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 출생
1936년 6세 친할아버지가 운영하는 식료품점에서 콜라 6개를 25센트에 구입해서 개당 5센트에 팔아치움. 이때부터 개이득충의 기질을 보임.
1941년 11세 태어나서 첫 주식, 주당 38달러에 Cities Preferred 주식을 매입, 27달러까지 떨어지자 초조해하다가 40달러까지 치솟자 팔아치움. 그뒤로 202달러까지 치솟는 주식을 보고 3가지 결심을 하는데, 워렌 버핏 스스로 말한 인생에서 자신의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순간 중 하나.
- 주식에 지불한 값에 대해 지나치게 신경쓰지마라
- 작은 이익에 쫓겨 서두르지마라. 인내심이 있었다면 난 그나이때 500달러를 벌었을거다
- 성공할 수 있다고 확신이 들지 않는 이상, 다른 이의 돈을 책임지고 싶지 않다.
알바왕
- 초딩나이때부터 시드를 모으기 위해 별별 일을 다했다. 골프장에서 골프공 주워오는 알바, 영화관 팝콘 판매, 신문 알바(나중에 사게되는 워싱턴 포스트), 경마장 알바 등...
1943년 13세 알바하기 위해 산 자전거를 공제처리 받아 35달러를 감면받고, 10달러만 지불, 인생 첫 세금 지불이자 환급
1944년 14세 연방 소득세를 내고 환급받음. 592달러를 신고하고 소득세 7달러 지불. 이때 얻은 배당금과 이자소득은 228달러였다
1945년 15세 네브레스카 주에 있는 농장주와 40에이커 분량의 토지를 1200달러주고 사들임
1946년 16세 중학교 졸업할 무렵 재산 6천달러 돌파, 다니던 학교 선생보다 돈 많았음
1947년 17세 친구인 도날드 댄리와 함께 윌슨 코인 오퍼레이팅 머신(Wilson Coin Operated Machines)이라는 회사 창업... 생에 첫 창업
핀볼기계 하나를 25달러 주고 구입하여 동네 이발소에 설치함. 버핏과 댄리는 이 사업으로 매주마다 50달러를 벌었다. 그리고 또 세금 환급받음.
3개월 뒤 이들의 사업체는 기계 2대를 추가로 구입하고 다른 가게에 설치할 수 있게 됨. 그리고 1년 뒤 1200달러 주고 사업체 매각. 이득 폭발.
고교 졸업후 개인재산 1만달러 돌파
1949~ 54 - 19세~ 24세 대학에 가서 평생의 스승 벤자민 그레이엄을 알게 됨. 그와 일하고 싶어했지만 불발.
고향으로 돌아와서 Texaco 주요소를 사들였다. 좆망함. 생에 첫 투자 실패. 재산 1만 달러 중 2천달러를 날림.
아버지가 일하는 중개회사에서 영업 사원으로 일함
1954년 24세 그토록 원하던 벤자민 그레이엄과 일할 수 있는 자리가 제공됨. 이때 보수로 1년 1만 2천 달러를 받고 보너스로 2천 달러를 받음. 십사기 ㄷㄷ
"그때 회사는 지금의 헤지 펀드 같은거였는데, 겨우 1200만 달러 밖에 운용하지 않았어요"
1956년 26세 우상 벤자민 그레이엄이 은퇴함. 버핏도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함. 이때 버핏의 개인 재산은 15만 달러. 5년만에 1만에서 15만으로 ㄷㄷ
고향으로 돌아와서 개인 이름으로 된 가족 펀드를 만듬. 7명의 가족과 친지들이 투자, 본인의 재산 10만 달러도 같이 넣어서 운용함.
1958년 28세 운용액수는 2배가 되었다
1959년 29세 친구 에드윈 데이비스로부터 평생의 파트너인 찰리 멍거를 소개 받다. 가족펀드 수준에서 파트너쉽 정도로 규모가 커짐
찰리 멍거를 만나기 이전까지 싸면 일단 사고 한입빨고 팔아치우는 꽁초 투자를 했으나, 멍거를 만난 이후로 지금의 가치투자로 본격적으로 변해갔다고 설명한바 있음
1961년 31세 뎀프스터 라는 회사에 100만달러를 투자함
1962년 32세 버크셔해서웨이가 주당 8달러에 팔리는걸 보고 매수하기 시작함
1963년 33세 뎀프스터를 매수가의 3배 가격에 팔아, 230만 달러의 차익을 봄, 버크셔 해서웨이의 최대주주가 됨
1964년 34세 아메리칸 익스프레스가 샐러드 오일 스캔들에 휘말려서 폭락하자 포트폴리오의 5% 지분에 달하는 양을 매수함
1967년 37세 버크셔 해서웨이 지분율 59.5% 돌파, 버크셔 해서웨이의 10센트 배당금 분배를 결정함. 버크셔 해서웨이의 처음이자 마지막 배당금 분배 기록이다.
1,300만 달러를 들여 투자한 아메리칸 익스프레스를 통해 2,000만 달러를 벌고 있었다
그는 파트너들에게 현재 너무 황소장이라며 다 비싸서 좋은 투자처를 찾기 힘들다고 말함
1968년 38세 파트너십 운용액수 1억달러 돌파
1969년 39세 버핏은 자신의 이름으로 되있던 파트너십을 종료하고 이익을 배분하기로 결정함. 57~69년까지 수익률은 29.5%
파트너십 종료때 가입자들에게 3가지 사항을 권장함
- 돈을 안정적으로 벌고 싶으면 빌 루안(버핏의 친구)의 세쿼이아 펀드에 가입해라
- 현금을 갖고 있어라
- 내가 지배하고 있는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식을 가져가라
1970년 40세 [오피셜] 워렌 버핏 파트너십 펀드 종료
1973년 43세 버크셔 해서웨이를 통해 자신이 초딩 나이때 알바하던 신문사 워싱턴 포스트의 주식을 사들이기 시작함.
1974년 44세 오일 쇼크 파동으로 미국 주식 시장이 박살나면서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가는 크게 떨어짐. 버핏의 개인 포트폴리오도 50% 이상 떨어짐
1976년 46세 ?전설의 시작? GEICO의 주당 가격이 2달러를 상회하기까지 4백만 달러를 투자함. 게이코를 인수하기까지 지속적으로 주식을 사들임
1977년 47세 버팔로 이브닝 뉴스에 3천만 달러 투자
1979년 49세 개인 자산 가치 1억 달러 돌파. 연간 연봉 50만 달러
1982년 52세 버팔로 이브닝 뉴스가 버팔로 뉴스로 바뀜. 투자했던 첫해부터 1,900만 달러를 벌어들였고, 80년대 후반까지 1년에 4천만 달러의 수입을 가져다줌
1983년 53세 개인 자산 가치 6억 달러 돌파.
1985년 55세 [오피셜] 버크셔 해서웨이 섬유 사업 공식 종료, 폐쇄
1987년 57세 10월 블랙먼데이 사건으로 버크셔의 가치 25%가 날아감. 버핏의 자산은 3억대로 떨어짐. 반토막따리 반토막따
'그 은행' 살로몬 브라더스 지분 12% 인수
1988년 58세 또 하나의 레전드 '그 주식' 코카콜라 12억 달러에 지분 7% 확보
1990년 60세 웰스파고 지분 10% 사들임
1991년 61세 살로몬 브라더스 채권 스캔들이 일어나서 그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의장으로 나서 똥을 치움
1992년 62세 여전히 살로몬 브라더스의 똥을 치움
1996년 66세 ?전ㅡ설? 버크셔는 GEICO의 나머지 지분 전부를 확보해 100% 자회사로 만들게 된다.
이것으로 버핏이 평생을 걸쳐 찾아왔던 보험업을 이용한 float 사업을 완성하게 됨. 현재까지 버핏의 재산 중 90%가 넘는 비중이 50대 이후에 벌어들인 것들
3줄요약
- 처음부터 많은 돈으로 시작하지 않음
- 맨땅헤딩으로 시작했지만 날때부터 워낙 씹사기 캐릭터
- 그냥 인간 자체가 자본주의 그자체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jusik&no=796981
영감님 일대기 보고 있으면 그냥 자본주의의 화신 그 자체인듯 ㅋㅋㅋㅋ
와 난 은행원아들로 재산상속이 컸을줄알았는데 나도 알바해야것다
재밌네ㅎㅎ 잘읽었음
역시 고정수익 또한 중요하지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