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비우는 일은 정말 쉽지 않다. 힘들었던 시기에 한줄기 희망으로 지두 크리슈나무르티의 현재를 사는 법을 몸에 길들이려 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신호등 하나를 건널 때에도 과거나 미래, 그러니까 현재가 아닌 다른 시간과 장소에 있지 않으려 앞으로 나아가는 내 관절과 내딛는 발의 중심에 집중하는 시도를 했었다. 생각하지 않는 일이 절실하던 때였다. 그래서 가능했고, 절실함은 하나의 구멍만 파는 전동드릴의 역할을 잘 해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금은? 지독한 금단현상을 겪는다. 정해진 시간 안에 일을 처리하고 마감할 수 있는 일만 있다면 글을 병행해서 쓸 수도 있겠지만… 낮/밤이 뒤바뀌고, 일과시간 이후에도 환자와 마주해야하는 그런 상황에서 정상적으로 글을 이어가지 못하는 것으로 인한 순간적인 짜증을 내지 않으려면 아예 글쓰기를 시작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8월20 이후로 처음 두드리는 타자기다. …실은 그동안 억눌려도 어쩌지 못하는 착상들을 수기로 휘갈기긴 했지만, 그래도 바르게 앉아 타자기를 두드리는 것은 별개의 행위다. 적어도 내게는.

객기로, 주말 안에 새로 받은 소설책 한 권을 다 읽겠다고 스스로에게 선전포고한 것이 또 다른 객기를 나았다. ‘이딴 것도 소설이야?’하며 괴로운듯 읽어내려갔던 그 책을 정말로 다 읽은 것이다. 나는 ‘베스트셀러’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이 있는데, 첫번째 이유로는 대중적 입맛에 잘 버무려진 것 같은 책들이 좋은 책이랍시고 회자되는 것이 꼴불견으로 생각될 때가 자주 있었기 때문이고, 두번째 이유로는 바로 그 ‘베스트셀러’라는 이름 때문에 괜히 그렇게 되지 않아도 될 암묵적 경쟁이 이루어지며 쓸데없는 비교우위가 갈리기 때문이었다. 그저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오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전문적으로나 기술적으로, 혹은 깊이의 면에서 훨씬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책이 ‘그런데 많이 팔리지는 않았지’ 내지는 ‘너무 작가 개인의 세계가 짙은 모양이야’, ‘하지만 독자들의 평은 냉혹했어’ 따위의 말 아닌 말들이 나뒹굴게 되는 게, 싫었다. 책은, 많이 팔리고, 독자들의 인정을 받아 호평으로 오르내려야 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말로 좋은 책’은 굳이 그 따위의 조건들 없이도 자체로 존재의의가 있다.

— 그렇지만 이번 소설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가벼운 맛이 있으면서도 메세지가 분명했다(그렇다고 가볍지만 메세지가 분명한 모든 예술이 괜찮은 건 아니다). 처음엔 집어치우려고 하다가 그 ‘주말 목표’ 때문에 억지로 페이지를 넘기다보니 독자로 하여금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가중적 몰입장치가 나쁘지 않았다. 사실 내용설정과 에피소드들이 상당히 뻔하기도 했는데, 그걸 덮어주는 건 ‘아주 작고 자세한 곳’에서 끌어오는 저자의 세심함과 온도였다. 나는 그 부분을 인정하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만 여전히 가장 싫어하는 요소는 따로 있었다. ‘가장 핫한 밀리언셀러의 한국 상륙!’같은 건 풍선처럼 부풀려진 감이 있어 간지럽지만, 그 정도로 수긍할 수 있다. 하지만 ‘전 세계에 몰아친 열풍!’, ‘소설 역사상 최고의 걸작' 따위의 광고문구는 정말이지…  출판업자들은 그냥 놔뒀으면 알아서 제 값어치를 드러낼 수 있을 것을 꼭 그런 헬륨풍선 같은 문구를 달아야겠냐는 말이다. ‘다들 이래서 읽나?’, ‘다들 이렇게 읽어?’라고 되묻지 않을 수 없는 문장들을!

내 역사상 사람들과의 접촉(온,오프라인 모두)이 가장 적은 요즘, 그럼에도 나라는 인간을 기억하고서 뭘 하냐고 묻는 동료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약간 짜증섞인 목소리로 그런걸 뭣하러 묻냐, 간병은 항상 똑같다고 답했다. 정말 크게 벗어나는 일이 없다. — 왜냐하면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내 광대한 목표 중 하나는, 어머니의 회복 전까지 최대한 ‘별 일’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고, 구태여 내가 일으키지 않아도 제 발로 찾아와 내 상을 뒤엎는 운명에 대해서는 – 아예 그런 빌미를 주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병원과 집, 식당만 오간다. 그렇게 해도 헤프닝이 끊이지 않는 우리네 삶인지라 화재가 날 수 있는 경로들을 과하게 점검하고 작은 소리에도 예민하게 구는 것이다. 인생에는 — 정말로 별 일이 다 있으니까. 오랫동안 길을 걸어서 지친 상태인데 전방에 오래된 오락실이 보이고 나는 그 앞에 주저앉듯 버려져있는 두더지잡기 기계에 걸치듯 기대있는데, 그 죽은 줄만 알았던 기계에서 별안간 두더지 한 마리가 정신나간 것처럼 튀어오르며 나를 놀래키는 것처럼. — 꼭 그런 것처럼, 기도 안 차는 해프닝들이 반갑지도 않게 찾아오니까 스스로 주의하는 수밖에는 없다. 내 인생이 도무지 재미가 없어 어떤 신나는 일을 찾기 위해 발광하는 것도 아니고… 충분히 익사이팅했고 여전한 잔재가 있으니 내 빌어먹을 운명에게 좀 쉬었다 가자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