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J. 크로닌의 소설들은 어렵지 않게 아주 잘 읽히고,
흥미진진한 사건들이 끊임없이 계속해서 새로 펼쳐집니다
비유하자면 크로닌의 작품들은 요즘 TV 드라마 전개와 매우 유사한 구석이 있습니다.
에피소드 중심의 사건이 계속 줄이어 등장하고 있어서 독자가 흥미를 잃지 않게 하고,
작품 속의 주요 인물들의 성격을 일부러 묘사하려고 애쓰기보다는 사건 중심으로 갈 길을 갑니다.
- 다만 그 사건들 속에서 인물들이 제 각각 개성을 가지고 움직이도록 하죠.
꽤 전형화되어 있는 인물들이 많이 나오지만, 특징을 잘 잡아서 독자가 이해하기 쉽게 전달합니다.
그래서 크로닌의 책을 읽노라면 어떤 인물도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고, 매우 자연스럽습니다.
책을 다 본 후 찬찬히 되씹어보아도 그 인물은 그 역할이 딱이다 - 그런 생각이 들거든요.
크로닌의 책들은 너무 널리 읽힌 베스트셀러였기 때문에, 오히려 평가절하되는 경향이 있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찬찬히 읽어보면 소설을 소설답게 하는 구성, 인물조형, 사건 전개, 스토리텔링이 매우 뛰어나고,
각 작품마다 작가가 꼭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가감없이 솔직하게 담아낼 줄 아는 작가이기도 합니다.
일독이 아니라 재독 삼독을 해도 "참 좋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몇 안되는 작가이기도 하죠.
제 경우 크로닌의 <천국의 열쇠>는 다섯 번 이상 읽었을 겁니다.
아마도 제 어머니께서는 열 번 정도가 아니라 삼 사십 번이 넘게 읽지 않으셨을까 추정하고 있고,
어머니께서 너무 많이 보신 탓인지 책이 너덜너덜해져서 새 책으로 다시 사드렸을 정도입니다.
또 다른 대표작 <성채> 역시 책 전체를 삼 독 이상 했던 것은 확실하게 기억하는데,
매우 흥미로운 작품의 전반부 절반까지 - 2부까지는 몇 번 읽었는지 기억할 수 없습니다.
한국에 크로닌의 책은 거의 전 작품이 소개되어 있는 것으로 압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은 대표작 <천국의 열쇠>와 <성채> 두 편이 될 것이고.
그리고 데뷔작 <모자 집의 성>, 작가가 쓴 최대의 작품 <별이 내려다 본다>까지가
일부러 꼭 찾아 읽을만한 뛰어난 레벨의 책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리고 자서전 격으로 쓴 <인생의 도상에서> 역시 흥미로운 책입니다.
<천국의 열쇠>는 크로닌이 7 번째로 발표한 책이라고 하고,
작가는 그 이후 <천국의 열쇠>를 능가하는 책을 평생 쓰지 못했습니다.
이는 매우 아쉬운 일입니다 - 크로닌은 데뷔작 <모자 집의 성>을 발표한 이후,
중간에 실패작도 있었지만 가면 갈수록 더 좋은 작품을 쓰는 "발전하는 작가"였거든요.
하지만 그 모습이 꺾인 것은 너무나도 뛰어난 <천국의 열쇠>를 발표한 이후부터였습니다.
<천국의 열쇠>는 카톨릭 신부를 주인공으로 삼고 있고, 서두에서부터 종교 분쟁을 다룹니다.
스코틀랜드 출신이었던 작가는 부친과 모친이 카톨릭과 기독교로 종교적 믿음이 서로 달랐고,
이 때문에 가장 훌륭한 종교적 삶은 상대방의 종교도 인정하고 포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크로닌은 <천국의 열쇠>의 주인공 신부를 통해 "가장 이상적인 종교인의 모습"을 구현합니다.
맑은 영혼을 가지고 있고, 삶과 환경과 치열한 투쟁을 벌이며 진지하게 싸우고 역경을 헤쳐 나가고,
그러면서 결국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는 정신 하나로 어떠한 어려움도 이겨내는 사람입니다.
<천국의 열쇠>의 주인공은 어린 시절, 신학교를 다니던 학창시절, 보좌신부 시절, 중국 파견 신부 시절,
매번 파란만장한 어려움이 끊임없이 닥쳐오지만 결국 하나하나 모조리 다 이겨내고야 맙니다.
그런 의미에서... <천국의 열쇠>의 주인공은 마치 "소년 만화의 주인공 같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특히 <천국의 열쇠>에서는 작가가 종교적 포용을 중요시했던 만큼 그런 생각이 가감없이 드러나는데,
주인공 카톨릭 신부는 중국에 있을 때 개신교 목사와도 의기투합하여 기탄없는 우정을 나누며 지냅니다.
서구 사회에서 자신의 종교적 믿음에 대해서는 오랫 동안 양보가 없던 것이 더 일반적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크로닌이 <천국의 열쇠>에서 주장한 "종교적 포용"은 당시 분위기로는 급진적인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천국의 열쇠>를 저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읽었는데,
마지막 챕터에 저를 무려 30년 가까이 괴롭힌 인용 문구가 나옵니다.
인용하면 다음과 같은 대목인데, 도처히 진짜 원문의 출처를 찾지 못하겠더군요.
"우리의 뼈는 썩어서 들판의 흙으로 변하겠지만, 영혼은 빠져나가 영광과 광명의 천상에 살리로다.(중략)"
슬리스 신부는 마음을 부드럽게 가지며 치셤 신부를 바라보았다.
"근사한 말이군요. 이것은 성바오로가 말씀하신 게 아닙니까?"
"아니오."
노인은 사과라도 하듯 고개를 가로 저었다.
"이건 공자의 말씀이오."
저는 공자님이 하셨다는 저 말이 도대체 어디에 나오는 지 진심으로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어떻든 <명심보감>과 <논어>를 중고등학교 시절 "한문 서클"에 나가면서 공부했고,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한문> 선생님께 질문하기도 했습니다 - 선생님께서도 모르시더군요.
대학에 가서는 짬짬히 <명심보감>과 <논어> 등을 꾸준히 살펴보면서 저 구절을 찾아 헤멨죠.
제가 중학교 시절부터 쥐꼬리만큼이나마 동양철학에 관련한 책을 계속 들여다 본 유일한 이유는,
<천국의 열쇠>에 "공자님 말씀"이라고 인용했던 구절이 어디에 나오나 찾아보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저 말은 공자님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주자어류>에 이르기를,
"뼈와 살은 땅속에서 썩어 묻힌 채 야토(野土)가 되지만 혼이나 기와 같은 것은 없어지지 않는 것이다"
이 대목이 바로 <천국의 열쇠>에 "공자의 말씀"이라고 인용된 문구의 원전이었습니다.
주자의 제자들이 스승의 말씀이나 제자들과 행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기록한 책이 <주자어류>입니다.
<주자어류>는 주자가 심혈을 기울여서 직접 집필한 책이 아니기 때문에... 가치는 꽤 낮게 평가되죠.
저는 30 년 동안 <천국의 열쇠>에서 크로닌이 "공자의 말씀"이라고 인용해 놓은 대목을 찾아 다녔지만,
알고보니 저 말은 공자의 말이 아니고, 주자가 한 말을 제자들이 받아 적은 책을 인용한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공자는 매우 현실적인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어서,
괴력난신에 대해서는 직접 말씀하시는 법이 없는 분이었다고 하죠.
<논어>에 "子曰~" 이렇게 공자님이 하신 말씀이라고 쓰여 있다고 하더라도,
현실적이지 않은 모호한 내용은 공자의 말이 아닌 것이고 가짜라고 판별할 정도라고 합니다.
따라서 <천국의 열쇠>에서 "공자의 말씀이오"라고 되어있는 인용 문구는 한학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공자의 성향으로 미루어 저런 말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보자마자 바로 알았을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번역자가 동양철학을 좀 알고 성의가 있어서 "원문과는 달리 <주자어류>에 나오는 주자의 말을 인용한 것"
뭐 대략 이렇게 주석이라도 잘 달아 놓았다면 제가 그렇게 오랜 시간을 헤메고 다니지는 않았을 것인데...
국내에는 수 십 년 전부터 무수히 많은 출판사에서 <천국의 열쇠> 번역본이 소개되어 나와 있지만,
저 구절에 대해 "공자의 말이 아니라 주자의 말이다"라고 주석으로 밝혀 놓은 책은 없는 것 같습니다.
<성채>는 정의감에 불타는 젊은 의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입니다.
작가의 출신과 탄광촌에서의 의사경험 등이 작품 속에 십분 녹아 있기 때문에,
여러모로 자전적인 요소가 많이 담긴 소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천국의 열쇠>와 마찬가지로 파란만장한 사건의 연속인 점은 유사한데,
작가가 의사로서 직접 체험한 경험을 바탕으로 의료 현장의 일을 다루어 가기 때문에
<성채> 쪽이 <천국의 열쇠>보다 더 긴장감 넘치는 세밀한 묘사가 생생히 살아 있습니다.
젊은시절의 이상주의와 나이를 먹으면서 돈을 바라는 속물로서의 성공이 차츰 대립하게 되고,
사랑하는 와이프의 간곡한 설득과 그녀의 죽음으로 이상주의를 되찾게 된다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어려운 시절 꿈과 이상을 간직했던 사람이 물질적 성공 속에 점차 타락한 속물이 되어가다가,
와이프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제정신을 차리게 된다는 결말은... 진정 안타깝기 그지 없죠.
<천국의 열쇠>의 주인공 신부가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꺾이지 않고 이겨내는 사람인 것에 반해
<성채>의 주인공은 중간에 심각한 타락을 경험한다는 점에서... 훨씬 더 현실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별이 내려다 본다(악의 농락)>는 탄광촌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작품입니다.
작품 테마 중심으로 생각해 본다면, 탄광촌을 다루는 에밀 졸라의 <제르미날>과 통한다고 할 수 있겠죠.
다만 에밀 졸라는 <제르미날>에서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면서 자본가를 절대악으로 몰지 않고,
그보다는 사회운동을 한다고 나서는 사람들 역시 별다른 사명감이나 양심에 기반하여 활동하기보다는
영웅이 되고 싶다는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자본가와 사회운동가 둘 다 비판했습니다.
(본래 에밀 졸라는 한 쪽은 악, 한 쪽은 선 이렇게 글을 쓰기보다, 양쪽 진영 모두 비판하는 것을 즐깁니다)
졸라의 <제르미날>과는 달리 크로닌의 <별이 내려다 본다>는 훨씬 이해하기 쉬운 소설이고,
자본을 가지고 노동자들을 부리는 비정한 기업가 쪽을 시종일관 절대적인 악으로 묘사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부조리를 파헤치고 뒤집어 업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은 절대적인 정의일 수 밖에 없죠.
크로닌이 쓴 책 중 <별이 내려다 본다>는 분량이 최대이고, 서사가 살아 있는 대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가가 젊은 시절 직접 경험하였기에 알고 있었던 탄광촌에 존재하는 문제를 모두 총동원하여 서술하면서,
<제르미날> 정도가 아니라 <레 미제라블>레벨로 사회문제를 고발하려고 작정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죠.
<별이 내려다 본다>는 크로닌 특유의 박력 있는 서사와 스토리텔링 덕분에 재미있게 읽어내릴 수 있지만,
작품을 읽고 난 뒤의 감동은 <성채>나 <천국의 열쇠>에 미치치 못합니다. 왠지모를 한계가 있습니다.
탄광의 혹독한 근무여건 속에서 기업주가 위험을 방치하여 대형사고가 터져 100 명 이상 사상자가 나고,
그 과정에서 주인공은 고참 광부였던 아버지를 잃게 됩니다 - 이 때문에 이를 악물고 싸우게 되죠.
주인공 역시 소년시절부터 탄광에서 일했지만, 열심히 공부를 하고, 교사가 되고, 노조를 만들고,
결국에는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정계에서 싸워나갑니다.
이에 맞서 자본가는 온갖 모략과 술수를 총동원하여 광부 중 가장 속물인 바람둥이를 사람을 내세우고,
결국 국회의원 선거에서 주인공은 패하여 다시 탄광촌에 광부로 되돌아와 일하게 되는 이야기죠.
<별이 내려다 본다>는 주인공이 성공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실패하는 이야기이고, 악의 승리를 그립니다.
악과 싸우던 주인공은 결국 (포기하지는 않지만) 악에 굴복한 모양새가 된 채로 이야기가 마무리되는데,
이런 면이 아무래도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허탈함과 아쉬움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모자 집의 성>은 자기 밖에 모르는 가부장적인 모자 가게 주인이
제 멋에 취해서 살다가 가족을 잃고, 세상의 평판도 잃고, 가게도 잃고,
결국 모든 것을 잃게 된다는 비극적인 이야기입니다.
작가가 나중에 쓴 책에서 주인공이 항상 정의로운 존재로 그려지는 것과는 달리,
<모자 집의 성>의 주인공은 한 마디로 말해서 "망했으면 하는 비호감 인물"로 등장합니다.
독자들이 호감을 느낄 수 없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아 이야기를 진행한다는 점도 놀랍고,
그렇다고 해서 그 인물이 "악한"이거나 나쁜 짓을 벌이는 "천생 나쁜 사람"인 것도 아니고
그냥 생각하는 게 좀 구식이고 지나치게 가부장적이며 고루한 가치관을 가졌을 뿐입니다.
어찌 보면 작가가 나중에 쓴 작품에 비해 처음 쓴 데뷔작이 소설 작법은 가장 현대적이고,
일반적인 구조를 가진 다른 소설들에 비해 여러가지 파격을 시도한 독특한 작품입니다.
이런 책으로 데뷔한 작가가 시간이 가면서 오히려 전통적인 작법으로 작품을 써냈다는 것도...
의외라면 의외일 수 있을 겁니다.
크로닌의 책은'지성문화사'와 '청목'에서 과거 거의 전작품이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신부를 다루는 <천국의 열쇠> 때문에 카톨릭 계열 '바오로의딸(성바오로출판사)'에서도
<성채>, <별이 내려다 본다> 등과 같은 작가의 대표작을 잇달라 출간하여 소개하였죠.
천주교 신자라면 <천국의 열쇠>는 대개 꼭 한 번 읽게되는 책이므로 그 영향 때문인지,
'바오로의딸(성바오로출판사)'의 <천국의 열쇠>는 중쇄가 무려 80 쇄가 넘더군요.
또한 최근에는 세계문학전집으로 <성채>가 포함되는 일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과거 '범우사'에서 세계문학전집 중에 <성채>를 출간하여 놀란 적이 있었는데,
최근에 '민음사'에서도 세계문학전집 중에도 <성채>를 포함하여 출간하고 있습니다.
작품의 유명세만 생각해 본다면 <천국의 열쇠>가 <성채>보다 훨씬 더 널리 알려졌겠지만,
타락을 경험하고 되돌아오는 인간적인 주인공을 다룬다는 점에서 <성채>의 작품성을 더 높게 보기도 하죠.
<인생의 도상에서(두 세계의 모험)>는 소설체로 쓴 크로닌의 자서전입니다.
- 다만 크로닌이 비교적 젊을 때 쓴 책이어서 전체 인생을 모두 다룬 책이 아니고,
자신이 어떤 분야에 전념하며 살아갈 것인가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의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하고 있죠.
본래 어려운 환경에서 공부하여 의사가 된 크로닌이 광산촌을 비롯하여 여러 곳을 오가며 진료를 하고,
일하면서도 끊임없이 노력하여 의학박사 학위를 따고 대도시에서 개업의로 전문직의 삶을 살게 됩니다.
책의 3/4은 이렇게 의사로서 경험을 쌓고 입신하는 과정을 다루는데, <성채>와 겹치는 에피소드가 꽤 많죠.
거의 같은 에피소드가 작가 본인의 시각에서 <성채>와는 약간 다르게 기술되어 있는 게 재미있죠.
책의 후반부는 크로닌이 소설가로 데뷔하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이후 세계대전을 겪는 내용이 다루어집니다.
의사로 잘 지내던 크로닌이 난데없이 소설을 쓰는 작가가 되겠다고 선언하자 온 가족이 크게 놀라서 말리지만,
크로닌은 다락방에 틀어밖혀 <모자 집의 성>을 쓰고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바람에, 작가로 새 삶을 살게 됩니다.
의사 트렁크와 작별하고 작가가 된 크로닌은 종교에 더 몰입하게 되고, 세계 각지를 여행하면서 글을 쓰며 살아갑니다.
<인생의 도상에서>는 아주 솔직하게 크로닌의 삶과 그의 가치관이 차분하고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어서,
<성채>와 <천국의 열쇠>와 같은 작가의 대표작을 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합니다.
비추천은 리버럴이 하냐..
크으 또 좋은글 보고갑니!!
이렇게 좋은 글에 비추천이 왜 이리 많지.
크로닌 첨 듣는데. 잘읽었습니다. 작은연못아닌가보네
유저라이프에 등록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등학교 다닐때는 시간때우기로나마 책 읽을시간은 있었는데 요샌 귀찮아서 읽지도 않게되네
천국의 열쇠 정말 좋아하는 작품중 하나인데 도갤에서 보니 반갑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혹시 글 퍼가도 될까요?
ㄴ출처와 작성자를 명확히 밝히시면, 퍼가셔도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고 고우영화백께서 살아생전에 평화신문에 '둥근찌그렁'이라는 제목으로 천국의 열쇠를 연재하신 적이 있으시다우.
그때 열심히 읽었던 기억이 나네욤..글 잘 읽었습네다.
난 군대 진중문고에서 누군가 놓고간 천국의 열쇠를 통하여 처음 크로닌의 작품을 접했었어.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을 했었는데. 구교와 신교를 넘어, 국가를 넘어서 모두를 사랑했던 주인공 신부가 생각나네. 내가 생각하는 천국의 열쇠는 신교 교리 하에 믿음으로 인한 구원이었는데 이 책을 보면서 과연 천국의 열쇠는 무엇일까라고 많은 고민을 했었어. 지금의 성도수 불리기에 여념이 없는 목회자나 구원의 문제에 관해 고민하고잇는 사람이 있음 꼭 추천하고 싶은 책인데 ㅎ 사실 아직 아무한테도 추천해준적이 없네. 내 개인적으로 쿠오바디스랑 쌍벽을 이루는 기독교 소설인것 같아
좋은 책. 중1땐가 처음으로 읽었던 책 같은데 한번에 쉬지않고 다 읽었던 것 같음. 근데 저 마지막구절을 찾아서 한자서클같은데 들어갔다는거에 글쓴이가 대단해보임.
아 별이 내려다 본다 재밌게 읽었었는데...좋은 글이네요ㄱㅅㄱㅅ
저도 천국의 열쇠 재밌게 읽었는데 정말 좋은 리뷰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