은 방식으로는 움직이지 않았다. 자연스러운 움직임에 수반되기 마련인 불필요한 몸짓들이 거기에는 뒤따르지 않았다. 드레드노트의 움직임은 조각상이 움직이는 것처럼 절제되어 있었고, 각 움직임의 사이사이에는 비정상적인 정적이 뒤따랐다. 드레드노트의 안에 살아있는 전사가 매장되어 있다는 사실은 자칫 잊기 쉬운 사실이었지만, 컨템터 패턴 드레드노트의 동체가 죽음의 순간에 있는 전사의 생명을 유지하는 데에 있어서의 기능상 한계가 정확히 어디까지인지는 만인대의 전사들 사이에서 이전에 최소한 한 번 이상 철학적 논쟁이 오갔던 사항이었다. 드레드노트의 생명 유지 시스템들은 그 속에 든 전사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었지만, 그 동체의 석관 속에는 담겨 있는 전사의 잔해는 그 생명학적 껍질과의 연결이 끊어진다면 그 순간 진정으로 사망하게 될 것이었다.
드레드노트 내부에 안치되어 있는 전사는 삶과 죽음의 경계 사이를 가로지르는 상태에 있었다. 스스로를 유지하기 위해 신성한 기계장치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나약함이었지만, 거기에는 죽음에조차 대항하였다는, 억누를 수 없이 맹렬한 결단력 또한 동반되고 있었다.
만인대의 전사들은 모두 극도로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 철인(哲人)들이었고, 그들은 하나의 궁극적인 결론, 유일하게 중요한 결론에 도달하였다. 바로 그들의 주저와 의심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것. 당신의 전사들이 더 이상 그리할 수 없을 때까지는 계속해서 살아남아 싸워야 한다는 것이 바로 황제의 의지였다. 바로 그 결론에 대한 증거가, 사기타루스의 동체의 장갑판 위에 황제의 손으로 직접 새겨져 있었다. 오직 죽음으로만 의무는 끝이 난다, 라고.
“기억들이.” 거대한 금빛 기계는 대답하였다. “기억들이 계속 뇌리에서 잊혀지지를 않네, 라. 때로는 이 안개가 그 기억들을 불러오는 것만 같아.”
라는 그와 같은 생각을 이전에도 한 번 이상 품어본 적이 있었다. 두 커스토디안들은 신들의 첨탑의 안뜰에 서있었다. 한때 첨탑의 안뜰에는 이미 오래전에 사멸한 외계인들의 식물원이 길게 뻗어 있었지만, 이제 그 장소는 기계교의 조립식 건축물들에 자리를 내준 채였다. 기계교의 산업적 재능을 여실히 드러내는 판자촌은, 부활한 도시에 만연한 엘다 종족의 창백한 뼈색과 기계교의 회색과 청회색과 대비되어 더욱 어둡게 보였다.
사기타루스는 옆구리가 뻥 뚫린 공업 시설에서 유지 보수 작업을 받고 있었다. 불똥이 튀었다. 공기 중에서는 성유와 녹아 내린 금속의 냄새가 풍겨오고 있었다. 한 무리의 무장 서비터들과 대장인들이 드레드노트의 외피에 달라붙어, 동체를 수리하고 팔에 장착된 병기들을 장전시키고 있었다. 사기타루스의 움직임에 그의 주변에서 이루어지고 있던 기술적 군무가 흐트러졌고, 그에 따라 불평하는 소리가 합창처럼 터져 나왔다. 사기타루스는 아니나 다를까, 테크 프리스트들의 불평을 무시해버렸다.
라는 큼직한 드레드노트의 외피 앞에 서있었다. 금빛 외피 위에는 여기저기 균열과 구멍, 그리고 음푹 들어간 자국들이 잔뜩 나있어, 그 모습이 마치 소행성들에 두들겨 맞은 미행성 같았다. 라는 사기타루스의 망가진 육신을 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것이 바로 만인대 전체가 동의한 사항이었다. 아직까지 남아 있는 전사들은 모두 사기타루스가 멀쩡했던 모습을 보았던 이들이었다.
“어떤 때는 안개 속에서 유령이 보이기까지 한다네.” 드레드노트가 말했다.
“유령 따위의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고결한 친구시여. 유령이란 그저 공상 속 존재일 뿐입니다.”
“대부분의 유령들은 엘다 종족의 것이었네. 내 생각에는 아마 내게 간청을 하고 있었던 것 같아. 놈들이 내게로 접근해왔네. 모두가 외계인의 유령인 것은 아니었어. 연기로 변하는 유령들 속에서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네. 이미 쓰러졌을 만인대의 전사들의 얼굴이.”
라는 드레드노트에 장착된 병기들이 회전하는 것을 보았다. 그것들을 쏘고 싶어 안달이 나있는 것이 뻔히 보였다. 사기타루스의 쉽사리 분노하고 마다하지 않고 기꺼이 화를 내는 성격은 죽음으로도 누그러지지 않았다. 드레드노트는 서보 장치를 드르륵거리며 움직여 동체를 돌렸다. 그를 수행 중이던 머신-아뎁트들 중 여럿이 이진법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그대는 안개 속에서 유령을 본 적이 있는가, 라?”
“아니오.” 라는 거짓말을 하였다.
기계의 기어 장치가 미끄러지는 듯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드레드노트의 동체가 그 내부에 든 망자의 웃음소리를 발성하려 하고 있었다. “그래, 잘 알겠네. 그래서 내게는 무엇을 원하는가? 적들이 당도하기 전에 해야 할 일들이 많을 텐데.”
“이미 말씀해주신 것들 외에는 달리 원하는 바는 없습니다. 곧 있을 전투에 대해 경고해드리고자 왔습니다.”
드레드노트가 주먹의 관절을 풀 듯, 큼직한 파워 피스트를 쥐었다 폈다 하였다. 그런 다음, 사기타루스는 자신의 손목을 회전시키며 윙윙거리는 소리를 내었다. 라는 기계장치의 흐릿한 시각 렌즈 뒤에서 시신의 창백한 얼굴이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무슨 경고 말인가?”
“황제 폐하와 영혼 없는 여왕께서 적들 사이에 특출한 힘을 지닌 워프 생명체가 존재함에 대해 경고하셨습니다. 해당 워프 존재는 크롤 사령관이 파견한 수호자를 그와 동행한 워호스트와 함께 파괴하였습니다.”
드레드노트는 쿵 하는 금속음과 함께 몸을 움직였다. 수호자들, 그 중에서도 특히 시카리안 알파들-Sicarian Alphas는 쉬이 전사하는 일이 드문 존재들이었다. 그러나 황제의 경고에 담겨 있는 그 개념은, 사기타루스의 마음 속에 아릿하게 내려앉았다.
“그것의 역량에 대해서는 파악이 되었는가?”
“그것이 치명적인 힘을 지녔다는 것 외에는 파악된 바가 적습니다.”
황금빛 병기는 그것에 장착된 자동 장전식 화기들을 천천히, 그리고 부드럽게 회전시켰고, 테크-프리스트들은 그 움직임을 분석하며 그것이 얼마나 매끄럽고 유연하게 움직이는지를 점검하였다.
“그 존재를 파괴해야만 하네, 라. 그것이 성벽에 도달하여, 우리를 따돌리고 도시 내부로 진입하기 이전에 그것을 파괴해야 하게. 한 번 전투가 거리 안쪽까지 침투해 들어오고 나면, 전황이 무질서해지게 될 것이야.”
“우연이군요. 저 역시 동의합니다. 허나 저희에게는 대규모 기습 공격을 가할 수 있을 만한 역량이 얼마 남아있지 않습니다. 외곽 터널들로부터 소개 작업이 계속 진행 중에 있습니다. 후위대 병력들 또한 그 위협에 대해 인지하고 있으며, 통합자들은 해당 생명체의 예상 공격 경로를 예측하는 작업 중에 있습니다. 만일 해당 측량 결과가 나온다면, 그것에게 매복을 가할 수도 있을 겁니다.”
“허면 매복을 하는 방침으로 가야겠군. 놈이 칼라스타에 도달하기 이전에.”
“실로 그렇습니다, 사기타루스. 저는 놈이 우리 사이를 몰래 빠져나가 옥좌의 방까지 도달하지는 않을지 더 걱정입니다.”
드레드노트는 음을 소거하였고, 그 주먹은 쥐어졌다 펴졌다를 반복하며, 무심결에 그 조종사가 생전에 보이곤 하던 버릇을 내보였다. 파워 피스트의 텅 빈 손바닥 안에서, 파워 피스트 안에 내장된 플라즈마 건의 자력 코일이 규칙적인 리듬을 내며 딸깍거렸다. 드레드노트 외피 안에서는 사기타루스의 잔해가 데이터-스트림 속을 뒤지며 원하는 보고 내용을 검색하고 있었다.
“수호자가 사망 신호는 보냈는가?” 사기타루스가 물었다.
라는 화려하게 장식된 완갑에 달린 커맨드 콘솔 장치를 작동시켰다. 콘솔 장치의 자판 키들은 오라마이트 장갑판 위에 우아하게 새겨진, 날아오르는 독수리 장식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었다. 라는 알파-로-25의 마지막 시청각 전송 신호를 찾아내, 드레드노트의 복스 장치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전용 복스 링크를 통해 전송시켰다.
신호가 반복해서 재생되었다. 수 초 후, 사기타루스는 끙 하는 소리와 함께 몸을 일으켜 세웠다. “이것은 무슨 뜻인가? 이 단어 말일세.”
“그 많은 잡음들 사이에서 그 단어를 포착해내신 겁니까?” 라는 무표정히 놀라워했다. “황제 폐하께서도 그 단어를 감지하셨습니다. 허나 제게는 알파-로-25가 사망하는 소리 외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가 않는군요.”
“반복해서 발음되고 있네. 신호가 끊어지면서 생기는 잡음이 마치 호흡 소리처럼. 드라크’니옌. 드라크’니옌. 드라크’니옌, 하고 말일세.”
라는 그제서야 그 단어를 처음으로 듣게 되었다. 황제가 했던 말이 다시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의 주인이 그 이름의 의미를 설명해주었던 때에 들었던 그 음성이.
“드라크’니옌.” 라가 되뇌었다. “제국의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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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크'니옌의 이름 뜻 원문은 "The End of Empires"다. 직역하면 제국"들"의 종말. 근데 저대로 하자니 좀 어색해서 그냥 제국의 종말로 고친 것.
의역해서 고치긴 했지만 일단 원문은 복수형이라는 거를 유의하고 보면 좋을 거 같아서 각주로 달아둔다. 저것도 무슨 의미가 있을 테니.
아... 이걸 보니까 느껴지는게 드라크니엔이 최초의 살해에서 탄생했다는게 중요한게 아니구나... 그 최초의 살해가 존속살해라는 점, 그것이 바로 제국을 무너트리는 내분을 의미한다는 점이 중요한거란 생각이 든다. 드라크니엔이 황제에게 유독 강했던것도 헤러시라는 상황이 드라크니엔에게 힘을 준게 아닌가 싶다. 헤러시 자체가 형제들간의 존속살해의 연속이니까.
드라크니옌도 라틴어임? - dc App
ㄴㄴ 인간의 말이 아님. - dc App
계속 언급되는건데.. 드라크니엔의 탄생은 인류 최!초!의 살해-생존을 위한 살해가 아닌 살해를 위한 살해-에서 탄생한것임. 존속살해가 아님~~~
드라크니옌 포스ㄷㄷ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드레드노트가 저 단어를 들을 수 있는 이유는 뭔지 궁금하네요 - dc App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다고 표현을 하는 거지, 결국 살아있는 거잖아. - dc App
움직이는 걸을 그것도 커카를 수리하고 있는 테크 프리스트는 정말 죽을 맛일 듯ㅋㅋㅋ
라가 드라크니엔 봉인하고 웹웨이 걸어가는 그친군가
제국들의 종말이 맞는 번역이라고 하려고 했는데 각주로 다니 ㅇㅋ. 저게 큰 의미가 있는건 단순이 the empire인 이번 인류제국에대한 파멸이 아니라 수많은 인간의 제국에 대한 각자의 파멸이라는 의미가 되므로 문맥의미 해석이 좀 달라진다고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