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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생이 되던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문학서적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별 고민이 없었습니다 - 문고판 책들을 손 가는 대로 닥치는 대로 읽기도 바빴거든요.
서점에 가면 '삼중당 문고', '마당 문고', '일신 그랜드 북스', '글방 문고' 등과 같은 1천원~1천5백원짜리 문고가 많았고,
세계문학 시리즈로는 '학원사 세계문학', '범우사 비평판 세계문학', '을유문화사 세계문학' 등이 깔려 있었습니다.
그 책들은 맨 뒷편에 항상 해당 문고(또는 세계문학 전집)의 작품 목록이 실려 있었는데, 그것을 다 읽고자 했죠. 
매일 자정 무렵이면 책 한 권 다 읽은 후, 문고판의 작품 목록을 보면서 읽은 책을 체크해 나가는 게 즐거움이었습니다.
    
시간이 흘러서, 대학에 들어가고 난 후에는...
어떤 책이 훌륭한 것인지, 어떻게 문학의 계보가 흘러흘러 왔는지,
좀 더 체계적으로 하나하나 파악해 가면서 책을 찾아 읽고 싶었습니다.
백과사전을 이용하고 있었지만 한계가 있었고, 기존에 사 읽은 책 뒤의 해설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게다가 대학에서의 전공도 이공계였기 때문에 이래저래 책읽기의 가이드를 받을만한 선배도 없었죠.
그러던 중 도서관을 돌아다니다가, 각 국가별로 거의 바이블처럼 이야기되는 문학 개론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영문학사, 불문학사, 독문학사, 노문학사 등 정리가 잘 되어 있으면서 어떤 책이 좋은 지 참고하기에 아주 훌륭하더군요.
   
대학 학부생으로 재학하던 시절에는 도서관에서 빌려서 보거나,
어떤 책이 좋을 지 궁금해질 때마다 도서관 서가로 직접 가서 찾아 보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계속 빌려볼 것이 아니라 곁에 두고 레퍼런스로 활용하는 게 좋겠다 싶더군요.
그래서 아예 한 권씩 사서 보게 되었습니다 - 새 책을 사서 볼 필요는 없을 것 같고 해서 헌책방을 이용했습니다.
제일 먼저 <노튼 영문학 개관>, <랑송 불문학사>, <마르티니 독일문학사> 세 종의 책 여섯 권을 장만해서 자주 보게 되었습니다.
<러시아 문학사>는 이철 교수 번역을 신뢰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철 교수가 동료 외대 노문과 교수들과 쓴 책으로 사서 곁에 두었고,
이후 남미 문학을 다룬 <라틴 아메리카의 문학과 사회>, 미국 현대 문학을 다룬 김성곤 교수의 <탈 모더니즘 시대의 미국 문학>,
프랑스 현대 소설 문학을 다룬 미셸 레몽의 <프랑스 현대 소설사> 같은 책들도 레퍼런스를 위해 사서 두고 참고하게 되었죠.
불문학 전공자가 아닌지라 <프랑스 현대 소설사>가 어떤 레벨의 책인 지 잘 모르고 오직 번역자가 김화영 교수인 것만 보고 샀는데,
미셸 투르니에의 작품들과 까뮈 전집을 훌륭하게 번역한 분의 이름을 믿고 사서 보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두고두고 하고 있습니다.
서반아 문학사라고 세 권으로 나온 책은 너무 분량이 어마어마한데다가, 스페인문학에는 흥미가 덜해서 편이어서 보류했습니다.
    
장르 문학을 다룬 소개서들은 일반 문학의 문학사 개론서 이상으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처음 접한 장르 문학 소개서는 박상준 편역의 <멋진 신세계 - SF를 읽는 즐거움>이었습니다.
이 책은 모든 페이지를 마르고 닳도록 보면서 SF를 찾아다니는 데 활용하는 가이드 역할을 했습니다.
이후 SF를 제대로 소개한 책은 20 년이 다 가도록 나오지 못하다가, 최근 고장원씨가 잇달아 책을 내고 있죠.
고장원의 <세계과학소설사>는 현대 SF 문학이 거의 다 빠져 있어서 기대와는 조금 달랐던 책이었는데,
올해부터 SF의 모든 영역을 하나씩 따로 다루면서 도장 깨기처럼 클리어하는 책을 한창 출간 중입니다.
실은 한국에서 SF가 출간되는 모습은 특정 출판사에서 시리즈 식으로 좋은 SF를  잇달아 펴내는 경우가 많아서,
좋은 책을 알아보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는 특징이 있었습니다 - 그냥 시리즈 다 사보는 것으로 충분하거든요.
    
하지만... 팬터지의 경우에는 전혀 다릅니다.
SF와는 달리 시리즈로 제대로 각 잡고 출간되는 성격을 지닌 것도 아니고,
이런저런 일반 문학 작품 속에 광범위하게 흩어져 숨어 있거나 전혀 알아보기 힘든 경우도 많았습니다.
게다가 아동문학의 절반이 팬터지의 성격을 가지고 있고, 그 중 중요한 팬터지도 많이 섞여서 나와 있었죠.
그래서 팬터지는 가이드 서적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습니다 - 훌륭한 작품과 쓰레기가 혼재되어 분간이 안되었죠.
그 바람에 좋은 팬터지를 알아보기 위해 여러 책을 보게 되었습니다.
<환상문학의 거장들>이나 <세계환상소설사전>은 레퍼런스 정리 형태로 되어 있는 팬터지 소개서였고,
로즈마리 잭슨의 <환상성>, 츠베탄 토도로프의 <환상문학 서설>, 캐서린 흄의 <환상과 미메시스>는 본래 평론집인데
일단 훌륭한 팬터지를 평론의 대상으로 삼아 예를 들어 설명하기 때문에 어떤 책이 좋은 작품인지 판단하기에 편리했습니다.
문학 전공자가 아닌 공돌이로서는, 평론은 알아보기 힘들지만 좋은 책을 알아내는 것이 목적이었기에 그 용도로 사용했죠.
<마술적 사실주의>도 남미의 매직 리얼리즘 문학을 파악하기 위한 목적으로 레퍼런스용으로 보곤 했습니다.
아동문학사를 다룬 <어린이 책의 역사>와 아동문학 평론집인 <용의 아이들>, <어린이 책을 읽는다> 역시
본래 처음에는 좋은 팬터지를 알아보기 위한 목적으로 찾아 보던 책이었습니다.
어슐러 르 귄의 <어스시의 마법사> 시리즈에 대한 설명을 찾아다니다가 아동문학 해설서에서 다루고 있는 것을 발견했고,
이후 에디스 네스빗의 <모래요정 바람돌이> 원작을 확인하려고 참고하다가 아예 곁에 두고 활용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나중에 조카들이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괜찮은 책들을 종종 선물해 주는 과정에서 자주 참고하게 되엇고,
이제는 제 자신의 자녀를 위해 어떤 책이 훌륭한 아동문학 작품인지 확인하면서 책을 사는 데 활용하고 있습니다.
    
Happy SF 무크지는 1호와 2호가 있는데, 2004년에 나온 1호에는 "추천할만한 SF 번역출간본에 대한 가이드"가 실려 있고,
2006년에 나온 2호에는 당시까지 "한국에 출간된 모든 SF에 대한 번역출간 리스트"가 있습니다 -  둘 다 제가 쓴 것이었습니다.
오랫 동안 SF를 찾아다니다가 그것을 리스트로 정리해 놓았던 것인데, 무크지가 나올 때 필요하다고 해서 제공했던 것이죠.
예정되었던 Happy SF 무크지 3호에서는 팬터지 리스트를 제공해 달라고 해서 갖고 있는 것을 좀 더 보강하여 줄 생각이었지만,
세 번 째 책은 나오지 못하고 무산되었습니다 - 실은 Happy SF 무크지 1호, 2호 모두 국가 지원금을 받아 나온 책이었죠.
Happy SF 무크지를 펴낸 행복한책읽기 출판사가 본래 노무현 대통령 당선 전에 노무현에 대한 책을 출간했던 곳이고 해서,
노무현 대통령이 재직하던 시기에는 국가 지원금을 신청하여 잘 타내곤 했었거든요 - 그 타이밍에 나온 책들이었습니다.
팬터지 리스트는 2002년 월드컵으로 다들 난리치고 있을 때 제가 "팬터지 목록 2.0"을 만들어 워터가이드 사이트에 배포했는데,
이후 무려 13년의 세월 동안 업데이트를 안해서... 이제는 시의성이 많이 떨어지는 골동품같은 리스트가 되고 말았죠.
Happy SF 무크지 3호가 나왔다면 그 때가 한 번 업데이트할 기회였는데 무산되었고, 어쩌면 영원히 업데이트 못할 지도 모릅니다.
실은 그런 작업은 다른 직업을 가지고 직장 생활하는 개인이 하기보다는... 출판계에 있는 사람이 하는 편이 더 바람직하겠죠.
    
추리문학의 경우에는 개인적으로 워낙에 좋은 작품을 잘 모르는 빵꾸라였는지라...
헨닝 만켈의 <즐거운 살인>과 홍윤씨의 <물만두의 추리 책방>을 절대적인 가이드로 삼아 활용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추리 쪽은 깊이 모르기 때문에, 가이드 서적이 더욱 금쪽같이 여겨지더군요. 특히 <물만두의 추리 책방>은 굉장히 유용합니다.
앞으로 추리 분야는 현재 한국 제일의 추리 전문가이자 편집자인 Decca 윤영천씨가 향후 목록을 정리해주시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해당 분야의 구루였던 정태원씨나 이가형 교수님이 작고하셨기 때문에, 한창 젊은 출판계 분이 좋은 가이드를 만들어 주시면 좋겠죠.
      
무협의 경우 가이드 서적을 아직 사서 본 게 없습니다.
진산 마님의 가이드서라든지 한국무협소설사 등은 꽤 괜찮은 책으로 알려져 있는데,
개인적으로 즐겨 보았던 무협 소설이라고는 오직 김용과 서효원 밖에 없는 데다가,

아직까지 무협 소설에 흥미가 크게 동하지 않고 있어서 가이드 서적의 필요성까지 느끼지 못하고 있거든요.

딱히 무협을 싫어하거나 낮게 평가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반 문학이나 SF/팬터지에 비해 파고들 생각이 없는 것이죠.
대략 10 년 정도 더 지나면 그 때부터 무협을 좀 더 읽어 볼까 그런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좋은 책을 알아보기 위한 가이드라는 목적으로 활용한 책들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왠일인지 이런 책들은 "두께에 비례하는 활용도"를 나타내고 있다는 것도 특기할만합니다.

얇은 판형으로 나온 이브 뢰테르의 <추리 소설>이나 임종기의 <SF 부족들의 새로운 문학 혁명> 등은

나름 꽤 잘 만들어진 책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제게는 그리 큰 도움이 되지 못한 실망스러운 책들이었습니다.

일단 책이 얇은 만큼 책 속에서 소개하고 다루고 있는 작품 수가 적어서, 조금은 빤한 내용으로 여겨졌거든요.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하기보다는 사전처럼 곁에 두고 필요할 때 가이드를 얻기 위해 펼치는 책들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사용해 본 결과 일단 무식할 정도로 두껍고 많은 내용을 담고 있는 책들이 훨씬 더 유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