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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가 1919년에 발표한 데미안과 이문열의 젊초(1981년)를 비교해 보면 공간적 차이뿐만 아니라

거의 60년이 넘는 시간의 차이가 있으나 두 작품은 주인공의 정서적 충동과 지적 모험을

통해 자기 삶에 대한 새로운 인식에 도달하고 있어 비교선상에 오른다.

 

◎ 작가와 소설속 화자의 관계 ◎


헤세는 1차 세계대전을 체험하고 가정적인 불행까지 겹친 위기상황에서 [데미안]을 통해

자신의 과거와 결별 의지를 확인했고 이러한 내면화 경향을 [제 2의 변신]이라고 자평했다.


헤세는 작품의 서문에서 [내게는 내 이야기가 어떤 작가에게든 그의 이야기가 중요한 것

이상으로 중요하다. 내 자신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며 자신과의 연관성을 암시하고


이문열 역시 작가후기에서 [작품이 작가의 일부일진대 기왕에 내보낸 책에서도 내 삶의

조각이 점점이 박혀 있을 테지만 이 책처럼 내 삶과 밀착된 것도 드물다] 라고 자전적

소설임을 밝히고 있다.


자기 생의 방향을 스스로 가늠하기도 전에 벌어진 사건으로 때이른 "일종의 궤도이탈"(데미안48p)

을 하게 된 싱클레어와 "크게 빗나갔던 삶의 궤도"(젊초14p,64p)를 달리게 된 영훈.


두 주인공의 모습은 각각의 작가 개인사와 겹쳐진다.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난 헤세는 열네 살에 수도원학교에 입학하지만 중도에서 포기하는데

이문열 역시 안동고등학교를 중퇴하고 3년 동안 방랑생활을 하게 된다.


헤세는 김나지움에서의 무분별한 생활로 인한 경고조치에 삶이 좌초지경까지 이르지만

다시 대학에 입학하고, 이문열은 고등학교에 이어 대학에서도 다시 학교를 이탈하게 된다.


데미안에서 가장 중요하게 부각되는 점은 내면화 과정 즉 "자기 자신에 이르는 것"(126p)을

집요하게 추구하며 자기실현,자기완성을 일구려는 점이다. 이것은 이문열 소설에서

과도하게 드러나는 낭만주의적 세계인식과 맥을 같이한다. 현실참여적인 관점보다는

'내면성과 감수성의 작가'에 더 가까운 것이다.


이에 대해 비평가 김명인은 젊초를 "서구문명과 자기류로 장식된 자폐적인 성장체험이

이루고 있는 교양적 공간"이라며 혹평했다.

 


◎ 삶의 인도자 ◎


두 소설의 주인공은 질풍노도의 시기만 있는게 아니라 자신을 이끌어 주는 주변 인물들과


만나는 행운을 갖는다. 싱클레어가 '어둠의 자식' 처럼 헤맬 때 데미안이 나타나 아브락사스


의 존재, 기존의 성경 해석에 딴지를 걸며 비판의식을 심어 주고, 영훈은 조화로운


정신의 소유자 김형을 만나 분열된 세계상과 가치의 다원성에 대해 들으며 많은 영향을 받는다.





◎ 이성 관계 ◎


피스토리우스가 상대주의적,내재적 종교관을 대변하며 싱클레어의 성장에 밑거름을 제공하고

영훈의 집안 누나 역시 실패한 연애사의 불행을 딛고 자신의 지향을 잃지 않고 의연하게 살아간다.


싱클레어가 "키가 크고 날씬했으며 멋진 옷차림" 의 베아트리체를 남모르게 흠모했다면,

영훈 역시 "세련된 옷차림과 유난히 흰 얼굴" "날카로움과 쌀쌀함이 묘하게 조화된 아름다움"

을 지닌 별장집 딸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이후 싱클레어는 에로틱한 감정에 취해 상상 속에서 그리던 연인의 모습을 닮은 에바 부인을

통해 최초의 성취감을 얻는다. 이에 반해 영훈은 자신과는 전혀 딴판으로 살아온 혜연을 만나

어느 정도 사랑을 느끼지만 집안환경 차이로 이 사랑은 오래 가지 못한다.

 




◎ 시대적 배경 ◎


싱클레어가 보여준 방황과 고행은 1차 세계대전이라는 역사적 배경이 있다.

유럽의 정신이 "연합과 패거리짓기"(182p)로 집단적 갈등상황을 드러내고

 "사람하나 죽이는 데 화약이 몇 그램 필요한지"에 대한 연구와 "인류의 막강한 무기"(195p)를 만들어

"큰 전쟁"(213p)을 자초한 시대정신과 관련이 있다.


반면 젊초에는 좌익 출신의 지식인으로 "이념과 관련된 어두운 부분"(38p)을 간직한 서노인의 과거가

가슴 서늘하게 엿보이고 있지만 주인공의 바깥을 향한 외침보다는 내적고백류의 일상의 경험이

각인되는 지점에서 멈추어 있다.

 




◎ 종교관 ◎


데미안에서 기독교는 중요한 키워드이다.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 카인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들려줌으로써 기독교의 전통적인 권위에 대한 비판적인 눈을 키우도록 독려한다.

다음은 신성한 종교와 악마라는 상이한 세계의 공존에 대한 데미안의 견해이다.

"우리는 아마도 우리가 존경하는 신 하나를 가지고 있겠지만, (...) 그러나 세계 전체를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고 (...) 신에 대한 예배와 더불어 악마에 대한 예배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데미안 125~126p)

신의 전능과 절대성을 믿기보다는 이중의 속성을 지닌 부분을 인정하고 있고 데미안이

유대교,이교도라고 알려진다거나 텍스트 중간에 배화교가 등장하는 등 관용적인 종교관을

확인할 수 있다.


이문열 역시 종교문제를 깊이 다루었다. 전작 [사람의 아들]에 비해 종교적인 요소들이

크지는 않지만 여전히 배경에 깔려 있다. 데미안에 피스토리우스와 배화교에 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오듯 젊초에서도 주인공이 방우로 일하는 시기에 배화교를 언급하고 있다.

"우리가 보기에 어느 종교든지 어느 구원론이든지 애초부터 죽어 있고 무익했다."(196p)라는

싱클레어의 입장정리와 영훈이 마지막으로 도착한 바다에서 파도에 휩쓸려 죽을 고비를 넘긴

후에 "신도 구원하길 단념하고 떠나버린 우리를 어떤 것이 구원할 수 있단 말인가"(241p)

라고 내린 결론은 서로 비슷하다.





◎ 상징 ◎


싱클레어는 잠에서 깨어나 기억을 더듬어 그림을 찾았지만 그것을 불태우고 "몽유병자처럼

알 수 없는 힘에 눌려 황량한 곳을 헤매"(161p)다가 우연히 크나우어를 만나 위로를 받느다.

영훈은 태백의 창수령 해발 칠백미터의 눈 덮은 봉우리의 아름다움에 압도당하고 무릅까지

빠지는 눈 속을 헤치며, '어떤 묵시로 기다리는 듯이, 혹은 심장이 시키는 대로'(223p)

미친 듯이 동해 바다로 달려가서 바다의 응답을 듣고자 한다.



데미안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고 인용되는 구절은 아래와 같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이다."(123)



젊초의 마지막에서 영훈은 눈을 감고 바닷물 속에 뛰어들어 질문을 던지지만 응답이 없고

한 어린 갈매기가 파도에 휩쓸려 다시 비상하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된다. 영훈은 그 갈매기의

마지막을 지켜보며 "한 순간에 자극된 생명력"(241p)을 얻고 힘을 다해 모래사장으로 빠져나온다.

그 순간 영훈은 각성하며 다음과 같은 결단을 내린다.

"그러나 갈매기는 날아야 하고 삶은 유지돼야 한다. 갈매기가 날기를 포기했을 때 그것은 이미

갈매기가 아니고 존재가 그 지속을 포기했을 때 그것은 이미 존재가 아니다."(241p)

데미안에서 거대한 매의 모습을 한 새가 "큰 날개짓으로"(206p) 삶을 향해 비상한 것이 반해

젊초의 갈매기는 퍼덕이는 날개짓에도 거센 파도에 소멸해 버린다. 이 절망적인 모습을 통해

"절망은 끝이 아니라 진정한 출발" 반어적 자기인식의 순간을 맞이하고 재출발의 의지를 다진다.





◎ 방황 ◎


삶의 방황을 자아탐색의 항로로 선택한 싱클레어와 술집을 전전하고 용돈을 탕진해 외상값에

시달려야 하는 등 어려움에 처하는 영훈의 모습은 거의 비슷하다.


싱클레어는 "우수와 세상과 자신에 대한 경멸로 가득 찬 희열"(94p)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비참의 한가운데서 해방이자 봄 같은 그 무엇을 혼란스럽게 느꼈"(100p)으며

"희망 없이 노는 학생"(102p) 으로 "깨진 맥주잔과 독설"(103p)로 밤을 지새울 뿐만 아니라

"술집에 앉아 의기양양하게 굴면서 나는 세상과 싸움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104p) 라고

지난날을 술회한다.


싱클레어가 정신적 파탄으로 좌표를 정하지 못하고 부유하다가 가까스로 대학에 입학한 것처럼

영훈 역시 고교중퇴 후에 "낭인생활"(73p)을 청산한 뒤 어렵게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나 대학에서도 "별다른 신념도 열정도 없이 기웃거리던 정치적 성향을 띤 학생들의 모임"(83p)에

기웃거려 이데올로기 논쟁에 젖다가, "주점 쩌그노트의 추억"으로 대표되는 동기들과의 일탈적인

일상을 통해 일시적인 해방감을 얻지만 삶의 공허감은 커져만 가게 된다.


영훈은 고교중퇴 후 "무모와 광기"속에, 대학중퇴 후에는 "그릇되의 관념을 유희"하며 젊은날을 보낸다.

이러한 방탕하고 무절제한 유희는 결국 "최종적으로 학교에서 쫓겨나는 일"(데미안102p)

"입학한 지 일 년도 못 돼 고등학교에서 쫓겨나"(젊은날11p) 게 되고 물질적인 궁핍까지 초래한다.


"건강이 나빠진 데다 (...) 지속적으로 돈에 쪼들렸기 때문이다 (...) 몇몇 가게에 담배값이나

뭐 그 비슷한 물건들의 외상도 불어가고 있었다"(데미안 105~106p)


"시계며 겨울외투 같은 것은 오래 전에 전당포에 가 있었고 책도 돈 될 만한 것은 모두 청계천

헌책방 골목에 기한부로 팔려간 후였다 (...) 이제는 신분조차 증명할 길이 없는 떠돌이가 된

주제에도 우리는 술을 단념하지 않았다"(젊초 118p)





◎ 자살 동경 ◎


"저는 몇 번이나 목숨을 끊어야겠다고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이 길은 누구에게나 그렇게 힘든 것입니까?"
(데미안)


"내 조그만 여행가방 한구석에는 언제든 나를 몇 분 안으로 치사시키기에 충분한 화공약품이 들어 있었고

또 관념적으로는 항상 죽음과 가까이 있던 나였지만...후략..."

(젊초)


◎ 나르시시즘 ◎


"각성한 인간에게는 단 하나의 의무 이외에 어떤 다른 의무도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단 하나의 의무란 자기 자신을 찾는 것이고 자기 속에 확고하게 있게 되는 것이고

어디로 가게 되든 자기의 길을 더듬어 가는 것이다"

(데미안)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가치가 우리를 인도할 수 없다면 우리의 구원은 우리 자신의 손으로

넘어온 것이며 우리의 삶도 외재적인 대상에 바쳐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 의해서 시인되고

충만되어야 할 것이다"

(젊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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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를 찾아 떠나는 여행 :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과 이문열의 [젊은날의 초상] / 박정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