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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에밀 졸라는 매우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정확히 말해 젊은 시절에는 보통 사람보다 덜떨어진 사람이었죠.
    
에밀 졸라가 진정으로 대단한 사람이라고 평가받아 마땅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젊은 시절 머리 나쁜 완전한 열등생이자 사실상 인생의 실패자로 낙인 찍힌 그런 상태에서,
삶의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하여 치열한 노력으로 모든 것을 극복해 낸 대표적인 노력파이기 때문입니다.
타고난 머리가 뛰어나서 극복한 게 아니라, 자질이 부족함에도 오로지 노력만으로 맨 꼭대기까지 올라갔죠.
    
중학교 시절부터 친구였던 폴 세잔이 매우 부유한 집안의 아들이었던 것에 반해,
에밀 졸라는 가정 형편이 그리 넉넉하지 않은 어려운 집안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그러면 공부라도 잘 했어야 하는데, 불행하게도 에밀 졸라는 천재이기는 커녕 둔재였습니다.
프랑스 젊은이들에게게 일생 일대의 시험이라는 대학입학 자격 시험에서도 낙방하고 말았습니다.
한국식으로 보면 대입 시험에 실패한 것이죠.
   
오늘날 프랑스는 대학입학 자격 시험에 통과하면 가까운 대학에 무작위로 갑니다.
과거에는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일단 대학입학 자격 시험에 통과해야 대학 입학이 가능했죠.
말하자면 대학입학 자격 시험은 대학 갈 때 치르는 "예비고사"의 성격을 가진 시험인데
이 시험에 떨어지면 프랑스 땅에서 국민 세금으로 더 이상 공부를 할 수 없다는 의미였고,
일평생 동안 머리써서 하는 일은 포기하고 그냥 몸으로 때우는 일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대학입학 자격 시험은 어지간한 프랑스 지성들에게는 천재적인 재능을 드러내는 첫 무대가 되곤 했고,
보들레르는 청소년 시절 사고만 치던 문제아였지만 대학입학 자격 시험을 뛰어난 성적으로 통과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이 시험에 통과하면 일단 그 순간부터 무조건 한 사람의 어른이자 지성인으로 대접합니다.
대학에 뜻이 없어서 시험을 안 본다면 모를까, 시험을 봐서 낙방하였다면 열등생으로 낙인찍히게 되죠.
한 마디로 말해, 이 시험에서 떨어지면 어디 고개 들고 돌아다니지도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에밀 졸라는 이 시험에서 낙방했습니다 - 그가 천재이기는 커녕 열등생임을 증명되는 순간이었죠.
     
에밀 졸라는 대입 시험에 떨어지고 집안 형편도 시원찮고,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실의에 빠져 있었습니다.
사실 이 정도 상황이 남의 이야기가 아닌 듯 느껴지는 사람은 시대와 국가를 초월하여 꽤 많을 겁니다.
앞이 캄캄하니 미래가 보이지 않고, 자기 능력에 대한 자신감도 없고, 어떻게 살아야 할 지도 모르겠고,
그런 답답하고 한심한 상황에서... 에밀 졸라는 막연히 글을 쓰고 싶다는 동경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타고난 머리나 재능이 딱히 뛰어난 것도 아니었고 - 그러니까 대입 자격 시험에서조차 낙방하고 말았겠지만 -
어떻든 성인이 되었으므로 자기 먹을 것은 자기 힘으로 해결해야 했으므로 무슨 일이든 하겠다는 결의만 품고 
무작정 파리로 상경해 와서 헐값에 출판사에 임시직 사환으로 고용되어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상 파트타이머 신분이었고, 봉급이라고 해 봐야 자기 한 사람 입 풀칠하기도 빠듯하였죠.
당연히 파리에서 가장 싼 방을 얻어야 했고, 노동자들과 빈민들과 어울려 살게 되었습니다.
   
대학입학 자격 시험에도 떨어진 열등생에다가 아무런 경력도 능력도 없는 에밀 졸라에게 주어진 일은,
파리뿐만 아니라 프랑스 전국의 작가들을 찾아다니면서 원고를 받아서 출판사로 가지고 오는 일이었습니다.
그런 일이 주어진 것은, 그것이 아무 실적도 없는 가장 능력없는 직원에게 적합한 일이었기 때문이었죠.

모든 작가가 다 파리에 거주하면 그나마 작가들을 찾아다닐만 하긴 할텐데, 당연히 그렇지 않았습니다.

지금처럼 떼제베나 KTX가 있는 시대도 아니고, 도로망이 잘 깔려 있거나 자동차를 몰고 다니는 시대도 아닙니다.

비포장 도로를 마차 타고 다녀야 했고, 먼 지역은 다녀오는 것만으로도 몇 일 또는 한 달도 넘게 걸리던 시절입니다.

아무리 멀고 찾아가기 힘들어도 어떻든 간에 "자신의 일"이므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작가집으로 찾아가야 했고,
그나마 글을 쓴다는 작가라는 사람들이 "원고 마감을 철썩같이 지키는가"라고 하면 그런 사람은 1%도 안됩니다.
그 멀리까지 찾아갔는데 그냥 빈손으로 다시 되돌아올 수 없으므로 어떻든 원고 써 달라고 떼를 써야 했고,
그렇게 고생 고생하면서 겨우겨우 원고를 받아 돌아오면 정말 애 썼다고 포상해 주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게 대학에 떨어지고 파리 빈민가에서 박봉으로 살아가던 에밀 졸라의 험난한 첫 직장 생활이었습니다.
    
이렇게 절망 속에서 열등생 취급 속에 인정도 못 받는 파트타이머 출판사 직원의 생활은,
평생 에밀 졸라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3 가지 중요한 자산을 남겼습니다.
   
1) 에밀 졸라는 빈민가의 삶을 꿰뚫게 됩니다.
출판사에서 받는 급여가 박봉이기 때문에 파리 빈민가에 거처를 정했던 에밀 졸라는,
빈민가의 삶을 직접 경험하고, 노동자들과 빈민들의 삶을 지근 거리에서 관찰하게 됩니다.
에밀 졸라는 일평생 민중의 삶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소설을 쓰는 것이 특기였습니다.
청년 시절 그 속에 뒹굴었던 그의 체험은, 훗날 작가로 글을 쓰면서 소중한 자산이 됩니다.
   
2) 저작권의 개념과 인세 제도를 만들어 작가들의 권익을 지킬 수 있게 합니다.
에밀 졸라는 출판사 근무를 하면서 당시 출판계 시스템에 잠재된 허실을 알게 되고,
자기 자신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을 때 작가에게 불리한 것을 개선하면서 그 지식을 활용합니다. 
에밀 졸라는 젊은 시절 출판사 직원으로 일하면서 전국의 수 많은 작가들을 만나러 다녔고,
또 자신이 작가들에게 받아 온 원고가 책으로 만들어져  독자들에게 팔려나가는 과정을 보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출판사들이 출간한 책이 쪽박을 차기도 하지만 대박을 치는 경우도 많이 보았고,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더라도 그 수익금이 작가에게 거의 돌아가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무엇보다 그 시절 작가들은 자기가 쓴 문학 작품이 돈을 벌어다 주고 말고에 거의 관심이 없었고,
오로지 독자와 평론가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는가에만 관심을 갖는 것이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죠.

작가는 출판사에 원고를 넘길 때 딱 한 번 원고료만 후하게 잘 받으면 그것으로 땡이었고,
이후 출판사가 무한정 책을 찍어내도 작가가 관여하거나 이익을 챙길 수 있는 방법은 없다시피 했습니다.

   
에밀 졸라는 자기 자신이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자, 이 부분의 제도를 고쳐 나갑니다.
우선 에밀 졸라는 저작권과 출판권의 개념을 분명하게 나누어 계약할 것을 주장하였고,
출판사는 작가의 책을 출판만 해 줄 뿐 저작권은 언제나 작가의 소유라는 것을 분명히 했습니다.
또한 책의 판매 부수에 따라 수익금의 일부를 작가에게 지급하는 인세 제도를 도입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를 통해 작가의 저작권이 보호될 수 있도록 하고, 판매 부수에 따라 작가도 수익을 챙길 수 있게 하였습니다.
에밀 졸라는 젊었을 때 출판계에 있어 봤기 때문에 출판사의 수익 규모와 출판 시스템을 죄다 꿰차고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출판사와 협상하더라도 작가에게 불리한 시스템 상의 미비를 개선시켜 나갈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작가들이 책 한 권 한 권에 서명이나 도장을 찍고, 판매 부수에 맞추어 인세를 받을 수 있게 된 것은...
실상 에밀 졸라의 역할이 가장 컸습니다.
- 작가들의 권익과 저작권을 개념을 오늘날과 같이 만든 사람이 바로 에밀 졸라죠.
   
3) 당대의 최고 지성들과 예술가들과 교유하게 됩니다.
작가를 만나러 간 에밀 졸라는 출판사 직원으로 업무적으로만 만나고 끝낸 것이 아니었습니다.
당대를 대표하는 지성이라고 할 수 있는 작가들과 계속 만나볼 수 있는 여건이 되었던 만큼, 
그 사람들과 대등하게 교유하고 자기 자신이 그들과 대화가 통하는 상대가 될 수 있도록 애썼고, 
그만한 지성을 갖추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습니다 - 많이 읽고, 보고, 스스로 공부하고 노력했죠.
   
또한 중학교 시절 학교에서 만나 친하게 지냈던 폴 세잔이 친구였던 만큼
세잔과 어울리면서 많은 화가와 예술가들과도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실은 학창시절 소심하고 내성적이었던 세잔이 그림에 자질이 있다는 것을 알고

충분히 대성할 수 있으니 화가가 되라고 부추긴 사람이 바로 에밀 졸라였죠.
에밀 졸라는 이러한 인맥을 바탕으로 미술이든 음악이든 문학이든 간에
분야를 가리지 않고 예술 전체를 매우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그 자신도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키워갔고,
습작도 게을리 하지 않았으며, 끊임없이 소재를 취재했습니다.
     
사람은 보고 듣고 것에 따라, 만나는 사람에 따라,
관심 분야에 따라,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습니다.
에밀 졸라는 문학 예술에 일생을 걸기로 결심하고 노력하였고,
그 분야 사람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에밀 졸라는 대입 시험에 실패하고 인생의 낙오자 신세로 사회 생활을 시작하였지만,
어떻게든 출판계에 발을 들여 놓았고 그렇게 맺은 인연과 가능성을 결코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에밀 졸라가 힘들게 밥벌이를 위해 일하면서 틈틈히 쓴  첫 소설이 과히 훌륭한 작품은 아니었지만,
하여간 그는 출판사 내부인이었고 아는 사람도 많았기 때문에 어떻게든 책을 출간할 수 있었습니다.
그 첫 번째 작품이 <떼레즈 라캥>이고, 한국의 박찬욱 감독이 만든 영화 <박쥐>의 원작입니다.
이후 에밀 졸라는 출판사 내부인 입장에서 어떻게든 책을 출간하면서 차츰 좋은 작품을 쓰게 되었고,
결국 그는 유명 베스트셀러 작가로 성장하여 쓰는 작품마다 굉장한 주목을 받게 되기에 이릅니다.
      
<쟁탈전>은 루공 마카르 총서의 두 번째 책이고,
차츰 실력을 키우고 있었던 에밀 졸라의 성장 과정에 있는 작품입니다.
이후 나온 <목로 주점>이야말로 에밀 졸라를 스타 작가로 만든 첫 번째 책이고,
빈민들의 삶에 대한 정밀한 이해,술주정뱅이에 온갖 잡놈들과 어울리는 여자의 묘사가 기가 막힙니다.
<목로 주점>으로 프랑스 전역에서 가장 많이 읽히고 논의되는 작가가 된 에밀 졸라는,
이후 쓰는 책마다 잇달아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문단을 정복하여 프랑스 최고의 작가로 우뚝 섭니다.
그는 많은 책을 팔았으며, 그의 작품은 무조건 사주는 충성스러운 독자층을 갖고 있었고,
판매량 못지 않게 그의 작품이 갖는 문학적 가치 역시 매우 훌륭한 것으로 평가되기에 이릅니다.
또한 사회적 이슈에 메스를 들이대는 작가 정신이나 치열한 예술가 정신 등으로 존경을 받았고,
심지어 젊은 작가들 중에는 에밀 졸라를 존경하고 따르려는 일군의 무리들이 등장할 정도였죠.
     
에밀 졸라의 작품 중 가장 파워가 세고 잘 읽히는 작품은 당연히 <제르미날>입니다.
광산촌의 스트라이크를 다루는 과정에서 그려지는 "집단 심리묘사"가 매우 뛰어난 걸작으로 꼽히고,
또한 혹독한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조명한 "노동자 소설의 시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 작품은...
놀랍게도 에밀 졸라에 의해 '사회 운동가' 역시 혹독한 비판의 대상이 되어 있기도 합니다.
<제르미날>의 주인공은 "혁명 리더"라면서 사람들을 선동하여 스트라이크를 일으켜 놓고,
갱도가 무너져 위험한 상황에서도 사람들을 보호하고 구출하려는 숭고한 희생을 보여주기는 커녕
무너진 탄광 속에서 평소 노리고 있었던 아가씨를 둘러싸고 연적과 결투를 벌여 상대방을 살해하고,
결투에서 승리한 후 곧바로 그 아가씨의 몸을 차지하며 희열을 느끼는 속물 중의 속물입니다.
심지어 결국 여자가 죽고 본인만 구출되자 "할 수 없지~" 그러고는 훌쩍 떠나버리는 식이죠.

      

<제르미날>에서 광부들을 짓밟는 자본가를 비판하는 것은 물론이고,
스트라이크를 선동해서 사람이 막 죽어나가고 엉망이 되었는데
그렇게 되어버린 것은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는 식으로 그냥 떠나버리는
당시의 무책임한 사회주의 혁명가들의 행태도 아주 혹독하게 비판하고 있죠.
에밀 졸라는 항상 사회의 어느 한 쪽은 정의이고 다른 쪽을 악이라고 이분번으로 보기보다는,
양쪽의 문제점을 모두 인정하고 죄다가 날카롭게 비판해 버리는 태도를 취하곤 했습니다.
치열한 취재나 자연주의 문학 뭐 이런 것만 에밀 졸라를 대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어느 한쪽을 옹호하기보다는 양날의 칼을 휘두르며 결국 양쪽을 죄다 난도질하 게 특기였죠.
     
에밀 졸라의 또 한 가지 면모라면, 세태에 관심이 무척 많았습니다.
프랑스를 비롯해서 19세기 유럽 사회가 겉으로는 착실하게 살아가는 듯 하지만
뒤로는 불륜이 만연해 있었던 그런 가식이 넘쳐나는 모습이라는 것에도 관심을 가졌고,
그래서 일련의 불륜 소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작품들을 잇달아 쓰기도 했습니다.
   
<나나>의 부제는 "수컷 욕망의 시"였고, 불륜의 원인이 되는 요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웁니다.
가수로 데뷔하였지만 제대로 노래도 못하면서 오로지 성적 매력만으로 스타가 된 나나가
수 많은 남자들을 유혹해서 자기 마음대로 농락하는 것은 물론이고 경제적으로도 파산시키고,
그 와중에 동성애도 즐기고, 창부처럼 몸도 팔고 그렇게 멋대로 살다가 병들어 죽는다는 얘깁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예쁘기는 하지만 변덕스러운 여자에게 홀려 인생을 망치는 남자들의 멍청함과,
그렇게 남자를 파멸시키는 머리가 비어있는 여성의 "타락한 이야기"가 유장하게 계속 펼쳐집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품위가 있고, 스토리텔링과 감정이 살아 있고, 인물들에게 공감을 느끼게 되죠.
   
<사랑의 한 페이지>는 과부가 자신의 어린 딸을 진찰하던 의사를 부지불식간에 유혹하여
둘이 결국 제대로 바람 피우기까지의 과정을 너무나도 설득력 있게 잘 써 놓아서... 
그렇게 불륜 관계를 맺는 것이 오히려 더 정당한 것으로 느껴질 지경이 되어버립니다.
과부가 밀실에서 유부남과 어울려 쾌락에 빠져 정신줄을 놓고 있었던 바로 그 시간에
그녀의 어린 딸은 창문 열어 놓은 채로 어머니를 기다리다가 병이 악화되어 숨지고 말죠.
비도덕적인 행위의 댓가로 천사같은 어린아이의 목숨이 희생당하는 가혹한 심판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런 몸쓸 불륜극을 처음부터 끝까지 서정적이고 아름답게 서술해 놓아서... 독자를 매혹해 버립니다.
작가는 이렇게 "당신도 마찬가지인 사람일 수 있다 - 실은 누구나 다 마찬가지이다"라는 식으로 일침을 놓습니다.
     
<살림>과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은 실은 한 짝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이 두 책 역시 세태 소설인데, 파리 사람들의 허영과 물질적인 욕망을 대상으로 하고 있죠.
특히 훌륭한 작품은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입니다 - 19세기 백화점이 오늘날 이상으로 화려했고,
또 그 시대 여성들의 욕망이 "백화점"이라는 공간에서 화려하게 개화하는 것을 리얼하게 그립니다.
여성들이 백화점에 열광하는 모습을 테마로 삼아 훌륭한 작품으로 빚어낸 솜씨는 공전절후 그 자체죠.

그러면서도 여전히 불륜에, 사치에, 허영이 사람들을 타락시키고 있는 당시 세태에 대하여

에밀 졸라는 예리한 칼날을 사정없이 휘두르고 있습니다.

<살림> 중에 보면 "인적이 드문 거리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수예점이 곳곳에 생겨 있었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전혀 장사가 될 수 없는 자리인데, 비교적 젊은 여성들이 수예점을 차려놓고 한가로이 세월을 보내고 있고,

그 가게들은 대부분 당시 돈 좀 있는 신사들 - 귀족, 자산가, 중장년 유부남, 초로의 노인들이 차려준 것이며,

다시 말해 낮에 수예점에서 시간을 죽이고 있는 젊은 여자들은 거의 대부분 "신사들의 세컨드" 신분이라는 것입니다.

에밀 졸라는 <살림>과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에서 당시 타락한 세태를 이렇게 예리한 관찰과 일목요연한 묘사로 다룹니다.

           
에밀 졸라의 작품 중 가장 특별한 위치에 있는 자전적인 소설이 <작품>입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청소년 시절부터 매우 절친한 친구였던 폴 세잔이 모델이고,
세잔의 손에 이끌려 미술계에 발을 들여 놓아 한 시절을 풍미한 미술 평론가로 활약하였던
에밀 졸라 자신의 미술에 대한 지식이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는 본격 미술 소설이기도 합니다.
에밀 졸라는 살롱 전시회에 낙선한 젊은 화가들이 낙선전시회를 펼쳐서 세상의 비웃음을 살 때
젊은 화가들을 열렬히 옹호하는 글을 써서 "인상파" 사조가 만들어 지는 데 지대한 공을 세웁니다.
이후 에밀 졸라는 마네를 비롯하여 많은 화가들과 친분을 맺게 되고, 세잔과의 우정도 여전했으며,
인상파를 옹호하는 글을 계속 쓰면서 차츰 미술 평론가로도 이름을 얻게 되죠.
<작품>은 19세기 프랑스 화단과 인상파, 살롱, 그리고 예술에 대한 지식이 많으면 많을수록 잘 읽히고, 
또한 미술을 전공한 화가, 미술평론가, 미술사학자들이 오히려 더 좋아하는 책이기도 합니다.
특히 에밀 졸라와 폴 세잔의 삶을 사실상 거의 그대로 가져다가 <작품> 속에 옮겨 놓았기 때문에,
두 사람의 인생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기도 하죠.
폴 세잔은 에밀 졸라가 <작품> 속에서 자신의 삶을 너무 리얼하게 가감없이 다루고 있는 것과
자신의 화가로서의 인생을 "세상의 이해를 얻지 못한 실패한 거장"으로 묘사한 것에 분노하고,
그 때까지 평생 둘 도 없는 각별한 친구 사이로 지냈던 에밀 졸라에게 사실상 절교를 통보합니다.
에밀 졸라는 <작품>을 통해 문학적으로 걸작을 세상에 내놓았지만, 그 때문에 평생의 친구를 잃었죠.
    
에밀 졸라의 가장 훌륭한 면은..
드뢰피스 사건 당시 용감하게 양심적으로 일어섰던 것도 아니고,
<제르미날> 등으로 노동운동을 정면으로 들이대어 세상에 알린 것도 아닙니다.
그렇게 거창한 사회적 가치나 신념 표출이 타인과 차별되는 포인트는 아니라고 봅니다.
그가 진심으로 존경받을만한 사람일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타고난 수재가 아니었고 오히려 둔재였으며 집안도 불우했지만, 
오로지 치열한 노력으로 모든 난관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세상의 가장 밑바닥에 있을 때 얻은 인연을 소중히 하면서
오히려 그것을 인생 역전의 기회로 활용하였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한 삶을 대하는 진지한 자세와 근면함을 진정 존경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