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일미디어 김창석 번역.
마르셀 프루스트 / 김화영 옮김
(미출간)
제 1 부 콩브레
I
오랜 동안, 나는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어왔다 때로는 촛불을 끄자마자 “잠이 드는구나”하고 생각 할 틈도 없이 금방 눈이 감겼다. 그리고 한 반 시간이 지나면 이제 잠을 청해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잠이 깨어버리는 것이었다. 나는 여전히 손에 책을 들고 있는 줄 알고 그 책을 내려놓고 촛불을 불어 끄려고 했다. 잠을 자면서도 이제 막 책에서 읽은 것을 계속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생각은 좀 특이한 쪽으로 돌아갔다. 즉 나 자신이 책에 나오는 교회, 사중주, 프랑수아 1세와 카알 5세 사이의 대립등과 같은 것으로 변했다는 느낌인 것이었다. 그런 믿음의 느낌은 잠이 깬 뒤에도 몇 초 동안 없어지지 않고 남아있었다. 그 느낌은 내 이성과 충돌하지는 않지만 무슨 비늘처럼 두 눈을 내리 누르는 것이어서 촛대에 더 이상 불이 켜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데 방해가 되었다. 이윽고, 윤회전생을 거친 뒤의 그 전생(前生)이 그렇듯이 그 느낌은 나의 지각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책의 주제가 나에게서 분리되면서 나는 그것에 매달릴 수도, 그러지 않을 수도 있게 되었다. 곧 시각이 회복되면서 나는 내 주위가 캄캄하다는 것에 놀랐다. 그 캄캄한 어둠은 내 눈에 부드럽고 아늑하게 느껴졌다. 아니 어쩌면 그 어둠이 까닭모를 불가해한 그 무엇, 진정으로 유현한 그 무엇으로 보이는 내 정신에는 더욱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지금 몇 시나 되었을까 하고 나는 자문해 보았다. 기적소리가 들렸다. 숲속에서 우는 새 소리처럼 다소 멀리서 들리는 기적소리는 거리(距離)를 부각시키면서 나그네가 서둘러 다음 역을 향하여 길을 재촉하는 적막한 들판의 넓이를 내게 그려 보이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가 밟아가는 그 작은 길은 새로운 장소, 익숙지 않은 행위, 밤의 침묵 속에서 여전히 그를 따라 오고 있는 낯선 등불 아래서 얼마 전에 주고받은 대화와 작별인사, 이제 곧 다가 올 귀가의 감미로움에서 느끼게 되는 감흥 덕분에 그의 추억 속에 깊이 새겨질 것이다
나는 빵빵하고 서늘해서 마치 우리 어린 시절의 뺨과도 같은 베개의 아름다운 뺨에 내 뺨을 포근하게 기댔다. 나는 성냥을 켜고 시계를 보았다. 머지않아 자정이었다. 그것은 병이 든 환자가 여행을 떠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낯선 호텔방에서 잠이 들었다가 통증을 참지 못해 잠이 깨었을 때 문 밑으로 아침 햇살이 비쳐드는 것을 보고 기뻐하는 그런 순간이었다. 천만 다행이구나, 벌써 아침이라니! 잠시 후면 하인들이 깨어 일어날 테니 초인종을 누를 수 있겠지. 사람들이 도우러 올 것이다. 고통을 덜게 되리라는 희망으로 괴로움을 참을 힘이 생긴다. 과연 발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발소리가 가까이 오더니 이윽고 멀어진다. 그리고 문 밑으로 비쳐들던 햇살이 사라졌다. 자정인 것이다. 이제 막 가스등을 끈 것이다. 마지막 남아있던 하인이 떠났다. 그러니 아무런 대책도 없이 밤새도록 끙끙 앓을 일만 남았다.
나는 다시 잠들었다. 그리고 때때로 깨는 일이 있지만 그것은 짧은 한 순간일 뿐이었다. 즉 내장재 나무판자가 말라서 삐걱거리는 소리를 듣거나 눈을 뜨고 만화경 속과도 같은 어둠을 뚫어지게 응시하거나 순간적인 의식의 빛을 받아 잠을 음미하는 한 순간, 가구들과 방, 그리고 나 자신 역시 그 한부분에 불과한 그 모든 것이 잠속에 빠져있었고 나도 곧 그 잠의 무감각 속으로 돌아가 그 속으로 휩쓸려 드는 것이었다. 혹은, 잠을 자면서, 나는 내 아득한 어린 날의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시절로 손쉽게 빠져들어 가서 종조부가 내 곱슬머리를 잡아당길 때 느꼈던 것 같은 그 시절의 유치한 공포감 같은 것을 다시 맛보는 것이었다. 그 공포감은 곱슬머리가 잘려버린 날 - 나에게는 새로운 시대가 시작된 날 -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잠을 자는 동안엔 그 사건을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종조부의 손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잠에서 깨어나는데 성공한 바로 그 순간 그 추억이 되살아난 것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신중을 기하기 위하여 베개로 내 머리를 완전히 둘러싸놓고서야 비로소 꿈나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때때로, 이브가 아담의 갈비뼈에서 태어났듯이 내가 잠자는 동안 편하지 못한 자세로 놓인 내 허벅다리에서 한 여인이 태어나기도 했다. 내가 이제 막 맛보려고 하는 쾌락에서 생겨나는 여인인데도 나는 여인이 내게 그 쾌락을 주는 것이라고 상상한다. 그녀의 몸 속에서 나 자신의 체온을 느끼는 내 몸이 그녀의 몸과 합쳐지려고 하는 바람에 나는 잠이 깨버린다. 아주 조금 전에 헤어졌을 뿐인 그녀에 비한다면 세상의 다른 인간존재들은 아득히 멀게만 느껴졌다. 내 뺨은 그녀의 입맞춤으로 아직도 따뜻했고 내 몸은 그녀의 몸집에 눌려 뻐근했다. 가끔 그러하듯이 그녀가 만약 내가 실제로 알고 지냈던 어떤 여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면 나는 그 여자를 다시 만나고 말겠다는 일념에만 온통 매달릴 작정이었다. 간절히 보고 싶었던 어떤 고장을 자기 눈으로 직접 보기 위하여 여행을 떠나거나 몽상속의 매혹을 현실 속에서 맛보려드는 사람 들 처럼. 차츰차츰 그녀의 추억은 사라져갔고 나는 내 꿈의 여인을 잊어버렸다
감사요
미출간을 어디서 구한거야?
ㄷㄷ 미출간은 또 어디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