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들은 곧 여기에 이를 것이다.”
말카도르의 말을 들은 수석 아스트로텔레그래피카(Astrotelegraphica Exulta) 에이리히 할페르페스가 눈살을 찌푸렸다. 버려진 헝겊 조각처럼 누르스름한 피부에는 주름이 가득했다.
“스페이스 울프 군단의 흔적은 찾지 못했나이다. 러스 공에게서 소식이 있는지요?”
“오해가 있었군.”
말카도르가 사과의 의미를 담아 고개를 숙였다. 지팡이를 흉벽에 기댄 채 팔짱을 낀 말카도르의 눈앞에 철벽의 요새와 전사들로 가득한 풍광이 내비쳤다.
“루나 울프 군단 이야기였다네.”
“선 오브 호루스 군단을 이르신 것이겠지요.”
말카도르의 옆에 선 에이리히가 답했다. 그는 아뎁투스 아스트라 텔레파시카를 이끄는 지도부의 성원이었다.
“시적 감흥은 훨씬 덜하군.”
아스트로패스가 투덜거리며 어깨를 으쓱였다.
“당신이 옳으십니다. 배신자들의 함대는 이제 며칠 안에, 어쩌면 몇 시간 내에 여기 이를 것입니다.”
말카도르는 에이리히와 소울-바인딩 의식을 마친 사이커들이 워프의 신비를 파헤치고, 아스트로노미칸의 빛에 올라 먼 세계와 메시지를 주고받는 첨탑 위에 서 있었다.
천문학자들이 빛공해가 빚는 혼란을 피하려고 천문대를 높은 곳에 배치했듯이, 아스트로텔레패스들 역시 높은 탑에 자리를 잡았다. 요새화된 황궁 핵심부에 자리한 사이킥 실드의 파장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들과 함께 불협화음이 이르고 있나이다.”
에이리히가 말을 이었다. 평소라면 꼼꼼하게 밀려 있을 턱과 뺨에는 뻣뻣한 수염이 가득했고, 녹색 로브는 흐트러져 있었으며,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끊임없는 긴장과 불면, 그리고 휴식 없는 밤이 가져온 흔적이었다.
“처음에는 단지 워프의 정적이 빚은 역류라 생각했지만, 수십여 척의 적선이 포착되었나이다.”
“수백이겠지. 어쩌면 수천 척일 수도.”
말카도르가 조용히 정정했다.
“그러하나이다.”
에이리히가 신경질적으로 기침을 토했다. 허리띠를 움켜쥔 채 경련하는 손가락처럼, 최근 새로 얻은 긴장증 발작과도 같은 증세였다.
말카도르는 어떤 첨언도 없이 아스트라 텔레파시카가 취합한 정보를 머릿속으로 빨아들였다. 워프의 반역자들이 남긴 흔적을 쫓는 것은 말카도르가 이끄는 사이커들에게 막대한 부담을 안기고 있었다.
“워프의 역류가 아니었나이다. 천상의 영역 그 자체였지요. 반역자들과 함께 워프의 공명이 이른 것이지, 반역자들이 빚은 것이 아니었나이다.”
“항복을 권하는 흉측한 나팔 소리나 다름없도다. 우리 앞에 무릎을 꿇으라는 것과 무엇이 다르더냐? 그래, 얼마든지 그렇게 말해 보아라!”
에이리히는 혼란 속에서 눈살을 찌푸린 채 황제의 섭정을 바라보았다. 말카도르가 한숨을 내쉬었다.
“대단한 자명종이로다. 전령들이 나팔을 들고 참람한 군주의 도래를 알리고 있으니.”
“전령이라니, 무슨 말씀이시온지요? 지금은 말씀 속에 신비한 수수께끼를 품을 때가 아니옵니다, 시길라이트여.”
말카도르가 손을 내저어 에이리히의 걱정 섞인 말을 밀쳐냈다.
“중요한 것은 아니다.”
말카도르는 지팡이를 짚은 채 수석 아스트로텔레그래피카를 응시했다. 그의 역량은 어느 정도나 될 것인가?
“관측을 중단하도록. 더는 이러한 관측에서 얻을 것은 없다. 자네들 역시 쉬어야 하고. 앞으로 며칠 내에 더욱 거대한 시련에 직면하게 될 것이니.”
“하지만 호루스는 어찌합니까?”
“그는 오고 있다. 우리는 그의 진군을 막을 수도, 틀을 수도 없지. 그의 도래를 굳건히 맞이하는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
말카도르는 돌아선 채 성벽을 따라 다시 탑으로 돌아갔다. 마지막 한 마디를 속으로 삭여내며.
‘그리고 그가 도래하면, 온 테라의 살아 있는 영혼이 그를 보게 될 것이다.’
거의 7년 가까운 시간 동안 수십억의 영혼들이 지치지 않는 로갈 돈의 천재적인 지휘 아래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요새를 건설했다. 그리고 말카도르는 바로 그 요새, 황궁을 가로질러 황궁 깊은 곳의 황궁 지하감옥을 향했다. 처음 빚어질 때 그러했던 것처럼 황궁 지하감옥은 여전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테라의 프레토리안에게는 무엇도 당연히 보장된 것이 아니었다. 바로 지금, 인류 생존을 위한 전투의 최선두에 선 그는 그 어느 것도 운에 맡기지 않았다. 수천의 영혼들이 통로를 오가며 각 포대와 저장실에 물자를 나르고 있었다. 혹은 전투에 배치된 병장기들을 적절한 장소에 옮기고 있었다. 로갈 돈은 마지막 열기와 한 줌의 쓰레기까지 끌어모아 주조해냈다.
만족할 만큼은 아니지만, 말카도르 마음 한 켠에 낙관하는 마음이 피어올랐다. 할페르페스에게 말했던 것처럼, 말리아 저지대 주변부 최동단의 42호 관문의 탑에서, 포탄 따위로 어찌 해 볼 수 없는 일이 시작되고 있었다.
시길라이트는 한때 작디 작은 일이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이론을 탐독한 적이 있었다. 추주(Chuzu)에서 밟은 딱정벌레 한 마리가 플로리다 제도를 짓밟는 허리케인이 될 수 있는 셈이다. 이 이론은 수많은 수학 기호들과 방정식을 통해 설명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워프에 대한 지식이 알려지고 널리 퍼지기 이전의 일이었다. 워프와 그 안에 거하는 생령들에게는 어떠한 인과도 없었다. 놈들은 더욱 거대한 숙명을 빚었고, 그 앞에 운명은 유연히 변화할 뿐이었다. 생령의 추종자들의 변이해 부풀어오른 육체만큼이다 유연하게.
제국의 미래는 바로 이곳, 철벽에 둘러싸인 황궁에서 결정될 것이다. 하지만 화력의 총합이나 거포가 그 미래를 결정지을 것은 아니리라. 그것들은 벌어지게 될 대결 속에 그로테스크한 유혈과 치러야 할 대가를 빚어낼 뿐이다. 워프의 전령들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놈들의 사이킥 나팔은 단순한 신호가 아니고, 어둠 그 자체의 도전장이나 마찬가지였다.
‘여기 시원(始元)의 투사가 왔노라! 그 앞에 무릎을 꿇거나, 사라져라!’라는 울부짖음.
돈도, 불칸도, 생귀니우스도, 자가타이도 호루스를 꺾을 수 없을 것이다. 호루스는 거의 초월의 단계로 이르렀은즉. 모두가 힘을 합친다면? 어쩌면 가능할지도. 하지만 호루스는 바보가 아니다. 그의 영혼이 품은 약점이 모두 드러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바보가 아니다. 그는 지금까지 승리를 위해 전장을 고르는 데 있어 완벽했다. 호루스가 노리는 것은 단 하나, 그를 빚은 아버지였다.
말카도르의 머릿속에 불안감이 감돌았다. 웹웨이 재건을 위한 필사의 노력이 실패로 돌아간 후 인류를 위한 희망은 꺾였건만, 여전히 호루스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자, 호루스가 꺾고자 하는 유일무이한 존재는 아직 건재했다.
그리고 호루스는 절대 이길 수 없는 싸움을 걸어오는 자가 아니다.
어깨를 움츠린 채, 이를 앙다문 말카도르는 더 빨리 지하감옥 아래로 향했다. 마음 한 가운데 불길한 예감이 구름처럼 일었다.
오래된 고목으로 빚어진 문이 말카도르의 도착과 함께 열렸다. 문 너머에 펼쳐진 황궁 지하감옥의 장엄한 출입로에서 멀지 않는 곳에 작은 곁방이 있었다. 말카도르가 문턱을 넘어 손을 흔들자 문은 조용히 닫혔다. 벽가에 걸린 촛대에서 타오르는 불꽃이 살아있는 듯이 일렁였다.
벽 위를 두른 석고 곳곳은 금이 가 있었고, 그 위를 수놓았던 벽화는 색이 바랬다. 수십 세대를 지나며 수많은 사람이 발을 디딘 모자이크 바닥은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닳아 있었다.
방 안에는 다른 문은 없이, 오직 원형 테이블 하나와 서로를 마주 본 채 놓여 있는 두 개의 등받이 의자뿐이었다. 테이블 위에 화강암과 흰 대리석으로 빚어진 팔각형의 판이 놓여 있었다. 그 옆에 놓인 가벼운 나무 상자 안에는 스무 개의 놀이말이 자리했다.
의자 뒤에 지팡이를 기댄 말카도르는 의자에 몸을 맡기고 생각에 잠겨 놀이말들을 바라보았다. 전부 평범하게 생겼다. 생명 따위 찾아볼 수 없는 회색의 회전 축처럼 생긴 놀이말들이었다. 테이블 한 쪽에 얇은 수정 재질의 카드 덱이 펼쳐져 있었다. 카드 하나하나마다 시길라이트의 룬이 새겨져 있었다. 맨 위의 카드를 집어 들었지만, 예상한 대로 내용은 텅 비어 있었다.
말카도르는 카드를 다시 돌렸고, 눈을 들어 자신의 앞에 앉은 인물에 시선을 던졌다. 진홍빛 후드 망토를 어깨에 두른 장신의 남자였다. 잔인함은 없지만 엄격한 표정, 거의 알아볼 수 없었지만 형형한 안광에서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어두운 빛의 머리카락이 전사의 상징처럼 두피를 덮었다. 깜빡이는 횃불 속에 일렁이는 피부는 거친 삶의 흔적이 남겨져 있었지만, 세월이 남긴 흔적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말카도르의 풍화되고 시든 피부와는 전혀 다르게.
말카도르는 순간 고대의 저주받은 초상화 전설을 떠올렸지만, 말을 꺼내기도 전에 말카도르의 상대가 입을 열었다.
“워마스터가 되겠느냐?”
계시의 물음이었다. 말카도르는 그의 앞에 빨간 조각들을 늘어놓았지만 계시는 배치가 끝나기 전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강인한 손이 보드 중앙의 공간에 조각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덱에 놓인 크리스탈 카드만한 직사각형의 공간 사이에 배열이 놓였다. 모든 준비가 끝나자 조각들은 색을 바꿔 지은 푸른색을 띄었다.
말카도르는 카드를 들어올려 섞기 시작했다.
원래 있던 번역이 삭제된 것 같아서 번역해 봄.
의역 오역 잔뜩 있을 것 같긴 한데 그냥 뉘앙스 살리는 데 집중했음.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단편이라 시간가는 줄 모르고 했네.
The Board is Set 이네. 따로 저장한거 있었는데, 아무도 요청안해서 안 올렸더니 이런 수고를 끼치는구만요.
잘보고있습니다.
도리안 그레이를 아는 틀카도르좌
어디 블로그 같은데 번역 있었던 것 같은데 삭제됨?
ㅇㅇ 삭제됐음
고맙당 잘 보고 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