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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호는 1945년에 태어났으며, 소위 "해방둥이 세대"를 상징하는 작가입니다.
현재 나이 70 줄에 들어선 어르신들이 대략 최인호와 동갑내기라고 할 수 있고,
제 부모님 세대가 바로 최인호와 사실상 동년배 세대에 해당합니다.
      
해방둥이 세대는 일부 특수한 사례를 제외하면 대부분 어린 시절 한국 전쟁과 지독한 가난을 경험한 후,
사회에 진출하는 20 대 중반부터 한창 일할 나이인 30대와 40대에 경제개발과 산업화의 주역이었습니다.
그리고 40대 초반 6월 항쟁과 6.29 선언, 50 대에는 대선 직선제와 민주화 진행을 지켜보았죠.
성장기에는 가난을 경험하였지만, 청장년 시절 국가 경제가 성장하는 시대를 살아가면서
성실하면 스스로 물질적 풍요를 이룩하는 자수성가가 가능하였던 세대이기도 합니다.
      
한국 현대사의 산 증인이었던 해방둥이 세대는 좋은 작가가 특히 많이 나온 세대이기도 합니다.
1970 년대 초반부터 문단을 주름잡으며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던 최인호를 필두로 하여 
1980 년대 최전성기를 누린 이문열, 2000 년대에 뒤늦게 만개하였던 김훈이 1948 년 생입니다.
이들은 자신이 속한 해방둥이 세대들의 삶의 굴곡과 사회상을 생생하게 기록하는 서기 역할을 합니다.
       
최인호는 고등학교 시절 신춘문예에 입선하여서, 시상식장에 고등학교 교복입고 찾아와서
문단의 기라성같은 인사들을 완전 벙찌게 만들었다는 매우 비범한 재능의 소유자였습니다.
최인호는 동년배 작가 중 가장 먼저 문단에 데뷔하여 대중적인 흥행 작가로 큰 성공을 거두었고,
20대 후반인 1970년대에 이미 밀리언셀러를 써 내면서 시대를 선도하는 상징적인 인물이 됩니다.
<별들의 고향> 책 팔아서 땅을 사고 <별들의 고향> 영화 판권으로 그 땅에 집을 지었다는 사람이었고,
남다른 다작이자 워커 홀릭에 가까운 인물이어서 많은 소설을 쓰면서도 꾸준히 영화판에 몸담으면서
<바보들의 행진>, <고래 사냥>과 같은 오리지널 영화 시나리오를 써서 영화 제작에 참여하기도 하였고 
<적도의 꽃>, <깊고 푸른 밤>, <겨울 나그네>와 같이 자신의 원작 소설의 영화화로 성공을 거두기도 합니다.
한 마디로 말해 최인호는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문단과 영화계의 총아라고 할 수 있었던 사람입니다.
     
1986년 제 1권이 처음 묶여 나온 <잃어버린 왕국>의 서문을 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는데,
"지금까지 50 여권의 소설을 펴내면서 아직까지 서문을 써 본 적이 없었다"라는 문장이었습니다.
당시 불과 만 41 세의 나이에 불과하면서, 이미 50 여 권의 소설을 펴냈다는 것입니다.
20 대 초반부터 전업작가로 일했다고 하더라도 무려 1년에 두 권 이상씩 소설을 출간했다는 의미입니다.
놀라운 것은 그렇게 어마어마하게 작품을 쏟아내면서도 버릴만한 책이 별로 없었다는 것이고,
또 더더욱 놀라운 것은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고 다채로운 테마와 영역에의 도전을 즐겼다는 것이죠.
    
1970년대부터 쓰기 시작한 도시 배경의 현대인들의 안타까운 연애물 <별들의 고향>, <겨울 나그네>가 있는가 하면,
악한 소설에 가까운 <내 마음의 풍차>, <지구인>, <불새>처럼 남자의 마초 성향을 물씬 풍기는 작품도 있습니다.
초현실주의를 내세우는 <타인의 방>, <진혼곡>, <돌의 초상>과 같은 단편도 청년시절부터 쓰기 시작해서
몇 번이나 제목을 바꾸고 개작하였던 <허수아비(=구멍)>, 말년의 <낮익은 타인들의 도시>에 이르기까지
팬터지 성향의 실험적인 초현실적인 소설들도 평생 놓지 않고 꾸준히 계속 탐구하고 집필하였습니다.
   
또한 부모님의 모습, 자신의 자녀의 모습, 배우자를 만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써낸 
<어머니가 가르쳐 준 노래>, <머저리 클럽>, <도단이>, <가족> 연작 등과 같은 사소설 시리즈도 있습니다.
특히 <도단이>는 자신의 아들에게 붙여 주었던 아명이 작품 주인공 이름이자 책 제목이 된 사례이고,
순수하면서도 잔혹하고 겉으로는 풍요롭지만 영혼의 불안을 느끼는 도시 어린이들의 삶을 잘 다루고 있죠.
     
1986년 <잃어버린 왕국>을 시작으로 이후 30 년 가까이 작가 생활 후반부에 전념하였던 역사탐험소설도 많아서,
백제를 중심으로 한 <잃어버린 왕국>, 고구려 중심의 <왕도의 비밀>, 신라를 다룬 <해신>, 가야를 다룬 <제 4의 제국>,
조선 상인을 테마로 한 <상도>, 불교를 테마로 한 <길 없는 길>, 유교를 테마로 한 <유림> 등을 써냈습니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던 최인호는 마지막으로 기독교를 테마로 한 예수의 시대를 탐험하는 소설을 쓰고 싶어 했는데,
(최인호가 가장 존경하고 높이 평가한 작품이 바로 그것을 한 세대 전에 해 낸 김동리의 <사반의 십자가>였죠)
결국 암투병 끝에 세상을 떠나면서 기독교를 다루는 역사 탐험 소설을 남기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최인호의 작품 중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단연 <내 마음의 풍차>입니다.
배다른 형제가 뒤늦게 만나 처음에는 겉돌지만 결국 서로를 마음으로 위하는 사이가 되고,
악인을 표방하는 형이 자폐 증세가 있는 동생을 타락시키려고 무진 애를 쓰지만 결국 동생을 치유하고 성장시킵니다.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반의 서울 풍경을 무대로 하면서, 진한 형제애를 다루고 있는 매우 아름다운 작품이죠.
<내 마음의 풍차>를 처음 읽었을 때 헤세의 <페터 까멘찐트>나 <황야의 이리>보다 못할 게 없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낭만적이면서도 젊은이들의 방황과 정신적 성장을 다루고, 무엇보다 예술적인 완성도와 깔끔한 마무리가 좋았거든요.
     
제 부모님 세대의 삶을 잘 다루고 있어서 각별하게 와 닿는 책은 "수필 연작"이라고 할 수 있는 <가족>입니다.
최인호는 "소설로 쓴 자서전"이라는 주장을 항상 책표지에 담았지만, 실상 <가족> 시리즈는 수필입니다.
잡지 <샘터>에 30 년 넘게 4~6페이지 분량으로 연재되었던 짤막한 수필들을 묶어 놓은 책인데,
저는 7권까지 읽었지만 작가가 세상을 떠나면서 두 권이 더 나와서 무려 9권짜리 "대하 수필집(?)"이 되었습니다.
최인호는 <가족>을 <샘터>에 연재하였을 뿐만 아니라, 다른 매체에 발표하는 글도 "샘터사" 사무실에서 쓰곤 했습니다.
언제나 빅볼 볼펜으로 손으로 빠르게 글을 써내려가서 왠만한 사람들은 최인호의 원고를 잘 알아볼 수도 없었다고 하고,
"샘터사"는 자기네 사무실에 와서 제 멋대로 자기 글 쓰고 가는 최인호를 반갑게 여기고 식자와 타자까지 도와주곤 했습니다.
사실상 최인호는 "샘터사"와 비즈니스적인 관계로 머물렀던 것이 아니라, 더불어 고락을 함께하는 "가족"이었던 것이죠.
"샘터사"와 최인호의 관계는 평생 최인호가 살아가면서 지향하였던 삶의 태도를 잘 보여줍니다
- 그는 솔직하게 자신을 까 발리는 성격이었고, 자신의 약점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뻔뻔함과 천연덕스러움이 있었습니다.
최인호의 연작 수필집 <가족>은 최인호의 삶이 너무나도 솔직하게 잘 묘사되어 있어서 즐겁고 살갑게 읽히는 책이고,
제 부모님 세대의 관점과 시각에서 저 역시 성장하며 경험하였던 일들을 다루고 있어서 더 좋아할 수 밖에 없습니다.
    
최인호의 최전성기는 1980년~1985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때까지 최인호는 현대소설을 쓰고 있었고, 역사탐험소설에 손대기 전이었습니다.
최인호는 당시 30 대의 젊은 나이로 끓는 피와 정열을 가지고 있었고, 하늘이 내린 필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미 10년 전부터 얻은 대중적인 인기와 문단에서의 지명도를 가지고 있었던 자유로운 영혼이었습니다.
그 시기에 써낸 최인호의 최고작 중 하나가 <지구인>입니다.
<지구인>은 탈옥수들이 총을 들고 설치는 이야기를 다루는 거친 악인 소설이자 하드보일드 소설이지만,
또 한 편으로는 급격한 산업화와 경제 개발 과정에서 소외된 사회 빈민층과 이탈자들을 중심으로 다루면서
사회적인 모순에 대한 문제 사항에 대한 작가의 깊은 관심과 분노가 폭발하고 있는 대단히 힘 있는 작품입니다.
최인호는 2000 년대 이후 <지구인>, <불새>, <별들의 고향>, <겨울 나그네> 등과 같은 자신의 대표작을 개작하였는데,
대부분의 현대를 무대로 한 작품들은 분량을 줄이고 압축하면서 소설적인 완성도를 높이는 데 주력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오히려 <지구인>만큼은 젊은 시절의 에너지를 온전히 담으면서 군사독재시절 압력을 받아 쓸 수 없었던 내용까지 추가하여서, 
나중에 발표한 개작판이 분량면에서나 작품의 메시지와 힘에 있어서나 훨씬 더 풍성하고 뛰어난 작품이 되었습니다.
    
최인호가 피크를 찍었던 최고점은 1983년과 1984년입니다.
1983년 무렵 최인호는 오래간만에 순문학 성격을 진지한 중편 소설을 발표하였는데,
한국과 미국을 오가는 생활을 하면서 이혼을 고민하는 남녀를 다룬 <깊고 푸른 밤>이었습니다.
문단은 영화와 대중소설로 세월을 보내고 있는 최인호가 뛰어난 순문학 작품을 쓴 것을 두 팔 벌려 환영했고,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당시 한국 최고의 문학상 중 하나였던 "이상문학상"을 안겨 줍니다.
왕년에 평론가 김현이 "최인호가 (순문학으로) 돌아왔으면 한다"고 절절한 심정을 남겼다는 일화도 있지만,
정작 최인호는 자유롭게 자기 하고 싶은 대로 글 쓰고 연극 상연하고 영화만드는 데 뛰어들고 마음대로 살고 있는데, 
순문학계에서는 최인호를 오매불망 못잊어 하면서 짝사랑하는 듯한 모양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죠.
   
1984년 봄 최인호의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 <고래 사냥>이 개봉합니다.
뛰어난 완성도와 개성 넘치는 캐릭터, 입담이 어우러진 최인호 특유의 색깔이 물씬 풍기는 작품이었고,
흥행 대성공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렇지 않아도 유명인물이었던 최인호의 성가는 하늘을 찌르게 됩니다.
또한 당시 일간지에 화제리에 연재되었던 "관음증"을 테마로 한 <적도의 꽃>도 영화화되어 1984년 가을 개봉합니다.
같은 해의 봄과 가을에 차례로 같은 작가가 원작을 담당한 영화가 제작되어 개봉한 것이었고,
<고래 사냥>과 <적도의 꽃>은 그 해 봄 가을 영화계의 최대 화제작이었습니다.
문득 쓴 중편소설에 대하여 순문학계에서 최고의 상을 선사하고,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쓴 영화가 당시까지 흥행기록을 모두 깨며 화제를 뿌렸으며,
또 같은 시기에 일간지에 연재한 장편 소설 역시 그 해 가을 곧바로 영화로 제작되어 나오는 상황...
최인호라는 인물이 한국의 문단과 영화계를 사실상 찜쪄먹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 하겠죠.
    
또한 그 시기에 최인호가 쓴 현대물들은 지극히 대중적인 모습을 보이면서도 당대 사회상을 잘 묘사하고 있어서,
지금 와서 읽어 보면 1980년대의 정경이 손에 잡힐 듯 와 닿고 더불어 사회 비판적 메시지 역시 아프게 느껴집니다. 
문학사상에 수 년 동안 장기간 연재되었던 <지구인>에 대하여 이어령씨가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읽어내리면서
(실은 <지구인>이라는 제목 자체가 이어령씨의 제안으로 붙여진 거죠) 치열한 사회적 메시지에 감탄하였다고 하고,
<불새>는 최인호의 문학적 스승이라고 할 수 있는 황순원 작가가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읽어가면서
인물 성격 조형에 대한 이유와 스토리 전개의 상관성 등을 집요하게 계속 질문하고 또 질문했다고 합니다.
최인호는 황순원을 지극히 존경하고 그 분의 충고를 귀담아 듣고 따르는 사람이기도 했는데,
심지어 황순원의 장편 <일월>의 여주인공 이름 "다혜"를 자신의 큰딸 이름으로 삼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장편 <겨울 나그네>의 여주인공 이름 역시 "다혜"로 지은 것도 같은 이유에서 존경을 표한 것이었습니다.
일개 대중소설일 수도 있는 <지구인>, <불새>, <겨울 나그네>와 같은 작품이 죽지 않고 30 년 넘게 계속 살아 있는 이유는,
겉으로는 명백한 대중소설을 쓰면서도 사회적 배경 역시 정확히 담아내었던 작가의 태도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떤 면에서 최인호라는 작가느 대중성, 문학성, 사회성을 모두 포괄할 수 있는 타고난 재주를 가지고 있었던 셈이죠.
    
최인호가 극적으로 자신의 작품 세계를 일변시킨 것은 1986년 <잃어버린 왕국>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입니다.
현대를 배경으로 작가 본인이 등장하여 과거 역사적 유적과 유물을 찾아다니는 메타 픽션의 기법을 선보이면서,
이와 동시에 패러럴하게 과거를 배경으로 역사 소설을 전개해가는 최인호 특유의 "역사탐험소설"을 쓰기 시작하죠.
<잃어버린 왕국>은 이러한 역사탐험소설의 첫 작품이자,
실은 작가가 죽을 때까지 쓴 모든 역사탐험소설 중 가장 뛰어난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TV 드라마로 큰 인기를 얻은 <상도>, <해신> 등이 대중들에게는 더 널리 알려지고 많이 읽혔지만,
개인적으로는 판단하기에 <잃어버린 왕국>을 능가하는 최인호의 역사탐험소설은 없더군요.
<잃어버린 왕국>은 광개토 백제의 망국과 일본에서의 백제 부흥 운동, 일본의 독립을 다루고 있습니다.
고구려, 신라, 당, 그리고 백제와 일본에 이르기까지 5개국을 넘나들면서 일본 황실과 백제의 연관성을 추적하고,
일본 황실이 멸망한 백제와 절연하고 독립된 나라로 자리매김하는 것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과정과
백제 유민이 일본으로 건너와 <고서기>와 <일본서기> 집필의 총책임자가 되는 이야기를 유장하게 쓰고 있습니다.
역사탐험소설은 중장년 이후의 최인호를 죽을 때까지 계속 베스트셀러 작가로 롱런하게 만들었지만,
또 한 편으로는 많은 에너지를 쏟아 부은 것에 비해 문학적으로 큰 가치가 없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합니다.
저는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최인호의 역사 탐험소설들 역시 재미있게 읽히기에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