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도 그렇고 외국에서도 그렇지만,
일가족 사람 여럿이 한꺼번에 글을 쓰는 작가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부모님이 글을 쓰는 사람이었는데 그 자녀도 작가의 길을 걷게 되는 일도 있고,
나이 먹은 형제가 작가가 되는 것을 보고 동생도 따라서 글을 쓰다가 작가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소설가 황순원의 아들 황동규는 아버지와는 달리 시를 택하여 시인이 되었고,
시조를 썼던 조종현 시인의 아들 조정래는 아버지와 달리 소설가가 되었습니다.
그 밖에 소설가 박화성의 차남 천승세는 모친의 뒤를 이어 같은 소설을 쓰는 작가가 되었고,
소설가 한승원 작가의 딸 한강은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소설을 쓰고 있죠.
한국의 형제 문필가라면 아마도 김원일, 김원우 형제가 가장 유명할 겁니다.
이 둘은 나이 차이가 꽤 많이 나는 형제이고, 형 김원일이 이미 소설가로 자리잡은 된 다음
나중에 동생 김원우가 형의 영향을 받아 뒤늦게 글을 쓰다가 데뷔하여 같은 소설가가 되었습니다.
해외의 케이스라면... 세 자매가 모두 소설가로 작품을 남긴 영국의 브론테 자매가 있고,
독일의 하인라인 만과 토마스만 형제가 유사한 케이스의 형제 작가입니다.
토마스 만의 경우 나중에 그의 장남 클라우스 만까지 꽤 저명한 작가였고,
유명세는 별로 없었지만 그 밖에 다른 아들 두 아들도 작가가 되었습니다.
하인라인 만과 토마스 만 형제가 다른 형제 작가들에 비해 유독 특이한 점이라면,
이 두 사람은 근본적으로 성격이 매우 달랐고 정치적 견해 및 작품세계 역시 달랐다는 것입니다.
대개 형제가 같이 문학적 재능이나 예술적 재능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경우에는,
두 사람이 힘을 합쳐서 협업을 하여 공저로 함께 작품을 만들어 가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오래 전 독일의 그림 형제가 그렇게 함께 글을 썼고, 프랑스의 콩쿠르 형제도 그러했으며,
러시아의 스뚜르가츠끼 형제와 체코의 차페크 형제 역시 공동 작업으로 책을 썼습니다.
본래 형제들은 같은 부모 아래 태어나 함께 성장하기 때문에 성장 배경이 거의 동일하고,
예술에 대한 관점과 이해를 공유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협업이 용이한 면이 있죠.
하지만 토머스 만과 하인리히 만은 작품 세계가 매우 다르고, 사적으로도 사이가 별로 안좋았습니다.
세계 1차 대전에 대해서는 정치적 관점을 완전히 다르게 가지고 있었고 이게 대중에게 공개되었기 때문에,
토머스 만이 국수주의를 버리고 형 하인리히 만의 의견에 동의하게 될 때까지 오랫 동안 만나지 않기도 했습니다.
토머스 만은 형 하인리히 만이 작가로 그럭저럭 조금씩 인정을 받고 있던 시절,
형의 영향을 받아 작가가 되는 것을 꿈꾸면서 자신도 습작을 하고 글을 쓰기 위해 애썼고,
느닷업이 25~6살 밖에 안되었을 때 쓴 <부덴브로크 일가>로 인해 이미 세계문학사에 길이 남을 작가가 되었습니다.
<부덴브로크 일가>는 상인 가문을 내세운 일종의 대하소설입니다 - 그런데 역사 드라마가 중심이 아닌 게 특징이죠.
따지고 보면 박완서의 <미망>이나 박경리의 <토지>의 경우에도 <부덴브로크 일가>와 유사한 면이 좀 있는데,
작품의 메인 테마가 상업이라는 점이 비슷하고, 역사를 따라가기보다는 가문의 운명에 관심을 갖기 때문입니다.
여러 대에 걸쳐 가문의 흥망성쇄를 차근차근 다룬다는 점은 안수길의 <북간도>나 펄 벅의 <대지> 연작도 유사하죠.
실상 <부덴브로크 일가>는 20세기가 시작되는 해에 나온 책답게 20세기 대하소설의 모범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불과 나이 30 도 안된 젊은이가 생전 처음 쓴 이 장편소설은 "당시까지 나온 모든 독일소설보다 더 뛰어나다"며 칭송받았고,
청년 시절 이보다 더 화려하게 문단을 주름잡게 된 사례도 별로 없었죠 - 단 한 편으로 그의 형은 잘 보이지도 않게 되었습니다.
토마스 만은 <부덴브로크 일가> 한 방으로 30 살도 되기 전에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이자 지성"으로 각인되었고,
그 젊은 나이에 공인이 되어 그의 생각과 말은 "독일 지식인들의 주요 입장 중 하나"라는 중요성을 띄게 되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미처 청년의 미숙함을 갈무리할 틈도 없이 너무 빨리 비상식적인 성공을 거두었다고 할 수 있겠죠.
그 영향일 지도 모르지만, 토마스 만은 세계 1차 대전이 터지자 독일 황실의 국수주의적인 견해에 찬성하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형 하인리히 만은 "침략 전쟁은 절대로 안된다"고 국수주의와 독일 황실에 대해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고,
독일도 황제에 의한 통치보다는 영국이나 프랑스와 같이 민주주의 정부를 수립해야 한다고 역설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두 형제는 꽤 오랫 동안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되죠.
1차 대전이 비참한 패전으로 끝나고,
토마스 만은 중편과 단편에 전념하다가 방대한 장편 <마의 산>을 씁니다.
<부덴브로크 일가>는 20 대에 쓴 작품이지만, <마의 산>은 50살이 다 되어서 완성했죠.
첫 번째 장편을 쓴 후 무려 20 년이 훌쩍 넘는 세월이 흐른 후 두 번째 장편을 발표한 셈입니다.
그리고 5년 뒤 노벨문학상을 수상합니다 - 토마스 만은 노벨문학상을 받을 때 장편이 딱 두 편이었고,
중단편으로는 <베네치아의 죽음>이나 <트리스탄>과 같은 수작이 있었지만 작품 수는 몇 편 안되었습니다.
단 두 편의 장편소설과 불과 10 여 편 밖에 안되는 중단편만으로 무려 노벨문학상을 받은 셈인데...
더 놀라운 것은, 그럼에도 유럽 전체가 토마스 만의 노벨상 수상을 당연하게 여겼다는 겁니다.
이는 <부덴브로크 일가>와 <마의 산>이 그토록 압도적이었다는 것 말고는 설명이 안되죠.
분명 <마의 산>은 가장 유명한 토마스 만의 대표작이기는 한데...
토마스 만이 쓴 다른 작품들에 비하자면 조금 지루한 편에 속합니다.
무엇보다 스토리가 단순하기 때문입니다 - 스위스 산꼭대기에 있는 요양원에 머물다 오는 이야기니까요.
다채로운 캐릭터 묘사가 꽤 재미있는 작품이지만, 스토리 위주의 재미가 아니어서 그건 잔재미에 가깝죠.
게다가 <마의 산>은 작품 전체가 요양원에서 사람들이 대화하면서 주고 받는 토론 위주이기 때문에,
장점이라면 1차 대전 전후 유럽 세계와 역사, 문화에 대한 지식을 대폭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어쩌면 <마의 산>은 "소설로 읽는 유럽 문화" 대략 이런 제목이 더 어울릴 지도 모르죠.
하지만 기초 지식이 꽤 있다면 내용을 잘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그렇게 쉬운 것만은 아니어서...
배경을 모르면 도대체 뭔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전혀 알 수 없고, 책 읽기는 것이 쉽게 지겨워집니다.
<마의 산>을 한국으로 예를 들어서 생각해 본다면...
한국의 강원도 산 속에 요양원이 있다고 치고 생각해 보면 됩니다.
젊은 나이에 결핵에 걸려 요양하러 들어 온 노사모 출신의 젊은 직장인도 있고,
퇴역한 장군 출신의 할아버지도 있고, 평범한 주부도 있고, 다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박정희가 어쩌고, 12.12가 어쩌고, IMF가 어쩌고, 노통이 어쩌고, MB가 어쩌고"
이러면서 끊임없이 토론을 하는 내용을 작가가 꼼꼼하게 소설로 써 놓는 셈이라고 할 수 있죠.
전후 사정을 얼마간 아는 독자라면 작품 속에서 늘어 놓는 내용들이 쉽게 이해가 가고 재미있겠지만,
이러한 배경을 잘 모르는 독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지 알 수가 없습니다.
외국인이 "박정희, 노통, MB, IMF" 등에 대해 토론하는 내용을 갑자기 읽으면 이해할 수 있을까요?
한국 독자가 <마의 산>을 읽는다는 것은 대략 그런 겁니다 - 배경 지식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알 수 없죠.
그런데 <마의 산>에서는 정치 이야기만 나오는 게 아니라,
당대의 유럽의 여러 문학작품, 음악, 철학 등 온갖 것에 대해 다 떠들어 댑니다.
이렇게 쓰여진 작품이 바로 <마의 산>이고, 그래서 "당대 유럽 문화에 대한 썰의 총화"인 겁니다.
개인적으로... <마의 산>은 책 제목은 들어봐서 아는 사람이 많아도, 읽어 보려고 책을 산 사람이 좀 있다 해도,
제대로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완독해 낸 사람은 별로 없을 것으로 확신하는 고전 중 하나입니다.
책 한 권 읽으려면 오히려 다른 책을 보면서 공부를 해야 할 판이니 원...
<마의 산>은 설교조의 교양소설이어서,
토마스 만이 쓴 게 아니라 그의 형 하인리히 만이 썼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하인리히 만은 평생 그런 책을 썼거든요. 토마스 만은 스토리 라인 위주의 책을 썼구요.
기본적으로 토마스 만의 작품들은 이야기 전개가 제법 맛깔나서 잘 읽히는 편에 속합니다.
<마의 산>은 토마스 만의 작품 치고는 조금 예외적인 노선을 가지고 있는 편이라고 해야 겠지만,
<파우스트 박사>나 <선택된 인간>과 같은 작품을 보면 정말로 스토리 텔링에 뛰어난 작가입니다.
<파우스트 박사>는 작가의 음악에 대한 지식과 관심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작품입니다.
이미 <마의 산>에서도 음악에 대한 보통이 넘는 지식을 바탕으로 화려한 썰을 선보인 적이 있지만,
천재 음악가의 삶을 다루는 <파우스트 박사>는 음악에 몰입했던 토마스 만의 또 다른 면모를 만끽할 수 있습니다.
독일 문단 혹은 독일 예술계는 조금 묘한 전통적을 한 가지 가지고 있는데...
독일의 글쟁이는 글도 잘 써야 하지만 음악 역시 깊이 잘 알아야 하고,
역으로 음악가는 문학을 잘 이해하면서 글도 꽤 잘 쓸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호프만은 문학과 음악을 같이 했고, 바그너는 뛰어난 작가이기도 했으며, 토머스 만 역시 음악에 뛰어났죠.
어떤 면에서는 토마스 만이 별종이라기보다, 그 정도는 독일의 탑 클래스 예술가들은 대부분 가능했습니다.
<파우스트 박사>는 작가의 사상적 전환이나 나치즘에 대한 반대 등이 잘 드러난 것이 중요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음악을 사랑하고 예술을 사랑하는 토마스 만의 진심을 접할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죠.
그리고 <파우스트 박사>는 이후 토마스 만이 평생 작품 주제로 삼는 "양심"를 들도 나온 작품입니다.
작품을 위해 자신의 영혼을 넘긴 음악가의 모습은 토마스 만에게는 자신을 비롯한 "예술가의 양심의 문제"를 반영한 것이니까요.
50대 중만 노벨상을 받고 세계적인 대문호로 자리잡은 토마스 만은 이후 "양심"을 테마로 꾸준히 글을 쓰는데,
이는 격동의 시대에 작가로서 양심을 지키고자 했던 의지와 일맥 상통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책을 읽으며 <파우스트 박사>에 얽힌 추억이라면,
오랫 동안 "가장 읽고 싶었지만 구하기 어려웠던 책"이라는 것입니다.
꽤 오랫 동안 헌책방 등지에서 찾는 사람은 많은 데 가장 구하기 어려웠던 책을 이야기할 때는,
토머스 만의 <파우스트 박사> 학원사판과 라블레의 <가르강튀아, 팡타그뤼엘> 을유문화사판이 첫 손 꼽히곤 했습니다.
지금은 <파우스트 박사>도 <가르강튀아, 팡타그뤼엘>도 모두 재번역되어 다시 출간되었고, 구하기 어려운 책이 아니죠.
토마스 만이 평생 가장 많은 세월을 소비하면서 혼신의 힘을 다해 쓴 작품은 대하소설 <요셉과 그 형제들>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은 토마스 만이 얼마나 오랫 동안 많은 노력을 기울렸던 간에, 실패한 망작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토마스 만의 작품은 <마의 산>을 제외하면 술술 잘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요셉과 그 형제들>은 도저히 못 읽겠더군요.
이 뛰어난 천재 작가가 도대체 왜 이런 망작을 쓰며 긴 세월을 낭비했을까 미스테리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
천재가 실수한 것인지... 2차 대전의 소용돌이 속에 망명객으로 세계를 떠돌아다니는 바람에 그렇게 된 것인지...
만년의 토마스 만의 작품 <선택된 인간>은 그레고리우스 교황의 전설을 테마로 하여,
오이디푸스 신화의 메인 플롯과 거의 유사한 이야기를 흥미롭게 펼쳐 놓고 있습니다.
한 왕가의 쌍둥이 남매가 근친 상간으로 사생아를 낳고, 그 아이가 성장하여 어머니와 결혼하고...
따지고 놓고 보면 막장 드라마도 이런 막장이 없습니다 - 클래식이라고 해도, 기본적으로 막장인 것은 사실이죠.
만년의 토마스 만은 작가로서 거의 막바지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뛰어난 스토리텔링 능력을 보여주는데,
<선택된 인간>은 토마스 만의 모든 작품 중에 가장 잘 읽히고 재미있는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황지우가 황순원 아들인가요?
ㄴ황동규 시인이 황순원의 아들입니다. 저도 모르게 좋아하는 시인 이름을 실수로 적어 놓았네요.
항상 좋은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글감사합니다
알고 있으면서 모르는척 하는건지. . ㅎㅎ
마의 산은 효용론적 관점에서 잃는 게 가장 우수하지. 그 내용은 다음의 한 문장으로 함축될 수 있음: "잊으세요"
ㄴ,ㄷ, 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