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인식론자는 데카르트이다. 인식론적으로 존재론을 주장했다.

무전제(엄밀하게 따지면 무전제는 아니지)에서 자기를 증명하고 그리고 신 증명하고 세계를 증명한다.

자기 인식이 존재 그 자체가 된다. 그러므로 인식론적 존재론이다. 이것 때문에 까이기도 한다.

내게 존재론은 너무 인간에게 과분한, 또는 대단한 과제라는 인상을 준다.

고작 세계라는 무대 안의 내가, 무대 뒤에서 인식론적으로 니 인식의 한계를 묻고 그 안에서 사물들의 원리를 파악하는게 아니라

객관 그 자체에서 세계 전체를 파악하려고 하는건, 너무 대단하고, 위험한 주제이다.

그렇다고 무대 뒤에서 내 인식이 전부인 양 또는 내 인식이 인식 고작 현상계에 한정된 인식인 양 읊조리는 것은 아무 의미 없거나

쪼다들의 읊조림 정도로 보이기도 한다.

말하자면 존재론자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는 말인데, 더불어 의미있는 존재론을 주장하려면 엄청 천재여야 하기도 한다는 말이다.

말하자면 칸트는 누구든 칸트가 될 수 있었다. 위협하는 경험론에 대항하여서 기존의 형이상학을 방어해 나갈 만한 사람은

칸트가 아닌 그 누구가 되어도 된다는 이야기이다. 칸트가 천재였던가? 칸트는 오랜 노력 끝에 늙은 후에야 저작을 내놨다.

칸트는 용기와는 관련이 없었고, 소박하고 규칙적인 생활로 만족했기 때문에, 한마디로 존재론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 정신주의 인식론에서 만족한 것 뿐이다.

스피노자, 라이프니츠, 헤겔이 가졌던 명석함과는 다른 끈기있는 노련함 이었겠지.

여하튼 술은 안마시면 주량이 준다. 소주는 한병 반 이상 마셔야 어질어질 하던데 막거리는 한병만 마셔도 알딸딸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