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이 글은 쿠보 타이토가 융심리학의 기본 개념들을 배경지식으로 지니고 블리치라는 작품을 만들었다는 가정 하에 씀.
어렸을 때 원피스 대신 블리치를 보며 자란 난 최근 뒤늦게 천년혈전이 애니화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만화로 본 천년혈전편을 다시 보면서 최근 공부한 융심리학의 관점으로 이치고라는 인물의 성장과정을 보게 되었음.
그러던 와중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bleach&no=97558 이 글을 보게 되었고, 신화적 요소가 많이 들어갔고 특히 개인의 의식과 무의식, 영혼에 대해 많이 다룬 작품인 블리치를 융 심리학의 렌즈로 내가 해석한 걸 사람들에게 좀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이 글을 쓰게 됨.
우선 융 심리학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기본 개념 몇가지를 설명하겠음.
심리학이라는 학문의 창시자인 프로이트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임. 그의 수제자이자 친구였던 카를 구스타브 융 (C.G. Jung)을 들어본 사람도 있을 거고.

프로이트와 융은 모두 의식과 무의식의 영역을 인정했지만, 융은 무의식의 영역에 신화와 종교를 가지고 와 심리학이라는 (당시) 비주류 학문을 과학화시키고 싶었던 프로이트와 결별하게 되고, 자신의 독립적인 학파인 분석심리학 (Analytical Psychology)를 만들게 됨. 요즘 남자들이 열광하는 조던피터슨 교수가 대표적 융심리학자임.
융은 프로이트가 말한 무의식 (융심리학에서는 개인무의식)의 영역에 "집단무의식"이라는 인류 모두가 공유하는 영역이 있다고 생각했고, 그것은 고대 원시 인류의 경험적 지식이 우리에게 전해져 내려오는 것이라고 생각했음. 융은 개인의 생활사에서 비롯된 개인적 성질의 것인 개인무의식과 달리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모든 인간에게 보편적이고 선천적으로 존재하는 집단무의식이 인간의 창조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했고, 모든 신화, 종교, 예술의 뿌리이자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라고 했음.
이 글을 이해하려면 위에 있는 그림의 개념들만 이해하면 됨.
1. 의식 (consciousness)의 영역에는 크게
1 - 가. 페르소나 (persona) - 남들에게 보이는 나의 모습 (사회적 역할, 지위 등)
1 - 나 . 자아 (ego) - 개인의 인식적 행동과 현실을 인식하는 주체
가 있고
2. 무의식 (unconscious)의 영역에는
2 - 가. 개인무의식 (personal conscious) - 의식에 인접해 있는 부분으로 쉽게 의식화될 수 있는 망각된 경험이나 감각경험으로 구성됨. 개인무의식의 자료는 개인이 과거에 경험한 내용에서 비롯됨.
2 - 나. 집단무의식 (collective conscious) - 인류가 보편적,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무의식.
나.1 - 아니마 - 남성 내면의 여성성.
여기에 추가해 알아야 하는 두가지 유사한 개념은
a. 콤플렉스(complex): 말 그대로 복합체라는 뜻으로, 무의식 속에서 연합해 있는 감정,사고,기억의 그룹을 뜻함. 이건 개인 무의식에 있음. 흔히 콤플렉스라고 하면 열등감이라고 생각하는데, 열등감 콤플렉스는 여러 콤플렉스 중에 하나일 뿐, 다양한 콤플렉스가 있고, 개인의 억압된 경험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개인마다 다름.
b. 원형(archetype): 특정 시대나 문화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형태를 지닌' 이미지나 심상을 말함. 시대와 문화를 초월하여 전 시대와 문화에서 나타나는 원형도 존재하고, 내가 이 글에서 다룰 원형 중 하나는 늙은 현자 원형과 자기(self) 원형인데, 각각 예시로는 솔로몬, 아브라함, 모세 등의 현자들, 그리고 야훼, 알라 등의 유일신.
콤플렉스와 원형 모두 꿈에서 나타나 꿈의 보상(의식의 일방성을 보상) 작용의 역할을 수행함.
마지막으로 그림자 : 개인이 숨기고 싶어하는, 의식되지 않는 자아의 반대 부분. 그림자는 개인무의식과 집단무의식에 걸쳐 존재한다. 융은 그림자의 통합 (integration of the shadow)를 통해 개인이 개성화의 길로 더 나아갈 수 있다고 주장했음 - 난 이것이 이치고의 주요 성장 과정에 만화적으로 드러난다고 봄.
위 전체를 전부 다 포함하는 전체적 개념이 자기 (Self)라는 개념임. 융은 의식과 무의식, 자아와 페르소나, 자아와 그림자의 대극적 균형이 조화로워야 건강한 정신을 유지할 수 있다 했음.
개념설명이 너무 길었으면 ㅈㅅ 근데 이걸 최대한 간단히라도 이렇게 알아야 이해가 가능할것임
그럼 이제 블리치에 대입하여 설명 시작하겠음
I. 페르소나와 자아의 동일시
융은 남에게 보이는 페르소나와 인식의 주체인 자아의 건강한 분리와 공존이 있어야 건강한 정신을 얻을 수 있다고 하였음. 블리치에서 "이치고"라는 주인공의 페르소나란?
블리치라는 작품이 진행되면서 계속 보이는 이치고의 가치관은 "지키는 사람, 영웅" 정도라고 할 수 있음. 원래 양아치같은 외모를 극복하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이었던 이치고가, 쿠치키 루키아라는 사신의 만남을 통해 쿠치키 루키아를, 이노우에를, 정령정을, 소울 소사이어티를, 카라쿠라 마을을 지켜야 한다는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음.
융은 페르소나와 자아가 동일시될 경우, 무의식이 자아를 잠식하여 개인성이 상실된다고 했음. 타의에 의해 결정된 사회적 역할인 페르소나는 고유한 개인성을 대변하지 못하기 때문임. 이치고는 아란칼 에피소드까지 페르소나와 자아의 동일시가 일어나고 있고, 결국 그러한 역할을 박탈당한 시점 (우르키오라 시파에게 사망)에 자아의 붕괴가 일어나 무의식에게 잠식당함.
그러한 양상이 나타난 것이 각호고 (완전호로화) 이치고임. 의식(이치고)이 무의식(화이트, 호로)에게 잠식당하여 이성을 잃고 폭주하는 이치고의 모습.
II. 영압과 리비도, 혼백, 참백도 - 정신의 수련
나루토의 차크라나, 블리치의 영압이나 융심리학에서 말하는 리비도 (정신에너지)와 같다고 봄. 리비도는 모든 정신적. 심리적 활동의 원천이고, 신체적 에너지와 대비되는 가상적인 양적 에너지임.
그런데 블리치에서는 영압이 신체적 활동인 전투에 쓰이지 않나? 근데 오히려 이 점 때문에 나는 쿠보가 진짜 융심리학을 어느 정도 알고 이 만화를 그렸다고 생각함. 블리치의 근간이 되는 설정인 사신의 참백도는 천타에 자신의 혼백과 성장하며 힘을 부여하는 것이고, 시해. 만해 또한 자신의 혼백 (영혼)의 잠재력을 최대한으로 개방한 기술의 manifestation (현현)인 것; 즉 자기(self)의 개성화 (individuation)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라고 생각함.
따라서 리비도 (영압)의 전투적 사용은 결국 정신적 에너지를 통한 정신의 수련을 만화적으로 나타낸 것이라는 나의 "주관적" 의견. 
실제로 이치고가 강해지는 계기는 항상 내면의 세계에 들어가서 화이트와 참월과의 싸움, 그리고 조화를 통해 이루어졌다는 점 (대극의 균형, 그림자를 통합)
III. 시로사키 (화이트;호로), 참월(유하바하;퀸시) - 이치고의 무의식
이치고가 호로화를 배우기 전에 화이트와 참월 아저씨를 만나는 곳은 항상 자신 내면의 세계임.
화이트는 이치고보다 훨씬 난폭하고, 파괴적이고, 분노에 가득 차 있는 존재임. 이치고 내면의 어두움, 내면의 호로의 힘, 자아와 대극되는 이치고의 그림자를 대변하는 상징임.
반면 참월은 이치고에게 기술을 가르쳐 주고, 지도해 주며, 화이트와 하나 (무의식의 합일)을 상징하며, 그림자(화이트)와 자아(이치고)의 통합을 가이드해주는 존재임. 이 존재는 성서의 아브라함, 모세, 요셉 같은 집단무의식에 존재하는 늙은 현자 원형 (wise old man archetype; 개인에게 조언과 도움을 주며 성장을 이끌어내는 존재) 이며, 조상인 유하바하 Ychwach (=야훼, 자기원형)에게 부여받은 퀸시의 힘 (집단무의식)임. 전에 집단무의식은 우리의 조상인 고대 인류 진화 과정에서 우리의 무의식에 남은 경험적 지식이라고 말했지? 이렇게 보면 쿠보가 이 설정을 그냥 만들었을 리는 없다고 생각함. 의식의 자아인 인간으로서의 이치고, 개인무의식의 그림자인 호로인 화이트, 집단무의식의 늙은현자원형인 퀸시 참월아저씨 (유하바하)의 이런 비유를 정말 융심리학에 대해 모르고 만들었을까 싶음.
IV. 이치고의 호로화 수련 - 그림자의 통합 (integration of the shadow)를 통한 개성화(individuation)
앞서 말했듯, 융은 내면의 어두운 부분 (그림자)를 수용하면서 의식에 통합시켜야 개인이 심리적 개성화를 이룰 수 있다고 했음. 쉽게 말하면 자신이 몰랐던 단점을 정신적 수련 (명상, 기도) 등을 통해 깨달고 수용하고 통제하는 과정을 말함.
앞서 말했듯 블리치에서 그려진 이치고의 성장과정이 이치고의 정신적 개성화 과정의 만화적. 예술적 비유라 했을 시, 이치고의 호로화 수련은 자신의 무의식의 그림자를 자신의 자아로 의식화시켜서 정신적 성장을 하는 것임.
전에는 통제할 수 없었던 무의식의 어두움이 수련을 통해 자아에 통합되어 완전해지고 (반쪽자리 가면이었던 것이 완전한 가면으로 된 것이 이를 상징) 이치고는 더 강해짐 (정신적으로 더 성숙해짐)
하지만 후술할 대사로 인해 아직 이치고의 성장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음 (유하바하 항목 참조)
V. 오리히메 - 이치고의 아니마
융은 우리의 정신은 대극의 균형을 통해 이루어졌다고 생각했고, 따라서 남성들의 내면에는 그 대극인 내면의 여성성, Anima 아니마가 존재한다고 했음.

융심리학에서 아니마는 남성이 여성에게 투사 또는 연관시키는 자질 (이상적 여성상)을 나타내고, 남성 속에 들은 "생명"을 목표로 하는 원형임. 그런 이노우에 오리히메의 자질은 크게 온화함, 보호, 치유 (이노우에의 능력에서 나타남)임.
이치고의 삶에서 오리히메 (아니마)의 존재는 이치고가 그러한 특성을 받아들이도록 격려해 이치고가 더 균형 잡히고 정서적으로 성숙한 개인이 될 수 있도록 함. 블리치라는 작품 전반에 걸쳐 이치고의 의식과 무의식 (화이트, 참월) 사이의 연결이 깊어질수록 이노우에와 이치고의 관계 또한 발전함. 결국 아란칼 편 이후로 이노우에는 수동적인, 지켜야 하는 존재에서 적극적이고 능동적 성격으로 변해 이치고가 "지켜야 하는 사람"인 페르소나에서 발전하고 그림자를 더더욱 통합하여 강해지는 것 (정신적으로 성숙해지는 것)에 일조하는 존재가 이노우에의 아니마 역할임.
VI. 유하바하 - 이치고의 자기원형 (self archetype)
이미 많은 블리치 팬들이 알듯이, 유하바하 이름 Ychwach의 기원은 유대기독교의 유일신인 YHWH 야훼임. 융은 야훼 또는 구원자는 인간 정신의 의식 무의식을 포함한 전체적 개념인 자기 (self)를 대변하는 원형 (archetype) 이고, 사람과 신, 인간과 야훼의 관계는 자아와 자기의 관계와 일치한다 했음.
1차 침공 이후 반덴라이히로 돌아가기 전 유하바하는 이치고에게 "어둠에서 태어난 내 아들아" 라는 말을 하고 떠남.
이 대사를 융 심리학적으로 해석한다면 이렇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함
어둠 = 호로 = 개인무의식, 태어난 = 존재하는, 상주하는, 아들 = 자아
이 대사는 사신의 몸이지만 퀸시의 피가 흐르는 이치고의 존재를 말하지만, 융심리학적으로는 현재 그림자에 잠식당해서 전체적 자기를 이루지 못한 이치고의 정신적 미성숙함을 뜻할 수 있음. 조상인 유하바하에게 물려받은 집단무의식의 그림자는 아직 통합하지 못했고, 호로의 힘인 개인무의식의 그림자만 일부 통합한, 이치고 정신 통합의 미완성을 뜻하는 것임.
결국 영왕궁에서의 수련으로 자신의 진짜 힘을 해방시킨 진참월은 개인무의식, 집단무의식에 존재하는 그림자와 사신 이치고 (자아)의 완전한 통합을 상징하며, 이치고 성장의 끝을 상징함.
진참월 이후로 이치고의 성장은 특별히 있지 않고, 이후 아니마인 오리히메와 가정을 이루어 행복하게 사는 장면 또한 개성화를 마친 이치고의 전체성을 상징하며, 이치고 정신의 개성화의 종결을 상징함.
긴 글 끝까지 읽어줘서 너무 감사함. 난 전문적으로 융심리학을 배운 사람이 아닌 그냥 독학으로 어느 정도 이해한 대학생이기 때문에 분명히 오류나 과해석이 있을 거임.
결론: 쿠보는 만신이 맞다.
쿠보도 무릎을 칠 해석이다.
추드림 근데 니 그거 아나 13페이지데이 ㅋ
심리학 하나도 모르지만 글이 쏙쏙읽히네
중간고사때 이거 관련한 지문 나와서 프로이트,융 나왔었는데 딱 보니까 어? 싶어서 대입 해 버니까 딱 이치고더라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