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좁은 거실 하나에 방 두 개가 있다. 화장실은 하나 뿐이다. 현관을 열고 들어와 신발장에서 거실을 보자면, 기다란 책상 위에 컴퓨터 두 개가 있고 반대편에 기다란 소파가 하나 있다. 벽에는 지상이 까마득한 창문 한 짝과 낡은 시계 하나가 걸려있다. 그뿐, 그 흔한 텔레비젼이나 서랍장도 하나 보이지 않는다. 두 개 있는 방은 하나는 잡스런 물건들을 그대로 방치해놔서 아직도 상자더미고, 다른 방 하나는 거실의 축소판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이 작업실은 사실 먹고 자는 일도 잦다는 편에서 집이랑 다를 것도 없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라면 냄새가 자욱했다. 그 여자가 먼저 와서 컴퓨터 하나를 부여잡고 자판을 두드리고 있었다. 어젯밤 이곳에서 잤는지 바닥에는 이불 하나가 버려진 개처럼 늘어져 있었다. 나는 그 여자에게 인사를 한다. 그 여자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똑같이 인사한다. 나는 그 옆자리에 앉아서 컴퓨터를 켠다. 나는 게임을 만들고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우리'는 게임을 만들고 있다. 기업의 대자본이 아닌 소자본 소규모로 만드는 게임을 인디게임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만드는 게임은 큰 인기를 끌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국내 규모에서는 최고라고 자신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사실은 과거의 한 때에만 우리에게 자부심을 부여했을 뿐이다. 지금의 우리는 무엇인가? 그 여자와 나, 그리고 다른 한 명 이렇게 세 명으로 이루어진 우리는 열정도 패기도 잊고 어느 순간 그저 만들기 때문에 만드는 현실에 안주하고 있다.
우리를 떠나며 E는 그렇게 말했었다. "너네의 부자들의 하릴없는 취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태도에..."
5.
"더 이상 어울리고 싶지 않아." 음악을 만들던 E와는 그렇게 헤어지고 나서도 간혹 만난다. E는 날 만날 때면 혹독한 비난과, 상대가 못 알아들을 거라는 전제가 가장 모욕적인 비유를 서슴없이 내뱉는다. 나는 그렇기 때문에 E를 만나고 있다.
E와는 인터넷에서 만났다. E라는 별칭은 인터넷에서 쓰고 있던 닉네임의 알파벳 하나를 따온 것이다. E 하나만 닉네임에서 대문자였고, 나는 어쩐지 그게 인상 깊어서 이름도 아닌 닉네임도 아닌 알파벳 하나로만 그를 떠올리고 있다. 물론 이런 언급은 속으로만 혹은 글로만 하고 있다. 실제로 그를 부를 때는 이름으로 부른다.
배경음이나 효과음에 대한 아쉬운 생각에 사람을 구하다, 어떤 사이트에서 E의 음악을 듣고 E에게 연락을 보낸 게 시작이었다. 남들보다 뛰어난 실력이라기보다는 E가 가지고 있는 음악의 색깔이 날 끌어당겼다. 처음으로 만난 E는, 사이트에서의 까칠한 모습과 다르게 굉장히 순한 인상이었다. 수년간 그를 겪어본 경험을 토대로 삼자면, 그 순한 인상은 마치... 최초이기에 느낄 수 있는 그런 인상에 불과하다는 생각이다. 처음으로 여자의 손을 잡았을 때 느껴지는 부드러움이나, 처음으로 여자와 잤을 때 느껴지는 그런 즐거움처럼, 하지만 그것들이 시간이 갈수록 아쉽고 약하게 느껴진다는 사실처럼, E의 그런 인상은 나에게 점점 바래져갔기 때문이다. E는 지금 다른 팀에서 게임을 만들고 있다. 나는 변화하는 E의 인상이, 다른 팀의 다른 팀원들에게도 똑같이 느껴질지 궁금하다.
6.
1994년에 스퀘어에서 제작된 '라이브 어 라이브' 라는 게임이 있다. 특이하게도 옴니버스 방식으로 구성된 이 게임은, SF편, 중세편, 근미래편 등 총 일곱 가지의 이야기로 나누어진다. 각각의 이야기는 서로 다른 시대의 서로 다른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예를 들자면 서부편에서, 주인공은 서부의 보안관으로 무법자들을 상대한다. 쿵후편에서는 쿵후의 대가가 후계자를 양성하며 고통과 복수가 맞물린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렇게 일곱 가지의 이야기는 당장에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 이야기들을 올바른 방식으로 깬다면, 마지막에, 모든 이야기들이 하나로 결합되는 특별한 이야기를 플레이 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구성은 크게 두 가지의 상징적인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첫 번째는, 다양하게 분화된 이야기는 더욱 다양하게 분화되는 이야기를 낳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하나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다시 일곱 가지의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으며, 그렇게 파생된 하나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일곱 가지의 이야기를 또 한 번 만들어낸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들은 일곱 가지, 사십구가지, 삼백사십삼가지, 그러니까 무한하게 뻗어나가는 나뭇가지와도 같은 양상을 지니게 된다. 두 번째는, 서로 관련 없어 보이는 무수한 이야기들이 결국 하나의 특별한 이야기로 정리 된다는 점이다. 그 특별한 이야기는 지금까지의 모든 이야기들을 엮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며, 무한한 나뭇가지를 통째로 묶는 나무의 몸통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
단일적으로 만들어진 이야기에서, 다시 무수하게 퍼져나가는 이야기들. 마지막에 이르러 무관련성에서 관련성이라는 자기력을 가져 하나로 묶이는 이야기에는, 간과할 수 없는 의미가 숨겨져 있기 마련이다.
\"너네의 부자들의 하릴없는 취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태도에...\" 라고 말하는것 보면 딱히 돈을 벌기 위해 인디게임을 만든다기보다 호기심과 재미로 만드는건가?
장면묘사할때 집중력이 인상적이다.
6번 게임이 실제로 있는 게임인지 아닌지 모르겠는데 있든 없든 전문적인 설명이라는 측면에서 재미있다.
1~3보다 4~6을 훨씬 재미있게 읽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