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음악을 틀고 즐기시길 권장드린다.




이전글


블룸버그 링크

 [칼럼] 모두를 위한 경제학 서문 [칼럼] 모두를 위한 경제학 - 자본주의 Part-1 ⅓[칼럼] 모두를 위한 경제학 - 자본주의 Part-1 2/3



해주갤 링크

 [칼럼] 모두를 위한 경제학 서문 [칼럼] 모두를 위한 경제학 - 자본주의 Part-1 ⅓[칼럼] 모두를 위한 경제학 - 자본주의 Part-1 2/3






‘모두를 위한 경제학’

제 1 부 경제학개론자본주의(capitalism) Part-1 3/3







블룸버그 갤러리 야앗차













1장 자본주의(capitalism) Part-1 3/3


자본주의의 순기능


당신이 기존 시장보다 뛰어난 무언가를, 대체할수 없는 무언가를 가지고 등장한다면 감히 장담하건데 투자자들이 당신을 찾아와서 어떻게든 투자 하려고 할 것이다. 심지어 투자자들이 많이 몰리는경우 왜 자신들에게 투자를 받아야 하는지 투자자들이 자신을 어필 할 것이다.

이렇듯 자본주의 세계에서는 당신이 기업 운영의 주체가 될 수도 있고, 투자자가 될수도 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전체적인 현금흐름은 자연스럽게 ‘괜찮은' 즉 ‘더 나은 수익을 가져다 줄것으로 기대되는' 비즈니스로 흘러 들어가게 되는데 ‘더 나은 수익'을 다른말로 하면 ‘생산성 향상'이다. 이러한 생산성 향상은 잉여 생산물을 만들어내고 인류 전체에게 삶의 질적 향상을 가져다준다.


이를테면 20세기 까지만 해도 전체 인구의 70%가량이 농업인구였는데 먹고살기 바쁜 와중에 의학이 제대로 발달 할 수 있겠는가?, 농기계의 발달, 즉 농업 생산성 향상으로 발생한 잉여 생산물이 자본이되어 의학도 발달시키고, 이런 의학의 발달은 기대수명을 늘리고 다시 또 다른 산업을 발달시키는 선순환 효과를 낳았다.


이렇듯 자본주의는 자본이 현명하게 흘러가는 궁극적인 방법으로써 그 가치가 무한하지만 여기에 한가지 맹점이 존재한다. 어떤 일이 이루어졌을때 많은사람에게 이득을 안겨주지만 매우 장기적인 프로젝트이거나 어떠한 엄청난 큰 자본이 필요한 경우 ‘공공재'로 분리 될 수 있는데 일반 회사들이 ‘공공재'프로젝트 이를테면 국가 인프라 산업인 댐 건설이나, 원자력발전, 철도, 도로등의 교통시스템 구축을 하기에는 쉽지 않다.


그러나 2020년 현재 국가의 역할은 점점 축소 되고 있다. 자본주의의 정점을 달리고 있는 미국의 경우 사기업들이이 오래전부터 꽤나 많은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 운영하고있으며 철도의 경우도 국가가 나서서 하기전에 19세기(!)부터 민간기업이 주도해서 연결했다.

정부가 하네마네 갑론을박 할 필요 없이, 수요가 존재하니 민간기업이 공급한 것이다.

생각해보라. 당신이 사업하는데 망할게 뻔한 사업을 하겠는가? 이 글은 민영화를 권장하는 글은 아니지만 한국의 인프라 민영화의 진짜 문제는 ‘민영화'가 아니라 MRG라 불리는 최소운영수입보장(Minimum Revenue Guarantee) 계약 조건이 문제이다.


정부가 최소 운영수입 보장을 해준다는것은 알짜 사업이라는 것이고, 책상머리 앞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보기에도 알짜 사업일 정도라면 왜 민영 자본에 인프라를 맡기는것인가? 그정도로 수익성이 있다면 국채나 지방채를 발행해서 사업을 운영하는게 맞다.


한마디로 한국 민영화의 진짜 문제는 민영화가 아니라, MRG를 체결하면서 발생하는 부패의 문제다. 실제로 MRG는 짧게는 십년 길게는 20여년 가까이 체결된다…

(이와 관련된 자세한 이야기는 2부 혹은 3부에서 다룰 예정이다)


다시 미국 인프라 시장 이야기로 돌아와서 여러분이 미국 infrastructure주식을 검색해보면 민간 에너지 회사나 물 공급회사들이 굉장히 많은것을 알 수 있을것이다.


심지어 우주산업의 경우 엘론머스크가 창업한 SpaceX가 전 세계 어떤 국가기관보다 더 발전시켰으며 오늘날 NASA는 SpaceX를 통해 우주정거장으로 물자수송 및 유인우주선 발사하는게 더 저렴하기 때문에 SpaceX와의 계약을 통해 물자수송을 한다. 

로켓 전체 발사비용에 로켓 비용이 99%가량이고 연료가 1%정도 차지하는데 SpaceX는 로켓 재사용 기술을 발전시킴으로써 말그대로 새로운 우주산업 시대를 열었다.

당연스럽게도 그 뒤에는 엘론머스크의 비젼을 믿고 끊임없이 투자한 ‘자본가'들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자본주의적 사회 현상, 수요와 공급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어떠한 현상을 놓고 ‘옳고 그름'으로 폄하되기도 한다. 일례로 마이클 샌델의 저서 ‘돈으로 살 수 없는것들'에서는 미국 허리케인 피해가 발생했을때 집 수리하는 가격이 지나치게 올랐던것이 과연 정당하냐 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경제학적 관점으로 볼때 만약 해당 서비스(집 수리) 가격이 오르지 않고 국가에 의해서 통제된다면 수리업자들의 공급은 충분해지지 않았을 것이고 복구 작업은 굉장히 오래 걸렸을 것이다. 왜냐하면 폭등하는 가격은 수요 증가에 따른 ‘시장 균형가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의 예 하나만 놓고 마이클 샌델을 판단하지 않기를 부탁드린다. 개인적으로 마이클 샌델의 다른 저서인 ‘자유주의와 정의의 한계'는 굉장히 명작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예로 조선시대 정조대왕과 연암 박지원은 자본주의를 이해했던 사람이다.

1791년 서울에 쌀값이 폭등하자 전국에서 차익을 노린 상인들이 쌀을 싣고 서울로 향했는데 모든 신하들이 이를 규제하려고 할때 연암 박지원은 수요 공급을 설명하며 정조대왕을 설득했고, 국가가 가격에 개입하지 않았다. 그러자 신속한 공급이 이루어짐에 따라 폭등했던 쌀값은 안정화되었다.


생활속의 예를 들자면 마트에서 살수 있는 생수 500원 한병은 산 정상에서 2,000원은 주어야 한다.

만약 국가가 통제해서 2,000원이 아닌 500원만 받아야 한다면 도대체 누가 사람에 의해서만 운반 할 수 있는 산 정상으로 물을 옮길까? 공무원이 옮길까? 그 공무원 월급 줄돈이면 시장경제에 맡기는게 낫지 않을까? 제발… 공익이나 군인 부려서 하겠다는 어처구니 없는 생각은 안하길 바란다.

그런 생각은 식민지를 만들자는 생각이랑 하등 차이가 없다. 





평균수명과 공교육


위의 사례들처럼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 에서는 수요가 발생하면 균형가격에 이를때까지 공급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18세기 산업혁명이 일어나던 시점에서는 절대 다수의 노동자가 ‘주식회사'의 개념조차 이해 하지 못하였던 시대였고, 그때엔 공교육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던 시기였다.

심지어 이때에는 어린아이들까지 모두 노동에 투입되었는데 한국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았다. 조선시대에는 10대에 결혼하는것은 매우 일반적이었는데 가정을 꾸릴정도의 나이에 노동은 매우 당연한 일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19세기 말까지 평균수명이 50세를 넘기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기대수명의 변화 (출처 - 위키피디아)

현재 기대수명이 80세 가까운 시대에서 공교육은 20살까지 이루어지고 이는 삶에 약 25%를 교육에 투자하는것이다.  이것을 기대수명이 40대 중반이었던 19세기에 적용하면 25%인 10살부터 사회 생활을 하고 가정을 꾸리는게 전혀 이상할게 없다.


그러나 10살짜리들이 공장에서 들어와서 일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는가?, 회사 경영자들은 노동자를 대상으로 꽤나 많은 교육을 시켜야 했다.

이러한 과정들 속에서 공교육이 국가 전체의 부를 상승 시킨다는걸 깨달은 자본가들의 주도하에 양질의 노동자를 양성하기 위한 일환으로 공교육이 도입 되었다.


자본주의와 산업혁명은 국가가 하지 못하는 일을 해냈다.

그러나 위에 언급한것처럼 자본가들의 주 목적은 ‘노동자 양성'이었으므로 교육의 초점은 어디까지나 경제학적인 관점에서 저비용, 고효율 즉 ‘주입식 교육'에 맞춰지게 되었다.






빈곤층과 경제학의 탄생


요즘 세상에는 비즈니스 기회가 있다면 투자자를 찾거나 마음맞는 사람끼리 서로 합심해서 돈을 모아서 회사를 설립하면 된다. 그러나 18세기에 10대때부터 노동에 투입되어 자라난 청년들이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노동자를 생산하기위한 수단으로 만들어진 공교육에서 그런 교육을 했을까? 쉽지 않았을것이다.


19세기까지만 해도 가난의 원인은 개인에게 있으며 그들의 나태함에서 비롯된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어느정도는 맞는말이다. 하지만 경제 불황이 올때 모든 사람들이 경제적 타격을 받게되는데 중산층 정도의 노동계급은 그 위기를 넘길수 있지만 하위 노동 계급은 끼니를 걱정할 정도의 빈곤층으로 추락하게 되는데 그 빈곤층이 되어버린 사람들의 자녀들은 말그대로 가난의 대물림 이되었다.


성년을 지난 사람이 빈곤층으로 전락 하는것은 그들이 내린 결정과 삶의 방식에 대한 결과로 볼수 있겠지만 그 빈곤층 자녀들은 끼니조차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됨으로써 애초에 생존 이외에는 다른것을 생각 할 수가 없었다.


한번 빈곤층으로 전락해버린 후 구제방안이 없는 상태로 가난이 대물림이 진행되면 장기적으로는 빈곤층이 증가하는 결과를 낳게된다.

사실 엄연히 따지면 부자들이 더 부자가 되는것이 아니라, 서민 노동계급의 추락이라고 보는것이 옳다. 냉정하게 돌아봤을때 빈곤층의 발생은 자본주의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국가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끼니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가난의 이유를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게 옳을까? 다 큰 어른이야 사실 본인 책임이 크지만, 그들의 자녀들은 정말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 단지 가난한 부모 밑에서 자란다는 이유만으로 굶주림과 생존 외에 아무것도 생각 할 수 없는 환경을 강요하는게 정말 옳을까?


이러한 생각들이 ‘경제학'의 밑거름이 되었고, 영국의 경제학자 ‘알프레드 마샬'은 이런 생각을 발전시켜 하나의 학문으로 즉 ‘경제학'으로 탄생시켰으며 ‘경제학원론’(원제 Principles of Economics-1890) 를 탄생시켰다. 위 링크를 통해 원문을 볼 수 있다.








“부자에게 1실링이 주는 기쁨또는 만족은 가난한자의 1실링과 같지 않다.”
(실링은 shilling = 영국 돈의 단위)


-알프레드 마샬 ‘경제학원론(1890)’ p.16



“A shilling is the measure of less pleasure, or satisfaction of any kind, 

to a rich man than to a poor one.”


-Alfred Marshall Principles of Economics-1890 p.16







알프레드 마샬은 경제학을 인간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기위해 연구하였고 나의 이러한 글쓰기 행위도 알프레드 마샬의 행위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경제학의 등장 이유도 모른채, 자신의 부를 늘리기위해 선동하는 선동가들의 편에 서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그 선동가들은 당신이 죽을때까지 경제학을 알려주지 않을것이다.

그래야만 자신의 부를 축적 할 수 있으니까...














1장 자본주의(capitalism) Part-1 맺음말


별것 아닌 글을 쓰는데 정말 많은 시간이 들었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기에 휴가를 내고 글을 쓰기도 했다. 

내가 흔히 말하는 부유한 집안에 노동으로부터 해방된 사람이라면야 얼마든지 더 멋지고, 더 알차고, 더 이해하기 쉬운글을 쓸수 있을텐데 안타깝게도 나의 삶에는 항상 시간, 돈, 체력이 부족했다.

그러나 딱히 불만은 없다. 꿈이 크면 그만큼 큰 희생을 감수해야하니까.


나는 나의 미래를 위해 꽤나 많은 노력들을 하는데, 시간은 언제나 부족하기 때문에 기꺼히 잠도 포기하곤 한다. 더이상 뺄 시간이 없어서 잠을 포기하는 나에게 글을 쓰는것은 결국 나의 잠을 더 포기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글쓰기와 나의 생업을 병행하면서 지나친 수면부족으로 꿈과 현실의 경계선이 무너져내리는것을 막기위해 하루 10잔이 넘는 커피를 마셔가며 다시 펜을 잡았다.


그러나 어느순간 의문점이 들었다.

이미 시스템이 절대 다수의 사람들을 길들여버린 지금 상황에서 내가 이런다고 달라질까?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보면 희극이다’ 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어쩌면 그냥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냥 불구경하듯이 지켜보면 지금 상황은 희극이다.


위에 언급했던 것처럼 대부분의 사람은 후원 의사를 물어볼때 애매 모호한 답변으로 영원히 도달하지 않을 지점을 이야기 하면서 후원을 영원히 미루곤한다. 다른말로 하면 이기적이며 가식으로 둘러쌓여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이런 지식을 나누어 준다고 해서 과연 의미가 있을까? 결국 그들 배만 불리는것 아닌가?’ 이런 생각도 들긴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 글이 분명히 누군가는 해야하는 공공재 적인 일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일단 첫 발은 뗐다.


일단 글을 쓰긴 썼는데 이 글이 정말 가치있는 글인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몇명이나 이 글이 가치있다고 생각하는지 확인차 구걸이나 해볼까 한다.

후원해주면 일단 맛있게 먹고 후속글 쓸지 말지 고민해보도록 하겠다.

저자에게 커피를 후원하고 싶다면 이 링크를 클릭!

주의: 후원한다고 해서 후속글이 보장되지 않음!




이제 정말 마무리 해볼까 한다.


긴 글 읽느라 고생은 무슨.

고생은 내가 했지…

진짜 내가 고생 많이 했어…


나에게 감사하십시오.


안녕!




1장 자본주의(capitalism) Part-1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