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의 규칙 : 출판 스캔들!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끔찍한 경험이다. 그러나 이 책의 제작과정, 마케팅 과정이야 말로 더 끔찍한 사건이다.


전에 이 책의 1권을 읽으면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훌륭한 책이 번역 때문에 엉망이 되는 것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이 말은 맞는 말이지만 이 책과는 전혀 해당사항이 없는 말이다.


이 책은 번역도 엉망이지만 원본 역시 별로 볼 것 없다.


대학생이 자의식에 가득차서 자신의 현학을 뽐내보고 싶은 마음에 어려운 소재를 택해서 제법 글재주를 부려 끄적여 본 책. 그것이 이 책의 전부다.


그리고 번역자는 이 책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정성도 없이 자기 마음대로 내용을 삭제하고 오역하고 고유명사 표기를 멋대로 바꾸어가며 안그래도 재미없는 책의 재미를 더욱 떨어뜨린다.


가장 웃기는 것은 이 책의 서평들이다.


[The New York Times 리뷰의 자넷 매슬린은 이렇게 말했다.

“이 책이 정말로 뛰어난 이유는, 미스터리를 헤쳐 나가는 과정이 대단히 정확하고 명징한데도 불구하고 과장과 상상력의 범주 또한 이야기 속에 정교하게 뒤섞여 있다는 점이다.”]


입에 침이나 바르고 거짓말 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스콧 피츠제랄드와 움베르토 에코, 댄 브라운이 힘을 합쳐 소설을 쓴다면 \'4의 규칙\'이 나올 것이다. 놀라우리만치 훌륭한 작품이다. 반드시 읽을 것을 추천한다.

- 넬슨 데밀, \'오지\'와 장군의 딸\'의 저자]


어떤 블로거의 말대로 저 넬슨 데밀이라는 작자를 만나면 한대 심하게 때려주고 싶다. 어떤 블로거는 피츠제랄드나 움베르토 에코가 들으면 기절 초풍할 노릇이고 댄 브라운은 명예훼손소송을 걸 것이라고 적기도 했다.


젤 웃기는 서평은 복거일의 서평이다.


중앙일보 9월 25일자에 실린 서평의 일부를 보자

[4의 규칙』이 역사추리 소설의 특질을 짙게 띠었지만, 독자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 작품이 본질적으로 성장 소설이라는 점이다. 주인공들은 모두 젊은 대학생이고 그들은 신비스러운 르네상스 시대 저작이 만든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서 각기 크고 작은 상처를 입는다. \'히프네로토마키아 폴리필리\'를 실제로 연구한 대학생은 끝내 불에 타서 죽고, 화자를 포함한 나머지 세 대학생도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그 경험을 통해서 원숙해지고 졸업한 뒤에 각기 자기 길을 잘 걸어간다.]


웃기고 계신다. 복거일씨는 책을 끝까지 읽지 않았거나 다른 서평을 보고 멋대로 서평을 쓴 것에 틀림없다. 히프네로토마키아 폴리필리를 직접연구한 대학생 폴은 불에 타죽지 않았다. 다만 실종되었을 뿐이고 나중에 주인공에게 초대장을 보낸다. 복거일, 이젠 아주 사기를 치는구나.


미스테리는 따로 놀고 서스펜스는 아무데도 없으며 번역은 처음부터 끝까지 엉망인 책, 그러면서 도대체 희한한 재주로 온갖 화려한 서평만은 가득 담아서 엄청나게 팔아먹은 책. 그게 이 책의 정체다. 다빈치 코드는 최소한 헐리우드식 재미나 제공하지만 이 책의 저자들은 자신들의 자의식과잉 탓에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는 자신들의 대학생활과 현학적인 묘사만 가득하다.


이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다는 것은 악몽이다.

더 끔찍한 악몽은 이 책을 돈 주고 사서 읽는다는 것이다.


P.S. <다빈치 코드>는 사무실에서 사줘서 읽었지만 이 책은 내 돈주고 사서 읽었다....... 너무 끔찍해서 비슷한 류의 책들<성수의결사단>, <단테 클럽> 등등에 대한 미련도 싹 버려 버렸다.


P.S. <히프네로토마키아 폴리필리>처럼 풀리지 않는 고문서 중 또 유명한 것은 <보니히 고문서>다. 미국의 윌프레드 보니히가 구입한 이 고문서는 이탈리의 프라스카티에 있는 몬드라곤의 예수회 수도원의 낡은 상자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204페이지고 원래 28페이지가 더 있었는데 없어졌다고 한다. 이 책안에는 1666년 8월 19일에 프라하 대학의 학장 마르쿠스 마르티가 예수회의 아타나시우스 키르처에게 보내는 편지가 붙여져 있다.

아무튼 이 책은 다양한 식물과 별자리 그림이 있는데 식물그림은 현재 있는 식물이 아니었고 언어는 라틴어인지, 중세영어인지, 오크(중세 프랑스남부지망 언어)인지 조차 판별 불가능.
이책 역시 20세기 초반에 윌리엄 뉴볼드라는 펜실베니아대학의 교수가 암호해독에 성공했다고 하는데 4의 규칙에 쓰인 것 처럼 commuto라는 라틴어를 키워드로 하여 암호를 해독했다고 한다. 4의 규칙에 나오는 암호해독은 대부분 뉴볼드의 암호해독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뉴볼드의 해석은 옳지 않다는 지적이 당시부터 재기 되었고 지금은 거의 부정되는 형국. 다양한 이견들이 있지만 역시 결정적인 해독은 아직 없다. 현재 이 책은 예일대학에 기증되어 해독을 기다리고 있다.

4의 규칙에 질려버린 김에 보니히 고문서로 이런 사기 추리소설을 써보면 어떨까? 그럼 복거일은 또 읽어보지도 않고 주례사 서평을 중앙일보에 실어 줄까?