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일 불가코프의 책을 처음 접했던 것은 <백위군>이었습니다.
열린책들이 과거 러시아문학 번역 출간을 자기네 출판사의 특색으로 삼고 있던 시절,
"러시아 혁명 전 우크라이나 지방의 분란을 다룬 작품"이라는 것에 호기심을 품고 읽었죠.
당시만 하더라도 미하일 불가코프의 소설로는 한국에 소개된 작품이 거의 없다시피 했고,
그 전에 삼성출판사의 세계문학전집으로 나온 <거장과 마르가리따>의 존재를 저는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우크라이나 지식인 집안을 중심으로 무시무시한 혁명 전야의 소요를 다룬 <백위군>을 붙들고는,
"세상에 이렇게 뛰어난 작가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니!" 라고 무릅을 치고 벌벌 떨면서 읽었습니다.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하는데, 그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태연자약한 어투로 "무시무시했다"라고 적고 있더군요.
"그 해는 무시무시했다. 그 다음해는 더 무시무시했다"라는 식으로 짧고 굵게 쓰는데, 정말로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내 영혼이 작품 속에서 다루는 무시무시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정말로 옮겨가 있는 느낌이었고,
그렇게까지 강하게 이입하여 책을 읽었던 것은 이전에 경험한 적이 전혀 없었습니다.
이후 불가코프의 작품을 미친듯이 찾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더 나아가, 불가코프를 다룬 모든 문헌들을 찾고 찾고 또 찾아다녔죠.
박상준 편저의 SF 비평서 <멋진 신세계>를 보니, 불가코프가 러시아 SF의 선구자로 꼽힌다고 쓰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야꼬프스끼의 <목욕탕>에서 작가가 평소 사이가 별로 안좋았던 불가코프를 풍자하고 있다고 해서 찾아 봤죠.
도서관에 가서 <러시아 문학사>를 찾아 보니, <거장과 마르가리따>를 러시아 현대문학의 최고작 중 하나로 꼽고 있었습니다.
저널을 뒤져보니 극장에서 SF 희곡을 상연하는 과정을 다루는 <적자색 섬>을 분석한 논문이라던가,
<거장과 마르가리따>에서 사용한 각종 상징과 팬터지로서의 의의를 다루는 논문이 나왔습니다.
이후 차근차근 한 권 한 권 불가코프의 책을 찾아 읽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면서 한국에도 불가코프의 책이 조금씩 조금씩 꾸준히 번역되는 것을 보게 되었죠.
결국 불가코프가 쓴 소설은 미완성 유작까지 포함하여 거의 모든 작품이 한국에 번역되어 나왔고,
희곡의 경우에도 주요작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은 사실상 다 번역되었습니다.
심지어 불가코프가 문필 생활 초기에 쓴 수필까지 번역된 형편입니다.
불가코프는 본래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사람이었습니다.
<백위군>은 사실상 작가의 자전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우크라이나 엘리트 집안에서 태어나 고등 교육을 받고 의사가 되었죠.
문제는 우크라이나 지역은 토지가 매우 비옥하고, 러시아에게 점령당했으며, 독립 운동을 지향했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 항상 불안하고 언제 말썽이 터질 지 모르는 폭탄을 안고 있는 지역이었고,
러시아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우크라이나 지방 출신인 사람들을 믿지 않고 차별했습니다.
이는 우크라이나 사람들도 마찬가지여서, 우크라이나의 귀족 후손들은 독일의 사관학교를 나온 사람들이 많았고,
자신들의 옥토를 짓밟고 지배하는 러시아 제국에 대해 증오심을 품고 있었죠. 이 증오는 소련 정부로 이어지게 됩니다.
불가코프가 의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하자마자 우크라이나에서는 내전이 발생하여 백위군과 적군이 전투를 벌였고,
나이가 젊은데다가 의사 자격이 있었던 불가코프는 몇 차례나 군의관으로 소집되어 군복무를 합니다.
강제적인 군의관 노릇과 전쟁이 싫었던 불가코프는 탈영을 감행하지만, 반대편 군대에 잡혀 또 군의관으로 일하였죠.
이렇게 양쪽 진영을 오가면서 군의관으로 일하며 우크라이나 내전을 경험한 것이 <백위군>의 모태가 됩니다.
불가코프는 러시아 혁명 이후 내전 시절 군의관으로 고생한 것에 넌덜머리가 났고,
또 디프테리아를 앓으면서 건강을 해친 이유도 있고 해서 의사로 살기보다는 작가로 입신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처음 쓴 것이 <백위군>이었고, 거의 동시 발표한 것이 신출내기 의사 시절을 쓴 <젊은 의사의 수기>였죠.
소설 <백위군>의 완성도는 엄청납니다. 서사다운 서사로 우크라이나의 역경을 이해할 수 있게 하고,
이런 레벨의 작품이 생전 처음 글을 쓰는 사람 손에서 나왔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지경이죠.
불가코프는 <백위군>을 스스로 희곡으로 각색하여 <뚜르빈가(家)의 나날>이라고 연극으로 상연하였습니다.
당시 러시아 혁명으로 소비에트 정부가 수립된 후 거의 모든 희곡은 러시아 혁명을 찬양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불가코프의 작품은 너무나도 솔직하게 혁명으로 인한 내전의 참혹함과 우크라이나 지방 사람들의 애환을 담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상연 금지조치가 내려졌고, 불가코프는 "반혁명 문제 작가"로 찍혀서 제대로 된 작품생활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처하죠.
게다가 불가코프는 [중편 3부작] 소설 시리즈를 써서 발표했는데,
그 개막편 <개의 심장>은 스탈린을 연상케하는 사람이 개의 심장을 달고 아주 개같은 인간이 된다는 이야기였고,
세 번째 작품 <비운의 달걀>은 레닌을 연상케하는 과학자가 생명체 확대 기계를 발명했다가 잘못 사용되고
이 때문에 러시아 전역에서 난데없이 등장한 거대 타조 등과 싸우게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유머 작가로 나서도 부족함이 없는 불가코프의 천분이 유감없이 발휘된 <비운의 달걀>이나 <개의 심장>은
지금 시점에 읽어도 허리가 끊어질 듯이 웃으며 읽을 수 있는 무척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스탈린과 레닌을 정면으로 풍자한 이런 작가를 소비에트 당국이 가만 놔둘 턱이 없었죠.
당연히 불가코프는 작가로 나선 지 10년도 안되어 모든 작품활동을 중단해야 했고, 어떤 책도 출판할 수 없게 됩니다.
하지만 놀라운 반전이 일어납니다.
소비에트를 장악한 독재자 스탈린, 바로 그 사람이 불가코프의 <뚜르빈가의 나날>을 보고 팬이 되었다는 겁니다.
스탈린은 무척 잔혹한 독재자였지만 또 한 편으로는 자신의 마음에 드는 작품을 창작한 예술가를 편애하기도 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음악가 쇼스타코비치였고... 글을 쓰는 작가로는 미하일 불가코프였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미하일 불가코프는 소비에트 입장에서 반체제 작가였다는 것이었죠.
불가코프가 러시아 혁명에 비판적이든 말든, 하연간에 스탈린은 불가코프의 <뚜르빈가의 나날>을 좋아했습니다.
스탈린이 남에게 알리지 않고 혼자서 극장에 찾아가서 이 작품을 네 번이나 거듭 보았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였죠.
소비에트 정부는 공식적으로 반체제 작가인 불가코프를 가혹하게 대했습니다.
의사로서 진료도 할 수 없게 하였고, 작가로서 작품을 발표하는 것도 금지했습니다.
하지만 스탈린은 개인적으로 불가코프의 팬이었기 때문에, 불가코프에게 길을 열어주고 싶어 했죠.
그래서 불가코프에게 스탈린이 직접 전화를 겁니다 - 국가를 지배하는 절대 독재자가 일개 작가에게 전화를 한 것이죠.
스탈린은 불가코프에게 당신이 원하는 직장, 당신이 원하는 작품 상연이 가능하도록 최선을 다해 돕겠다고 약속했고,
모스크바 극장에서 무대장치 기사로 일할 수 있는 직장을 마련하여 불가코프를 발령내 줍니다.
평생 희곡 상연이 꿈이었던 불가코프는 덩실덩실 춤을 추면서 극장으로 달려가 너무나도 즐겁게 일하게 되었죠.
그리고 이후 극장에서 작품을 기획하고, 각본을 검토하고, 배우들이 연습을 한 후 연극을 상연하기까지의 과정을
촘촘하게 써낸 작품이 바로 장편소설 <극장>입니다 - 작가가 건강을 해쳐 일찍 세상을 떠나지만 않았다면,
아마도 <거장과 마르가리타>에 필적하는 뛰어난 걸작이 될 가능성이 있었던 좋은 작품이죠.
불가코프는 이 때 모스크바 극장에서 일했던 경험을 다른 작품에서도 십분 활용하는데,
희곡 <적자색 섬>은 극장에서 '적자색 섬'이라는 SF 희곡을 검토하고 상연하기 위해 벌어지는 일을 다룬 작품입니다.
또한 <거장과 마르가리타>에서 펼쳐지는 악마 볼랜드의 마술 쇼는 불가코프의 극장 근무 경험 없이는 쓰여질 수 없었죠.
하지만 불가코프는 모스크바 극장에서 무대장치 기사로 만족하지 않았고,
극작가로서 자신이 쓴 희곡을 무대에 올려 인정받고 싶어했습니다.
영화와 TV가 본격적으로 생활 속으로 침투하기 전이었던 19세기부터 20세기 초반 무렵까지 문학계의 일반적인 풍토는,
작가의 역량을 인정하는 척도가 대략 다음과 같이 차별적으로 순위가 매겨져 있었습니다.
1. 시(詩)
2. 희곡 → 무대에서도 성공해야 함
3. 소설
21세기에 들어선 현대에서는 이런 순위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다만 문학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아직도 시(詩)가 소설보다 어렵다고 인정받고,
진정 하늘의 천품을 받은 자는 소설가가 아니라 시인이라는 인식이 조금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희곡의 위상을 소설 위에 놓는 것이라든지, 무대 공연으로 성공해야 진정한 작가라는 인식은 현재 존재하지 않죠.
오히려 연극을 열심히 찾아보는 사람 자체를 만나기 드문 것이 현실입니다.
하지만 19세기와 불가코프가 살았던 20세기 초반에는 달랐습니다.
무대에서 성공을 거두고 인정받는 희곡을 써낸 작가만이 진정한 작가로 대접받았죠.
그래서 천하의 빅톨 위고도 그렇게 열심히 <에르나니>와 같은 희곡을 써서 성공한 것에 득의 양양했던 것이고,
걸작 소설 <노트르담의 꼽추>를 쓰고도 자신의 다른 희곡이 실패하자 실의에 빠져서 어쩔 줄 몰라했던 것입니다.
불가코프 역시 작가로서 자신이 제대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자기 작품이 무대에서 성공해야 한다고 믿었고,
반체제 작가로 찍히기는 했지만 독재자 스탈린이 도와준다고 하니 어떻든 자기 작품을 상연해 성공시키려고 애썼죠.
하지만 불가꼬프의 희곡은 더 이상 제대로 상연되지 못했습니다.
어떻든 소비에트 정부 입장에서는 불가코프의 희곡은 반체제 성향의 작품이었고,
그런 작품을 많은 배우들을 동원하여 상연하는 것은 극장 책임자 입장에서 큰 모험이었던 것입니다.
불가코프는 극장 책임자와 여러 번 충돌을 거듭한 끝에 결국 스탈린이 주선해 준 극장 일자리마저 잃게 됩니다.
이후 작품 출판도 금지되고, 극장 상연도 불가능하고, 의사로서 진료도 할 수 없는 상태로,
그냥 막연하게 언제 발표할 수 있을지 기약도 없는 상태로 장편소설 <거장과 마르가리따>와 <극장>을 씁니다.
모든 희망이 사라진 상태에서, 이 뛰어난 능력을 가진 작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마지막 불꽃을 불살라 책을 썼죠.
<거장과 마르가리따>에서 정신병동에 갖힌 거장은 자신의 작품 원고를 불살라버리고, 가치가 없다고 저주합니다.
마르가리따는 이런 거장에게 연모의 정을 품다못해 그를 박해한 소비에트 주류 문단 인사들에게 적대감을 갖게 되죠.
그리고 악마의 부하가 준 크림을 바르고 마녀가 되고 나서, 빗자루를 타로 하늘을 날으며 문단 사람들에게 통쾌하게 복수합니다.
불가코프의 작품들은 하나부터 열까지 비극적이고, 모두 자기 이야기이지만, 결코 실의에 빠져 좌절로 인생을 끝내지 않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을 결국 버리지 않고, 불타버린 원고는 다시 부활하여 20세기 소련 최고의 작품으로 다시 나타났으니까요.
<거장과 마르가리따>는 본디오 빌라도가 영겁의 세월 동안 형벌을 받고 있다가 용서를 받게되는 대목도 주요 테마 중 하나인데,
유태인들의 등쌀에 밀려 예수에게 유죄를 선고하였던 로마의 유태지역 총독 본디오 빌라도는 비겁을 행한 죄로 영겁의 벌을 받지만,
결국에는 용서를 받고 그 영혼이 자유를 찾게 됩니다 - 자유를 찾은 본디오 빌라도의 환호는 불가코프가 희망하는 환호와 통하고 있죠.
이는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비겁의 죄는 저지르지 않겠다"는 불가코프의 단호한 작가로서의 자존심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잘 읽었어요
잘 읽었어요2
글 잘 읽었어요. 거장과 마르가리타와 개의 심장 읽었는데 딱 내 타입의 작가였음. 믹 재거가 거장과~를 읽고 영감 받아 sympathy for the devil 작사한 것도 유명하죠
개의심장을 읽엇엇는데요 러시아 특유의 거친 느낌도 나고 책이 확와닿지가 안더라고요 그래서 대표작인 거장과마르따리타 읽어볼까하는데요 이것도 개의심장처럼 묘사나 이런거보다 주인공들 생각이나 대화위주로 연극처럼 진행되너요??
ㄴ<거장과 마르가리따>는 전지적 작가 시점의 소설입니다. 대화 위주로 진행되는 챕터가 있고, 인물의 심리를 다루는 챕터가 있습니다. 또 게다가 어떤 일이 벌어지는 상황을 담담히 지켜보며 기술하는 챕터도 있습니다 - 예수의 최후와 베드로가 숨어 있는 모습을 다루는 챕터가 그러하죠. 어쩌다보니 한국에서는 <개의 심장>이 <거장과 마르가리따> 다음으로 여러 출판사에서 출간되었고 그 덕분에 많이 알려진 작품이 되었는데, 실은 중편 3부작 중 가장 재미있고 좋은 작품은 <비운의 달걀>입니다. <비운의 달걀>이 <개의 심장>보다 유머도 읽는 재미도 훨씬 더 뛰어나죠. 불가코프의 진가는 <백위군>, <거장과 마르가리따> 두 편이 압도적이고, 그 다음이 <비운의 달걀>이라고 생각합니다
으어어 감사합니다!!
잘보고 가요 꿀 ㅡ 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