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예술에는 '이것'이 없다.
무엇이 없을까?
바로 아이들이다.
모든 그리스인들이 플라톤주의자이거나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는 아니었고,
걔 중에는 "정의란 강자의 이익이다." 라며 니체에 앞서 권력의지론을 개진한 트라시마코스,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 라며 절대성에 맞서 상대주의적 관점을 주장했던 프로타고라스가 있다.
하지만 결국 그리스의 철학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로 대변된다.
그들의 철학이 잉태된 까닭은 그리스와 그리스인들에게 있을 것이다.
그들은 모두 절대적 이상주의자들이었다.
플라톤의 이데아는 완전무결한 이상주의를 대표하는 철학적 개념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스승의 입장을 조금 다르게 계승했을 뿐이었다.
그는 가능태와 현실태를 말했다.
그리스에서 어린 아이는 예비된 성인의 의미만을 가질 뿐이었다.
아이는 불완전한 상태이며, 현상이자, 가능태다.
성인은 완전한 상태이며, 이데아이자, 현실태다.
그래서일까? 앞에서도 말했듯이 그리스 예술에 어린 아이는 등장하지 않으며 하나 있다 하더라도 조연에 그친다.
그래서일까? 그리스인들에게 영아 살해는 드문 일이 아니었으며, 그런 살해에는 냉담함이 서려 있다.
그래서인가? 그들의 예술에는 노인조차도 얼굴에 난 수염이 그가 늙었음을 알리는 유일한 단서에 불과하다.
그들의 예술품은 모두 완전한 형태의 비율을 가진 근육질, 글래머들이다.
그리스에서 아이와 노인은 젊고 왕성한 것에 떠밀린다.
그것들은 완성되어야 할 불완전함이며 부정되어야할 쇠락일 뿐이다.
로마는 어떨까?
로마 예술에는 아이들과 그 아이들의 어머니들, 그리고 아버지들과 노인들이 함께 부조돼 있다.
로마는 절대성을 추구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딱히 어떤 철학을 표방한 것도 아니었다.
알다시피 스토아 철학이란 단지 자기수양적 세계관일뿐이다.
로마 시대에 철학은 쇠퇴했다. 그들은 현실주의자들이었다.
그들에게 절대란 개념은 무의미했다.
모든 것은 흐르는 시간의 한 부분이었다.
그들의 전투는 조직적이었고 체계적이었다.
준비과정에서부터 병참 보급, 진지의 구축과 장군의 지휘아래 돌격하는 시점에 이르기까지,
적을 섬멸하고 영토에 깃발을 꼽고 주변 부족을 복속시키는 것들은 전부 하나 하나 중요한 과정이었다.
이러한 로마의 전투에는 그리스의 장대한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처럼 극적 장면이 없다.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쟁기는 이순신의 난중일기처럼 지루하다.
모든 것은 하나의 과정으로 동등하게 취급된다.
아이는 아이대로, 청년은 청년대로, 장년과 노인은 있는 그대로 인정된다.
백전 노장의 두상의 뺨은 홀쭉하다.
로마는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았다.
중세가 오기 전까지 그들은 서양 문명을 극도로 발전시켰다.
시간이 흘러 기독교가 공인되고 분열된 로마는 서서히 자리를 내주게 된다.
있는 그대로의 세계는 신에 의해 다시금 덧칠 되고 장막을 드리웠다.
이상.
좋은글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