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생 김해출신의 본인은 어려서부터 무척 가난했고, 다른 친구들이 하는건 똑같이 해야한다는 일념하나로 남들 다가는 좆문대까지 졸업했고 부모 등골 삶아먹음과 동시에 취업전선으로 나가게 되지만 보기 좋게 실패하고 만다. 그건 나 이외의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 였을것이리라.

그렇게 실패를 겪는 와중에 돈은 벌어야 겠다 싶어서 공장 사무직으로 1년 걸러 1회씩 이직을 하곤 했다. 좀 더 조건 좋은 유토피아는 반드시 있을것이라는 바보같은 생각을 가지고 말이다.

결국 어떻게 되었겠노? 35세 되자마자 또 이직을 결심, 다른곳에 응시를 해도 아무데도 안받아 주더라. 20대 빠릿빠릿하고 젊은놈들 많은데 왜 웃돈주고 나같은 녀석을 고용해야하는지? 그건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였다.

그간에 남들하는대로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살지만 항상 부족한 돈때문에 어떻게하면 큰 돈을 벌수 있을까? 매달 250~300의 월급으론 넉넉하지않았기에 하지말아야 할 큰 도박을 하게된다.. 마누라가 내 명의로 신용대출 3000을 영끌하여 쇼핑몰에 도전한 것이었지.

물론 기똥차고 깔끔하게 제대로 말아먹고 3000만원이라는 큰 돈은 공중분해 되었으며 깨진 멘탈을 다잡기엔 매우 힘든 하루하루 였지.. 그래도 어쩔수가 없었다. 내가 돈을 벌어야 어린 아이가 밥을 먹고 살것이다. 라는 일념 하나로 주야2교대 생산직으로 가게되었다.

주야 2교대.. 처음 2주간은 죽을만큼 힘들었었다. 다리고 팔이고 안아픈데가 없고 갑작스레 변하는 라이프 싸이클에 적응하는것도 힘들었지만 그래도 인간에게 불가능은 없더라.. 지금도 이 점에 대한 생각을 해보면 되게 신기하지만 두번 다시 겪고 싶진 않다.

현재도 주야 2교대 생산직으로 약 9년째 일을 하고 있고 상여금 300프로에 이런저런 수당을 받다보니 빚 3000만원은 다 갚아버렸고 조그맣던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가게되어 학원비도 어느정도 내줄 정도는 되네. 건강은 사실 많이 안좋아진것같다. 무릎의 단련은 절대로 가능한 일이 아니라 고통에 적응하며 죽는 그날까지 친구해야 하는 느낌.

여긴 주야 2교대가 케바케 사바사 부바부같은 글이 많이 보이는데 어떤 일이든 인간이라면 못해낼게 없다. 그걸 견딜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이지. 말이 길었지만 힘든 와중에 화이팅하자. 난 항상 이 갤러리의 방황하는 영혼들을 응원한다. 힘들어도 좋은날은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