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바이어를 만나기 위해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기다리고 있던 참이다.


"너는 참, 변하지를 않는구나."


 지금은 같이 살고 있지 않지만, 한때는 한 집에서 밥도 마시고 술도 마시며 좁은 방 이불을 나눠쓰던 E의 말이 갑자기 떠오른다. 


 난 평소처럼 카페 구석 자리에 앉아, 유리창 너머로 익숙한 얼굴이 지나가지 않는지 살펴보고 있었다. 바깥으로 보이는 무수한 얼굴들 중에 내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들어오는 사람은 모두 내가 모르는 사람들뿐이었다. 나는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 모르는 얼굴들 사이에서 모종의 공통점이 있지 않을까. 있다면 어떤 것일까 찾는데 열중하고 있었다.


 그 얼굴들. 눈이나 코, 흘러내리는 땀방울, 기운을 잃은 머리결들 사이에서 공통점들을 한데 모아놨을 때, 그것들이 E의 말로 변화하여 내 기억의 한 부분을 깨우고 있었다. 


 E의 말이 갑자기 떠오른 건 그런 이유이다. 내가 카페에 들어오는 사람들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는 감각은 시각일까. 그들의 표정이 손으로 만지듯 다가왔으니 촉각일까. 왜 시각도 촉각도 아니고 어떠한 감각도 아닌 E의 말이 갑자기 그 얼굴들 속에서 떠오른 것일까. 


 무의미한 생각들을 접어두고 카페를 둘러본다. 주문대 하단에 상표의 로고가 큼지막하게 그려져 있다. 그 위로 쟁반과 커피 잔들이 겹겹이 쌓여있다. 커피나 차를 마시고 있는 사람들. 맞은편의 사람을 보고 웃는 얼굴들. 테이블을 지탱하는 기둥을 괜히 발코로 한 두 번 차보고, 다시 카페를 둘러보고, 다시 발코로 한두 번 차본다.


 카페에는 사람들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여섯 개 즈음이다. 그 테이블도 나를 포함해서 세 개 정도에만 사람이 앉았다. 작은 카페다. 다시 한 번 시계를 살펴본다. 네 시가 넘어 있다, 약속 시간은 세 시였다.


 바이어는 오지 않을 것이다. 벌써부터 그런 사실을 짐작하고 있기는 했다. 바이어와 약속을 잡을 때부터 이렇게 카페에 혼자 덩그러니 기다리고 있을 장면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런 순간이면 늘 찾아오는 헛된 희망을 버릴 수가 없었다. 창문 바깥으로는 사람들이 힘겹게 걸어가고 있다. 햇볕이 짱짱한 시간에 그들은 한걸음 한걸음을 최선을 다해 내딛고 있었다. 사막에서 푹푹 빠지는 발을 일으켜 세우는 사람들이 그럴까. 사막처럼 모래는 아니었지만 그만큼 덥기는 더울 것이다. 흘러내리는 땀과 섞인 시큼한 햇살이, 창밖을 넘어 카페 안까지 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일종의 직업의식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과 손짓, 발걸음들을 재단해보았다. 그리고 그런 재단에서 의미를 찾으려 무척이나 애쓰고 있었다. 오백 명 째의 사람이 지나갔을 때 날은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다. 일번부터 오백 번까지의 어느 누구도 나보다 비참하지는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이어는 끝내 오지 않았다. 내게 남은 건,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해도 어느 순간에서는 결국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 말처럼 다가 온, 너는 참 변하지 않는다는 E의 한마디였다.


2.


 가위에 잘린 머리카락이 몸에 씌운 비닐 옷을 스치고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어제의 일이지만 편의상 지금 당장 일어나는 것처럼 쓰겠다). 그러고서 미용사는 자기 귀중품을 쓰다듬기라도 하는 마냥 내 머리를 조심스레 털어낸다. 그러나 그 손의 감촉이 느껴지지는 않았는데, 숱이 많은 머리카락 때문도 있었으나 미용사가 면장갑을 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면장갑을 끼는 미용사를 지금까지 본 적이 있었나 떠올려본다. 이번이 처음이었다. 어색한 감촉에 원하지 않는 머리모양이 나오지 않을까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별다른 클레임을 걸지는 않기로 한다. 거울로 비치는 미용사의 얼굴이 내 이상형이었기 때문이다. 어깨로 흘러내려 질끈 묶은 머리카락은 불만이었지만, 청순함과 여성스러움을 함께 가지고 있는 그런 얼굴을 나는 좋아한다. 간혹 미용사의 몸이나 가슴이 내 몸 혹은 후두부에 닿을 만한 구도를 취할 때면, 나도 모르게 기대를 한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미용사는 아슬아슬하게 두 몸이 스치지 않을 만큼 자세를 잡고 내 귀 밑을 가위로 스륵 스륵 다듬을 뿐이었다(이에 대해서는 모든 남자가 똑같은 생각을 품을 테니 부끄러운 욕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무런 접촉의 기대도 없는 시간은 무디게 지나간다. 내 앞으로는 커다란 전신 거울이 있다. 그곳에는 자리에 앉은 나, 흐르는 머리카락 그리고 미용사의 드러난 허벅지가 보이고는 한다. 안경을 벗었기에 뿌연 형상만 거울에 드러난다. 스스로의 전신을 이렇게나 오래간 바라본 적은 없었기에 그 뿌연 모습마저 어색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기껏해야 고개를 돌려 딴 곳을 쳐다보는 것 뿐이다. 바닥은 네모난 모양의 여러 타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타일 하나하나마다 천장에 달린 세련된 알전구가 갇혀서 꼼짝 못하고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다음날 내가 카페와 거리의 사람들을 보던 그 시선처럼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 쭉 보고 있었다. 어깨를 툭툭 치는 미용사의 손길을 느껴지고, 그제서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를 감겨주는 세면장으로 걸어 들어간다.


 아쉽게도 머리를 감겨주는 건 그 여자 미용사가 아닌 다른 미용사였다. 그러기에 나는 남이 머리를 감겨주는, 그 순간 자체의 깊은 인상 말고는 별 다른 느낌을 받지 못했다. 누군가 머리를 감겨줄 때 왜 나는 그리 좋은 기분을 느끼는 것일까. 혹자는 두피를 마사지 해주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남이 나에게 무언가를 해준다는 것이 그 자체로도 좋기 때문이라 말하기도 한다. 나는 그 여러 가지 선택지 모두를 긍정하고 이제는 그저 머리에 닿는 미지근한 물의 감촉을 느낄 뿐이다. 미용실을 나가는데, 계산대에 서 있는 건 다시 그 여자 미용사이다. 미용사는 계산을 하는 도중에도 여전히 면장갑을 끼고 있었다. 만이천원이라는 가격은 내가 그 여자를 만나고 그 여자가 내 몸의 가장 귀한 부분을 은밀히 다듬어 주는 공간을 빌리는데 무척이나 적은 가격이라는 생각을 한다. 비록 그 시간이 삼십분 정도이며 내 지갑에는 이만원밖에 들어있지 않지만 말이다. 저기요, 거스름돈을 꺼내드는 그 여자를 보며 나는 무슨 말을 걸고 싶었지만 이내, 말을 얼무어버리고 밖으로 나선다.


3.


 고백하자면, 나는 2를 쓰며 밀란 쿤데라의 <농담>에 나오는 장면을 참고해서 썼다. 결과는 전연 달라보이지만(나는 여전히 유사성이 많다고 생각한다) 미용사에 대해 쓸 때, 나는 루드빅이 루치에를 보는 마음을 투영시키고자 했다. <농담> 에서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온 루드빅은 미용실에서 뜻밖으로 루치에를 마주치게 된다. 그녀는 루드빅과 몇 년 전에 헤어졌던 연인이었다. 루드빅이 그 여자를 보는 마음은 새롭고도 낯설다. 


 나와 그 미용사는 루드빅과 루치에와 달리 과거의 어떤 연줄도 없다. 그렇게 귀여운 여자를 과거부터 알기란 내 인생에서 참 요원한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마치 그 미용사 여자를 과거의 어떤 친구처럼 생각하기도 했는데, 그건 그 여자가 내게 새롭고도 낯선 여자이기를 바라는 까닭과, 예전부터 지금까지 이어진 관계이기를 바라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